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당不知堂에서의 다회茶會
모리거사님과 며느님과의 찻자리
찻자리를 펼친 며느님께서는 차茶 전공으로
숙명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바 있는 재원이시다.
손녀의 그림 재롱을 흐뭇함으로 지켜보시는 중.
장성 백암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냇가에 흐드러진 벚꽃 감상.
훈몽재 유지(訓蒙齋 遺址 )
훈몽재는 임란 때 소실되었으나, 5세손인 자연당 김시서가 장성에서 이곳에 은거하여
선조 하서 김인후의 유업을 계승하고자 1680년 경 훈몽재를 수축하고, 그 옆에 초당 자연당을 지어
학문을 닦으며 명사들과 교유하였다. 세월이 흘러 훈몽재가 퇴락하자 1827년(순조 27) 후손과
순창 유림들의 공의로 사우 건립을 도모하여, 1831년(순조 31) 어암서원을 건립하고
하서 김인후를 주향으로 율곡 이이, 송강 정철, 자연당 김시서를 배향하였다.
이후 1864년 (고종 1)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 훼철 되었다가, 일제 강점기에
중건 되었으나, 한국전쟁으로 다시 소실된 것을 2009년 다시 복원한 것이다.
하서 김인후는 조선 중기 대표적 성리학자로 1510년 전라도 장성현 대맥동에서 출생.
1531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후 성균관에 입학하여 퇴계 이황을 만나 교우 관계를 맺고 함께 학문을 닦았다.
1540년 문과에 급제 권지승문원 부정자에 등용되었다. 1541년 호당에 들어가 사가독서 하였다.
이후 홍문관 저작이 되었고 1543년 홍문관 박사 겸 세자시강원 설서가 되어 당시 세자이던 인종을 가르쳤다.
이후 홍문관 부수찬 겸 경연 검토관이 되어 기묘사화 때 죽임을 당한 기묘명현의 신원 복원을 문신으로서 처음 개진하였다.
그러나 신원 복원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 같은 상황을 견딜 수 없어 연로하신 부모 봉양의 걸양을 청하여
그해 겨울 12월 고향과 가까운 옥과 현감에 제수되어 부임하였다.
1545년 인종이 즉위한 후 8개월 만에 갑자기 승하하자, 이에 충격을 받아 심장병이 발작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소생하여 사직을 청원 고향 장성으로 돌아화 후학 양성과
성리학 연구에 진력하여 조선 성리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
1545년(명종 즉위년) 문정왕후를 위시한 집권 세력이 저지른 을사사화를를 피해 1548년 봄 어버이를 모시고
처가가 있던 고향인 이곳 쌍치면 둔전리 벽방산 자락 점암촌(鮎巖村)에 우거하며 점암(鮎巖) 천변위에
초당을 세운 후 훈몽訓蒙이라는 편액을 걸고 후학을 길러내었다.
자연가自然歌
- 하서 김인후 -
청산도 절로 절로, 녹수도 절로 절로.
산도 절로 물도 절로하니, 산수간 나도 절로.
아마도 절로 삼긴 인생이라, 절로 절로 늙사오리.
훈몽재 앞 추령천변에는 여러 명이 앉을 만한 사진 상의 암반이 있다.
하서는 이곳에서 고암 양자징(소쇄원 양산보의 子)을 비롯, 월계 조희문 등 여러 제자들에게
《대학》을 강론 하였다고. 이후 바위이름을 대학암(大學巖)이라 불렀으며, 훗날 하서의 문인인
송강 정철이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바위에 『大學巖』이라 각자를 새겼다고 전한다.
또 상류에 낙덕암(樂德巖)이 있는데 이곳 역시 선생이 쉬고 노닐며 강송(講誦)하던 곳.
정자 앞 추령천가에 심어진 매화에 벌어진 사변!?
이내 시력이 형편 없어 그런 것일까? 한 그루 매화에 백매와 홍매가 동시에 피어난 모습이다.
이런 건 보통, 백매든 홍매 든 어느 한 나무에 다른 개체를 접 붙였을 경우인데
아무리 살펴봐도 접 붙인 흔적이 도통 보이질 않는다.
추령천 물색에 흐드러진 버드나무 군락.
나무 한 가지에 백매와 홍매가 동시에 피어나는 휘귀한 사례였던
화순 능주 죽수서원의 '정암매(죽수매)는 내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
'이름'까지 붙여 세상에 알렸건만, 관의 몰지각에 의해 지금은 사라져 버렸다.
이 훈몽재의 매화는 각기 다른 가지에 한가지 색상으로만 피어난 것으로 보아
분명 접을 붙인 것 같은데...?
훈몽재 마당에 자리한 '지석묘'
추령천에 낭자한 매향의 세계.
비록 고매故梅와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향기만큼은 최상이더라는 사실.
천변을 따라가면 그 끝에 가인 김병로 선생의 생가와 '낙덕정'에 이르게 된다.
고요만이 자리한 '훈몽재' 전경.
모리 선생님의 손녀께서 취한 포즈.
한 그루 매화나무에 백매와 홍매의 조화가
너무도 자연스런 모습인지라, 보고 또 보고....
'하심 쌍매'의 본향 담양 '하심정'
며칠 전에 다녀 갔지만, 오늘 현재까지도 꽃의 상태가 너무도 싱싱.
하심정 대밭에 흐드러진 산벚꽃.
석탄주惜呑酒가 익어가는 건물 앞을 흐드러지게 장식한 앵두꽃.
석탄주 항아리 행렬.
'하심정'의 쥔장 송영종 선생께서 집안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가양주인 '석탄주 시음試飮으로의 초대.
미암매眉巖梅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 선생의 아호를 빌려 '미암매'로 호칭.
비록 개화 상태가 끝나가는 중이지만 을사년 '미암매'의 개화 상태는 예년에 비해 너무도 쇠약한 모습.
쥔장이신 송영희 여사께서는 어디로 출타 중이신지 모습을 볼 수가...
화려한 수세로 손가락에 꼽을만큼의 화려한 개화 모습을 자랑하던 개체인데
세월의 무게 앞에 점점 쇠약해 지는 모습이 그저 안타깝기만.
쥔장 대신 화려함으로 반기는 수선화의 청아함.
백매만큼은 아직도 개화 상태가 여전.
'미암매원'의 매향만큼은 동행자께서도 인정하는 황홀의 지경.
매향梅香의 세계란 이런 것.
을사년 탐매행探梅行의 마지막을 '미암매' 전前에 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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