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원 임종국 선생의 조림비가 서 있는 고갯마루에 올라
약 20여분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된비알을 치고 오르면 축령산 정상(문수산).
늦은 시간에다 세찬 바람까지 불어대며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정상에서의 조망도 시원찮은 마당인지라 곧바로 영산기맥의 북쪽을 향해 줄달음을 친다.
세심원에 당도하여 소요 시간을 보니 1시간 7분이라.
1시간 30분거리를.... 너무 빨리달렸나...?
휴림에 들러 문향차 한 초롱을 우려마신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나 금곡영화마을을 거쳐 축령산 편백숲으로...
숲길을 걸으며 시 한수 떠 올리는 건 당연한 수순
길 가는 자의 노래
- 류시화 -
집을 떠나 길 위에 서면
이름없는 풀들은 바람에 지고
사랑을 원하는 자와
사랑을 잃을까 염려하는 자를 나는 보았네
잠들면서까지 살아갈 것을 걱정하는 자와
죽으면서도 어떤 것을 붙잡고 있는 자를
나는 보았네
길은 또다른 길로 이어지고
집을 떠나 그 길 위에 서면
바람이 또 내게 가르쳐 주었네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을
다시는 태어나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자와
이제 막 태어나는 자
삶의 의미를 묻는 자와
모든 의미를 놓아 버린 자를
해학
매화 삼경
- 이외수 -
문 밖에는 함박눈 길이 막히고
한 시절 안타까운
사랑도 재가 되었다
뉘라서 이런 날
잠들 수가 있으랴
홀로 등불가에서
먹을 가노라
내 그리워 한
모든 이름들
진한 눈물 끝에
매화로 피어나라
산속에서
- 나희덕 -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2009. 2. 1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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