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太極水太極에 心太極을 그려보다.
백화산(白華山) - 충북 영동군, 경북 상주시933.8m - 충북 영동군 황간면, 경북 상주군 모동면
보현사 / 도원골 / 보문골 / 보문사터 / 금돌산성 / 백화산(한성봉) / 선바위 / 반야사 / 뱐야교
2011. 5. 28
보문골 사면에서 만나는 축성의 흔적
대궐터
보문암 부속터
능선에 당도
금돌성(今突城)
- 경북 문화재 자료 제131호 -
백화산 골짜기과 능선을 따라 쌓은 석성(石城)으로 능선을 따라 5,600m의 길이로 축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신라의 김유신과 백제군이 격전을 벌였고, 고려 때는 몽고군의 차라대(車羅大)가 침공했을 때,
황령사의 승려 홍지(洪之)가 관민병을 이끌고 대파하기도 하였다고.
올라온 보문골 하경
멀리 주행봉 능선이 보인다.
지도상엔 분명 포성봉이라 표기되어 있지만,
백화산, 한성봉 등 이름도 각각이고, 지명에 깃든 사연도 수북하다.
정상석 뒷면에 적힌 내용은 이렇다.
白華山 漢城峰白華山은 백두대간 지맥의 靈山으로 영남과 호서를 눌러 앉은 옛고을 尙州의 鎭山이다.
신라 태종 무열왕이 삼국통일대업의 첫꿈을 실현한(660년) 대궐터, 今突城, 고려 僧 洪之가 몽고의 대군을 격파한
(1254년)대첩지 저승골, 조선 임란(1592년) 구국 의병의 충혼이 서린 고모담은다 白華山의 역사현장이다.
그러기에 옛 (1727년)부터 이 산 주봉을 漢城峰이라 불렀으니 큰(한) 城이 있는 산의 제1봉이란 뜻이다.
일제가 城을 사로잡다는 뜻으로 捕城峰이라 개칭한 것은 저들의 흉계인데 '백화산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청원하여
옛 이름을 되찾음은(국토지리정보원 고시-2007년 12월 27일)은 白華山의 靈氣가 發顯됨이다.
단기4341년(서기2008년) 5월 3일 문학박사 권 태 을 撰 상 주 시
백화산에서 주행봉으로 뻗어가는 산줄기
백화산 정상에서 반야사로 내려서는 산줄기
민백미
반야사를 휘감고 흐르는 산태극 수태극.
태극을 노리는 여전사
이 바위 너머 아랫쪽에 반야사 호랑이 너덜이 자리한다.
태극을 그리는 석천의 산자락에 자리한 반야사.
명경대(문수바위) 벼랑에 자리한 문수전
)
반야사 하경
문수전 하경
관음전 물웅덩이 곁에 무더기로 피어나 하얀 찔레꽃
관음전 연지
구도의 길...?
저기 다리 건너에 반야사가...
반야사를 지키는 대호 형상
요사체 너머 백화산 너덜겅에 그려진 호랑이 형상.
꼬리를 힘차게 치켜든 반야사의 수호신 호랑이,
반야사 삼층석탑
- 보물 제1371호 -
신라 양식을 계승한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한다고.
본디 석천 계곡 윗쪽 1km의 '탑벌'에 있던 것을 1950년 현재의 자리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반야사에 피어난 작약
수령 500년 생 배롱나무 두그루.
조선 건국 당시 무학대사가 꽂아놓은 주장자가 두 쪽이 되어 자라난 것이라고.
명경대 가는 길
크게 벌린 아가리에다 퉁방울 눈....!
느티나무의 형상이 마치 문수암을 지키는 사천왕상 처럼 다가 온다.
석천의 돌탑 행렬.
망경대 벼랑 끝에 걸린 문수암
조선 7대 임금인 세조는 지독한 피부병에 시달렸다. 백방으로 손을 썼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세조는 속리산 복천사에 9일 동안 머물며 법회를 열고는 신미대사의 청을 받아들여 반야사에 들렀다.
절집을 둘러보던 세조 앞에 문득 사자를 탄 문수보살이 나타나 왕을 이끌고 물이 솟는 계곡으로 인도했다.
세조는 문수보살이 시키는 대로 계곡의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한 뒤에 씻은 듯 피부병이 다 나았다.
물의 기운이 영험하니 그곳이 바로 영천(靈泉)이고 계곡 바위를 문수바위(망경대)로 불렀다 한다.
문수보살은 암봉 망경대 위에 절묘하게 들어선 문수전에 모셔져 있다.
두 기의 반야사 승탑인데 모두 균형과 조화와는 거리가 먼 느낌.
반야(般若)....
만물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는 불법을 꿰뚫는 지혜요,
온갖 분별과 망상에서 벗어나 존재의 참모습을 앎으로써 성불에 이르게 되는 마음의 작용을
이른바 반야(般若)라 한다고 어디선가 주워 들은 것 같은데...!
머나먼 백화산을 찾아 반야(般若)에 대한 해답은 얻고 산문을 나서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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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골로 접어 들어 금돌산성으로 오르는 길.
눅눅한 습기에다 바람 한 점 없으니 땀은 쏟아지고 숨은 턱턱 막힌다.
겨우겨우 올라선 한성봉에서 빵 한 조각을 삼키고 컨디션을 점검하노라니
다리도 퍽퍽한데다, 박무로 인한 그림발 까지도 영 별로라.
원래 예정 했던 주행봉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곧바로 하산길로 접어 든다.
석천과 반야사 일대의 풍경이나마 감상하는게 차라리 낫겠다는 판단에서다.
내림길, 호랑이 형상의 너덜 위에 자리한 선바위에 올라 하염없이 석천 일대를 굽어 본다.
상류에서 무슨 공사라도 벌이는지, 명경지수여야 할 석천의 물빛이 온통 흙탕물이다.
영락없이 여린 녹색의 바다에 누런 황룡 한 마리가 헤엄치는 형상.
순간 상념의 수렁으로 끝 없이 빠져드는 나.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
반야사 일대를 감돌아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 보며 광대무변한 空의 심연(深淵)으로 빨려든다.
태공(太空), 태허(太虛, 태극(太極).
아득히 높고 먼 하늘엔 허(虛)와 극(極)의 세계가 끝 없이 펼쳐지고
거북 등껍데기 이내 심사엔 황홀한 심태극(心太極)의 세게가 선명히 그려지고 있었다.
산을 내려와 반야사와 명경대 일대를 돌아 보고 사하촌으로 내려와 보니
그 옛날의 잠수교는 온데 간데 없고 번듯한 다리가 하나가 걸려있다.
다리 이름 마저도 반야교(般若橋)란다.
반야,
반야,
반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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