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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행·여행·풍경

도래마을의 정취

        ● 전남 나주시 다도면 풍산리 도래마을

 

                                                                                                                                   2010. 11. 22

'호남 3대 명촌'중의 하나로 꼽는다는  '도래마을'

 104여호가  모여 사는 전체 가옥 중 절반이 전통 한옥으로 구성되어있다.

 

 

 

 마을 안길의 정비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

 

 

 

마을 뒤 숲길을 따라 식산(292m)에 오르면  마을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 앞에는 드넓은 들판이 펼쳐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형, 

 

마을 입구에 있는 연못과 정자, 학당 등에는 이 마을의 역사와 삶의 자취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조선 중종때 풍산홍씨(豊山洪氏) 홍한의(洪漢義)가 기묘사화를 피해 이 곳에 정착하면서

풍산홍씨의 집성촌이 됐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도래마을에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가옥이 많이 남아 있다.

 

마을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그 끝에 풍산 홍씨의 종가인 '홍기응 가옥'이 자리잡고 있다.

중요민속자료 제151호인 이 가옥 외에도 홍기헌(洪起憲) 가옥(중요민속자료 제165호),

홍기창(洪起昌) 가옥(전남민속자료 제9호), 홍기종(洪起宗) 가옥(전남민속자료 제10호)이 있다.

이들 모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지은 가옥으로, 원형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어

조선시대 사대부 주택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정철, 양사언 등이 머물렀던 양벽정, 마을 대소사를 논의하는 영호정도 중요한 문화 자산.

 

 

 

 

네칸 정자에다 분할 천정

 

 

 

출입문의 형태가 특이한 형태의 건물

집앞,  예전의 연못을 다시 복원하고 있는 듯.

 

 

 

 

 

 

 

 

 

 

 

 

효자문으로 불리우는 2층 형태의 출입문이 매우 이채롭다

 

 

 

 

 

 

이 집은 민박 형태로 운영한다고...

 

 

 

구부러진 담장길의 운치

 

 

 

나주 홍기응 가옥(羅州 洪起膺 家屋)

중요민속자료 제151호

 

이 가옥은 도천마을의 종가로서 마을 안 깊숙한 곳에 자리한다.

건물은 서향하여 직선축으로 배치되며 종선축의 깊숙한 곳에 일자형 안채가 가로로 놓이고

안마당을 사이해서 ㄱ자형 사랑채가 배치되었는데 축은 맞추었으나

방향은 직각으로 틀어서 남향하였다.

사랑채 앞은 담장을 둘러 구획하고 일자형 솟을 대문간을 두었다.

안마당 북쪽에는 헛간 채를 두었으며,

사당은 안채 남쪽에 안채와 나란히 배치하고 담장을 둘러 구획하였다.

사랑채 역시 따로 담장을 쳐서 공간을 구획하며

행랑마당으로 조그만 일각대문을 구축해서 동선(動線)을 연결했다.

그러나 사랑채 뒤는 안마당에 바로 면한다.

담장은 대문채에서부터 안채 뒤까지 크게 막아서 경계를 삼되

행랑마당에서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간도 일각대문으로 만들어서

사랑채 남쪽담장을 끼고 멀리 돌아 안채로 이르도록 하였다.

그러나 중문간은 세로축에 직각으로 배치되어 ㄷ자로 안채에 꺾여 진입한다.

 

 

 

 

 

 

 

 

 

사랑채

 

 

담장 안쪽의 배롱과 애기단풍의 자태가 참으로 멋스러운 모습이다.

 

 

 

애기단풍의 줄기가 위로 뻗다가 다시 연리된 모습이  흥미를 끈다.

 

 

 

안채로 가는 길

 

 

 

안채 상량문에 「壬辰 三月 初七日」이라는 기록과  

막새기와에 「壬辰 四月」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안채는 고종 29년(1892) 건립된 것으로 믿어지며,

사랑채 상량문에 「崇禎 紀元後 五甲辰 十月 初三日……」의 기록으로 미루어

1904년에 건축된 것으로 여겨진다.

안채는 일자형 6칸 전후우퇴집으로서 칸살이는 왼쪽 5칸은 뒤로 반칸을 더 이어 내고

또 다시 가운데 4칸은 반칸을 덧달아낸 뼈대를 하고 있다.

평면 구성은 왼쪽으로부터 앞칸에 부엌방, 뒷칸에는 광, 다음은 상하 2칸을 부엌으로,

다음부터는 전퇴를 제외하고 큰방, 가운데 칸은 앞에 대청, 뒷칸은 안대청이 된다.

다음칸은 앞뒤가 대청이며, 맨 끝칸은 복판이 작은 방이며,

뒷퇴는 아궁이가 시설된 작은 부엌이다.

구조는 2고주 5량으로 전면과 우퇴면만 두리기둥이며 나머지는 사각기둥 이다.

주초는 덤벙주초이고 기단은 막돌 허튼층 쌓기를 하였다.

지붕은 팔작기와 지붕이다.

전체적으로 남도 양반주택의 공간구성을 볼 수 있는 대표적 예이다.

 

 

 

 

일자형 안채

 

 

 

 

 

 

대문옆의 바깥채

 

 

 

옛 담장과 근대 벽돌담의 조화

 

 

 

나주 홍기창가옥 (羅州 洪起昌家屋)

민속자료 제9호

 

 

 

커다란 배롱나무 아래로 석산화가 군락을 이룬 길을 따라 집 안으로...

