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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조선시대 연회도 2

 

기로회도

 

 

기사계첩(耆社契牒) 표지

1720년, 견본채색, 76×59cm, 보물 638호,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1719년 숙종의 기로소(耆老所) 입사(入社)를 기념하여 제작한 것으로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을 비롯한 11명이 기로신(耆老臣)으로 참여

하였다. 이 계첩에 수록된 그림은 행사도 5점과 초상화 10점으로서, 행사도는 행렬도(行列圖) · 의례도(儀禮圖) · 연회도 등의 성격을 지니며,

숙종의 기로소 입사와 관련된 대표적이고 주요한 의례절차들을 도해한 것이다. 왕이 기로소에 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절차는 왕의 존호(尊號),

생년월일, 입소일자를 어첩(御帖)에 적는 일인데, 이 절차가 끝나면 기신(耆臣)들이 어첩을 궁(宮) 밖 기로소까지 옮겨가게 된다. 이 행렬을

그린 것이 제1면 <어첩봉안도(御帖奉安圖)이고, 제2면은 왕세자와 기로신들이 숭정전(崇政殿)에서 전문(箋文)과 함께 진하례(進賀禮)를 올리

는 <숭정전진하전도(崇政殿進賀箋圖)>, 제3면은 숙종이 기로신들을 위해 연회를 열어 준 친림사연(親臨賜宴)의 장면인 <경현당석연도(景贒

堂錫宴圖>이다. 이후 기신들이 연회를 계속하기 위하여 다시 기로소로 돌아가는 행렬을 그린 것이 제4면 <봉배귀사도(奉盃歸社圖)>이고,

마지막 5면은 기로소에서 계속된 기로연의 장면을 묘사한 <기사사연도(耆社私宴圖)>이다. 당대 최고수준의 기량들 지닌 화원(畵員)들의

역작이라고 할 만큼 우리나라 기록화의 격과 수준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기사계첩》의 체제는 임방이 쓴 계첩서(戒牒序), 경현당 석연(錫宴) 때 지은 숙종의 어제(御製). 기로소에 봉안된 어첩(御帖)의 발문,

각 의식에 참여한 기로신들의 명단, <어첩봉안도(御帖奉安圖)>, <숭정전진하전도(崇政殿進賀箋圖)>, <경현당석연도(景贒堂錫宴圖)>,

<봉배귀사도(奉盃歸社圖)>, <기사사연도(耆社私宴圖)> 등 다섯 폭의 그림, 기로신들의 좌목, 반신상(半身像) 초상화와 축시, 계첩을 제작한

감조관(監造官) · 서사관(書寫官) · 화원(畵員) 등 실무자 명단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리로신들의 명단은 영의정 김창집(金昌集) · 영중추

부사 이유(李濡) · 판중추부사 김우항(金宇杭) · 행판돈녕부사 최규서(崔奎瑞) · 행사직 이선부(李善溥)  · 홍만조(洪萬朝) · 지중추부사 황흠

(黃欽) · 한성부판윤 정호(鄭澔) · 우참찬 신임(申銋) · 지중추부사 강현(姜鋧) · 임방(任埅) 등 11명이다.

 

 

 

 

 

기사계첩(耆社契牒) 계첩서(戒牒序)  임방(任埅)

 

 

 

 

기사계첩(耆社契牒) 숙종대왕어제(肅宗大王御製)

 

 

 

 

기사계첩(耆社契牒) 어첩발(御帖跋)

 

 

 

 

기사계첩(耆社契牒) 어첩봉안시(御帖奉安時) 배진인원(陪進人員)

 

 

 

 

기사계첩(耆社契牒) 어첩봉안도(御帖奉安圖)

 

장구, 북, 해금, 당비파, 피리 혹은 퉁소류의 종적, 대금류의 횡적 등이 보인다.

홍포를 입은 악공들이 앞서 가고 녹포를 입은 집박악사가 뒤따른다.

 

 

 

 

<세부도> 고취악대(鼓吹樂隊)

 



 

기사계첩(耆社契牒) 숭정전진하전도(崇政殿進賀箋圖)

 

다음 날 기로신들이 숭정전에서 진하례를 올리는 장면이다. 간소하게 차려진 진하(陳賀)였으므로 악대(樂隊)는 없다.

