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추성부도」, 종이에 옅은 채새, 56.0×214.0cm, 1805, 삼성미술관 리움
「추성부」는 중국 북송대의 문인 구양수가 가을밤 바람소리를 묘사하고 의론한 부賦(산문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물의 형상과 의론의 전개가 유려하고 감성과 이성이 잘 조합된
부의 새로운 경지로 평가되는 명문이다.
김홍도는 풍속화 뿐만 아니라 산수, 화조, 인물 등에서도 빼어난 화가였고,
정조의 지지를 받으며 실력 발휘를 하였기에 남겨놓은 걸작의 양에서 조선 최고이다.
이 그림 「추성부도」는, 정조도 세상을 뜨고 김홍도의 인생에도 가을바람이 불어올 무렵 제작된 것이다.
구양수의 성은 '구양' 이고 이름이 '수' 이다.
이 글 「추성부」 첫머리의 '구양자歐陽子' 라 그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글에서 구양수는 가을저녁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시인은 이 소리를 묘사하며 이 소리로 인한 감회를 읊었다.
이를 읽노라면 우리는 소리를 묘사해놓은 시인의 표현력에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감탄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곧 그가 인도하는 깊은 사색으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언제 어디에 있든, 이 시문은 스산한 가을밤으로 우리를 데려다줄 것이며,
쓸쓸한 인생의 가을을 숙고하게 해줄것이다.
구양자가 밤이 되어올 무렵 책을 읽으려니 소리가 들리는데 이는 서남쪽에서 오고 있었다.
섬뜩 두려운 마음으로 이 소리에 귀 기울이며 말했다.
"이상하구나."
처음에는 우두둑우두둑 하는 빗소리에 휘휘 하는 바람소리더니, 갑자기 물이 거세게 일어 부딪혀 올라
마치 바다의 물결이 밤중에 놀라 폭풍우로 쏟아지는 듯하다가, 그 물결이 무슨 물건에 부딪히는지 텅텅,
쩔그렁쩔그렁 쇠붙이들이 한꺼번에 울리는 소리가 났다. 혹은 마치 적지에 다다른 군마가 입에 재갈을 물고
질주하는 듯 호령소리는 들리지 않고 사람과 말이 내달리는 소리만 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 동자에게 말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너 좀 나가보아라."
동자가 말하였다.
"별과 달이 밝고요, 하늘에는 은하수가 걸려 있고요, 어디서도 사람 소리는 안 들려요.
그러니 이 소리는 나무숲에서 나는 거죠."
나는 말하였다.
"어허, 슬프도다! 이는 가을의 소리구나. 어이하여 왔는가? 가을의 모습이란, 그 색이 참담하여
안개구름은 걷히고, 그 모습이 청명하여 하늘이 높아지고 태양이 투명해지며, 그 기운이 싸늘하여
피부와 뼛속으로 파고들며, 그 뜻이 쓸쓸하여 산천이 적막해진다. 그리하여 그 소리가 그렇게 애절하고
떨치고 일어나듯 한 것이라. 풍성한 풀들이 푸르게 우거져 무성함을 다투었고 아름다운 나무들 울창하여
우리를 기쁘게 하였건만, 풀들이 가을에 흔들리자 색이 누렇게 되고, 나무들이 가을을 만나자 잎이
떨어지는구나. 저들이 꺾이고 시들어 떨어지는 이유가 바로 가을기운에서 번지는 매서움 때문이도다.
가을은 형관刑官이라, 음陰의 때요, 전쟁의 상이며, 오행 중 금金이다. 이는 천지간에 의로운 기운義氣
이라 항상 냉엄하게 다스려 죽이는 속성을 가진다.하늘이 만물에 작용함에 봄에는 태어나고 가을에는
열매 맺게 하였다. 그리하여 음악에 있어서 가을은 '상商' 의 소리로 서방의 소리를 주관하고,
'이칙夷則' 으로 칠월의 음률이 된다. '상商' 이란 상傷(손상시킨다)이다.
