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10
- 박소재(樸縤齋) -
(남양주 송촌2리)
가을비에 젖은 시월의 장미가 지키고 선 박소재
당호 '박소'(樸縤)는 장자의 외편에서 취했다고.
樸素而天下莫能與之爭美 박소이천하막능여지쟁미
다듬지 않은 나무 물들이지 않은 천
천하에 누가 감히 이들과 아름다움을 다투겠는가
언필칭 쥔장의 사고를 고스란히 나타낸 당호일진데 집안을 한 바퀴 돌아 보면 금방 알게된다.
박소(樸縤)의 참 의미를....
마치 일본식 모래 정원을 떠올리게 하는 마당.
자신의 집을 해설하기 시작하는 김영경 박사(흰 와이셔츠).
1979년,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의 엄포
"집 없는 남자완 결혼할 수 없다."는 말에 거금 440만원을 주고 부랴부랴 장만했다는 이 집.
신혼집 삼을 요량으로 구입했는데 정작 이 집에선 딱 하룻밤 머문 후
독일 유학으로만 20년을 보내고 십여 년 전 돌아와 무너지기 직전의 집을 수리해서 살게 되었다는 말씀.
부엌 뒷편 매대(梅臺)의 바위를 '조왕바위'로 명명하셨다는 설명.
바위 홈엔 물이 고이는 물웅덩이가 두 개 있는데 그것은 마치 아낙들이 올리는 정화수를 연상케 한다고.
봄 날, 살구꽃 이파리가 웅덩이에 떨어진 모습은 가히 환상이라는데...
집 뒷편을 지키는 세 그루 오래된 살구나무가 이 집의 핵심 포인트.
쥔장의 한옥에 대한 생각은
한옥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도 살기 편한 공간으로 거듭 진화해야 한다는 것.
집안 내부에 말려지고 있는 가을 수확물
'박소재' 앞에 자리한 한음 이덕형 선생 별서터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 이덕형 초상화.
담장가 비목열매
이덕형의 생애와 사상에 이르는 박사의 열정 해설.
별서터를 지키는 고목 은행나무.
몇 년 전에 왔을 때 보다 더 쇠약해진 나무 수세가 안쓰러울 뿐이었다.
운길산을 배경삼은 '박소재'의 지붕선에 대한 쥔장의 예찬.
집 뒷편 살구꽃이 흐드러질 때가 최고의 감상 포인트라는 말씀.
무엇 보담도,
외래 수종이나 이질적인 꽃들을 전혀 초대하지 않은 점은
쥔장 내외의 자연에 대한 안목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뒷편 커다란 밤나무 그늘.
얇은 판석을 쌓아놓은 모습도 멋진 설치 미술이었고...
집 수리 과정에서 나온 폐목재 까지도 설치미술의 재료로 변신.
경향각지 다양한 이력을 지닌 이들이 '박소재' 뒷뜰에 좌정,
자기 소개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흐믓한 이내 마음.
다채로운 대화 내용 중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은,
홍천에서 오셨다는 어느 내외의 땅의 파헤침 없는 농법에 대한 말씀이었다.
'박소재'를 비롯, 바로 옆집도 지붕을 납작한 판석으로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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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세계원' 송순현 원장님의 제안으로 찾게된 두물머리 근처 송송골.
결론부터 내 놓자면 '박소재(樸縤齋)는 소박한 내용을 쥔장께서 열정으로 재 해석한 집이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유장함으로 흐르는 풍경을 앞에 놓고
수종사를 품은 운길산 자락의 멋진 지세를 배경삼은 아름다운 동네 송촌마을.
수 년 전, 아침 산책길에 낮은 돌담을 둘러친 이 집을 물끄러미 바라본 기억이다.
그땐 별다른 느낌없이 지나쳤었는데 2015년 오늘 쥔장의 열정 해설 앞에선 충분히 감동 해야만 했다.
오랜 세월의 서구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와
가히 폐옥 직전의 집을 김영경, 이유경 내외께서 정성으로 되살려 낸 결과물이라는 설명.
자신의 소담스런 집에 1경(景) 2경(景), 차경(借景) 등등의 의미 부여를 해가며 설명 해 가던 쥔장.
종래엔 배경음악이 깔린 프리젠테이션까지 동원 자신의 집 예찬에 열을 올리는 모습.
기실, 전국의 수 많은 고가와 원림을 쫓아다녀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첨인지라
웬지 당황스럽고 괜시리 내가 다 쑥스럽기까지 했다.
오랜 외국생활에서 체득한 공력을 바탕으로 내놓는 자신의 집에 대한 박사의 열정 해설.
돌아오는 차 안, 곰곰히 방문 소감과 생각을 정리 해 본다.
그래 맞다! 우리 모두 이런 류의 열정과 의미 부여에 따르는 가치 창출,
자기 드러냄과 미의식의 공유에 굳이 인색할 필요까지는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