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로 연결된 고군산군도 맨 끝에 위치한 장자도.
선유도해수욕장과 망주봉이 보이는 풍경
'앉으면 백산 서면 죽산'이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백산성' 오르는 길
백산성은 작은 언덕 수준이지만 이곳에 오르면 사방 백리가 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뉴욕에 거주하시는 두 부자께서 원래 계획했던 코스의 출발점은 바로 이곳이었다.
허나 본래의 계획에 수정을 가하다 보니, 남쪽 바닷가에서 급히 윗녘으로 올랐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동학혁명백산창의비
아랫쪽으로 유장하게 흐르는 동진강과 기름진 호남평야가 보인다.
저 동진강을 가로막아 농민들에게 수세를 요구했던 조병갑의 횡포는
동학혁명의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동학정에 올라 외치는 하늘이시여!
이것이 나의 천명! 이것이 나의 천명!! 이것이 나의 천명!!!
이매창은 조선 중기의 기생이자 여류시인이다.
묘는 1983년 8월 24일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현재 매년 음력 4월 5일 부안의 율객(律客)모임인 부풍율회(扶風律會)에서 매창제(梅窓祭)를 지내고 있다.
이매창(李梅窓)의 본명은 향금(香今), 호는 매창(梅窓) 또는 계생(桂生·癸生), 계랑(桂娘·癸娘)등으로도 불린다.
그녀의 문집인 《매창집》 뒤에 붙인 발문을 보면, 아버지는 부안현(오늘날 부안군)의
아전 이탕종(李湯從)임을 알 수 있다.
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나 당대의 문사인 유희경(劉希慶)·허균(許筠)·이귀(李貴) 등과 교유가 깊었다.
부안(扶安)의 기생으로 개성의 황진이(黃眞伊)와 더불어 조선 명기의 쌍벽을 이루었다.
그의 문집 『매창집』 발문에 기록된 생몰 연대가 정확하다. 그는 37세에 요절하였다.
유희경의 시에 계랑에게 주는 시가 10여 편 있다.
『가곡원류』에 실린 “이화우(梨花雨) 흣날닐제 울며 잡고 이별(離別)한 님”으로 시작되는
계생의 시조는 유희경을 생각하며 지은 것이라는 주가 덧붙어 있다.
허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도 계생과 시를 주고받은 이야기가 전한다.
그리고 계생의 죽음을 전해듣고 애도하는 시와 함께 계생의 사람됨에 대하여 간단한 기록이 덧붙여 있다.
계생의 시문의 특징은 가늘고 약한 선으로 자신의 숙명을 그대로 읊고 자유자재로 시어를 구사하는 데에 있다.
그의 우수한 시재(詩才)를 엿볼 수 있다.
여성적 정서를 읊은 중에 「추사(秋思)」·「춘원(春怨)」·「견회(遣懷)」·「증취객(贈醉客)」·「부안회고(扶安懷古)」·
「자한(自恨)」 등이 유명하다. 그는 가무·현금에도 능한 다재다능한 예술인이었다.
동진강의 물을 펌핑하여 가둔 저수지 산책
석정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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