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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행·여행·풍경

나주 덕룡산 산책 - 2

                                                                                                                                           2011. 3. 5

 운흥사 석장승

 

 

불회사는 우측이 하원당장군(남상)이고 좌측이 주장군으로 여상인데 반해서

운흥사는 우측이 하원당장군(여상)이고,  좌측이 주장군(周將軍)으로 

위치와 새긴 글씨가 서로 바뀌어있다.

퉁방울 눈, 코등 형태상으로 볼 때 불회사의 것과 맥락이 거의 일치하는 느낌.

 하원당장군의 뒷면에 강희 58년(1719년)이라는 명문(銘文)이 있다.

 

문성암

 

 과거 운흥사(雲興寺)의 암자 문수암(文殊巖)터에 지은 정갈한 수행처.

 문수는 문수대성(文殊大成)을 의미하므로 

 문성(文成)이라는 편액을 걸게되었다고 수년전 다정스님이 내게 들러준바 있다.

 

 문성암 쪽에 찬란한 빛이 서리는 현몽끝에 불사를 결심하였다고.

 해발 200m정도의 산 윗쪽인데도 물이 넉넉하여 논으로 경작되어 왔을만큼 물이 늘 철철 넘친다.  

 

 참회전 앞 뜨락

 

 

암자 뒷편 능선을 치고 오르면  불회사가 지척이다

 

 

2층에 기도실이 마련되어있는 다소 특이한 형태의 전각

 

 

'다정'스님이 안계실 거라는 예견은 했었지만

그래도 막상 멀리 떠나가셨다는 젊은 비구의 말에  한없는 허전함이..

 

 

낮은 담 앞에 서서  그저 멀리 시선을 던져 볼 뿐.

 

 

 다정스님과 저 茶亭에 마주하여 '춘풍한담'을 나누고 싶었은데.

 

 

 다정스님의 휘호만이 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다구에 반들반들 쥔장의 손때가 묻어나야 하거늘...

젊은 수좌께서 차 한잔을 권하긴 했지만 웬지 마음이 끌리지 않아

컬컬한 목을 그대로 둔 채 산을 내려오고 만다.

 

 

이어 당도한 곳은 다도댐 기슭에 자리한 절 '녹야원'

순동 부조형태의 탱화를 봉안했다는 내용이 궁금하여...

 

 

 무설전 본존불 탱화 전경

 

 

 순동(純銅) 부조를 본존불로 모신 새로운 형식의 본존 탱화의 등장.

 목각등 다른 부조 형식의 탱화가 더러 있긴하지만

순동 부조 형식의 탱화가 본존 탱화로 국내 사찰에 모셔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간송미술관 최완수 연구실장의 주도하에 가로 3m, 세로 1.6m 크기의 순동 부조물로

부처가 깨달음을 얻고 첫 설법을 했던 '녹야원'의 정경과 다섯 제자, 보살 등을 조각한 작품이다

.새로운 형식의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의 본존불 탱화를 구상해온 효공 스님은

최완수 실장에게 이런 뜻을 타진했고, 최 실장은 2년여의 자료조사와 모형도 제작,

 수정 보완작업을 거쳐 완성하게 되었다고.

 

 

봉황면 철천리에 자리한 만호정(挽湖亭) 

 

전라남도 기념물 145 -

 

 

 이천 서씨, 진주 정씨, 파평 윤씨로 이뤄진 '마을대동계'가 건립한 것.

 

 나주 지역에서도 역사가 깊고 호방한 모양새로 대표적인 정자로 손꼽힌다.

 

원래는 마을 외진 곳에 있었으나 마을 행사의 편의를 위해 마을 앞으로 옮겨왔다고.

 

고려중엽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져 올 뿐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창건 당시에는 무평정(武平亭), 쾌심정(快心亭)이라고도 불렸다. 1601년 현 위치로 옮기면서

 

영세화평을 기원하는 뜻과 영평고현(永平古顯)의 뜻을 합쳐 영평정으로 개칭됐다.

 

만호정이란 명칭엔  마을 앞까지 올라오던 영산강의 물이

 

점차  줄어가는 것이 아쉬워  강물의 조수를 끌어당기는 염원을 담고 있다고.

 

 

 

정자 뒷편에 자리한 연못

 

 

울창한 고목에 둘러쌓인 만호정

 

 

덕룡산 미륵사에 위치한 철천리 마애칠불상과 마애여래입상

 

 

 마애칠불상

- 보불 제461호 -

 

고깔모양의 사각 형태로된 작은 바위에 7불이 조성되어있다.

동면에 좌상 1구가 있고 북면에도 좌상 1구가  합장하고 있으며, 남면에는 네 분의 부처님이 서 있는 형태의 부조다.

서면에는 원래 2구의 불상이 새겨져 있었는데 일제 때 광부들이 떼어갔다고.

바위 정수리에 동자상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볼 수 없다.

12 ~ 13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본다는데 미술양식의 퇴보를 읽을 수 있기에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

 

 

 

 정수리의 동자상과 서쪽면 2구의 불상은 사라지고 없는 상태

 

 

입상과 좌상이 혼재되어 있다.

