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월봉서원 유교 아카데미
(유교사상의 현대적 이해, 전통문화 이해 및 체험)
- 2편 -
2014. 1. 19
유교사상과 서양사상
- 고대 그리스인의 삶과 유교문화권의 삶 -
강사 : 양진호 (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
유럽 문명의고향, 고대 그리스
1. 그리스인들에게는 자유 아니면 죽음!?!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소설을 아십니까?
우리에겐 안소니 퀸이 열연을 펼쳤던 『희랍인(希臘人) 조르바』로 더 익숙하다.
이 책의 저자이자 그리스 사람이기도 했던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는
생전에 자신의 묘비명을 이렇게 써 두었다고 한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현대 그리스에는 우리의 가훈 같이 국가의 표어가 있습니다.
"자유 아니면 죽음!" 심지어 국가는 "자유의 찬가"입니다.
당신의 날카로운 공포의 칼날은
해방을 이루게 할 줄 아나이다.
당신의 빛나는 광채는
국토를 비추어 줌을 잘 아나이다.
거룩한 폐허에서 되살아나는
헬라스인들의 위대함과 자유여,
지난날처럼 용감하여라!
만세, 오, 만세! 우리의 해방이여!
마치 김남주 시인의 "자유여, 봉기의 창끝에서 빛나는 별이여"라는
시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스의 근현대사를 조금만 살펴보면 왜 이렇게 "자유"가 중요했는지 금방 알 수 있지만
자유의 문제는 단순히 최근 그리스의 역사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이 사람들이 꿈꾼, 그리고 실현했던 이상이 바로 '자유'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어: Νίκος Καζαντζάκης, 1883년 2월 18일 ~ 1957년 10월 26일)는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동 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지형적 특성과
터키 지배하의 기독교인 박해 겪으며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리스 민족주의
성향의 글을 썼으며, 나중에는 베르그송과 니체를 접하면서 한계에 도전하는 투쟁적 인간상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소설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리스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시적인 문체의 난해한 작품을 남기고 있다.
- 위키백과 -
H. D. F. 키토,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
「1장. 서언: 그리스를 그리스이게 하는 것들」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한번 가정해 보자.
'옛날에 수 백 년에 걸쳐 고도의 문명을 이룩한 어떤 세계가 있었다.
그 문명의 한편에서 어떤 사람들이 서서히 등장했다. 이들은 수도 별로 많지 않았고, 힘도 그리 강하지 않았으며,
잘 짜인 조직을 갖추지도 못했다. 그런데 읻르은 인생의 의미를 완전히 새롭게 해석했고,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의
지적 능력을 온전히 구사했다. '이 책에서는 바로 이 이야기를 상세히 설명할 것이며, 나는 이 이야기가 옳음을
증명하고 싶다. 먼저 이렇게 설명을 시작해 보자. 그리스인은 무척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스스로가 세상 어떤 사람
들과도 다르다고 느꼈다. 적어도 고전기의 그리스인은 습관적으로 인류를 '헬레네스(Hellenes, 그리스인이 스스로
를 부르는 이름 - 옮긴이)와 바르바바로이' (barbarioi, barbarios의 복수형 - 옮긴이)로 나누었다.
(.....)
그리스어 바르바로스는 현대 영어의 '야만인(barbarian)'과 뜻이 다르다.
'바르바르스'는 싫어하고 경멸할 때 쓰는 용어가 아니었다. 동굴에 살며 고기를 날로 먹는 사람들을 뜻하지도
않았다. 이 말은 단순히 그리스어를 할 줄 몰라서 '바르바르' 하고 말하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당신도 그리스어를
할 줄 모른다면 바르바로스다. 거친 트라케 부족의 사람이든, 오리엔트의 화려한 도시나 이집트 출신의 사람이든
상관없다. 그리스인은 오리엔트와 이집트가 자신들이 존재하기 수 백 년 전에 이미 안정적인 문명국가를 이룩
했을을 잘 알았다. 그리스인은 페르시아의 도덕률과 이집트인의 지혜를 존중했다. 그리스인의 오리엔트의 사람들
에게 물질적, 지적, 예술적 측면에서 큰 신세를 졌음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바르바로이' 였고 외국인
이었으며, 트라케인이나 스키타이인과 같이 분류되었다. 물론 그들과 혼동되지는 않았다. 오직 그리스어를 할 줄
모른다는 이뿐이었을까? 아니다, 그리스어를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은 더 근본적인 치아를 나타내는 징표였다.