만물은 성한 시절이 지나면 마땅히 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아, 초목은 정情이 없으나 때가 되니 날려 떨어진다. 사람은 동물이며 만물 중에서 영靈이 있는 존재라.
갖은 근심이 그 마음心을 흔들고 온갖 일이 그 모습形을 지치게 한다. 중심中이 흔들리면 반드시 그 미세한
정수精까지 흔들리거늘, 하물며 그 힘이 미치지 못할 것까지 고민하고 그 지혜로 하지 못할 것까지 근심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발그레한 모습이 마른 나무처럼 되고 칠흑의 검은 머리가 백발성성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어찌하여 금석金石 같은 자질이 아니면서 초목과 더불어 번영을 다투려 하는가.
누가 사람들을 해치고 죽이는지 가만히 생각해보아라. 어찌 가을의 소리를 한탄하겠는가?"
동자는 대답이 없이 고개 떨어뜨리고 잠들어 있었다. 다만 사방의 벽에서 벌레소리
찌르륵찌르륵 하며 나의 탄식을 돕는 듯하였다.
歐陽子方夜讀書, 聞有聲自西南來者, 悚然而聽之曰: "異哉!" 初淅瀝以蕭颯,
忽奔騰而澎湃, 如波濤夜驚, 風雨驟至, 其觸於物也, 鏦鏦錚錚, 金鐵皆鳴.
文如赴敵之兵, 銜枚疾走, 不聞號令, 但聞人馬之行聲.
予謂童子: "此何聲也? 汝出視之." 童子曰: "星月皎潔, 明河在天, 四無人聲, 聲在樹間."
予曰: "唏唏, 悲哉! 此秋聲也, 胡爲乎來哉? 蓋夫秋之爲狀也, 其色慘淡, 煙霏雲斂,
其容淸明, 天高日晶, 其氣慄冽, 砭人肌骨, 其意蕭條, 山川寂寥. 故其爲聲也, 凄凄切切,
呼號憤發. 豊草綠縟而爭茂, 佳木蔥籠而可悅, 草拂之而色變, 木遭之而葉脫, 其所以摧敗零落者,
乃其一氣之餘烈. 夫秋刑官也, 於時爲陰, 又兵象也, 於行爲金, 是謂天地之義氣, 常以肅殺而爲心.
天之於物, 春生秋實. 故其在樂也, 商聲主西方之音, 夷則爲七月之律. 商, 傷也, 物旣老而悲傷.
夷, 戮也, 物過盛而當殺. 嗟乎! 草木無情, 有時飄零. 人爲動物, 惟物之靈. 百憂感其心, 萬事勞其形.
有動于中, 必搖其精, 而況思其力之所不及, 憂其智之所不能, 宜其渥然丹者爲槁木,
黟然黑者爲星星. 奈何以非金石之質, 欲與草木而爭榮? 念誰爲之戕賊, 亦何恨乎秋聲."
童子莫對, 垂頭而睡. 但聞四壁蟲聲喞喞, 如助余之歎息.
구양수는 「추성부」 전편에서 그 긴장을 늦추지 않고 가을소리에 집중하고 있다.
사실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평범한 저녁이다. 시인은 밖에서 들리는 바람소리에 저 혼자 심란하다.
동자의 말대로 이 소리는 나무숲에 바람 부는 소리일 뿐이건만, 시인의 신경은 점점 곤두선다. 형체가 없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재갈을 물린 군마들이 적지에 다다를 때 질주하는 말발굽 소리라고 비유하는 상상력이
놀라울 뿐이다. 이 소리가 가을로 인한 자연의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된 구양수의 마음은 우주의 이치로 소용돌이친다.
떨어지는 초목과 죽어가는 만물이 조화의 질서임을 생각하면서, 구양수는 더욱 처연하게 스러져가는
사람들의 삶을 애달파한다. 삶을 고되게 만드느 인간의 어리석은 수고에 대한 그의 탄식이 이어진다.
