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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행·여행·풍경

2016년 백암산 단풍

2016. 11. 15

 

 

백양사 성보박물관 뜨락의 풍성한 가을

 

 

 

 

 


 

 

 

 

 

 

 

 





 

 

 

 





 

 

 

 

 

 

 

 

 

 

 

 

 

 

 

 

 

 

 

 

 

 

 

 

 

 

 

 

 

쌍계루(雙溪樓)와 누정(樓亭)문학

 

쌍계루에서 바라본 백암산은 계절마다 독특한 정취를 드러낸다. 봄에는 돋아나는 새싹과 봄꽃의 향연을, 여름에는 우거진 신록의멋을,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아기단풍의 아름다움을, 겨울에는 설국의 장관을 나타낸다. 그래서였을까? 많은 문인들이 쌍계루와 그 주변 풍광을 소재로 다수의 문학작품을 남겼다.  쌍계루는 전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갖춘 2층 규모의 누정으로 내장산국립공원 백양사지구에 위치하고 있다. 최초 건립은 1350년 각진국사(1270~1355)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1370년큰 수해로 누각이 물에 휩쓸려 내려가자 1377년 각진국사의 뒤를 이은 청수스님에 의해 다시 복원됐다. 복원된 해에삼봉 정도전(1342~1398)이 ‘정토사교루기(淨土寺橋樓記)’를 지었으나 정토사(백양사의 옛 이름)의 교루(다리역할을 하는 누정)라는 뜻을 가질 뿐 별도 누정의 명칭은 없었다. 지금의 ‘쌍계루’라는 명칭을 갖게 된 것은 목은 이색(1328~1396)이 1381년에 지은 ‘백암산정토사쌍계루기’를 통해서이다. 이색은 누정의 좌우로 물이 흘러들어와 하나로합쳐 흐르는 것을 보고 ‘쌍루’라 명명했다고 한다. 앞서 밝혔듯이 쌍계루는 축조 당시 물을 건너는 다리 역할인 ‘교루(橋樓)’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교루의 기능을 넘어 많은 문인들이 쌍계루와 함께 어우러진 자연을 칭송하고 이를 문학작품으로 남기는 장소로 거듭난다. 정도전과 이색의 기문 이외에도 포은 정몽주(1337~1392)가 ‘기제쌍계루(寄題雙溪樓)’라는 7언 율시의 한시를 남겼는데정확한 창작시기는 알 수 없다. 이후 정몽주가 남긴 시를 차운하여 수많은 문인들이 쌍계루에 대한 많은 시를 지었다.   현재 내장산국립공원 백암사무소는 전남대학교호남학연구원과 공동으로 쌍계루 관련 누정문학 작품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그 결과 쌍계루와 관련된 작품은 기문, 서, 제영시를 포함해 230여 수에 이르며 창작 문인은 21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앞서 언급했던 정도전, 이색, 정몽주 등의 고려시대 문인들과 함께 조선시대 문인인 하서 김인후, 면앙정 송순, 이산해, 서거정, 김상헌, 김윤식, 기정진, 최익현 등이 있다. 두 시대를 통틀어 누구든 쉽게 들어보았을 법한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쌍계루에 대한 문학작품을 남긴 것이다. 규모에 있어서도 많은 문인들이 작품을 남긴 다른 지역의 누정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이처럼 단순히 사람이 오가는 교류가 아닌 문인들의 창작의 통로 자리매김한 쌍계루는 6.25전쟁으로 소실되었다가 1985년 다시 복원되어 현재의 형태로 남아있다.

('전남매일' 에서 발췌한 내용)

 

 

 

 

 

 

 

 

 

 

 

 

쌍계루에 걸린 포은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詩 편액

 

 


溪樓

(기제쌍계루 : 쌍계루에 시를 지어 붙이다)

지금 시를 청하는 백암사 스님을 보니
붓을 잡고 읊조리매 재능 없어 부끄럽네
청수가 누각 세워 비로소 이름 중해졌고
목옹(목은 이색)이 기문 짓자 값이 더욱 높아졌네
안개가 아득하니 저녁 산은 붉은빛이고
달빛이 배회하니 가을 시내물이 맑구나
오랫동안 속세에서 번뇌로 시달렸으니
어느 날 옷을 떨치고 그대와 함께 오를까