 

 

철천리 석조여래입상

- 보물 제462호 -

 

여래입상이 위치한 이곳은 백제시절 실어산현(實於山縣) 이었고

통일신라 이후 조선 초까지 철야현(鐵冶縣)이 있었던 지역으로

치소가 있었던 철야마을과 이웃하고 있다.

 

 

높이 5.38m 로 불상과 광배가 하나의 돌에 새겨져있다.

 당당한 신체에 비해 다소 부자연 스러운 어깨, 큰 코와 긴 눈엔 가벼운 미소를 담고있다.

 왼손은 '시무외인'이고 오른손은 '여원인'이다.

전체적으로 당당하고 활달한 시대상이 구현되어있는 등

전반적인 느낌을 놓고 볼 때 10세기 후반경에 조성된 것으로 보는것이 타당하다고.               

 

 

 

여래입상의 뒷면

 

저 멀리 무등산이 푸근함으로 조망되는 곳.

 

 

 

 

미륵사의 견공께서 무등산 막걸리가 몹시 땡기시는 모양.

 

 

여래입상의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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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회사를 돌아내려와 이동한 곳은 산 너머에 위치한 운흥사.

초의 의순이 발심하여 머리를 깎은 절이라는 것쯤은 세상천지가 다 아는 사실.

 

그간 얼마나 불사가 진행되었을까 궁금하여 찾아가는 길.

절에 이르는 길가, 이젠 덕룡산 등산로를 안내하는 표지판까지 마련되어 있음에

세삼 시절의 변화와 흐름까지가 피부에 와 닿는다.

 

완벽한 폐사지였던 운흥사를 복원하겠노라 진력을 다 하시던 혜원스님.

지금도 여전하실지, 여기 저기 기웃대 보건만

당우를 짓노라 어수선한 공사 현장만 눈에 들어오고...

 

그냥 차를 돌려 나오려는데 절 앞 민가의 쥔 보살이 유혹한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차 한 잔 하고 가시죠?"

목구멍이 텁텁하던 판,

하마터면 그 여인네 주머니로 내 주머니 내용물이 통째로 이동한 뻔?

 

지난 추운 겨울을 지키느라 고생했을 운흥사 석장승.

따사로운 봄빛에 한치의 달라짐도 없는 여전한 해학의 얼굴.

가벼운 합장으로 격려를 보내고나서 아랫마을 문성암으로 발길을 돌린다.

 

낮은 돌담을 따라 늘어선 차나무와  잔디마당 너머로 보이는 참회전.

헌데 뭐랄까...?

단박에 쥔이 자리를 비웠음이 느껴진다고나 해야할까?

 

이 곳 저 곳을 기웃대고 있자니 나타나는 젊은 수좌 한 분.

다정스님의 건강이 그리 썩 좋지 않음은 알고 있었지만

거처를 묻는 질문에 그저,

 

"멀리떠나셨습니다..."

 

/차 한 잔 하시죠?/  /고맙습니다만 다음에.../

 

시절인연이 오면

부디 건강하신 모습으로 차 한잔 나눌 수 있기를 기원하며

이 역시 수좌님의 차를 거절하고 만다.

 

그 곳, 다도댐 자락에 번듯한 '녹야원'이 자리 잡았을 줄이야...!

뉴페이스의 탱화가 봉안되었다는데 두 눈으로 확인을 해야 할 터.

 

재미있는 것은 절 입구에 선 '녹야원' 안내판.

영락없는 청요리집 간판, 시쳇말로 모양 빠지는 현장이 아닐 수 없었다.

 

대웅전만 빼곤 그 어떤 건물에도 현판 하나 걸린게 보이질 않는다.

인기척에 그 누구 한 사람 코빼기도 내밀지 않음에 기가 질려 절을 나오려는데

그제서야 나타난 떠꺼머리 총각.

 

황급히 안내를 받아 '무설전'문고리를 당긴다.

그간 사진을 통해 충분히 감상해왔던터라 너무 익숙해서 탈.

창문이나 좀 열어제끼고 시원한 볕과 바람 가운데 한 번 감상했으면 하는 느낌.

 

철천리 안호정.

녹음이 우거지고 고목의 정취가 좋아 지난 칠팔십년대 자주 들렀던 곳.

그 후로 뚝이었다가 이번에 들어가보니 어쩐지 예전 느낌이 전혀 아닌 듯!

너무 오랫만이어서일까? 자주들러야겠다.

 

번듯한 사세로 변신한 덕룡산 미륵사.

절 맨 윗쪽 송림에 자리한 사각칠불과 육덕 좋은 여래입상.

 

종교적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더라도.과거를 유추하고

시대의 변천사를 읽어내는 미학훈련 파트너로선 그야말로 최적의 현장.

 

송림사이로 저멀리 우뚝 솟은 무등산을 바라보는 가운데

종종걸음을 쳤던 덕룡산 산책 하룻길은 여기서 접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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