 

 

 안채 상량문에 “세재무오년구월초육일경인오시입주동월십오일기해미시상량

(歲在戊午年九月初六日庚寅午時立柱同月十五日己亥未時上樑)”이란 기록으로 보아

건립연대는 1918년으로 추정된다

 
원래 이 집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를 갖추었다고 하나

현재는 안채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채소밭으로 되어있다.

안채는 서향으로 배치되어 있고 그 앞에 안 마당이 있으며 안마당 남쪽에 최근 지은 아랫채가 있다.

 담장은 사랑채 터와 안채 뒤까지 크게 막아서 경계를 삼고 있으며 예전의 중문을 지금의 대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안채는 一자형 6칸 겹집으로서 서쪽으로부터 앞칸에 부엌방, 뒷칸에 부엌이 있으며

다음에 상하 2칸의 안방이 있고 그 다음에 앞 2칸을 대청으로 하고 뒷칸은 좌우 마루방을 배치하였다.

맨 끝칸은 앞칸에 1칸반 크기의 작은방을 두고 그뒤에 함실아궁이를 두었다. 우퇴에는 뒤주가 있다.

구조는 2고주 7량 집으로 전면과 우측면만 민흘림이 뚜렷한 원형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을 세웠다.

주춧돌은 덤벙이고 기단은 막돌 허튼층 쌓기이며 높이는 세벌대 정도이다. 도리는 8각형으로 하고 장혀를 받쳤다.

처마도리에는 보밑에 보아지를 받치고 장혀 아래에 소로를 끼우고 창방을 보냈다.

대공은 둥근 판대공이며 지붕은 합각이다.

 

 

 

 

 

 

마당의 석가산에도 배롱나무가 울창하다

 

 

 

 

 

 

나주 홍기헌 가옥(羅州 洪起憲 家屋)

중요민속자료 제165호

 

건물은 전체적으로 직선축을 이용하여 서쪽을 향하도록 배치하였다.

중심 맨 안쪽에 안채가 놓이고 중앙에는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사랑채가 자리했다.

사랑마당 앞에는 대문채를 두었으며 안마당으로의 출입은 사랑채 남쪽 측면을 지나게 하였다.

안마당 좌우에는 돼지 우리의 잿간채가 배치되었으며 담장은 자연지세대로 둘러졌다.

사랑공간과 안공간은 사랑채에 의해 자연스럽게 갈라진다.

사랑채 상량문에 「숭정기원후 삼경술사월 초이틀 임오에 기둥을 세우다

(崇禎紀元後 三庚戌 四月初二日 壬午 淸堂立柱)」라는 기록으로 보아 1790년에 지어진 것으로 여겨지고,

안채는 상량문에 「1929년(기사년) 2월 3일 묘시(오전5∼7시)에 기둥을 세우고 오시(11∼1시)시에 대들보를 올렸다

(崇禎紀元後 六周 己巳 二月 初三日 丁巳卯時 立柱 同日午時 上樑)」라고 기록되어 있어

1929년에 건축한 것으로 확인된다.

안채는 6칸 전후우퇴집으로서 왼쪽 2칸을 부엌으로 하고 전면 모퇴는 부엌방을 만들었다.

다음은 큰방이며 중앙 2칸은 대청이다. 대청 웃칸 뒷퇴는 창고방을 배치했으며 다음이 작업 방인데

뒷퇴에 작은 부엌을 두었다. 구조는 2고주 5량이며 전면 툇마루기둥은 두리기둥으로 되었다.

덤벙주초에 막돌 허튼층 쌓기 기단이며 합각 지붕이다. 사랑채는 5칸 전후우퇴로 뼈대를 하고

 칸살이는 왼쪽으로부터 부엌, 다음은 앞칸의 광, 뒤가 부뚜막이며

중앙은 사랑 아랫방과 대청, 뒤에는 창고방이 마련되었다. 앞퇴와 우퇴에는 툇마루가 놓이고

대청은 정면과 측면을 막지 않고 터 놓았다.

구조는 기본적으로 2고주 5량이다. 기둥머리 위에 주두를 얹고 대들보를 받았으며 보아지를 끼웠는데

쇠서없이 당초 무늬가 새겨졌고, 귀는 반곡을 둔 빗절이다.

또한 헛첨자를 끼워 양끝에 소로를 놓고 장혀를 받쳤다. 도리는 굴도리이며 대공은 사다리꼴 판대공이다.

기둥은 네모꼴이고 높은 덤벙주초이며 기단은 막돌 허튼층 쌓기를 한 후에 갑석만 장대석 마감을 하였다.

네벌대 정도의 높이이고 지붕은 합각으로 처리했다.

대문채는 5칸 겹집구조로 오른쪽으로부터 대문칸, 2칸 광, 헛간, 잿간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근래에 이루어진 것이다.

 

/홍씨 가옥에 대한 해설은 사이트 "한국관" 내용을 참조/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아담한 형태의 사랑채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채가 있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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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한옥마을 가 보셨습니까?"

 

'수 없이 지나는 다녔지만 막상 들어가 보진 못했습니다만...'

 

 

도예가이신 희뫼 김형규 선생의 안내로 찾아가게 되었는 바,

 

 

솔직히 이 정도인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었다.

'등잔밑이 어둡다' 라는 속담이 괜한 말이 아님을 되뇌이게 한 '도래마을'

정말 감동이었다.

 

 

문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둘러보고 젖어보지 못했다는 점.

가까운 시일내 다시 찾아가 여류롭게 돌아보며,

 오늘의 갈증을 내 기어히 풀어내고 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