(청수 / 고려 왕사(王師) 각엄존자(覺儼尊者)의 조카, 비바람에 무너진 쌍계루를 중수한 스님)

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포은 자신을 한껏 낮추고 쌍계루를 다시 지은 청수와 백암산정토사쌍계루기(白巖山淨土寺雙溪樓記)를

지은 자신의 스승 이색은 높이 칭송했다. 또한 누정에 어우러진 자연의 모습을 잘 나타내어 한시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짧은 시에서도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인 겸손과 자연에 대한 동경을 고스란히 나타내주고 있다.
이러한 포은의 시가 백양사 쌍계루에 처음 남겨진 시다. 이후 그가 지은 시의 운(韻)을 따서 수많은 문인들이
쌍계루와 자연의

조화를 칭송하는 시를 남겼는데 그 수가 230여 수에 이른다. 포은의 시는 쌍계루를 단순한 교루(냇가를 건너는 다리 역할의 누정)가

 아닌 누정문학의 장으로 발전하는 데 시초가 되었다 볼 수 있다.쌍계루라는 공간은 기존의 사찰 내 흔하고 친숙한 누정을 넘어

이제는 ‘누정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사찰 및 국립공원의 대표 문화자원으로 활용하는데 손색이 없다.

 

 

 

 

 

 

쌍계루에 걸린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의 詩 편액

 

 

누각 위에 얼굴 아는 몇몇 승려들
능히 예전 법규를 지키니 기쁘구나
절간의 말은 청수의 간청 때문이고
오천(정몽주)의 시구는 목옹(이색) 위해 더해졌네
환암이 기문 썼다 일찍이 들었는데
이제 수행한 분 우연히 법호가 징(澄)일세
병든 몸 부축해 돌길을 더디게 지나니
어찌 소년 시절 봄날에 오르지 않았을까

 

쌍계루를 찾은 하서가 옛 법규를 지키는 스님들을 칭송하며 과거 쌍계루 중수의 과정에서 등장하는 옛 인물들을

언급하고 있다. 특히 ‘쌍계루’라는 이름을 지은 이색과 최초로 쌍계루에 시를 남긴 정몽주가 거론 되는 것이 인상깊다.

 또한 병든 몸으로 더딘 발걸음을 이끄는 자신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쌍계루에 오르지 못함을 후회하는 개인적 감정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하서 김인후의 절의와 학문연구의 열정, 그리고 자연을 벗 삼았던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쌍계루이다.

 

 

 

 

 

 

사거(四佳) 서거정(徐居正)이 쓴 쌍계루기(雙溪樓記) 편액

 

 

 

 

 

 

 

 

 

 

 

 

 

 

사암(思菴) 박순(朴淳·1523~1392)의 詩

 


奇題白巖雙溪樓 次圃隱先生板上韻

(백암사 쌍계루에 시를 지어보내다. 포은(정몽주)선생의 판상 위의 시에 차운하다.)

아름답게 중수하여 스님 누웠는데
두 신선의 시문을 누가 이을 수 있으랴
산중의 방초(향기로운 풀)는 푸른 봄이 저물어가고
풍광 속 나그네 시름에 백발만 더하네
죽림의 차 솥 곁 담소는 오래전 끊겼지만
금빛 시내 돌 침상의 꿈은 여전히 맑구나
기봉의 동쪽 가 안개 노을 자욱한 길을
서글프다 덧없는 삶 몇 번이나 오르려나
 

여기서 두 신선은 기문인 쌍계루기(雙溪樓記)를 지은 목은 이색과 쌍계루 최초의 제영시인 기제쌍계루(奇題雙溪樓)를

 남긴 포은 정몽주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박순은 쌍계루에 남긴 시에서 중수되어 이어져 내려온 쌍계루의 아름다움을

 부각함과 동시에 목은 이색과 포은 정몽주를 신선에 비유하며 쌍계루에 남긴 두 사람의 기문과 한시를

격조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또한 아름다운 자연, 산수를 자유롭게 거닐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실현되기는

어렵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소재 노수신(1515~1590)의 詩

 

 

次韻寄題雙溪樓

(차운하여 쌍계루에 시를 지어 보내다.)