우리는 이 글 속 가을의 스산한 기운에 취하여 작자의 사색과 탄식으로 빨려들어간다.
힘과 지혜가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해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스스로를 병들게 하고 스스로 죽이고 있는
나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묻는 순간, 아무 '소리' 없이 편안하게 잠든 귀여운
동자의 얼굴이 쓰윽 등장한다. 그러자 곧 찌르륵찌르륵거리는 벌레의 '소리' 가 구양수의 탄식의 벗이 되며
등장한다. 벌레소리 또한 가을소리 아닌가. 벌레의 '소리' 로 글을 맺는 마지막 구절에 이르면,
이 글의 탄탄한 구성력과 작자의 재치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구양수는 심미審美적 감각이 유별난 학자였다. 낙양에 머물 적에 그곳에서 재배되는 온갖 모란꽃들을
종류별로 구별하여 그 차이를 묘사함으로써 역사상 전례 없는 화훼 전문서적을 저술한 모란꽃 전문가였고,
돌과 비석의 글씨를 탁본하여 수장하고 역대 서법을 정리한 금석학의 대가였다. 소식같이 예술적 감각이 특출한
문인이 배출된 배경에는 바로 구양수가 버티고 있었다. 구양수가 없었으면 소식도 없었을 것이다.
좌) 뭉크, 「외침」, 마분지 위에 펨페라와 파스텔, 91×73cm, 1893, 오슬로 국립미술관
우) 김홍도, 「추성부도」의 세부도
소리를 묘사하여 글로 쓰기란 쉽지 않거늘, 소리를 어떻게 그림으로 그릴 것인가.
물이 금속에 부딪히고 군마가 적지로 내달리는 강도로 시인의 신경을 때리고 울렸다는 소리이다.
- 초현실주의 작가 뭉크가 그린 「외침」이 떠오른다. 가을저녁 평범하고 평화로운 석양 속에서 혼자 얼굴이
창백해져서 귀를 틀어막고 몸까지 뒤틀며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그 모습. 화가의 붓질은 물결치듯 휩쓸리듯
선율을 만들고 있는 그 강렬한 그림 말이다. 그림의 코드 변화는 매우 느리고 견고했다.
김홍도는 이 그림을 1805년, 즉 나이 예순에 그렸다. 이 그림 위 왼편엔 "을축년 겨울, 동지 지나 3일에 단구가
(김홍도)쓰다" 라고 명시되어 있다다. 「추성부도」는 김홍도 만년의 작품이다.
노인 김홍도는 인물 표현에 관한 한 매우 심상尋常한 이미지를 택하였다. 선비는 책을 펴고 달창 옆에 놓인
책상에 앉았고, 동자는 뜰에 섰다. 둥근 달창 앞에는 반듯한 연못이 있고 건물 곁에 큰 괴석과 파초가 있으며
학이 노닐고 있다. 이러한 구양수의 독서상이나 송나라 대학자의 정원 이미지는 16세기 명나라 문인화가들이
그린 「추성부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홍도, 「추성부도」의 세부도
김홍도는 가을소리를 표현할 지면을 특별히 넓게 마련하였다. 화면 가득한 가을 숲이 그것이다.
소리가 밀려오는 곳은 화면의 왼편이다. 모든 나무들이 참담하게 누런빛으로 마른 낙엽을 떨어뜨리며 서 있다.
