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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럼·강좌·워크숍

제18회 월봉서원 유교아카데미

 

제18회 월봉서원 유교 아카데미

 

 

 사람의 길, 지식인의 길 

 

 심 옥 숙 : 전남대학교 / 무등지성 대표

 

2014. 5. 11

 

 

사람의 길, 지식인의 길 이라는 주제가 다소 묵직하고,

어찌 보면 모두 알 수 있는 것 같지만 또한 답하기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 길은 없다, 걸어야 길이 된다.(안토니오 마차도)

-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정호승)

 

-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정호승)

 

 깨끗해 질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내가 좋아하는 詩를 읽는 것이다.

내 안에 어쩔 수 없는 외로움에 관한 것.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기 보담 내가 직접 전활 걸어 보는 것은 어떨까?

시인은 차마 그 것 까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기다림에 지쳐 '내가 잊혀졌는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가 '

한탄에 빠져 자신을 점점 외로움 속으로 몰아 갈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나는 지독하게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외로움이 개인의 것 만이 아닌 일상의 삶 속에서 결코 떼어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면

아마도 정호승 시인의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외로울 줄만 아는게 사람이 아니라 그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게 또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렇다면 사람의 길이라는 게 도대체 뭔가를 생각케 한다.

 

 

 

 

-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괴테, 파우스트)

 

괴테는 무엇에 홀렸는지 '파우스트'를 60년에걸쳐 집필했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작금,

한 작품을 60년에 걸쳐 쓰고 또 고쳐 쓰고를 계속했다는 사실은 요즘 세상에선 이해하기 어렵다.

거의 평생을 '파우스트'에 몰두 했다는 것은 왜 일까?

대상이 변하면 나 역시 변하게 된다. 괴테 역시 그랬을 것이기에 오래토록 고쳐 썼던 것이다.

처음부터 실수를 하기위해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실수가 두려워 일을 접을 순 없다.

 

"인간은 행위하는 존재이다"라는 말이 있다. 행위 하지 않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 뜻에서 인간의 본질은 행위하는데 있다라고 보는 것이다.

 

 

 

-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사람다운 것이다. 용서를 하는 것은 신성한 것이다.(알랙산더 포드)

 

용서는 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겠지만 뭔가를 한다는 자체가 숭고한 것이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게게 있어 매우 어려운 것이지만 그만큼 큰 가치와 용기를 뜻한다.

 

-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현명하게 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포프)

 

더 현명함을 원한다면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위에 적시한  짤막한 대목들의 공통점은

인간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수 할 수 있는 한계를 인정하고 보다 더 겸손 해 지고

상대방의 실수를 용서할 수 있는자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방황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잘못을 한다 해서 그 사람에 대한 최종 판단이어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2천년, 3천년에 걸쳐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계속되어 왔지만

 그것에 대해 그 누구도 완벽한 답을 내놓진 못했기에 우리는 지금도 인문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기본적으로 사람은 옳음을 지향하는 습성이 있다 라는 본성이 깔려 있다.

누가 봐도 그 행위가 그르다고 보지만 본인만은 그것이 옳다고 보기 때문에 행위에 도달하는 것이다.

행위에 대한 반성 속에서 인간은 훨씬 더 아름다워 질 수 있는 것이다.

힘 있는 자가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킨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언제 그 자리에 도달한단 말인가?

비켜 주어야한다. 그것이 슬픔으로 외로움으로 올 수 밖에 없지만,

 삶의 연속선상이라 접수한다면 슬픔과 외로움에 대해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존재임을 자각케 된 게 바로 중세시대이다.

나의 삶 보다 신의 뜻에 사는 것이 나의 삶을 완전하게 실현 할 수 있다고 정의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허전함과 공허함을 설명 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실존'이라는 단어가 튀어 나오게 된다.

키에르케고르는 외로움과 불안 가운데 자기를 찾고 경험한다고 보았다.

 

 

 

어떤이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죽음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죽음이 두려운 것이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경험 해 본 사실이 없기 때문에 불안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안다면 내 살아 있는 날들이 얼마나 아깝고, 소중하고,

다시는 가질 수 없는 이 시간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훨씬 더 삶이 중요 해 진다는 것이다.

죽음을 통해 이 삶의 가치를 명확하게 깨닫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특권이라는 말도 있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가장 탐내는 항목이 바로 인간의 죽음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영생의 계속이라면 내 삶이 특별히 중요할 게 아무것도 없다. 정해져 있는 유한함을 인정한다면

지금 순간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가는 더 말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신을 인정했지만 사르트르는 무신론에 근거하여 실존을 말했다.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더 나은 삶, 더 인간적인 삶을 꿈꾸는 것에는

방법의 차이가 있고 관계와 환경의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선비와 소인이 구별되는 점은 개인의 욕심과 이익에 대처하는 자세일 것이다.