번거롭게 겁회(쌍계루의 연혁)를 호승에게 물을 것 없나니
중건의 사적을 기문으로 고찰할 수 있다네
동방의 높은 유자(정몽주)께서 여흥으로 시를 남겼고
후학 하서(김인후) 선생이 시를 이어 값을 더했네
백년 외로운 갈림길에 쇠한 용모 메말랐건만
쌍계루 하룻밤 꿈에 상쾌한 기운 맑구나
병든 몸 부축해 돌길을 더디게 지나니
이 누각에 일직이 몇 사람이나 올랐던가

 

 

 ‘백암사사적’을 읽은 노수신이 자신을 찾아온 승려에게 굳이 묻지 않고도 이색이 쓴 기문을 보며

쌍계루의 유서깊은 이력을 고찰할 수 있음을 표현했고, 쌍계루에 시를 남긴 정몽주와 김인후를 높이 칭송했다.

또한 긴 유배 생활로 노쇠한 자신의 모습을 아름다운 쌍계루의 모습을 그리며 그 애환을 달래고 있다.
이처럼 노수신은 유배생활의 고통과 아픔의 순간을 극복하고 그 현실을 바르게 직시했다.
이는 유배기간 동안의

왕성한 창작활동으로 나타난 그의 시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으며, 그가 남긴 쌍계루 제영시에도 이러한 심정이 엿보인다.

 ‘소재선생문집’의 기록에서 “임술년(1562년) 2월 승려 성진(性眞)이 소매에서 ‘백암사사적’을 가지고 방문하여,

포은(정몽주)과 하서(김인후)의 시를 보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소재의 쌍계루 누정시 창작시점이 진도 유배기에 이루어졌음을 추측할 수 있는 귀중한 기록으로 볼 수 있다.

 

 

  










 

 

 

 

 

 

 

 

  


면앙정 송순(1493~1583)의 詩  




백암사 쌍계루에서 포은 선생의 시에 경차하다.

맑은 누각 여름철 스님과 편히 앉으니
산중에 좋은 일을 잘 이야기 해주네
시내는 돌아 흘러 끊겼는지 의심되고
멀리 어지러운 산들은 더욱 늘어난 듯
바위의 흰 빛은 구름조차 질투하는 듯
달은 밝아 더욱 시내와 함께 맑구나
천천히 거닐며 속세의 꿈 모두 버리고
    만길 붉은 사다리에 한번 오르고 싶네
      

 

                                                                    

이 작품은 여름철 쌍계루에 앉아 백양골에서 흘러나오는 시내와 흰 빛을 띄는 바위인 백학봉을 바라보며 느끼는

 ‘강호자연(江湖自然)’ 흥취를 시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름다운 산수를 감상하면서 속세의 고난을 잊고

‘만길 붉은 사다리’라는 신선세계로 가는 통로를 통해 자연과 하나가 되고 싶어 했던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송순은 작품창작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의 마음을 표현했으며, 다른 작품 속에서 나오는

 산수자연과 더불어 쌍계루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 또한 그가 찬미하던 대상이었다.

 

 

 

 

 

 

 

약사암 오름길 단풍

 

 

 

 

 

                                     

 아계 이산해(1539~1609)의 詩

 

진중하신 강남의 눈 푸른 스님이여
매번 시를 구하나 내가 어찌 능하랴
쌍계의 화려한 누각은 신구가 있지만
두 원로의 높은 명성은 변함이 없네
백암 숲 늦서리는 과일 익기 재촉하고
돌난간 아침햇살은 연못을 맑게 비춘다
스님 돌아갈 제 마침 청추가 가까우니
죽장과 청라 옷으로 몇 번이나 오르실까

 

 

   이 작품에서는 시를 부탁하는 스님을 거론하며 시작하는데 ‘신구(新舊)가 있다’는 표현으로

중수를 거치며 백암산에  자리하고 있는 쌍계루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쌍계루의 기문을 쓴 자신의 조상인

목은 이색과 쌍계루에 최초 시를 남긴 포은 정몽주를 ‘두 원로’로 표현하며 한껏 치켜세우고 있는 점이 인상 깊다.
계절의 정취도 감각적으로 나타냈는데 ‘백암 숲 늦서리’와 ‘돌난간 아침햇살’을 마치 감정을 가지고 있는 유정물처럼 표현해

 백암산의 가을을 보다 생동감 있게 표현했으며,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청라옷을 입고 죽장을 짚으며 걸어갈 스님의 모습도

나타냈다. 승려도 자연속의 하나의 구성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처럼 아계의 시는 풍부한 표현과 비유적 심상을 통해

자연의 흥취와 함께 고요하고 편안한 정서를 느낄 수 있게 한다. 