 

 

 


기사계첩(耆社契牒)  경현당석연도(景贒堂錫宴圖)

 

덧마루 위에 전상악(殿上樂)이 있고, 전정(殿庭)에 헌가(軒架) 악대가 있다. 맨 앞줄에는 집박악사와 무동들이 한 줄로 서 있고,

뒷줄 서쪽에는 깃발을 들어 연주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는 혈률랑(協律郞)이 있다. 맨 앞줄에 집박전악을 중심으로 무동 4명과

악공 1명이 좌우에 각각 대칭으로 위치하였다. 다음줄에는 북을 중심으로 틀 위에 얹은 거문고 혹은 가야금과 비슷한 현악기,

당비파와 해금류의 현악기가 있고, 맨 뒷줄에는 장구, 피리 혹은 퉁소와 같은 종적, 대금과 같은 횡적이 있다. 정재(呈才)는

『숙종실록』권63, 숙종 45년(1719) 4월 18일 조와 『(기해)진연의궤』(1719)를 참고하면 술잔을 올릴 때마다 제1작부터

초무, 아박, 향발, 무고, 광수무가 추어졌고 마지막으로 처용무가 공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부도> 악대 · 처용 5人 · 무동

 

 

 

 

 

 

<세부도> 무동

 

 

 

 

기사계첩(耆社契牒)  봉배귀사도(奉盃歸社圖)

 

악대행렬에서는 줄마다 무동 2명과 처용무를 추는 인물이 앞장서 간다. 뒤를 이어 장구, 당비파, 해금, 대금, 퉁소

혹은 피리류의 종적, 북, 박 등이 따르는데, 집박은 둘째 줄 맨 뒤에 있다.

 

 

 

 

<세부도> 무동 · 처용 5人 · 악대의 행렬

 

 

 

 

기사계첩(耆社契牒)  기사사연도(耆社私宴圖)

 

행렬도에 보였던 악대, 무동, 처용 5인이 공연하고 있다. 당내에서 무동 두 명이 손에 붉은 의물을 들고 춤추고 있는 듯하다.

당 밖 오른쪽 상단에 집박악사가 있고, 처용무가 공연된다. 양 옆으로 무동이 섰으며, 뒤에는 북을 중심으로 해금, 당비파, 장구, 대금,

퉁소 혹은 피리류의 종적이 보인다. 교방고를 치는 악공은 양손에 채를 각각 하나씩 잡고 서서 연주하고 있다.

 

 

 

 

<세부도> 악대 · 처용무 · 무동

 

 

 

 

<세부도> 무동

 

 

 

 

 

기사계첩(耆社契牒) 좌목(座目)

 

 

 

 

 

좌) 기사계첩(耆社契牒)  김창집(金昌集) 초상.  영의정몽와김공칠십이세진

우) 기사계첩(耆社契牒)  유(李濡) 초상.  영부사녹천이공칠십오세진(領府事鹿川李公七十五歲)

 

 

 

 

좌)  기사계첩(耆社契牒)  황흠(黃欽) 초상.  지사황공팔십일세진(知事黃公八十一歲眞)

우)  기사계첩(耆社契牒)  김우항(金宇杭) 초상.  행판부사갑봉김공칠십일세진(行判府事甲峯金公七十一歲眞)

 

 

 

 

좌) 기사계첩(耆社契牒)  홍만조(洪萬朝) 초상.  행사직만퇴홍공칠십오세진(行事直晩退洪公七十五歲眞)

우)  기사계첩(耆社契牒)  강현(姜鋧)  초상.  지사백각강공칠십세진(知事白閣姜公七十歲眞)

 

 

 

 

좌)  기사계첩(耆社契牒)  정호(鄭㵆)  초상.  판윤장암정공칩십이세진(判尹丈巖鄭公七十二歲眞)

우)  기사계첩(耆社契牒)  이선부(李善溥)  초상.  행부사직육송이공칠십사제진(行副司直六松李公七十四歲眞)

