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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행·여행·풍경

꽃무릇은 피어나고

          ◆ 전남 장성군 북일면 금곡영화마을에 피어난 꽃무릇

 

                                                                                                                                                                                                      2010. 9. 17

 

 

가을비 묘적 (描跡)

 

- 고 중 영 -

 

 

내 육십 노년의 긴 잠으로 덮어둔

 

흑진주 찬란한 웜 홀 속에서

 

고물고물 기어나온 천체 물리학 한 페이지가

 

바늘귀에 매달려

 

새앙쥐 젖니를 빌려다가 우주 한 귀퉁이를 쏠아 대고 있다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

 

 

 

쏟아져 내리는 부스러기들이

 

가랑잎 겨드랑이를 파고드는 소리

 

간지러워 못 견디겠는 겨드랑이들이

 

비비꼬며 키득 거리는 소리

 

 

 

 

*묘적(描跡)이라는 시어가 생경합니다.

그러나 가을비가 낙엽위에 떨어지는 소리를 쫓아가는 정황을 표현하고자 할 때

詩語의 긴장감을 살리기 위해서는 부득이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음을 양해하시길.

 

 

 

 

 

 

 

 

 

- 고 중 영 -

 

 

강은 눈물을 품고 흐른다.

울음소리 하도 고요해서

울고 있다는 걸 모르지만

강은 울기 위해서

저렇게 흐르는 것이다.

어느 기슭에 닿아

어미 품같은 기슭에 닿아

잠시의 안식을 얻고 싶어 해도

아직은 울어야할 사연들이 많아

접안(接岸)을 뿌리치고

결연히 흐르며

오늘도 어제처럼 울고 가는 것이다.

 

강은 눈물을 품고 흐른다.

어느 외로운 여인이

잃어버린 사랑을 아파 하며

강물에 얼굴을 담그고 서러움을 씻고간 후

울음 그치는 법을 잊어버린 강은

오늘도 울며 흐른다

내일도 후회처럼 울며 흐르리라

 

 

 

 

 

 

교집합

 

 

- 고 중 영 -

 

 

마로니에 봄을 만나러가는 날
銀製 주전자에 꽃잎을 따 넣고
불을 지핀다.
서서히 뜨거워지는 찻물?
아니, 내 몸

해가 뜨고 달이 뜨고 바람이 불고 비가와도
쪼그리고 앉아 찻잎만 닳이고 있을 것 같은
한 여자의 詩가 있었다.

“층층나무 무량층에 걸터앉아
조계산 등성이를 마악 건너온 넋새 한 마리의
밤이슬에 젖은 머리 쓰다듬어주는 안개,
그려, 그려 고생했네. 고생했네.
삭신도 내려놓으면 홀연
이 아침처럼 화엄이 보일 터-”

해가 뜨고 달이 뜨고 바람이 불고 비가와도
쪼그리고 앉아 세상을 쓰다듬을 것 같은
한 남자의 시가 있었다.

그들과 함께 한 세상을 사느라
그들의 시집을 뒤적거리며
그런대로 늙어가는 내가 있었다

 

 

 

 

 

 

그리움에 대한 보고서 1

 

 

- 고 중 영 -

 

 

 

그리움은 갑작스러울수록 좋은 것이다.

음악을 듣다가 혹은 삼류 영화를 보다가
문득 아득해지는-
그리움은 그렇게 무작정일수록 좋은 것이다.

지난 해 가을,

견디다 못해 제 가슴 빠개버린 석류를
어느 주머니에 따담았었는지가 궁금해지면 좋고
그 향기 다시 한 번 맡고 싶어 하며
“지키지 못한 약속처럼 늘 가슴에 맺혀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한 사람아!”라는
한 줄 남짓의 독백이라면 더 좋은 것이다.

그리움은 갑작스러울수록 좋은 것이다.