 

 

 

 

 

 

 

 

 

 

 

 

 

고담(孤潭) 이순인(李純仁·1533~1592)의 詩

 

 

천애(멀리 떨어진 곳)에서 홀연히 쌍계루 스님을 만나니
오신 것이 기뻐 병중에도 시를 썼노라
목옹이 남긴 기문은 옛 절에 퍼졌고
포옹이 남긴 시구는 감정을 더하누나
젖은 가을구름 어디선가 들리는 피리소리
한 밤의 맑은 달빛에 사람은 누각에 기대었네
천리 먼 길에서 그리워하며 가지 못하니
산 가득 솔과 전나무인데 가을 등반 저버렸네

 

포은 정몽주의 시를 차운한 쌍계루 제영시는 제 1·2구에서 쌍계루 스님과 교유하게 된 기쁨의 정취가 서술되고 있으며

제 3·4구에서는 쌍계루 기문을 쓴 목은 이색의 명성을 칭송하고, 포은 정몽주가 남긴 시문을 본 느낌을 전하고 있다.

제 5구에서는 가을의 풍경 속에서 피리 소리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시·청각적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표현했으며,

제 6구에서는 시간적 배경이 낮에서 밤으로 변화 하면서 달빛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다. 제 7·8구에서는

산가득 소나무와 전나무가 있는 풍경을 묘사하며 쌍계루에 가지 못하는 자신의 아쉬운 심정을 담고 있다.
해당 쌍계루 제영시 이외에 이순인의 시문을 엮은 ‘고담일고(孤潭逸稿)’에서도 쌍계루에 대한 시가 보인다.

白巖山雙溪樓

(백암산쌍계루)

홍수교 가에 비자 잎은 무성하고
흰 구름 속에 성긴 경쇠소리 들리는 가을 일세
홀연 이십 오년 전 일이 떠오르니
해 지는 쌍계루에 헛되이 누대에 기대었네 

 
(*‘백암산쌍계루’의 해석은 박미국의 논문 ‘역주 고담일고’를 참고.)

해당 시 또한 가을이라는 계절적 배경 속에서 쌍계루의 정경를 묘사했다. 1·2구에서는 쌍계루 인근의 교량과 어우러진

비자림의 풍경, 흰구름 낀 가을하늘이라는 시각적 이미지와 사찰(백암사)에서 들리는 경쇠소리라는 청각적 이미지를

함께 나타내어 시적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3·4구에서는 과거를 회상하며 느끼는 고뇌를 해지는 쌍계루의 정경을

묘사하며 나타냈다.  이처럼 고담은 쌍계루에 관한 시를 2편이나 남겼다. 그가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했을 때

지금의 금산 황석강가에 정사라는 개인의 누정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쌍계루에 대한 복수의 작품을 남긴 것은

 매우 이채로운 일이다. 이는 그만큼 고담의 마음속에 백암산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에 대한 동경과 쌍계루에 대한

각별 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진녹색 야생차밭과 검붉은 애기단풍의 어울림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1539 ~ 1583)의 詩

 

 

시를 지어 멀리 석교의 스님에게 보내니
병으로 남쪽 시내 한 번도 건너지 못했네
아름다운 사찰은 속세 따라 변치 않으니
푸른 구름만 속절없이 객의 시름 더하네
향대의 고목 너머로 새벽 종이 들려오고
물가 난간 성긴 발에 저녁 풍경 맑구나
육년간의 벼슬살이에 백발만 늘어났으니
어느 때 손을 잡고 잠시 함께 올라볼까

 

 

 병으로 남쪽 멀리 떨어진 백양사 쌍계루를 가보지 못한 고죽 자신의 아쉬움을 드러냄과 동시에

속절없이 떠 있는 푸른 구름을 보며 시름에 잠긴 객(떠돌이 나그네)의 아쉬움이 더하고 있다.
향대의 고목이라는 시각적 요소와 새벽 종소리의 청각적 효과가 결합되며 지은이의 시적 애상은 더욱 깊어진다.