즉 그들은 그리스식으로 살지 않고 그리스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삶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가 달랐다. 그리스인은
이런저런 이유로 바르바로스를 존경하기도 하고 나아가 질투하기도 했지만, 이런 차이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자신과 외국인들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민족이 또 하나 있다. 바로 히브리인이다.
이 두 민족을 함께 놓고 살펴보자. 그들은 이웃들과 자신이 다름을 분명하게 지각했다. 그들은 서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살았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에 대해 전혀 몰랐고 서로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고 살았다. 그러다가
알렉산드로스의 정복기에 이르러 비로소 그리스의 사상이 히브리 사상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
이 두 문화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들, 곧 히브리인의 종교적 열정과 그리스인의 이성 및 인간 중심성이 융합되어
후대 유럽 문화의 기초인 기독교를 형성했다. 그러나 히브리인의 '이방인'과 그리스인의 바르바로스는 매우 다른
개념이었다. '이방인'은 순전히 인종적이고 종교적인 개념이다. 바르바로스는 가끔 인종적으로 쓰이기는 했지만
종교적인 의미로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리스인은 왜 이렇게 확실한 구분선을 그었을까? 이 구분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었을까? 이렇게 말한다면 진실하고 충분한 대답이 되리라. 즉 오리엔트는 유서 깊은 문명
으로서 실용적인 일에서는 극도로 효율적이었고 때로는 예술에서도 그리스인에게 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성적으로는빈약했다. 수백 년 동안 수백만의 사람들이 경험을 쌓았다. 그런데 그들은 무었을 이루었는가?
아무것도 없다. 각 세대의 경험은 순전히 실용적인 측면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그 세대와 함께 죽어 없어졌다.
숲의 나뭇잎들도 그렇지는 않다. 나뭇잎은 최소한 토양에 거름이 된다. 사람들의 삶을 증류하여 정수를 뽑아내고
보존하고 나아가확장시키는 것은 학문이다. .
히브리인은 그리스인보다 앞서 종교시(찬송), 사랑의 시, 그리고
예언자들의 웅변(계시)을 창조했다. 그러나 소설을 제외한 그 외의 모든 학문 형식은 그리스인에 의해 창조되고
완성되었다. '바르바로이'의 역사 연대기와 투키디데스의 역사서는 아이와 어른만큼 차이가 난다. 어른은 이해
할 뿐 아니라 자신이 이해한것을 타인이 활용하도록 돕는다. 서사시, 역사와 희곡, 물리학에서 경제학에 이르는
전 분야의 철학, 수학과 수많은 자연과학, 이 모든 것은 스리스인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인에게 차아가 바르바로스와 그리스인으르 구별해 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뭐라 대답할까? 상상하건데 그 사람은 앞서 말한 그리스 정신의 승리를 첫 번째로 꼽지 않으리라. (......)
감탄을 자아내는 신전들, 조각상들, 연극들 역시 그 사람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앟으리라. 그리스인은 아마
이렇게 말 할 것이다. 아니, 실제로 이렇게 말했다. "바르바로스는 노예다. 그러나 우리 헬레네스는 자유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인에게는 '자유'가 있고 외국인은 '노예'라는 말의 뜻은 무었일까? 여기에서 정치적 의미가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오직 정치적인 관점에서만 이 말을 해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이 말은 꼭
그리스인이 자신을 스스로 통치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통치
체제가 어떠하든 정부가 그리스인의 권리를 존중했다는 뜻이다. 국가의 업무는 한 독재자의 사적 관심사가 아니라
공적 사안이었다. 그리스인은 법에 의해 지배를 받았고, 그 법은 공개되었고 정의르 존중했다. 그가 만약 완전
민주정 국가에 살았다면 저부에 직접 참여 할 수 있었다. 그리스인이 이해했던 방식의 민주정은 현대 세계가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는 정부 형태였다. 혹 민주정 국가가 아니라 해도 그리스인은 복속민이 아니라 최소한
'구성원'이었고 정부의 원칙은 공개되어 있었다. 자의적 정부라는 것은 그리스인의 영혼 자체를 침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인이 눈을 들어 부유하고 고도로 문명이 발달한 동방을 바라본다면, 바로 그러한 자의적 정부를 목격
할 수 있었다. 궁정 국가(전제정), 즉 저대 권력을 가진 왕의 지배가 그것이었다. 동방의 왕들은 초기 그리스의 군주처럼
테미스 여신을 따라, 즉 하늘에서 내려온 법에 따라 통치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사적인 의지를 따랐다.
