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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행·여행·풍경

순창 영구산 구암사

2005-06-19 23:23

 부도와 비가 한군데 있어야 하거늘 부도는 여기 구암사에 비는 고창 선운사에 각각 나뉘어 있습니다
백파 선사의 부도 (아주 소박합니다)


 

 은행나무 1392년 사찰 중건과 무학대사의 방문을 기념하고 조선 태조의 안녕과 번창을 염원해서 심었다고 전해옴

 절 마당에서 바라본 뒷산 (백학봉에서 상왕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때마침 사찰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음

 

 

마루금에 올라서서 상왕봉쪽으로 전진

 저 앞에서 상왕봉을 바라본다음 다시 하산

 

첨단산인과 강선마을에서 만나 채시동 골짜기로 폭포를 찾아 가면서 바라본 백양사 골짜기
여기로 계속 내려가면 일광정이라는 정자와 마주치게 됩니다

벌써 산나리가 피었습니다

얼마간 내려가서 만난 이름하여 용수폭포(?)

 

 

 너무나 순박한 백색의 접시꽃

 강선동이라 ! 신선이 강림하신 동네라는 애긴가?

 소담스레 피어난 접시꽃

 

_ 순창 영구산 구암사_

무슨 연유일까?

건장한 사내와 왜소한 사내 두사람이
눈밭에 벌거 벗은채로 씩씩대고 있었다

한사람은 백양사의 만암스님
또다른 이는 구암사의 승려

이 엄동설한에 도대채 무슨 이유로
벌거 벗은채 콧김을 뿜고 있을까?

까닭인즉

근대 백양사의 틀을 잡은 만암 스님이
조사전을 짓고 역대 조사의 영정을 모시는데
한분의 조사 영정이 구암사에 있는지라......

그길로 구암사에 찾아가 영정을 내달라고 청했것다

아닌밤중에 홍두깨라!
구암사를 지키는 승려로서는 순순히 내 줄수는 없는 노릇
보아하니 왜소한 체격 인지라  간단히 물리칠 요량으로
제안을 해서 벌어진 풍경

시간이 흘러 왜소한 백양사 승려  손을 들때가 되었는데
돌부처인지 미동도 않는구나!

마침내 구암사 승려 손을 들어 내빼고
조사의 영정은 백양사로 옮겨 졌다는 전설같은 얘기.........

이상은 제가 어디선가 주워들은 구암사에 얽힌 얘기 올시다.


휴일 구암사를 찾아 보았습니다



위당 정인보의 70년전 기행문으로
그옛날의 구암사를 그려 보자면.......

“ 구암사가 얼마나 높은 곳인가 하면
정읍역에서 보면 내장이 까맣고
내장에서 보면 순창 넘어가는 재가 또 까만데.......

순창은 실로 산 꼭대기 고을이어늘
구암은 순창에서도 까맣다 “

지금은 백양과 내장을 잇는 길이 뚫려
잠깐이면 오가지만 내 어릴적만 해도
구암사가 자리한 복흥면은 오지중에 오지라!

말 않듣는 처자에게 흔하게 쓰는말
‘너 복흥으로 시집 보내 버린다’

내장산까지 내려온 호남정맥중 백암산 뒷자락에
불쑥 얼굴을 내민 영구산 (720m)에 자리한 구암사

백제 무왕 37년 (서기 636년) 창건
암수 거북의 바위가 있어 구암사라 했다는데.........

6.25때 국군이 불을 질러 모조리 타버렸다는데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을 태움 이런가 !
(소실 이전의 모습을 어디선가 사진으로 본 일이 있는데
당당한 사세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영조때 화엄종주로 일컬어지는 설파대사가 주석, 사세가
번창 이후 100년간 화엄종맥이 계승된 사찰로 유명 합니다.

문화재로는 월인석보 (보물 제 745-10호 지정, 1459년 세조 5년 초간본)
를 소장, 추사가 쓴 현판과 긍선과 주고 받은 서간문은 6.25때 국군에
의해 소실 되었고, 편액 몇점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추사와 얽힌 애기가 많은 이유는
‘선문사변만어’로 잘 알려진 백파선사가 이곳 구암사에 주석 했기 때문이라!

그 유명한 초의와 백파의 조선사 최대의 사상 논쟁에
자칭, 타칭 해동의 유마거사라 칭하는 추사가 끼어들었겠다!