 

 

 

 

좌)  기사계첩(耆社契牒) 임방(任埅) 초상.  지사수촌임공팔십세진(知事水村任公八十歲眞)

우)  기사계첩(耆社契牒)  신임(申銋)  초상.  우참찬죽리신공팔십일세진(右參贊竹里申公八十歲眞)

 

 

 

 

좌) 기사계첩(耆社契牒)  축시.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유(李濡)

우) 기사계첩(耆社契牒)  축시.  영의정(領議政) 김창집(金昌集)

 

 

 

 

 

좌) 기사계첩(耆社契牒)  축시.  황흠(黃欽)

우) 기사계첩(耆社契牒)  축시.  김우항(金宇抗)

 

 

 

 

 

좌) 기사계첩(耆社契牒)  축시.  홍만조(洪萬朝)

우) 기사계첩(耆社契牒)  축시.  행지중추부사(行知中樞副使 강현(姜鋧)

 

 

 

 

 

좌) 기사계첩(耆社契牒)  축시.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정호(鄭浩)

우) 기사계첩(耆社契牒)  축시.  이선부(李善溥)

 

 

 

 

 

좌) 기사계첩(耆社契牒)  축시.  임방(任埅)

우) 좌) 기사계첩(耆社契牒)  축시  .  우참찬(右參贊) 신임(申餁)

 

 

 

 

 

우) 기사계첩(耆社契牒)  축시.  영의정(領議政) 김창집(金昌集)

좌) 기사계첩(耆社契牒)  축시.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유(李濡)

 

 

 

 

 

우) 기사계첩(耆社契牒)  축시. 황흠(黃欽)

좌) 기사계첩(耆社契牒)  축시.  김우항(金宇抗)

 

 

 

 

 

우) 기사계첩(耆社契牒).  홍만조(洪萬朝)

좌) 기사계첩(耆社契牒).  강현(姜鋧)

 

 

 

 

 

좌) 기사계첩(耆社契牒).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정호(鄭浩)

우) 기사계첩(耆社契牒).   이선부(李善溥)

 

 

 

 

 

좌) 기사계첩(耆社契牒).  감조관(監造官) · 서사관(書寫官) · 화원(畵員) 명단

우) 기사계첩(耆社契牒).  우참찬(右參贊) 신임(申銋)

 

 

 

 

 

갑진기사연회첩(甲辰耆社宴會帖)

1724년, 지본채색, 45.5×23.7cm, 성균관대학교박물관

 

1724(경종4)년 왕대비의 병세가 완쾌되자, 경종(景宗)과 왕세자(王世子)가 이를 경하하여 진연(進宴)을 올렸는데, 그 이튿날인

5월  2일 6명의 기로신(耆老臣)들이 진연을 기념하여 기로소(耆老所)에서 진솔회(眞率會)를 열었다. 이 장면을 그려 서문과 좌목을 함께

장황한 것이 바로 이 《갑진기사연호첩》인데 《갑진기사계첩》으로도 불리운다. 전체 화면의 좌우대칭구도, 정면관(正面觀)에 입각한

차일(遮日)의 표현, 행사장면의 부감법, 기신들이 묘사에 나타난 측면관(側面觀) 등 다중의 투시법들이 혼용되어 있다. 기본 구도는

《기사계첩》의 <기사사연도>의 구도를 따랐으나, 다만 정방형의 화면에 연회공간의 규모가 더욱 크게 확대된 점이 다를 뿐이다.

<기사사연도>가 비교적 근접하여 묘사한 것에 가깝다면, 《갑진기사연회첩》의 도상은 더욱 높은 시점에서 조망한 것처럼 설정하였는데,

이는 넓어진 연회공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선택으로 생각된다. 하나같이 동일한 형상으로 그려진 기로신과 처용무의 분방한

춤사위가 대조를 이루고 잇어, 대단히 절도 있는 연회장면이었음을 연상하게 한다.

