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연/산행·여행·풍경

가을 그리고 詩

     *  2010. 10. 30

    *  전주시 도로공사 수목원에서

 

 (덜꿩나무)

 

 

만추(晩秋)라-

 

/고 중 영 /

 

 

 

_비오는 새벽의 소네트-

 

 

지금 이 계절이 늦가을인가?

잠결에 들리는 빗방울 소리

기억 저편까지 갔다가 돌아오고 있나?

 

산 속 외딴집 함석지붕으로

고장난 올겐 건반을 함부로 두드리며 돌아오는-

 

가만있자.

저게 바로크 음악인가?

아니면 오래 전의 유행가?

 

언제던가

그 여인의 살냄새 흉흉하게 풍기던 철길

침목을 밟으며 나란히 걸을 때

"장차 뭘 하실건가요?"

난 대답을 못했지.

차마 늙어 죽을 거라곤 말할 수없었던거지만

아! 인생이라니-

어느덧 이만큼 늙어버렸군.  

 

"물론 내가 늙은 것은 아니지만

 물론 내 세월이 늙어버린 것이지만"

 

우격다짐으로 살아온 위태로운 한 생애가

노년이라는 시그널에 걸려 나부끼다가 

한조각 또 한조각

/만추/라는 영화의 낡은 필름처럼  툭툭 끊기는 

삼류 극장 삼류영화 

아! 인생 아니던가?

 

 

 

(백당나무)

 

 

 

우리는-

 

/ 고 중 영 /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창을 열고

창을 닫고

그대가 나를 보고

내가 그대를 보고

 

세상은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에서

새롭게 죽어간다.

 

믿지 마라

주검조차도 믿지마라

그것은 다만 천지의 일이다.

우리는 천지의 일 그 틈새를 메워가는

아주 보잘 것 없는

보푸리기일 뿐이다.

 

그 보푸라기를 집어 들고

생김새를 말하고

색깔을 구별하고

냄새를 맡으며 키득거리다가

또 다른 세상을 찾아 떠나면

나머지는

남은 세상이 마무리하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해가 뜨고

또 해가 지고

누군가 초라한 오두막의

창을 열고

창을 닫고 있다

 

 

 

 

 

 

(용담)

 

 

 

산에 살다.

 

/ 고 중 영 /

 

 

뽀드득 뽀드득

다래덩굴 끼리끼리

억세게 보듬는 소리

슬렁슬렁

한가위 인심같이

수월케 흐르는 협곡의 물소리

사르락사르락

산비알에

산안개들 미끄러지는 소리

 

"톡"

 

기다리다 기다리다

애간장이 녹아

떨어져 으깨지는 이슬 한방울

아직도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한

상사화 눈물방울

 

 

 

 

(조각자나무)

 

 

 

(산비장이)

 

 

나그네

 

/ 고 중 영 /

 

 

나그네는 떠도는 사람이 아니다.

나그네는 흘러가는 사람이 아니다.

나그네는

떠도는 것들을 바라보는 사람일 뿐이다.

나그네는

흘러가는 것들을 얘기하는 사람일 뿐이다.

 

혹,

나를 아는 사람들아

헛트로 얘기 하듯

네가 너의 것들을 다 보듬지 못하 듯

나도 나를 다 알지 못한다.

다만 짐작이나 할 뿐이지.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승의 기억으로 남겨두고

잊은 듯 읹힌 듯

그렇게 떠나는 길에

가끔은 눈물 그렁니 맺히는

그런 나그네일 뿐인이라는 걸

그냥 느낌으로 알 뿐이지.

 

설명할 수도 없는

나그네일 뿐이라는 걸.

 

 

 

(배초향)

 

 

 神도 부활해본 적이 없다

 

/ 고 중 영 /

 

 

오늘도 온천지에 비가 내린다. 아니,

온천지가 비에 젖어 운다.

온갖 생명들이 죽을 만큼 슬퍼서 소리 내어 운다.

無생명들 마자도 흐느껴 운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생명 때문에 소리 내어 운다.

생명이 없는 것들은 無生命인 까닭에

소리 없이 운다.

 

 

그래서 세상은 절대중독이다.

그리고 절대중독증은 증상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증상이길 바라지만

그것은 증상이 아니라 이미 불치병의 진행형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것들에 중독되었다가

정신을 빼앗기기 일쑤인 생명, 무생명들이

중독의 함정에서 구원받을 수는 없다.

 

그것만이 절대원칙이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이 세상의 절대다.

 

神조차도 피해갈 수 없고

뛰어 건널 수없는 진리의 함정이어서

이 세상에는 부활하는 수단을 가르치는 학교가 없다

나,

비 몹시 내리는 어느 아침에

그놈을 곁눈으로 흘기고 있는 중이다

 

 

 

(종고추)

 

 

지중해를 건너지 마라

 

/ 고 중 영 /

 

 

지중해를 함부로 건너지 마라

건너더라도

스칸디나 반도에는 가지마라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혹은 걸어서라도

스칸디나 반도에는 가지 마라.

반드시 기야겠거든 去勢를 하고 가라.

 

바이킹이라던지

6세기경의 칼날

여인은 자신의 피부를 벗겨내 옷을 지어 입고

낱낱이 드러나는 곡선을-

섬세한 체위를 연주는.

