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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한국의 어진

한국의 어진御眞

 

 

 

 

 

 

왕의 초상화를 일러 통상 어진御眞이라 부른다. 그 외에도,

진용眞容, 진眞, 영상影像, 진영眞影, 수용睟容, 성용聖容, 왕영王影, 영자影子, 영정影幀, 어용御用, 어진 등.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1714년(숙종 39) 숙종의 초상화를 그릴 때, 당시 이 일릉 맡은 임시관청의 총책임자였던 어용도사도감御容圖寫都監 도제조都提調

이이명李頤命(1658-1722)의 건의에 따라 어진이라 일컫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평안남도 용강군 남포시 와우도에 있는 감신총 인물 벽화

이 벽화는 고구려 왕의 초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에 등장하는 인물은 왕의 옷인 홍포를 입고

역시 왕이 쓰는 흑나관을 쓰고 있으며, 오른쪽 벽화 배경에는 '왕'자가 쓰여 있기 때문이다.

 

 

 

 

    

 

 

왼쪽은 이명기가 1794년 모사해 경주 숭혜전에 보관 중인 <경순왕 초상>이고, 오른쪽은 18세기에 그려진 <오방제위도>로

두 그림이 거의 동일한 것으로 보아, 후대에 신상神像 형식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순왕 뿐만 아니라

공민왕(1330-1374) 등 비운에 죽은 인물들을 사찰이나 무속인들이 모시고 진혼적鎭魂的 의미에서 받들어 왔는데,

경순왕 초상 역시 이런 의미가 있는 초상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왕들의 어진은 기록상으로는 상당히 활발하게 제작되었을 알 수 있다.

특히 고려를 개창했던 태조 왕건(877-943)의 경우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수의 진전進殿이 세워졌고 그곳에 당연히 어진을

봉안했으리라 생각되지만 조선 세종 9년에 도화원에 소장되어 왔던 전 왕조 역대 군왕과 후비의 초상화 초본을 모두

불태우도록 명한다. 또한 같은 해에 고려 태조의 영정 세 점을 태조 능 곁에 묻도록 명하는 기록도 보인다.

어진이 단순한 그림이 아니고 그 왕조를 상징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초상화에서의 안면 각도는 인상을 크게 좌우하기에 상당히 중요한 항목이다.

십분면은 정면관이며, 이 각도는 보는 이에게 위압감을 준다. 조선 태조 어진의 경우가 그 좋은 예일 것이다.

 

 

 

 

 

 

 

 

 

 

 

 

 

 

 

 

 

 

 

 

 

 

 

 

 

 

 

 

 서양의 고대 동전에 흔히 보이는 황제 초상은 오분면이다. 

동 · 서양을 막론하고 화가들이 가장 즐겨 택하면 안정적인 효과를보여주는 각도는 칠분면 내지 팔분면으로,

서양에서는 스리 쿼터(three-quarters)라고 부른다. 얀 반 에이크(1395?-1441)의 <붉은 터번을 두른 남자의 초상>이나

일본의 미나모토는 요리토모 초상으로 전해지는 작품 등 최고의 걸작품들은 대개 이 각도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려 말의 <염제신 초상>, 조선 초의 <이천우 초상>과 <신숙주 초상>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지는 시대적으로도 경향성이 있어 보인다.

고려 말의 염제신이나 조선 초의 이천우의 초상화 들은 대체로 우안이며,

신숙주의 초상화 이후의 조선시대 초상화들은 거의가 좌안이다.

 

 

 

 

 

 

 

경기도 숭의전에 소장되어 왔던 고려 태조 왕건의 어진.

복식을 보면 고려 태조 이후의 복식이며, 고증이 부족한 초상화이다.

 

이 어진은 장막을 치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인데, 얼굴을 왼쪽으로 약 30도 가량 돌린 우안칠분면이며 , 두 손을 앞으로 모은

공수拱手 자세를 취하고 있다. 복장은 면류관에 황색 용포 차림이고 바닥에는 채전彩氈(채색 카펫)이 깔려 있다. 이 초상은

64×43cm, 의 소폭에다가 표현 기법상 미숙함이 드러나고 있어 일종의 소묘적 느낌을 준다, 또한 복제 및 관모에 있어서도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면류관에는 옥규玉圭를 들고 구장복九章服을 입어야 하는데, 이 초상은 황색 용포를 입어서

규정에 부합되지 않는다. 또 면류관 역시 기록으로는 고려 정종(재위 945-949) 때 요나라로부터 받은 것이 처음이므로, 고려

태조 왕건의 면류관 착용은 시기상조다. 이 초상은 사실적 고증이 결여된 초상화로 보인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부부상이라고 전하는 초상화