 

어느 선비가 어느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쥔이 가보로 내려오는 구슬이 없어졌다고 선비를 의심하는 거였다.

사실 그 구슬은 주인의 아들이 갖고 놀다가 떨어뜨렸고 거위가 그 구슬을 주워 먹었다는 사실을

이 선비는 알고 있었다. 거위의 발목을 묶어 내 곁에 두게 하면 구슬을 돌려 주겠노라는 선비의 제안 끝에

다음 날, 배설물에 섞여 나온 구슬을 주인께 돌려 주게 된다. 시간적 손해와 억울함은 거위를 잡으면 바로

해결 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선비는 거위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 그렇게 한 것이다.

 

 일본 사무라이의 예.

사무라이 부자가 음식점 앞에 쉬게 되었는데 음식점 주인이 음식 한 가지가 없어졌다고

사무라이 아들을 의심한다. 그 즉시 사무라이는 아들의 배를 갈라 음식을 먹지 않았음을 확인시키고

음식점 주인의 목도 함께 배어 버렸다.

 

내가 옳다고 강력히 주장한다면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다는 것.

 자신의 옳음을 어떤 방식으로 상대에게 알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게

보다 더 나은 길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지식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 한다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도움이 되겠는가?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지식을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형편이다.

현실감이 전혀 없으면서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는 지식인, 언론 플레이에 능하고 자신의 이름 석자를

드러내기에 안달하는 지식인. 전문가를 자처하며 화려한 수식으로 임기응변하는 지식인 들 때문에

지식인이라 말 하기 두려운 현실이다. 지식의 방대함에도 생활은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 들.

인간적 감화를 준 스피노자와 여러 명의 사생아를 고아원에 맏겨버린 루소의 예가 생각난다.

 

지식인의 철학, 진리의 생활화. 물질적 이익에 대한 왜곡, 가정사, 지인과의 우정 등이

진정 지식인에게 물어야 될 중요 사항이라는 생각이다.

 

 

 

 

  / 윤동주(1917 ~ 1945)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이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봄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듥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느로가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 : 바우키스와 필레몬 이야기

 

 

 

Philemon and Bauci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

 

자기네보다 더 부유한 이웃들이 내쫓은 나그네들을 극진히 대접했던 신앙심 깊은 프리지아인 부부이다.

그 나그네들은 실상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변장한 것이었고 이 부부는 보답으로 그 고장 사람들을 전부 익사시킨

대홍수에서 구원받았다. 그들이 살던 오두막은 사원이 되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소원대로 그곳의 사제가 되었다.

오랜 뒤에 이들은 같은 시간에 죽고 싶다는 소원대로 되었고, 죽어서 나무가 되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그림 형제의 〈그림 동화 Märchen〉에 나온다.

 

 

 

 

 

 

필레몬의 접대를 흡족히 여긴 신들은 그에게 소원을 물었다. 착하고 소박한 필레몬은

 그 신전을 지키며 살게 해줄 것과 사랑하는 아내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죽게 해달라는 소원을 말했다.

 
그 후 필레몬과 바우키스는 죽어서 참나무와 보리수가 되었다고 한다.

 

박해용 교수의 유교 아카데미 소회

 

 

 

월봉서원 유교 아카데미 종강과 시상

 

 

 

 

 

 

 

 

 

 

 

 

행주기씨 문헌공파 문중 회장님의 격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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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봉서원 지킴이 강기욱 선생님의 아카데미 종강 소회,

 

"대원군의 서원 철폐 이후,

진정 처음으로 월봉서원에서 갖게 된 뜻 깊은 아카데미였습니다."

 

 

처음은 시작을 의미하는 뜻이요, 시작은 연속을 의미하는 것.

고답적인 내용을 탈피 다양한 주제와 논단이 활발하게 펼쳐진 금번 유교 아카데미.

 

시험적 성격이 짙었던 첫 번째 아카데미에 이은 다음 내용이 벌써부터 기다려 진다.

보다 더 알차고 심도 있는 내용이 펼쳐지길 소망한다는 뜻.

 

아카데미에 참여 해 주신 수강자 모든 분과

원할한 진행을 위해 노심초사 애써 주신 관계자 모든 분께 진심어린 고마움을 전 합니다.

 

 

 

 

I Will Always Lov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