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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행·여행·풍경

월출추색(月出秋色) / 월출산

◈  영암 월출산 (809m)

                    ◈  월출북릉 - 천황봉 - 천황사 8 시간 소요

                    ◈  2008. 10. 8 (수) 

 

월출산에 올라 맞이한 신 새벽

 

 

잠시 햇살이 돌아드는가 싶었지만

이 후론 온종일 부연 개스가...

 

벌써 가을의 잔해가...

 

월출산 여기 저기에서 볼 수 있는 풍화혈(風化穴).

수분이나 염분에 의한 화학작용으로 마모된 일종의 구멍

 

날이 완전히 밝은 가운데 바라본 월출과 천황봉

오늘도 날씨가 사진을 도와주기엔 틀린 것 같다

 

 

 

 

 

 이름하여, 자연산 '북방식 고인돌바위'

 

보고 보고 또 봐도...

 

신기하고 또 신기

 

 

 

 

 

 

 

 

 

 

마치 자라 한 마리가 붙어 있는 듯... 

 산부추

 

.... ?

 

 이끼류

 

용담

 

천황문

 

 

구정봉으로 이어지는 라인

 

 

 

월출추색

 

 

 

 

 

 

 

 

 

 

 

 

 

 사자사(獅子寺)목탑지(지방문화재 제 197호)

 

목탑지는 기단 한 변의 길이가 10.5 ~ 10.8m로

거의 정사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서쪽 중앙부에만 계단이 있고

서쪽 기단에서 28.2m 떨어진 위치에 법당지로 보이는 건물지가 있다.

목탑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기와편, 청자편, 철못, 청동화염문편 등이다.

현 목탑지 유구의 창건은 출토 유물로 볼 때, 11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목탑 1 변의 길이가 5.2m로 일본의 예를 볼 때, 3 층으로 추정된다.

 

사자사지의 목탑유구는 기단과 초석들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어

우리나라 목탑연구에 귀중한 자료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

 

(해설문에서 옮김) 

 

천황사 

 

천황사에 대한 최초 기록은 '大覺國師文獻集'의 ‘寶月山 獅子寺’라는 기록이다.

이 기록을 통해 볼 때 천황사는 고려 전기에 대각국사 의천이

사찰을 찾아올 정도로 사세가 있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1995년 실시한 1차 발굴조사결과 목탑지와 법당지가 확인되었다.

또한 발굴조사를 통해서 확인된 ‘獅子寺’명 기와와 ‘獅子寺’라는 절명이

일치하면서 천황사의 본래 명칭이 ‘獅子寺’로 확인되었다.

 

그 후 2차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隆慶六年壬申閏二月’銘 기와는

선조 5년(1572)에 천황사가 중창 불사되었음을 증명하였다.

 

또한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유물의 대부분이 16세기 후반을 넘어서지 않고 있어

정유재란(1597)때 화재를 기점으로 사세가 급격히 위축되어 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1972년 편찬된 '靈岩郡鄕土誌'에도 천황사에 관한 기록이 일부 있다.

“‘光武十年十一月三十日(고종 43년, 1906)에 창건하였으며, 한각성선사가

법맥을 잇던 중 1953년 5월 19일 최성암주지가 완성하였다”는 내용이다.

 

천황사는 근래까지 법당 겸 요사채로 사용된 건물 1동이 있었으나

2001년 4월 15일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

현재 요사채 1동이 복원되어 임시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1, 2차 발굴조사 결과 현재의 천황사 본래의 명칭이 사자사로 확인되어

2001년 12월 13일 ‘목탑지’를 ‘사자사목탑지’로 명명하고

전라남도 지방기념물 제197호로 지정하였다.

 

(인터넷 자료에서 발췌)


 

 

천황사 범종 

 

맨 왼쪽부터 깃대봉, 사자봉, 가운데 멀리 보이는 곳이 천황봉이고

 맨 오른쪽은 장군봉이다.

 

 

 

 


 

 

 

* 南州唯一畵中山 : 호남에 제일가는 그림같은 산 있으니

 * 月下晴天出此間 : 청천에 솟아있는 월출산 이로다.

  

 梅月堂이 월출을 예찬하여 읊었다는 간결한  時 한 편.

 

 

여타 잡다한 월출 예찬론을 

모두 다 우수마발(牛溲馬勃)로 격하시켜 버리기에

충분히 차고 넘치는 글발이라 여겨지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이 가져보는 아집과 좁쌀 소견에서 나온 감상평은  아니리라.

 

어느 곳을 들이댈지라도 모두가 훌륭한 그림이라 해도 무방하리만치

월출의 산세는 너무나도 기골이 장대한데다, 아기자기함 까지를

동시에 겸비한 터라 그야말로 수승한 산의 대표격이라고 해야겠다.

 

남도의 느릿느릿한 구릉지와 평야 가운데,

느닷없이, 불쑥 하늘을 찌르며 솟아오른 신령스런 월출산.

계절과 날씨등등, 이런 저런 복잡다단한 것들에 대한 일체의

염려를 붙들어 메두고 오를 수 있는 산.

 

그럼에도, 언제나 감동을 한 보따리 씩이나 안겨 내려 보내주니

과연 영암(靈巖) 덩어리 산이 분명함을 충분히 알겠노라.

 

월출의 여러 산길 중, 내가 가장  선호하는 코스인  '월출북릉'

 

그저, 후다닥 천왕봉을 오르려는 이 한테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코스다.

 

천천히 바위 하나 하나를 감상하며

처처에다, 시 한 수 씩을 그려 넣겠다는

느긋함으로 오를 때 만이

이 '월출북릉'의 묘미는 가슴에 들어오는 것이다.

 

감히 말 하건데  발아래 먼지가 일도록 오르고 내리는 것에만

집착하는 이들은 위의 코스를 결코 오르지 마시라.

이는 월출과 북릉에 대한 모독일러니...

 

'월출북릉'

 

단순히 천황봉을 오르기위한 중간 과정 쯤이라 여기는 이는

켜켜히 쌓여있는 보물을 모르고 지나치는 격이 될 것이다. 

 

진정 가슴으로 느끼며 조심스럽고도 느리게 오르내려야 한다.

시와 그림이 바위가되어 켜켜히 쌓여있는 곳이기에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