 

 

 

현재 고궁박불관에 소장되어 있는 공민왕과 노국공주 부부상으로 거의 유화로 보일 만큼 채색이 짙으며 화면 아래쪽의 인물 앞에는

탁상 위에 여러 기명탁잔器皿托盞들이 복잡하게 놓여 있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하듯 약간 몸을 틀고 앉았는데 공민왕은 좌안팔분면,

노국공주는 우안팔분면의 각도이다. 공민왕은 복두幞頭를 쓰고 홍포단령紅袍團領에 홀을 들고 있으며, 노국공주는 복잡한 머리

장식에 고려 말 당시의 복제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복제는 후의 조선시대 초기의  에서도 볼 수 있다.

 

 

 

 

 

   

 

 

左) 박연朴堧 부부 초상화,    右) 하연 부부 초상화

 

 

 

 

 

左) 원나라 총주 부부의 병좌상,   右) 원나라 문종과 코실라 왕좌의 병좌상

 

공민왕과 노국공주 초상에 나타난 부부병좌상夫婦竝坐像 형식은 이후 박연 부부 초상, 하연河演 부부 초상 등 조선 초기 사대부

계층의 부부 초상 형식을 유행시켰다. 그 원류는 원나라 분묘 벽화의 부부병좌상이나 원나라 문종과 코실라 병좌상 등에서 그 앞선

형태를 찾을 수 있으며 이는 고려 말 원나라와의 긴밀한 관계를 엿볼 수 있다.

 

 

 

 

 

경기도 화장사에 소장되어 있는 <공민왕 어진>

 

이 초상화는 옛 장단 화장사에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나, 허목許穆이 『미수기언』에서 말했던 것을 보고 그린 자화상인가는 적이 의심스럽다. 그것은 이 초상의 인물 자세나 형식이 결코 자화상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위의 네 그림은 시계방향으로 함경남도 영흥의 준원전, 황해도 개성의 목청전, 창덕궁 구 선원전, 전북 전주 경기전이다.아래는 창덕궁의 신 선원전 내부와 제8실의 모습이다. 모두 조선시대 역대 임금의 어진을 봉안했던 장소이다.여러 곳에 동시에 보관을 했음에도 각종 전란을 겪으면서 어진 대부분은 사라졌다.

 

 

 

 

 

 




<연잉군 초상> 모사 과정버드나무 숯으로 스케치(1)를 하고 그 위에 먹으로 초를 낸다(2). 이렇게 준비된 초본 위에 초를 옮겨 그리는 상초(3)을 하는데이때까지도 먹을 사용한다. 배채(4)는 그림 뒷면에 색을 칠하는 기법으로, 배채를 한 뒤 앞면을 보면 색이 배어나와 앞면의 음영과채색을 보강하는 효과가 있다(5). 배채는 또한 색을 앞면에 칠했을 경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안료가 벗겨지는 효과를 줄이려는 의도에서 시행되었다. 이렇게 배채를 진행하고 그림 앞면에 색을 칠하는 전채를 시작한다(6)

 





1725년 조영석이 그린 <조영복 초상>
조영석은 유배지에 있던 친형 조영복의 초상화를 그렸다. 조영복의 착찹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나는 명작 중의 명작이었다.
하지만 조영석 자신의 이런 재능이 사대부에게 어울리지 않는것이라 생각하고 영조 어진의 초본을 내라는 명을 거절한다. 그림 재주에 대한 당시 사대부들의 일반적 인 그리고 경직된 사고를 볼 수 있다.



 내왕판 위에 앉아서 순종의 어진을 그리고 있는 이당 김은호

 

 

 



    

 

左)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사하는 과정이 수록된 『어진이모도감의궤』

右) 태조 이성게 초상에 붙인 표제.

 

 

 

 

 

 

<태조 이성계의 어진>

 

 

 

 

 

 

 

태조 어진의 도해(고경희 작가 그림)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장말손의 초상과 도해.

표현 양식이 태조 어진의 그것과 유사하다.

 

 

 

 

 

 

 

조선시대 임금이 앉았던 용상.

 (어진 속 태조가 앉아 있던 용상과 유사하다.)

 

 

 

 

 

 

 

上) 태조 어진(배채). 下) 태조 어진(익선관 및 안면 부분) 전채 및 배채.