신들에게 책임을 지지지 않았다. 왕 자신이 바로 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주인의 신민들은 노예였다.
위에서 꽤 설명하기는 했으나 '엘레우테리아'('자유'라는 번역어는 원어의 의미를 완전히 나타내지 못한다)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노예와 전제정은 영혼을 불구로 만든다. 호메로스가 말했듯이
"노예의 날에 붙잡힌 사람에게서 제우스는 인간다움의 절반을 앗아가 버리신다." 그리스인은 엎드려 절 하는
동방의 관행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엘레우테론'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스인이 보기에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모욕이었다. 그리스인은 신에게 기도할 때에도 인간을 대하듯 서서 했다. 그렇다고 그리스인이 신과 인간이
다름을 몰랐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리스인은 자신이 신이 아님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인간이었다.
그리스인은 신들이 신성을 흉내 내는 인간에게 즉각 가차없는 처벌을 가하며, 인간의 자질 중에서 겸손과 숭배를 가장
높게 평가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인은 신과 인간이 같은 부모에게서 유래했음을 잊지 않았다.
"신들과 인간은 하나의 종족이다. 우리는 한 어머니로부터 생명을 얻었다. 그러나 우리의 힘은 완전히 다르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신들에게는 청동하늘이 영원히 안전한 거처가 되기 때문이다."
핀다로스의 말이다. .......... 핀다로스가 여기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핵심은 인간의 존엄성과 취약성이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 고전 문학 전체츨 관통하는 비극적 선율의 궁극적 원천이다. 그리고 부적절하게 '자유'라고
번역되는 그 단어에 절박함과 강렬함을 더해주는 것은 바로 인간됨의 존엄성에 대한 이러한 의식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동방 전제군주 밑에 사는 사람들 외에도 바르바로이가 있었다.
예컨데 그리스 북부의 사람들은 부족상태에서 살고 있었다. 사실 그리스인 자신들도 그 상태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 단순히 그리스인이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것 이외에 이 사람들과 그리스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그 답은 바로 그리스인이 어떤 정치형태를 개발했다는 점이다. 이 정치 형태를 우리는 꼴사납고도
부정확한 단어인 '도시국가' 라는 말로 번역한다. 현대어로는 이 이상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정치형태는
인간의 고상한 본능과 능력을 자극하는 동시에 만족시켰다. 우리는 앞으로 이 '도시국가' 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은 것이다. 지금 당장은 도시국가가 원래의 공동의 안보를 위한 지역적 결사체로 시작했는데, 이후 인간의 도덕적,
지적, 미적, 사회적, 실제적, 삶의 초점이 되었고, 이전이나 이후의 그 어떤 형태의 사회와도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삶을 개발하고 비옥하게 만들었다는 정도만 언급하겠다. 다른 형태의 정치적 사회들은 '정체'된 상태였던 반면,
그리스인은 도시국가 덕분에 공동체와 개인의 삶을 이전보다 더 탁월하게 만들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분명 고대 그리스인은 바로 이것을 자신들의 가장 위대한 발견으로 내세우리라. 즉 자신들은 가장 훌륭한 삶의
방식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게 생각햇다. 그가 남긴 말 중에서
보통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번역되는 언급은 사실 "인간은 도시국가에 사는 것을 본성으로 하는 동물이다"
는 뜻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도시국가에 살지 않는다면, 당신은 최상의 인간 그리고 가장 전형적인 인간이
아니다. 바르바로스가 바로 그러하다. 이것이 가장 커다란 차이점이었다.
너무도 많은 이들에게 읽혀졌고,
당연히 수많은 인구에 회자되었던 이윤기 역 '그리스인 조르바'
유학의 산실 월봉서원에서 듣는 고대 그리스 철학.
이런 경우가 바로 의도치 않은 즐거움이자 뜨거운 마음의 청량제(?)가 아닐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찬 묘비명이나 한 번 더 주억거려 보자면.