아! 그 절묘한 곡선들-

 

마약을 공급해주는 엘리트를

자궁 속에 집어넣는

배분율 47%와

나머지 관심 밖의 性專

 

지중해를 건너더라도

스칸디나 반도에는 가지마라.

꼭 가야겠거든

머리를 잘라 은쟁반에 담아 든

살로메를 피해서 가라.

 

 

 

 

 

(구름체꽃)

 

 

 

일몰이 지고 있다

 

 

/ 고 중 영 /

 

 

일몰에 어리는 저 아랫길

잠시 눈자위가 붉더니 어느덧 침침해진다.

하지 말아야할 짓을 하다가 들킨

고추잠자리 한 쌍이 

더 빨개져서 허공을 맴돌고

여름 한철 버티던 길섶의 풀들도

기력이 쇄한 듯 몸들이 구부정하다.

 

벗들은 안녕들 하신가.

 

여기저기 구멍난 창호지 문

일간 읍내 나가 닥나무로 만든

한지 두어장은 사와야 겠지?

그때 밀가루도 조금 사다가

마루밑에 쑤셔 둔 스텐레스 공기를 찾아

저 아래 옹달샘 맑은 물로 풀을 쑤어

땜빵이라도 해야할까. 원

 

눈에 어리듯 미동하던 일몰들이

하나 하나 느티나무 이파리 뒤에 숨고

방안에 멀대같이 앉은 나는

70년 가까이 살았어도

내일이 어떻게 생겼는지

통 몰라하는 내가 섭섭한지

인사도 없이 일몰이 지고 있다.

저도  나만큼은 무심하다.

 

 

 

 

 

 

 

Dracaena reflexa Lam Variegata

(백합과)

 

 

 

그리움에 관한 보고서 2

 

/ 고 중 영 /

 

 

그리움의 날개는 접히는 것이 아니라 꺾이는 것이다.

곱게 접어 가슴에 간직하고 싶어하지만

숨길수록 뾰족해져 가슴에 박혀들고

"모른다" 외면하고 달아나면

어느 새 인생의 잔면으로 쫓아와

영악하게 웃고 서 있는 그리움은

그래서 지우개로도 지워지지 않는 요철문자다.

 

그리움의 뿌리에서는 늘 새순이 돋아난다.

느낌이라는 악령의 자양분을

탐람하게 빨아먹고 자라는 그리움은

만나는 순간부터 목숨이 다하는날 까지

그림자처럼 질기게 붙어다닌다.

늘 붙어다니는 그놈이 성가셔서 /인정해주자/ 하면

아침 저녁으로 심장을 후비고 형관을 물어뜯는다.

 

지나가 버린 청춘

지나가 버린 시절

헤어져버린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늘 외톨이고

/아니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 봐도

고개만 아플 뿐-

 

고로 그리움은 접으려해선 안된다.

그리움은 목숨처럼 꺾어야 한다.

아니, 목숨보다 모질게 꺾어야만 하는 것이다

 

 

 

(극락조화)

 

 

 

 

 / 고 중 영 /

 

 

강은 눈물을 품고 흐른다.울음소리 하도 고요해서울고 있다는 걸 모르지만강은 울기 위해서 저렇게 흐르는 것이다.어느 기슭에 닿아 어미 품같은 기슭에 닿아잠시의 안식을 얻고 싶어 해도아직은 울어야할 사연들이 많아접안(接岸)을 뿌리치고

결연히 흐르며

오늘도 어제처럼 울고 가는 것이다.

 

강은 눈물을 품고 흐른다.

어느 외로운 여인이

잃어버린 사랑을 아파 하며

강물에 얼굴을 담그고 누물을 씻고간 후

울음 그치는 법을 잊어버린 강은

오늘도 나처럼 울며 흐른다

내일도 후회처럼 울며 흐르리라.

 

 

 雨期 3

 

/ 고 중 영 /

 

 

雨期의 새벽은 여인처럼 젖으며

슬픔으로 빛나고

때로는 욕망처럼 번들거린다.

 

어느 무고한 죄수가

벗어던진 수의(囚衣)가

우울에 걸려 나풀거릴 때

너무 가까이 내려앉는 하늘과

땅 사이에

꽃들은 가까스로 봉오리들을 만들어

각기 지닌 子宮 속을

향기로 가득가득 채운다.

 

누군가

神의 손에서 낫을 빼앗아 든다.

神의 낫은 망설임을 모른다.

서걱서걱 베어지는 시간의 장막 뒤에서

꽃들은 숙명같은 미명을 찢고

미명은 그렇게 짖기면서도

보송한 웃음을 배운다. 

 

惡을 모르는 사람들 같다.

 

 

 

(남천)

 

 

 

가을 小考

 

/ 고 중 영 /

 

 

-바람의 귀-

 

 

저 넓은 만경들판

가을밤이면 소란스러워지는 까닭-

 

 

낮에는 숨어있던 별들

엷은 옥색치마 바람으로 마실 나와

태어나는 일

태어나서 살아가는 일

살면서 어른스러워 지는 일

그렇게 살다가 쓰러지는 일

쓰러져 썩어가는 일

다시 살아지는 일

세상 이치를 언제 그렇게 다 꿰어 찼던지

입을 모아 주저리는 고요

세상에 깨울까봐 조심스러운 고요

 

 

인적도 끊긴 저 들판

그 소란 속에서 귀를 열고 있는 건

갈길 잃은 바람뿐

 

바람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