맑은 자연의 풍경과 상반되게 백발만 늘은 자신의 모습이 대조되면서 고죽 자신의 외롭고 고단한 마음이 더욱 느껴진다.
이처럼 고죽의 쌍계루 제영시는 기존의 다른 작품들과 더불어 그가 관료생활간 겪었던 탄핵과 고초,

억울하게 변방을 돌며 관료생활을 했던 정신적 상실감에 대한 불완전한 극복의 의지를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옥봉 백광훈(1537~1582)의 詩

 

두 번이나 찾아오신 스님께 부끄러우니
게으른 성품 원래 한 가지도 능치 못하네
천리 먼 길 옛 암자에 쌍계가 명승지이니
한 누각에 몇 사람이나 새 시를 더했는고
새벽 동구로 돌아온 구름에 봉우리 젖었고
가을 제단 이슬에 씻겨 물과 나무 깨끗해라
진경은 가지 못했으나 마음은 이미 익숙하니
돌난간 밝은 달빛에 꿈속에서 먼저 오르네

 

 

 시어배치의 자연스러움을 통해 산수자연의 넉넉함과 여운을 느낄 수 있다.

시를 얻기 위해 온 스님에게 자신의 겸손함과 함께 문인들이 쌍계루에 많은 차운시를 남긴 것에 대한

놀라운 마음이 나타난다. 이와 더불어 쌍계루와 백암산의 가을 풍경에 대한 은은하면서도 정감이 느껴지는 묘사는

 쌍계루에 가지 못한 옥봉이 마치 직접 쌍계루에 올라 백학봉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옥봉은 그 특유의 시적 정서를 바탕으로 그 정감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생동감이 넘치면서도 과장되지 않고, 인위적인 표현이 없기 때문에 그의 시에서는 더욱 깊은 흥취가 느껴진다

 

 

 

 

 

 

 

 

 

 

 

 

 

 

 

월사 이정귀(1564~1635)의 詩

 

 


차백암사운

(백암사시에 차운하다)


 매번 강남의 노승을 추억하나니
언제나 석문으로 방문할 수 있을까
계화는 적적하여 빈산은 저무는데
방초는 해마다 묵은 한을 더하누나
빈 누각 시원한 바람에 물결이 일렁이고
성근 숲 스미는 달빛에 이슬이 맑았지
내일 아침엔 비장방의 지팡이 가지고
연하 덮인 만학천봉을 차례로 오르리라

 

 

이 시에서 월사는 관료생활에서 벗어나 전원 귀의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계화는 적적하여 빈산은 저무는데’라는 뜻은 과거 머물렀던 산사에 다시 가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나온다.
또한 빈 누각의 시원한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 성근 숲에 스미는 달빛에 이슬은 한 폭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전원의 풍경을

 연상하게 한다. 어쩌면 자신은 일생 동안 가지 못할 것 같은 자연 속에서 머물고 싶은 소망이 이 시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작품 속에서 쌍계루는 ‘만학천봉’으로 비유된 백학봉과 어우러져 신선의 공간, 안개 속 노을이 드러나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지금도 만산홍엽의 단풍 속에서 그가 마음속으로 그린 절경으로 우리 눈앞에 남아 있다.

 

 

 

 

 

 

 







옥호 이조원(1758 ~ 1832)의 제영시

 

 

 

동구래영이노승:동구에 마중 나온 두 노승께서
먼저 명승을 자못 이야기 해주네
봄꽃은 아직 일러 산 빛이 안타깝고
밤비는 새로 개어 세찬 시내 소리
숲 자리의 죽통은 상쾌한 운을 더하고
선등의 이른 꿈은 인연을 맑게 깨운다
구대를 입고 바람처럼 절벽에 오른다

 

 

 

이 시에서는 쌍계루를 지칭하는 직접적인 표현은 언급되지 않으나 노승의 이야기를 통해

 이른 봄에 조화를 이루고 있는 백암산과 쌍계루의 절경이 연상된다. 밤비가 그친 후 나는 시내소리 등의

 활동적인 묘사적 표현은 다른 옥호가 쓴 시들과 마찬가지로 감각적이고 치밀하다.

