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한루원(廣寒樓苑) - 전북 남원시
8월의 광한루원
완 월 정
전설에 의하면 광한루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며
이 완월정은 인간이 달나라를 즐기기 위한 것으로 달이 뜨는 동쪽을 id하고 있는데
전통양식의 누각으로 광한루원의 절경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다.
완월정은 1969년 기존 호수를 확장하여 인공 방장형 호수를 축조한 후
수중누각으로 신축한 것인데 2층 누각이다.
누각의 이름은 옛날 남원성 남문의 문루(門樓)인 완월루(翫月樓)에서 따온 것이다.
동학농민동기(1894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남원성의 남문인 완월루가
지금의 제일은행 네거리에 있었다.
남원성의 사대문은 향일루(동문), 망미루(서문), 공진루(북문), 완월루(남문)인데
그 중 남문의 누각인 완월루의 완월을 따서 완월정이라 했다.
전체적인 모습은 호두각형 건물인데 의정부 육조중 형조의 건물이 이러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오 작 교
선조15년(1582)에 남원부사 장의국은 광한루를 수리하면서 다리를 새로놓고 오작교라 부르게 됐다. 그 이후 광한루는 정유재란때 불타 1626년 복원됐지만 오작교는 처음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오작교는 길이 57m, 폭 2.4m, 4개의 홍예경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존하는 연지교중 국내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다. 또한, 오작교를 밟으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는 전설이 있고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어린곳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처녀가 아닌 사람이 다리를 건너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처럼 광한루와 오작교는 전설과 사랑이 어우러져 있어, 춘향이가 단오날 그네를 뛰는 것을 광한루에 올라앉아 이도령이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것처럼 사랑하는 연인들의 다리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
호수에는 지상의 낙원을 상징하는 연꽃을 심고,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에 가로막혀 만나지 못하다가 칠월칠석날 단 한번 만난다는
사랑의 다리 ‘오작교’를 연못 위에 설치하였다.
이 돌다리는 4개의 무지개 모양의 구멍이 있어 양쪽의 물이 통하게 되어 있으며,
한국 정원의 가장 대표적인 다리이다.
신선사상의 상징물 돌자라
원래 이곳은 조선 세종 원년(1419)에 황희가 광통루라는 누각을 짓고, 산수를 즐기던 곳이었다.
1444년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가 광통루를 거닐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여
이곳을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한 후 ‘광한루’라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1461년 부사 장의국은 광한루를 보수하고, 요천의 맑은 물을 끌어다가 하늘나라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었다
삼신산을 향하여...
1582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은 광한루를 크게 고쳐 짓고,
은하수 연못 가운데에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방장·영주섬을 만들어 봉래섬에는 백일홍, 방장섬에는 대나무를 심고,
영주섬에는 ‘영주각’이란 정자를 세웠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왜구들의 방화로 모두 불타버렸다.
비 석 군
부사, 관찰사, 어사 등의 송덕비와 치적비를 집합시켜 놓았다
단심문 너머 춘향사당
이당 김은호가그린 춘향 영정
광 한 루 (보물 제 281호)
광한루는 원래 1419년 황희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되어 왔을 때
"광통루"란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기던 곳으로 광한은 달나라 궁전을 뜻한다.
방 장 정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2010.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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