//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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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광주드림' '인문학 향연'에서 발췌한 '그리스인 조르바'에 관한 내용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
조르바! 지금 뭐하고 있는가?
|
▲ 그리스인 조르바, 카잔차키스 저, 이윤기 역, 열린책들. |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자신의 삶의 투쟁에 도움을 준 인물로 호메로스, 붓다, 니체, 베르그송, 그리고 조르바를 꼽는다. 물론 그의 삶에 가장 큰 은혜를 베푼 요소는 여행과 꿈이었지만, 어찌되었건 간에 이 인물들은 모두 카잔차키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그는 호메로스를 기운을 되찾게 하는 광채로 우주 전체를 비추고 태양처럼 평화롭고 찬란하게 빛나는 눈으로, 붓다는 세상 사람들이 빠졌다가 구원을 받는 한없이 새까만 눈으로, 베르그송을 젊은 시절에 해답을 구하지 못해 자신을 괴롭히던 철학의 온갖 문제들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자로서 간주한다. 카잔차키스에게 니체는 새로운 고뇌로 스스로를 살찌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불운, 괴로움, 그리고 불확실성을 자부심으로 바꾸도록 가르쳤으며, 조르바는 현재의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이들 중에서 카잔차키스는 삶의 길잡이로서 틀림없이 조르바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의 눈에 새겨진 조르바는 `화살처럼 허공에서 힘을 포착하는 원시적인 관찰력’, `아침마다 다시 새로워지는 창조적 단순성’, `자신의 영혼을 멋대로 조종하는 대담성’, `신선한 마음과 분면한 행동력’, `야수적인 웃음’을 지니고 있다. 카잔차키스의 조르바에 대한 열렬한 환호와 칭송은 곧 그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의 출간으로 확장된다.
실존주의적 영웅 조르바
1883년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서 태어난 카잔차키스의 삶은 크레타와 터키, 정신과 물질, 영혼과 육체,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 보이는 것과 보이는 않는 것 등의 영원히 모순되는 반대 개념간의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이었다. 이성적인 미학주의자인 화자와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삶의 쾌락과 흘러넘치는 생의 에너지를 지닌 조르바는 니체가 언급했던 아폴론적인 기질과 디오니소스적인 기질 사이의 충돌과 투쟁에 대한 메타포일 것이다. 삶에서 우러나오는 실제 경험보다는 오로지 책을 통해서 인생의 의문점과 진리를 탐구하고자하는 화자는 생의 강렬함 그 자체인 조르바를 통해서 생생한 삶의 가치에 기반을 둔 자기의존과 자기인식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삶의 무의미함에 강력하게 도전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창조해내는 `실존주의적 영웅’인 조르바의 삶의 투쟁과 화자의 자아인식의 과정을 탐색한다.
화자의 눈에 비친 조르바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이자 이 세상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지만, 항상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이 대하는 인물이다.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의 힘을 신뢰하기 때문에 세상의 진리를 경험보다는 이론과 책에서 얻고자 열망하는 화자에게 정신과 육체가 온통 날 것의 생 그 자체로 휘감겨있는 조르바의 말과 행위는 신비스러운 원시의 모습이자 태초의 회오리바람이 다시 한 번 대기를 휘젓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그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에게서 생의 에너지를 포착해내는 힘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쪼글쪼글하게 늙고 천박하게 화장한 오르탕스 부인도 조르바 앞에만 서면 보잘 것 없는 늙은 여성이 아니라 위엄있고 신성하고 신비스러운 아프로디테의 얼굴이 떠오르도록 만든다. 화자에게 젊었을 때는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이제는 나이 들어 조그만 여관을 운영하는 오르탕스 부인이야말로 `늙은 사이렌’에 불과하지만, 조르바는 그녀를 독립전쟁기간 동안 용감하게 싸운 여장부의 이름을 따 “나의 부불리나”라고 치켜세우면서 그녀의 사랑을 일깨운다.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는 가보지도 못했고 지식의 세례를 받은 적도 없지만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기 때문에 마음은 열려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으로 고스란히 잔뜩 부풀어 있는 존재다. 따라서 그는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들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오스의 매듭을 칼로 자르듯이 과감하게 해결한다. 이것은 지성과 이성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경험과 감각, 그리고 온몸에서 품어져 나오는 생의 에너지 그 자체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르바의 열정과 삶에 대한 애정