마지막 시구에서는 편한 가죽옷을 입고 산야를 능숙히 오르는 사람을 묘사하며

자연 속을 거닐고 싶은 지은이의 느낌을 잘 표현해 주는 듯싶다.
이처럼 옥호 이조원 남긴 쌍계루 제영시는 다른 문인들과 다르게 쌍계루 중심의 제영시 창작이 아닌

 백암산 전체의 자연 속 느낌을 다양하게 나타내는 특징을 볼 수 있다.

 

 

 

 

 

 

 





성암(性菴) 나경환(羅景煥 1830~1906)의 詩 6수

누각위의 달 사람들을 부르는데 나는 가지 못하고 / 허공의 밝은 달 등지고 느릿느릿 뒤따르네
그대 위한 좋은 글 다 듣고나니 / 흐르는 물 새소리 이 모두가 정겹네

물 소리 들으며 돌을 밟으니 발길은 더디고 / 두견새소리에 달은 너무 밝아라
흥이 일어 이밤 경치 이제사 알만하니 / 그대 위해 감추어둔 정 모두 모두 말하리

천지암(天眞菴)의 경치는 하늘의 모습과 같고 / 추른 비자림과 흰바위는 속세에 물들지 않았네
자규는 고향꿈에 적게하는데 / 유수,청산이 모두 사람을 반기네

술 깨보니 등불은 밝고 밖에는 비네리네 / 자그마한 집 텅빈채 밝고 밤이 무르익은 것 같네
안갠가 비구름인가 다 사라져 버린다면 / 골짜기의 달과 산봉우리의 모습이 예쁘게 보일 것 같네

내 어릴 때 이 산에 들어와 / 당당한 기상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더니
다시와서도 왕대나무의 감응 깨닫지 못하고 / 산골짜기의 새 산봉울리 구름에 다시 돌아갈 줄 모르네

장마비는 내리고 나그네 누각에 앉았는데 / 까닭없이 우는 새 고향생각 자아내네
풀떨기에 꽃이지고 봄도 저물어 가는데 / 오월 백양에는 보리가을 한창이네

 



 

 





 
白巖在何處 
백암사가 그 어드메에 있던고  一路入長城 한 길이 장성 고을로 접어들면鳥外嶽重翠나는 새 멀리 산이 겹겹 푸르고 鷗邊湖更明갈매기 곁엔 호수 또한 맑을 걸세


此身那復着 
이 몸이 어찌 또 한 곳에 애착하랴 所在卽爲生 있는 그곳이 바로 삶의 고장인걸去謁道庵老스님이 가서 도암 노인을 뵙거든欣然倒屣迎흔연히 신 거꾸로 신고 맞을 걸세

서거정(1420~1488)의 사가시집 제45권

 

 

 



 

 

 






 

 

 






 

 

 






 

 

 

약사암 은행

 

 

 

 

약사암 하경


 

 

 






 

 

 






 

 

 






 

 

 






 

 

 

약사암 내림길 단풍 감상


 

 

 






 

 

 






 

 

 






 

 

 






 

 

 

 

 



 

 

 

 

 

백양사


 

 

 






 

 

 






 

 

 

백양사 불사리탑


 

 

 

 






 

 

 






 

 

 

내년 봄이 기다려지는 고불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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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사념(思念)들이 밤새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날밤을 꼬박 세운 이튿 날.

 

 나도 모르게 백암산을 향하는 발길.

약사암을 오르는 너덜길에 펼쳐진 황홀한 애기단풍 군락.

 

기실 올 가을 백암산 추색 감상은 건너 뛸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게 마음 먹는다고 어디 그리 쉽게 잊혀질 사안이던가?

 

늦가을 단풍에 쏟아지는 투명한 햇살.

천지와 내가 동시에 붉어지는 문자 그대로 자연과의 합일.

 

얼마나 머물렀을까?

단풍 행락객의 소음이 점차 귓전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애기단풍이 토해내는 이 찬란한 붉음.

나는 오늘, 가을 백암산 열락(悅樂)의 늪에 빠져들어 시간을 가늠치 못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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