노을에 살이 붓는 하늬바람 흰 살 켜켜이
근황을 알 수없는 그 사람 체온을 찾다가
와락 한 아름 쓸어안아
잔주름 까실한 볼에 마구 문질러 봐도 좋고
이 계절의 *후절수(後絶手)에 걸려
토막 나버린 추억의 징검다리를 놓느라
떠날 듯 못 떠나고 못 박힌 자리에서
속마음 姦淫같이 연신 피 흘려 좋은 것이다.

 


* 바둑용어, 잡힌 자리를 되 끊어 잡는 手

 

 

 

 

 

 

그리움에 대한 보고서 2

 

 

- 고 중 영 -

 

 

그리움의 날개는 접히는 것이 아니라

꺾이는 것이다.

곱게 접어 가슴에 간직하고 싶어하지만

숨길수록 뾰족해져 가슴에 박혀들고

"모른다" 외면하고 달아나면

어느 새 인생의 잔면으로 쫓아와

영악하게 웃고 서 있는 그리움은

그래서 지우개로도 지워지지 않는 요철문자다.

 

그리움의 뿌리에서는 늘 새순이 돋아난다.

느낌이라는 악령(惡靈)의 자양분을

탐람하게 빨아먹고 자라는 그리움은

만나는 순간부터 목숨이 다하는날 까지

그림자처럼 질기게 붙어다닌다.

늘 붙어다니는 그놈이 성가셔서 /인정해주자/ 하면

아침 저녁으로 심장을 후비고 형관을 물어뜯는다.

 

지나가 버린 청춘

지나가 버린 시절

헤어져버린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늘 외톨이고

/아니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 봐도

고개만 아플 뿐-

 

고로 그리움은 접으려해선 안된다.

그리움은 목숨처럼 꺾어야 하는 것이다.

아니, 목숨과 더부러 모질게 꺾어야만 하는 것이다.

 

 

 

 

 

雨期 3

 

 

- 고 중 영 -

 

 

雨期의 새벽은 여인처럼 젖으며

슬픔으로 빛나고

때로는 욕망처럼 번들거린다.

 

어느 무고한 죄수가

벗어던진 수의(囚衣)가

우울에 걸려 나풀거릴 때

너무 가까이 내려앉는 하늘과

땅 사이에

꽃들은 가까스로 봉오리들을 만들어

각기 지닌 子宮 속을

향기로 가득가득 채운다.

 

누군가

神의 손에서 낫을 빼앗아 든다.

神의 낫은 망설임을 모른다.

서걱서걱 베어지는 시간의 장막 뒤에서

꽃들은 숙명같은 미명을 찢고

미명은 그렇게 짖기면서도

보송한 웃음을 배운다. 

 

惡을 모르는 사람들 같다.

 

 

 

 

 

일몰이 지고 있다

 

 

- 고 중 영 -

 

 

일몰에 어리는 저 아랫길

잠시 눈자위가 붉더니 어느덧 침침해진다.

하지 말아야할 짓을 하다가 들킨

고추잠자리 한 쌍이 

더 빨개져서 허공을 맴돌고

여름 한철 버티던 길섶의 풀들도

기력이 쇄한 듯 몸들이 구부정하다.

 

벗들은 안녕들 하신가.

 

여기저기 구멍난 창호지 문

일간 읍내 나가 닥나무로 만든

한지 두어장은 사와야 겠지?

그때 밀가루도 조금 사다가

마루밑에 쑤셔 둔 스텐레스 공기를 찾아

저 아래 옹달샘 맑은 물로 풀을 쑤어

땜빵이라도 해야할까. 원

 

눈에 어리듯 미동하던 일몰들이

하나 하나 느티나무 이파리 뒤에 숨고

방안에 멀대같이 앉은 나는

70년 가까이 살았어도

내일이 어떻게 생겼는지

통 몰라하는 내가 섭섭한지

인사도 없이 일몰이 지고 있다.

 

저도 나만큼은 무심하다.