 

 

 

 

 

갑진기사연회첩(甲辰耆社宴會帖)  기사계회서(耆社契會序)  강현(姜鋧)

 

 

 

 

갑진기사연회첩(甲辰耆社宴會帖)  기사계회서(耆社契會序)  강현(姜鋧)

 

 

 

 

 

갑진기사연회도(甲辰耆社宴會圖)

 

 

 

 

<세부도> 상) 처용무.  하)악대 · 여기(女妓)

 

 

 

 

갑진기사연회첩(甲辰耆社宴會帖)   좌목(座目)

 

 

 

 

 

갑진기사연회첩(甲辰耆社宴會帖)  시문(詩文)

 

 

 

 

 

기사경회첩(耆社慶會帖)  영수각친림도(靈壽閣親臨圖) 

1744년경, 견본채색, 43.5×67.8cm, 국립중앙박물관

 

영조가 51세 되는 해인 1744(영조20)년 9월 기로소(耆老所) 입사(入社)를 기념하여 제작한 것으로 그림과 함께 행례(行禮)와 의절(儀節)을

기록한 것이다. 형식과 체제는 숙종대의 《기사계첩》을 범본으로 삼았다. 그림 가운데 제1면이 <영수각친림도(靈壽閣親臨圖)>로 그려졌을

뿐 나머지 부분은 《기사계첩》의 체제와 내용을 따르고 있다. 다만 묘사 방법에 있어서 《기사계첩》보다 구성의 긴밀함이나 활력이 이완

되어 있음이 눈에 띤다. 여기에는 10명의 초상화가 함께 장황되어 있는데, 정면관을 취한 사례도 있고, 선묘와 채색이 부분적으로 과장된 감

이 있어, 인물이 지닌 개성의 차이를 나타내고자한 의도를 엿 볼 수 있다. 첩의 구성은 영조의 어첩자서(御帖自序), 어제어필(御製御筆),

신사철(申思喆)1671~1759) 외 기로신 5명의 축시, 경현당에서 어제(御製)에 답한 기로신들의 연구(聯句), 기로신 10명의 좌목, <영수각친

림도(靈壽親臨圖)>, <숭정전진하전도(崇政殿進賀箋圖)>, <경현당선온도(景賢堂宣醞圖)>, <사악선귀사도(赐樂善歸社圖)>, <본소사연도

(本所賜宴圖)> 등 5폭의 그림, 기로신들의 반신(半身) 초상화, 각 의식에 참여한 기로신의 인원수, 지돈녕부사 이성룡의 발문, 계첩을 만든

제작자의 명단 순으로 꾸며져 있다.

 

 

 

 

 

기사경회첩(耆社慶會帖)  숭정전진하전도(崇政殿進賀箋圖)

 

 

 

 

기사경회첩(耆社慶會帖)  경현당선온도(景賢堂宣醞圖)

 

 

 

 

기사경회첩(耆社慶會帖)  사악선귀사도(赐樂善歸社圖)

 

《기사경회첩》에 나타난 악대와 무용을 《기사계첩》과 비교하면 《기사경회첩》의 제3면까지는 악대가 없다.

제4면인 <사악선귀사도>에는 《기사계첩》의 <봉배사귀도>에서와 같이 무동이 앞장 서고, 뒤에는 처용 5인이 있다. 녹포를 입은

집박전악이 교방교 뒤에 있는데 한쪽 손에 박을 들고 있다. 이외에 《기사계첩》에서 보다 많다. 제5면인 <본소사연도>에는 무동 2명과

처용무가 있는데, 《기사경회첩》의 <본소사연도>에는 춤추는 여기 2명이 더 묘사되어 있다. 녹포를 입은 집박이 처용무 쪽을 바라보면서

박을 잡고, 악공은 한줄로 앉아서 장구, 비파, 해금, 대금, 피리 혹은 퉁소와 같은 종적 등을 연주한다.

 

 

 


<세부도> 무동 · 처용 5인 · 악대의 행렬

 

 

 

 

 

기사경회첩(耆社慶會帖)  본소사연도(本所赐宴圖)

 

 

 

 

<세부도> 악대 · 무동 · 처용무

 


 

<세부도> 여기(女妓)의 춤

 

인용서적 / 국립국악원 『조선시대 연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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