여기서 그 엄청난 내용을 내 염량으로는 감히 늘어 놓을 수 없고
한가지 ! 백파선사 사후에 추사가 쓴 묘비명으로 얼마나 추사가
백파를 존경 했는지를 알 수 있는데, 묘비 전면을 보면
“ 화엄종주 백파 대 율사 대기 대용 지비” 라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후면에 그렇게 쓴 연유를 적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 비문은 대대로 구암사에 보관 전해 오다 백파의 출가
본사인 선운사로 보내져 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평소에 달마를 즐겨 그린 추사에게 주위에서 너무나 백파와
닮았노라는 애기를 자주 들었는데 실지로 백파와 조우 하고선
너무 닮아 정말로 놀랬고 이후론 백파를 해동의 달마라 칭 했다 합니다.

제가 이렇게 구암사에 대해 장황 하게 늘어 놓은 진짜 이유는

조선조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들이
직간접으로 이 구암사의 강맥과 끈이 연결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유불선의 불꽃튀는 사상논쟁의 진원지가 바로 이곳 구암사고
그 중심에 수 많은 고승과 재가 불자들 그리고 유림들이
있었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고 부도밭과 절을 지나
산에 오르는 것도 의미있으리라 여겨지기 때문에
장광설을 늘어 놓아 보았습니다.

 

 

 

첨단산인
저는 하나의 산으로 백암산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영구산이라는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있었군요
영구라 나쁜이름은 아닌데 언젠가 모 개그맨이 이름의 가치를 확 떨쳐버렸죠
영구~ 없다. 라고
어느 지역을 가든지 그 지역에 전해오는 역사나 전설을 참고하며 산행하는것도
깊은의미가 있고 나의 발전이기에 환기형님의 말씀에 백번 동감합니다.
2005-06-20
09:10:58

[삭제]

MT사랑
첨단친구 저 익살~ 영구우~없다 ㅎㅎ
형님 돌산에 위치한 향일암이라는 암자도 요즘 영구암이라 많이 부르는데
영구산과 영구암 무슨 연관성이 있을지...
지리산의 영원사 등
이제 오늘도 퇴근 시간이 되었나 봅니다.
창밖의 일몰에 눈이 부시네요
2005-06-20
19:14:25

김환기
돌산 임포의 향일암이라,,,,!
원래는 선덕여왕 13년 (644년) 에 원효가 창건 했고 원통암이라 명명한 1400년 역사의 고찰이라고 알고 있�니다.
향일암이라는 명칭은 조선 숙종41년 인묵대사가 개명 했다고 합니다.
또한 영구암이니 금오산이니 하는것들은 모두 거북형상에서 유래한 것들 입니다.주변 바위가 거북등처럼 생겼고 사실 산에올라 내려보면 거북이 바다로 들어가는 형상이라는건 누구나 알수 있습니다.문제는 거북이 목과 머리에 마련한 주차장이 영~
껄적지근 합디다. 그나저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동백이 돌산에 있다는데 아직 찾아보지 못했습니다.아신다면 정보좀 주십시요. 시원한임포 바다를 배경으로 일잔 쫘~~~~악! 이시간 벌떡 일어나 돌산으로 달려가고 싶어 지누나..........!!!!!!!!!!!1
2005-06-21
00:26:42

[삭제]

공명
우리 님들 취미가 다양하니 다양한 볼거리들이 흥미롭습니다.
몇일 동안 개인적으로 힘든일이 있어 컴에 들어오지 못했더니
많은 글들이 올랐네요.
찬찬히 재미있게 살피고 갑니다.
2005-06-22
12:19:31

작은여백
정말 많은것을 가지고 사시네요~~~
그냥 산에 오를때 읽는 정도로 끝인데..이런 모든것들을 기억하시는것이
참으로 대단하시네요~~향일암도 또다시 가보고 싶은마음도 들고요
문화를 알아가는 첫걸음으로 메모를 해보아야 겠습니다...
좋은사진 잘보고 갑니다... 저도 백암산으로만 알고 있었는데...많은 도움이 되었네요.
한주 즐겁게 보내세요....전 저번주 전북 진안 마이산에 다녀왔습니다..제 고향이기도 합니다.
2005-06-26
06:25:16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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