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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살롱 드 월봉

제16회 2012 송년 살롱 드 월봉

 

              2012 문화재생생사업

 

          ‘2012 도담도담 월봉서원’

 

        ‘월봉서원은 창의가 춤추는 Academy다!’

 

 

 

          -제16회-

         고품격 문화살롱  salon de wolbong   

      

               우주와 심리의 대칭성                              

                           강사 : 무연 스님 (무등산 원효사)

           

            ●  Eilectric Violin 

                                연주 : 강 명 진 (Ensemble ARCO)

          

 

           - 일시 : 2012년 12월 27일(목) 

           - 장소 : 월봉서원 교육체험관

           _ 주최 : 광주광역시 광산구  

           - 주관 : 교육문화공동체 '결'

           - 후원 : 문화재청, (재)고봉학술원, 행주기씨문헌공종중, 광곡마을 주민,

                       광산문화원, 광주향교여성유도회, 광산구문화유산 해설사회

 

 

다담의 시간

 

 

 

 

 

 

 

 

 

 

회원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공교롭게도 두 분의 생일이 같은 날이시랍니다.

 

 

 

결 대표님의 송년 인사

 

 

 

 

 

 

무연 스님의 강좌

 

 

 

- 우주와 심리의 대칭성 -

 

 

 

 

 

 

 

 

 

 

 

 

 

 

 

 

 

 

 

 

 

Ensemble ARCO 강명진님의 일렉바이올린 연주

 

2009년 결성된 앙상블 아르코는 정상급 전문연주가 22명과 전문 스텝진 8명으로 구성,

고전음악부터 그루브한 재즈, 현대음악에 이르는 다양한 레퍼토리의 음악을

 독창적인 구성과 해석으로 연주해 사랑받아온 크로스오버 그룹이다.

 

 

 

 

 

 

 

 

 

 

 

 

 

 

 

 

 

 

 

 

 

  

위 8장의 사진은 연주자 강명진님의 카페 Ensemble ARCO  에서 발췌.

 

  

 

  베토벤바이러스 피아노 소나타 8번 작품번호 12번 3악장 론도

시간을 거슬러 (해품달 주제음악)

비발디 사계 중 '겨울'

아리랑 (세계 아리랑 축전 연주곡)

바이올린을 위한 탱고

 

 

 

 

 

 

 

 

 

 

강 명 진

정통바이올린 연주자로 여러 교향악단의 수석연주자로 활동했다.

각종 현악기는 물론 심지어 드럼까지 물경 12개 악기에 능통한 연주자이기도 하다.

크로스오버 "아코르" 를 이끌고 있으며  일렉 악기 상당수는 일본 "야마하"의 후원을 받고 있다고.

작년에 이어 임진년 송년음악회에도 찾아와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원스테이에 참여한 초등학생들의 작품들

 

 

 

 

 

 

 

 

 

 

 

 

 

 

 

임진년을 달려온 "살롱 드 월봉" 회고의 시간

 

 

 

 

회원님들의 달항아리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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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 심리의 대칭성 -

 

 

진실한 종교인이라면 자기 밖의 세계로 나올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글로벌한 사고 패턴이라 할 수 있다.

 

어린 나이에 종교부터 배우는 것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인생관, 철학에 앞서는 종교,

특히 서양종교는 전투적이고 억압적이요 지나치게 목적지향성으로 흐를 수 있다.

주입식, 강요식은 자칫 공포와 협박으로 흐를 수 있다.  불교 역시 이에 해당할 수 있다.

철학을 철학으로만 고집하면 이념화, 즉 이데올르기에 갇힐 수 있다.(소통의 거부)

진정한 철학자라면 비철학적 사고 패턴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우주와 심리의 대칭성"을 이야기 하는 까닭은 궁극적 실체를 알아보고자 함이다.

이것은 인간 지성의 정점이기 때문이다.

 

"空"  : 불교의 空과 물리학적 空은 거의 유사하다.

 

 불교에서의 空 = 성품의 궁극적 실체의 깨달음, (명상과 견성),

물리적 空 =  책상위에서의 생각과 확인 (눈에 보이는 것)

 

물리학자의 시간은 사물의 변화를 기록하는 측정방법.

불교적 시간과  공간은 추상적 개념, 느낌의 차원.

 

불교에서 견성한 이는 고통때문에 다시는 육체적 존재로 환원하려 하지 않는다.

 죽고나서도 무의식이 깨어있는 것이다.

단지 '원력수승'이라해서 이미 해탈한 예수나 석가같은이는 업으로 윤회하지않고

중생을 가엾이 여겨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우주를 형성하는 가장 큰 조건.

1, 시간, 공간  2, 제로, 無

 

칸트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순수직관"이라 정의한다.

인식체계 안에서 정의될 뿐이지 객관적 표현으로 정의될 수 없다는 뜻이다.

 

우주 한 바운데리 안에 수 천억개의 은하가 존재한다.

칼세이건은 말한다.

이 넓은 우주 안에 인간같은 생명체가 지구에만 존재한다면 광할한 우주는 엄청난 낭비일 뿐이다.