 

 

 

 

 

풍장 

 

                                                                                                                                                                             - 황 동 규 -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白金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化粧도 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 석 -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굿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도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은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백석의 詩 <여우난곬 族>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마니 진할아바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로에 배 한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집엔 복숭아 나무가 많은

新里 고무 고무의 딸 李女 작은 李女

열여섯에 四十이 넘은 홀아비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土山고무 고무의 딸 承女 아들 承동이

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山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끝에 설케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곬 고무

고무의 딸 洪女 아들 洪동이 작은 洪동이

배나무 接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 치를 잘놓는

먼 섬에 반디젖 담으러 가기 좋아하는 삼촌

삼촌엄매 사촌누이 사촌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마니 할아바지가 있는 안간에 들 뫃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 차떡의 냄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뽂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 비게는 모두 선득선득 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 섪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타고 시집가는 노름

말타고 장가가는 노름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굽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 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 하고

아이들은 아이들 끼리 웃간 한방을 잡고 조아질 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 하고 호박떼기 하고

제비손이 구손이 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번이나 돋구고

닭이 몇번이나 울어서 조름이 오면

아릇목 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츰

시누이 동세들이욱적하니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끄리는

맛있는 냄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사실 원문은 읽기조차 어려워 다소 교정을해서 올린글임.

 

- 고 중 영 -

 

 

 

 

 

수랑동 일기

 

 

- 고 중 영 -

 

 

밤이 새도록 아침을 빚으면

기적은 동쪽으로부터 열리고

칸칸이 채워지는 풍요로운 풍경

풀을 깎지 않은 마당의

이슬을 흠뻑 머금은 소로-ㅅ 길을 따라

명주실처럼 풀려나간 자유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원근법과

가끔 눈을 썸벅거리는 낮달과

高峰에 깃든

청렴한 하늘의 무게를 쪼아보는

어치 혹은 서늘한 바람

 

난 서시를 쓰는 마지막 시인이 되어

이 견고한 풍경에 정(釘)을 박으며

부서지는 아침의 파편들을 모아

한편의 詩을 짜나가는 것인데-

 

저 아래 빈 집에 혼자 사시다가

재작년에 타계하신 할머니의 넋

이제 사람의 말을 잊고

천지의 말을 얼마나 배웠을까

 

 

 

 

 

이 산속에서는 2

 

 

- 고 중 영 -

 

 

파상풍을 앓고 있는 바람이

네모진 창으로 바득바득 기어드느라

동그랗던 제 몸을 깎고 비튼다.

 

푸른 자켓을 얻어입은 산은

방관자로써 하마 늘변한가!

 

산속에서 움직이는 건

곧바로 소리가 되고 춤이 되어

사드락 사드락

나무잎 뒤에 숨어버리는데

과묵하게 내려앉은 이슬방울만

풀끝에 동그랗다.

 

하늘에 걸린 영사기의 

고정난 비스타비젼 화면 속에는

떠나간 사람을 기다리는 먹구름들의  

주검같은 부동자세

 

그리고 간간히 내리는

아! 자막같은 비.

 

 

 

 

 

정한(情恨)|

 

 

- 고 중 영 -

 

 

어디 바람만 댕댕한
낯선 포구라도 좋겠소
떠날 채비 끝낸
연락선 뱃머리라도 좋겠소.

버릴것 다버리고
잊을법한 일 다 잊고도
목숨껏 부지해온 생애 다하기 전
갯바람에 눈물겨워하며 기다린 그 사람
이제는 돌아왔으면 좋겠소.

짜임새 성긴 기다림 사이로 놓쳐버린
하 많은 세월속에 손을 씻으며
그립다 않으려고 홀로 정 앓아온 그 사람
이제라도 당도하면
넘어지고 엎으러지며 달려나가
남은 힘껏 부여안고 목 메어 할
그사람 당도하면

늦었다 말하지 못하겠소
끝내 말 못하고
억장이나 무너져 보겠소.

 

- 나는 오늘도 올리 없는 누구를 기다리는가! 비 억수같이 내리는 白餘濟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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