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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탐매

신축탐매 (辛丑探梅) II

 

 

백운동 별서정원 대문 앞에 서니, 예전과 달리 사람의 온기가 단박에 느껴집니다.

 

 

 

 

 

 

 

 

 

 

 

별서를 지키시던 고 이효천 옹의 서거 이후,

  유배시절의 다산의 청에 의해 초의가 그렸다는 '백운동도' 에 의거 복원 작업을 하느라 지표조사를 하는 등

어수선 하던 시절이 흐른 수년 후의 오늘. 간만에 찾은 별서정원의 모습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별서 위쪽 차밭 도로가의 박물관 신축작업 현장에서 차밭을 지나 별서 담장길에 이르기까지.

심지어는 문화해설사까지 등장한 모습이었다.

 

 

 

 

 

 

 

 

 

 

 

 

 

 

 

 

완전 신축 건물이다.

 

 

 

 

 

입향조인 이담로를 추모하는 건물이렸다!

원주 이씨임을 증명하는 문 윗편의 편액 서체도 괜찮아 보이고...

 

 

 

 

 

비용 측면이었을까?

초가 이엉의 두께가 좀 아쉽다. 좀 더 두텁께 이었으면 좋았을텐데,

 

 

 

 

 

 

담장 너머 골짜기엔 물 한방울도 보이지 않는다.

별서 윗편, 월출산 자락을 바리깡질 해서 차밭을 조성해버린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다.

 

 

 

 

 

건물 뒤편 산자락에 누운 백운동 별서정원의 조성자 이담로의 무덤도 보인다.

 

 

 

 

 

마루 끝 댓돌 위 신발 한켤레가 보이는 것으로 봐서 누군가 이 별서정원을 지키고 있다는 얘긴데

해설사에게 물으니, 고 이효천 옹의 아드님이 퇴직 후 이곳을 지키고 있다는 설명.

방금 전까지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던데, 문을 두드리기가 미안해서 그만 돌아서고 만다.

 

 

 

 

 

 

 

 

 

 

목버짐이 번진 병약한 매화나무 모습.

과거 일백그루를 심었다는 나무가 고매로 남은 게 한 그루도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까울 뿐이다.

 

 

 

 

 

 

 

 

 

 

 

 

 

 

 

 

 

 

 

창하벽 위 정선대(停仙臺) 오름길의 동백낙화.

 

 

 

 

 

 

 

 

 

 

 

 

 

 

 

 

 

 

 

 

 

 

 

 

 

 

 

간간히 답사객의 모습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행여 이곳도 일반 관광지로 변해버리지나 않을지 저으기 걱정이다.

 

 

 

 

 

우리나라 민간정원에 남은 유일한 '유상곡수연'이 가능한  풍류가

이곳 월출산 자락에 낭자하다는 말씀.

 

 

 

 

기기묘묘한 암봉이 늘어선 옥판봉이 백운동 원림을 호위하는 형국.

옛 기록엔 '옥판봉' 이라 기록되어 있지만 현재는 '향로봉'으로 불리운다는 사실.

 

 

 

 

 

백운동 별서정원의 울창한 동백숲을 나서시는 동학(東學) 천도인(天道人) 커플.

 

세상천지 널리고 널린 게 로(路))와 도(道)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로 치는 길 중 하나가 바로 이곳 백운동 별서정원에 이르는 짧은 길.

 

또 하나, 상고 이래  최상의 길은 동학(東學) 천도(天道) 임을 제시해주시고

최 수운의 명징한 가르침까지를 이내 필부에게 일러주신 두 분 선생님.

 

내가 가장 사랑스러워 하는 이 동백숲길을,

 천도의 길로 이끌어 주신 두 분내외분과 함께 걷는 즐거움이여!

 

아~~~

이 주체키 어려운 이 행복만땅의 경계를 어이할꺼나!!

 

 

 

 

기나긴 시간과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폐사지의 정취를 오롯하게 되찾은 '월남사지' 를 찾았다.

과거, 잡목과 대숲속에 방치되다시피 했던 '진각국사비' 가 준수한 비각 속에 자리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보물 제313호 월남사지진각국사비月南寺址眞覺國師碑

전체 높이 3.58m, 직사각형 대석 높이 2.6m, 너비 2.3m.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

월남사는 고려 중기에 진각국사 혜심(慧諶, 1178~1234)이 창건한 사찰로, 창건 이후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월남사지는 월출산 경포대 일대를 배경으로 남향한 월남마을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처음에는 누구의 비석인지 몰라 월남사지비라고 부르다 1973년 비의 내용을 판독한 뒤 진각국사비로 이름을 정정했다.

거북받침돌 위에 비신을 올린 형태이다. 편마암으로 된 비몸은 윗부분이 떨어져 나갔으며 머릿돌은 없다.

거북은 긴 목을 빼고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다. 네 발을 단단히 짚고 있는 모습이 매우 사실적이다.

 비문은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잘 보이지 않으나, 당시의 문장가인 이규보가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폐사지의 상징인 3층석탑과 진각국사비 말고는 온통 동네로 변해버렸던 옛 모습이 오버랩된다.

우리나라 최고 수령의 백매(白梅)가 바로 이곳에 서 있었는데 십 수년 전 기계톱에 버혀져 버렸다.

그 개체가 오늘날까지 존재했더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이랄까!

폐사지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한 줄기 매향이 이내 코끝에 달려드는 환청이....

 

 

 

 

 

폐사지에 서면 정말이지 오만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절과 불교, 한 시절 나라를 이끌었던 사상사의 본향이 아니던가?

 

 

 

 

 

백제계 모전석탑으로 저 멀리 경포대 계곡 끝으로 월출산 천황봉이 바라다 보인다.

오른편은 양자봉, 왼편은 향로봉이다.

 

 

 

 

 

긴 회랑의 지대석이 복원되어 있었다.

 

 

 

 

 

아마도 우물이었던 듯.

 

 

 

 

 

월남사지의 와편이 수습된 모습인데 몇 개 들추어보노라니

생각보담 보존 가치가 꽤 큰 와편이 수두룩이더라는 사실.

 

 

 

 

 

월남사는 아마도 정유재란 시기 폐사되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대세인 듯

 

 

 

 

 

 

 

 

 

 

 

상륜부에 얹혀진 보발을 보아하니 몸체의 석질과는 전혀 다른 재질이던데

누가 무슨 근거로 저렇게 얹었을까? 자료를 찾을수 없어 궁금증만 더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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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탐매' 2편을 올려놓고 보니 정작 개화상태의 매화는 전혀 등장치 않고 거의 동백타령 일색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꼭 현물이 눈 앞에 놓여야만 '탐매' 라던가?  미루어 유추(類推)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은 아닐런지!

 

무릇 '탐매(探梅)' 라 한다면 꽃도 꽃이려니와  그 핵심인 즉, 매향(梅香)의 판별 여부일진데

코씨 형국 땜시로 줄창 콧구멍을 막아대야 하니 이거라구야 답답해서 어디 원~~~ ㅎ

 

'신축탐매' 에 함께해주신 이 남 교수님과 일포선생님과 정심당님께

넓죽 엎드려 큰 절을 올리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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