 

시간과 공간이 플렛된 상태를 無라 한다.  그러면 왜 無인가?

 

송광사 법설 시절, 서울대 물리학과에 재학중인 학생의 질문이다.

"도대체  반야심경에서는 왜 無를 그렇게 강조하는가?"

 

"반야심경에서의 無는 옥편에서의 無와는 다르다."

"時에서 間이 빠지고 空에서 間이 빠진 것이 바로 플랫이다."라고.

 

기하학에서의 無가 아닌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참선하는 과정에서 얻은 신이다. 검증된 믿음에서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플랫은 사유와 생각 이전의 상태인 것이다.

집중하면 가장 작은 소리도 크게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적극적 플렛상태를 말하고 싶다.

 

원효스님과 방울대사에 관한 일화다.

 

 원효가 공부를 성취한 후, 다른 절에 부목행자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절의 학인스님들이 바로 원효 자신이 지은 책을 들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어 내가 쓴 책인데..."

 

한참을 보고 있던 차, 뒤에서 들려오는 노승의  목소리.

 

"허허 ~~ 천하의 원효가  바로 여기에 와있구나."

 

그 순간 원효라는 질량이 노승의 마음에 드러난 것이다.

잠자리가 거미줄에 걸리 듯, 노승 앞에 원효가 무릎을 꿇었으니 그가 바로 방울대사였다.

 

나를 드러내면, 나라고 하는 생각이 심리적 질량을 만들어낸다

불교를 제데로 간파하려면 물리학,심리학.문학적 접근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씀.

 

여기 백 그램의 질량을 지닌 김밥을 땅에 버렸다고 치자. 약 백일이면 분해될 것이다.

김밥이라는 물리적 질량으로 태어나는 순간 백일이라는 시간 갇힌 것이다.

 

물리학에서는 시간과 질량이 서로 다르지 않다.

즉,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은 질량의 그림자일 뿐이다.

 

원효라는 심리적 질량이 등장하는 순간 그림자처럼 시간과 공간이 달라붙는 것이다.

원효의 남은 생만큼 공간에 갇힌 것이다. 엄격히 말하면 이 우주는 만 존재 할 뿐이다.

물론 객관적 실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변화의 두려움에서 종교는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를 쪼개놓은 것이 이요 벽이다. 시공간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내가 의도하는 것은,  나라는 심리적 질량을 궁금해 하지않고,

시공간에 갇히지 않는 삶에 대해 생각 해 보라는 얘기다.

 

우주의 나이는 137억 년의 나이라고 한다.

그럼 137억 년 전은 무엇인가? 빅뱅 전의 상태 無는 시공간이 플랫된 상태인 것이다.

 

원자의 10억분의 1 크기로 돌아간 상태, 즉 "풍선이론"이다.

137억 광년 둘레를 가진 우주는 점 하나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럼 왜 대칭성인가?

언젠가는 원자의 10억분의 1크기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를 생과사로 비교하자면....

 ( 내용은 위 사진 중 "우주와 심리의 대칭성" 판서 내용을 참조하시길)

 

메시지의 내용인 즉,

 장자는 처의 죽음을 보면서 을 본 것이다.

상여소리, 즉 살러가는 사람을 죽으러 갈 사람이 울고 있다고 본 것.

 다시 말해 생사 달리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없을 無 보지 않았다는 뜼이다.

 

有와 無에 격벽은 존재치 않는다.

불가에서 말하는 "직자적 상태" 를 이해하면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다.

물리적 질량 사라진 상태가 '無'라 말이다. (얼음과 물의 예)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는 표현을 쓴다.

대칭성으로 들어가면 본래의 집, 즉 시공간이 플랫된 無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유와 무가 직자적 상태였음을 이해한다면 이분법적 사고 유치할 뿐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변화는 늘 고통스러운 것일 뿐이다.

 

다시 대칭성으로 돌아가서 불교의 '空'은 단순한 넛씽 아니다.

대칭성을 가진 것이 '空'이요, 궁극적 실체인 것이다.

有와 無 어느 한 쪽으로 쏠리지 않는것이 바로 '空' 것이요 순환논리인 것이다.

 

동양철학의 사상은 직자적 상태요 서양철학은 대립적이다.

동양철학의 특징은 궁극적, 심층적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급격한 변화를 눈 앞에 두고도 심층적 평화는 여전해야하는 것이다.

이원론의 오류는 끝 없는 고통이요, 목적론적 세계관으로 들어갈 뿐이다.

(이데올로기, 소통의 거부)

 

동양  =  사실. ~~이다. Let it be . 조화, 순응  

서양  =  가치. ~~이어야 한다. 강요, 억압.

 

어떤 변화 앞에서도 심층적 평화 변화가 없어야 한다.

"심층적 평화"는 당신의 선택일 뿐이다.

 

나는 오늘 우주와 심리적 대칭성 말 하고자 했다.

우리 모두 내 마음 들여다 보자. 생사는 결코 불이 아니다.

 

    

   2012. 12. 27(금)

 

 

     

 

 

    I Don't Know How To Love H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