별채 하나가 풍치 좋은듯한 자리에 지어져 있지만 이미 텅 비었고, 그 뒤를 장식한 대숲은 아직 퍼렇긴 해도
버석거리는 마른 잎을 흔들고 있다. 암석 사이의 공간이나 지면의 공간 그리고 나무 사이의 공간에는 수평적
마른 붓질이 거듭되어 있다. 이 붓질들은 지면을 쓸고 대기를 쓸며 그림 속을 지나가며 온갖 생명을 말리고
있는 가을바람이다. 선비집의 학 두 마리가 오는 바람을 경계하듯 나란히 버티고 섰다. 선비는 단정히 앉아
있지만, 편안하게 독서할 분위기가 아니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우리가 이 글 「추성부」를 미리 읽지 않았고 그 내용도 모르는 채 이 그림만 보았다면,
김홍도가 그림에 베풀어놓은 가을소리를 볼 수 있었을까. 김홍도가 가을소리를 그림 속 가을 색으로 바꾸어
놓은 그 감각의 치환을 우리가 누릴 수 있었을까. 심지어 가을소리에 신경이 곤두서서 책도 읽지 못하는 선비
의 마음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조선의 문인들은 이 그림에 적힌 긴 「추성부」를 보는 순간, 「추성부」의
생동감 넘치는 소리 묘사와 그 울림 깊은 가을소리며 명문장 속 단어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림 속 단정히
앉은 구양수가 안절부절 못하고 탄식하고 있는 것을 잘 알았을 것이다. 이처럼 문학작품에 대한
익숙함과 온전한 습득은 조선시대 학자들이 그림을 감상하는 첫 번째 열쇠였다.
옛 그림 중에는 산수자연의 소리를 듣는 주제의 그림이 제법 있다.
대표적이고 전통적인 예가 '청송聽松'(솔바람을 듣노라)이다. 소나무 아래 선비가 조용히 않아 있는 장면을 보면,
옛 학자들은 솔바람을 들었다. 문학적 전통 때문이다. 기록을 찾아보면, 조선 19세기 학자 신위의 아들이
「청추도聽秋圖(가을을 듣노라)」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신위는 아들의 이 그림을 보며,
「추성부」의 글귀를 담아 시를 주었다. 이 그림은 전하지 않지만, 이 역시 황색 톤 가을 숲에
별일 없는 듯 앉은 선비를 그린 그림이었을 것이다.
조석진, 「추성독서」, 《중국고사도》, 10폭 병풍 중 한 면
비단에 채색, 각 폭 108.5×31.5cm, 삼성미술관 리움
최근에 한 연구자가 조선말기와 20세기 초엽에 그려진 「추성부도」를 다루었다.
이에 따르면 「추성부도」는 조선말기에 들어 사계절 그림 중 가을을 표현하는 하나의 이미지로 정착되었고, 이후
근대기로 들어서면 「추성부도」라는 그림에서 선비의 독서 장면만이 부각되는 변화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예는 근대기 화가 조석진의 그림들이다. 조석진 그림의 제목은 아예 「추성독서」이다.
독서하는 구양수가 큼지막한 이 그림을 소개하는 연구자의 지적이 날카롭다.
근대기의 「추성독서」 화면은 곧 '가을은 독서의 계절' 이라는 공식을 제공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었다.
그러나 사실 가을은 구양수에게 독서를 할 수 없게 만든 심란한 소리의 계절이었다.
설령 「추성부도」에 대한 오류의 감상이 '가을은 독서의 계절' 이라는 공식을 제공했을지라도, 혹은
일본의 어떤 문화적 맥락이 일정한 영향을 행사했을지라도, '가을-독서' 를 수긍할 조건은 이미 우리 전통의
내부에도 마련되어 있었다. 가을소리에 독서를 재촉하는 더욱 강한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자선생의 「권학문」이 그것이다.
"소년은 늙기 쉽고 배움은 이루기 어려우니 일 초의 시간인들 가벼히 여기지 말라.
연못가 봄풀에 꿈 깨기 전에 뜰 앞 오동잎이 '가을소리'를 전하도다."
우리 문학사상사에 구양수-소동파의 감상적 측면과
주자-성리학의 도학적 측면이 서로 대치되며 흘렀던 사정을 고려한다면,
독서하는 선비에게 '가을소리' 는 만감을 교차하게 하였을 것이다.
인용: 고연희 著 <그림, 문학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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