온갖 사고를 통해 정제되고 잘 다듬어진 언어로 자신의 감정 상태나 느낌, 세상의 모든 것들을 표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적절한 언어를 구사하기 위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사고하고 올바른 어휘들을 찾아내느라 고심하는 동안 원래 처음부터 진정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들은 사고의 과정을 통해서 배제되고 은폐되고 생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르바는 이러한 말 혹은 언어가 갖는 단점을 이미 꿰뚫고 있다. 조르바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드러내고 싶으면 펄쩍 뛰어 일어나 춤을 추고, 춤으로도 안 되면 산투리를 켠다”고 화자는 친구에게 글을 쓴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때 바로 일어나 춤을 추거나 산투리를 연주하는 조르바의 모습은 마치 “자연의 법칙을 정복하고 날아가려는 듯이” “늙은 육신 속에 그 몸을 들어다 어둠 속에 유성처럼 던져 버리고 싶어 안들을 부리는 영혼이 하나 있는 것처럼” 인간의 본질과 심연의 감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조르바의 열정과 삶에 대한 애정은 그에게 주어진 일에서도 드러난다. 갱도를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끼는 조르바는 광맥을 찾는 일에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붓는다. 갱도가 무너질 위험성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그는 빠른 직감력과 신속한 대응으로 인부들을 무사히 탈출시킨다. 또한 성탄절 음식을 잔뜩 차려놓은 오르탕스 부인의 여관에 간 화자와 조르바는 퇴물 여가수의 따사로운 정과 시들지 않은 욕망을 느낀다. 화자는 사소한 육신의 즐거움이 매우 빠르게 간단하고 정신의 즐거움으로 변하는 것을 체험한다. 더 나아가 화자는 오르탕스 부인을 “내 어머니, 내 누이, 내 아내”였다고 묘사하면서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던 나(화자)는 갑자기 그 모든 것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라고 고백한다.
이처럼 화자는 조르바를 통해 예전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경험한다. 화자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야망이 없으면서도 세상의 야망은 다 품은 듯이 말처럼 뼈가 휘도록 일하는 것,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사람은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 성탄절 잔치에 들러 진탕 먹고 마신 다음, 잠든 사람들에게서 홀로 떨어져 별은 머리에 이고 물을 왼쪽,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해변을 걷는 것, 그러나 문득, 기적이 일어나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동화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현재의 살, 사랑과 환희를 일깨운 멘토
케이블과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기 위하여 칸디아에 간 조르바는 엿새 만에 화자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이 롤라라는 젊은 여성과 사랑놀음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악마같은 조르바, 즉 나이를 먹지 않은 사람 잡아먹는 조르바와 이가 빠지고 주름투성이에 늙어가는 바깥 조르바가 공존한다고 말한다. 나이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조르바가 나이듦에 대한 반항을 통해서 그는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양가적인 두 조르바들의 투쟁을 치열하게 경험한다. 이것은 바로 그가 오로지 그 자신만을 철저하게 신뢰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자신뿐이기 때문에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고 오직 조르바 자신만을 믿는다. 철저하게 현실에 충실하면서도 범신론적인 사고를 지닌 그는 화자에게 “책에 쓰인 것 따위는 믿지 마슈. 믿어야 할 건 나뿐이니까!”라고 말한다. 그는 화자의 내부에서 떨고 있는 추상적인 관념에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살아 있는 육체를 부여한 인물이다. 즉 조르바가 살아 숨쉬는 육체를 상징한다면 화자는 추상적인 관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조르바가 심혈을 기울여 완공한 케이블 고가선, 철탑 등 구조물 전체가 굉음과 불꽃을 날리며 모조리 주저앉아 결국에는 파국을 맞는다. 화자는 모든 것이 깡그리 날아가 버린 순간, 즉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다. 그는 이제야 “엄청나게 복잡한 필연의 미궁에 들어 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놀고 있는 걸 발견”하고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을 뿐, 정작 본인 스스로 몸을 움직이고자 하지 않았던 화자는 마침내 조르바에게 춤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고, 그의 춤을 통해 “처음으로 무게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처절한 노력을 이해”하기에 이른다.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생의 에너지로 가득 찬 조르바는 직관과 경험보다는 이성과 지성에 몰두해 온 화자에게 현재의 삶, 그 자체에 대한 사랑과 환희를 일깨워준 진정한 멘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현주<전남대·조선대 강의교수/ 무등지성 운영이사>
기차는 8시에 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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