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28
영축산 전경
영축산이란 부처님 당시 마가다국 왕사성의 동쪽에 있던 산의 이름이자 석가모니께서 『법화경(法華經)』을
설한 곳으로 유명하며 수행자와 독수리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영축산이라 불렸다.
이 산의 모양이 불법을 직접 설하신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此山之形 通於印度靈鷲山形) 해서 통도사라 했다고.
자장암
자장암은 통도사의 창건주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수도하던 곳이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회봉대사(檜峰大師)에
의하여 중창되었다고 하며, 1963년 용복화상(龍福和尙)이 중수하였다.
1896년에 조각된 약 4m의 자장암 마애불(磨崖佛).
법당 뒤쪽 암벽에는 석간수(石間水)가 나오는데 자장율사가 손가락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 금개구리를 살게 하였다는 소위 금와공(金蛙孔)이 있어 유명하다.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하권(下卷)
‘승유어급변화금와(僧遺魚及變化金蛙)’ 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축서산 통도사의 자장암 곁의 커다란 암벽에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는데
그 속에 작은 개구리가 있다. 몸은 청색이고 입은 금색인데 어떤 때는 벌이되기도 하여 그 변화하는 것을 헤아릴 수 없다.
여름철에 바위가 과열되면 뜨겁기가 솥과 같으나 그 위를 자유로이 뛰어다닌다. 사승(寺僧)이 이를 일러 금개구리라 하더라.
그런데 이 금개구리는 도무지 산문(山門) 밖을 나가지 아니한다고 하므로 한때 어떤 관리가 그 말을 믿지 아니하고
그 개구리를잡아 함 속에 넣어 단단히 닫고서 손으로 움켜쥐고 돌아가다가 도중에 열어보니 없어졌다.
세간에 전하기를 그 개구리는
자장율사의 신통(神通)으로 자라게 한 것이라 말한다.”
자장암에서 바라본 영축산
극락암
통도사에서 서북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극락암은 근현대의 고승인 경봉(鏡峰) 스님이
주석하였던 곳으로 유명하다. 1344년(고려 충혜왕 복위 5)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며 창건주는 알 수 없다.
그 뒤 1758년(영조 34) 지홍대사(智弘大師)가 중건하였으며 1968년 이후 가람 전체를 경봉스님이 중건ㆍ
중수하였다. 선방인 호국선원(護國禪院) 앞에는 영월루(暎月樓)가 있고 연수당(延壽堂)ㆍ수세전(壽世殿)ㆍ
독성각(獨聖閣)과 함께 33조사(祖師)의 영정을 봉안한 조사당(祖師堂)이 있다. 경봉스님의 거처였던
아담한 삼소굴(三笑窟)과 함께 암자로서는 매우 큰 규모이다.
암자 입구에 있는 ‘극락영지(極樂影池)’는 영취산의 봉우리가 비치는 연못으로 유명하며,
연못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홍교(虹橋)와의 조화가 아름답다.
영축산 라인
如如門이라...
선정 속에 번뇌를 여의고 진리 위에 앉은 상태를 일러 여여함이라 한다던가.
선필과 초서로 유명했던 경봉선사의 필체 .
통도사
영축산 통도사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스님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金欄袈裟-금실로 수놓은 가사)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불보사찰의 위치를 갖게 되었다.
대웅전에는불상이 모셔져 있지 않고, 대신 창문을 통해 금강계단을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극락보전 벽에 그려진 반야용선도
통도사 금강계단
계단(戒壇)이란 계(戒)를 수여하는 의식이 행해지는 장소로
석가모니 당시 누지보살(樓至菩薩)이 비구들의 수계의식을 집행할 것을 청하자
석가모니가 허락하여 기원정사의 동남쪽에 단(壇)을 세우게 한 데서 비롯.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
금강계단 층계의 소맷돌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통도사의 가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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