 

 

 

 

 

 

 

 

 

上) 1,2 태조 어진(용포 부분) 전채 및 배채

下) 3,4 태조 어진(발받침대, 채전) 전채 및 배채






제대로 보존된 조선시대 왕의 초상이 거의 없듯, 왕자의 초상도 거의 없다.左)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의 초상.  中) 작품이 훼손되어 누군지 알 수 없지만 가슴에 그려진 대군만 착용할 수 있는 기린 문양이 있어 왕자로 추정되는 작품.右)  순조의 아들이자 현종의 아버지인 익종의 초상으로 부산 피난 시 화재로 인해 화폭의 절반 이상이 소실된 상태.




영조의 왕자 시절인 <연잉군 초상>의 전채와 배채





 



연잉군은 궁중의 암투 속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왕이었지만 어머니는 천한 무수리 출신이었고, 희빈 장씨의 아들로 후에 경종이 되는세자를 지지하는 소론과 자신을 지지하는 노론은 극심한 대결을 펼쳤다. 늘 불안해 할 수밖에 없었던 연잉군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





<연잉군 초상>에 그려진 흉배, 사람의 말을 한다는 상상의 동물 백택으로 왕자와 군君만이 할 수 있는 횽배였다.



    

 

左) 영조 반신상 배채.  右) 조석진과 채용신이 1900년 이모한 영조의 반신상.

 

 

 

 

 

 

 

왕(영조)일 때와 왕자(연잉군)일 때의 초상 비교.

용모의 변화는 거의 없지만 왕자일 때보다 대범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이다.

 

 

 

 

 

 

 

 

이한철이 주관화사를 맡은 <철종 어진>

 

화면 왼쪽 1/3 정도가 한국전쟁으로 부산에 피난을 가 있을 당시 보관 창고의 화재로 소실되었지만, 표재를 오른쪽에 적어

놓았기 때문에 관련 내용을 살필 수 있다. 31세 때의 초상으로 철종 12년인 1861년에 그려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좌완팔분면의 전신교의좌상으로, 전립에 군복을 갖추어 입고 있다. 검붉은 길(섶과 무 사이에 있는 넓고 긴 폭)에 홍색 소매를 덧댄

군복 위에 검은색 전복을 입었다. 그 위에 수놓은 광대를 겨드랑이 밑으로 맨 다음, 남색 전대를 늘어뜨렸다. 관모는 짐승의 털을

다져 만든 모전립 대신에 영 · 정조대에 유행했던 죽전립을 썼다.

 

 

 

 

 

    

 

 

左) <철종 어진>의 얼굴 세부 

右) 철종 어진의 배채, 화려한 군복을 표현하기 위해 배채에 특히 더 신경을 썼다.

 

 

 

 

 

  

 

 

현종의 할머니인 순원황후의 회갑잔치를 그린 <무신진찬도>

그림속 왕이 앉아 있어야 할 곳에 의자만 (중앙) 그려져 있다. 하지만 고종대에 오면 이런 관념이 약해져

채용신이 그린<대한제국동가도>(우측그림)을 보면 고종이 그림 속에 등장하고 있다.

 

 

 

 

 

 

외국인이 그린 고종, 왼쪽부터 네덜란드 출신 미국인 화가 보스가 그린 고종 어진,

비숍 여사가 그린 고종의 삽화, 중화전 용상에 앉아 있는 고종.

 





일본인이 그린 고종과 명성황후, 고종은 뒤편에 비중 없이 그려졌고,명성황후는 우키요에 미인도 식으로 그려졌다.

 





채용신이 그렸다고 전하며 국립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종황제 어진>

 





왼쪽부터 전 채용신 필 <고종황제 어진>, <최익현 초상>, <황현 초상>황현 초상에 비해 고종황제 초상은 필치가 좀 더 부드럽다.

 





채용신이 그렸다고 전하며 원광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종황제 어진>

 

아버지의 섭정에서 벗어나자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탈을 맞이해야 했고, 그렇게 조선 왕조가 막을 내리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던 왕.어떻게든 버텨내려고 했던 불운했던 군주의 얼굴에는 지치고, 무기력한 체념의 표정이 드러난다.




     

 

왼쪽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고종황제 어진>. 오른쪽은 고종황제를 찍은 초상 사진.

 

 

 

 

 

 

왼쪽부터, 이당 김은호가 그린 <순종황제 어진 초본>, 중앙 역시 김은호가 그린 <순종황제 어진 초본>,

우측은 이와다 사진관에서 촬영한 <순종황제 초상 사진>

 






● 인용 서적 : 조선미 著 『왕의 얼굴』

 





 

Love Is A Mystery - Ludovico Einau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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