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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행·여행·풍경

아으 다롱디리 내장 계곡 트레킹

                                        @ 정읍사 공원 ~ 내장산 금선, 원적 계곡  우중 트레킹

                                        @ 2008, 6, 21 토요일 (하지)

 

정읍사 공원의 망부상 

 

정 읍 사

 
하 노피곰 도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를 드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졈그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달님이시여, 좀더 높이 돋으시어

멀리 비추어 주소서

지금쯤 전주 시장에 가 계시옵니까?

어두운 밤길을 가시다가

혹시 진데를 디뎌 흙탕물에

빠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옵니다.

몸이 고달프실 텐데 아무 데나 짐을 부려놓고 편안히 쉬소서

당신이 가시는  길에 날이 저물까 두렵사옵니다.

.

 

 

작자·연대 미상의 백제가요

 

유일하게 현재까지 전해오고 있는 백제의 노래로서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속악(俗樂)의 가사로 불려졌다.

고려사〉 악지(樂志) 속악조(俗樂條)와 〈동국여지승람〉 권34 정읍현고약조(井邑縣古躍條)에 노래의 제작경위가 기록되어 있고,

악학궤범〉 권5 시용향악정재도의조(時用鄕樂呈才圖儀條)에 가사와 연행절차가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정읍의 한 행상인이 행상하러 나갔다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의 아내가 망부석에 올라가 남편이 돌아올 길을 바라보며 혹시 밤길을 가다가 해를 입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지어 부른 노래라고 한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나 '어긔야' 등의 여음을 사용하고 있어 고려가요의 일반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여음을 뺀 본사설은 6행으로 2줄씩 합해보면 4토막 3줄 형식이어서 시조와 상통하기도 한다.

1·2행의 '달이여 높이 돋으시어 멀리멀리 비추어주소서'는 님에 대한 그리움과 염려 때문에 달님을 향하여 보다 높이 뜨고 멀리 비추어

님의 발길을 보호해달라는 기원이다.

 

 3·4행의 '온 저자를 다니고 계신가요. 진[泥] 데를 디딜까봐 두렵습니다'는

온 시장을 두루 돌아다니며 행상을 하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며 진 곳을 디딜까봐 염려하는 마음이 역력하다. '

 

온 시장'[全져재]을 큰 시장인 전주시장으로, '진 데를 디딘다'는 대목은

이 노래가 후에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로 금지된 것으로 보아 '다른 여성에게 정을 준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5행은 '어느이다 노코시라'라고 읊었는데 해독상의 이견으로 말미암아 해석도 여러 가지이다.

'어느 누구와 놀고 계신가요'라고 하여 남편에 대한 의심으로, '어느 곳에든지 놓고 계시라'라고 하여 피곤한 남편에 대한 염려로,

 '어느 것이나 다 놓고 오시라'라고 하여 속히 귀가할 것을 희망하는 것으로, 혹은 '어느 것이든지 놓여지게 하사이다'

라고 하여 고뇌에서의 해방을 기원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6행은 '내가 가는 곳에 날이 저물까 두렵습니다'라고 했는데,

남편이 해를 입거나 다른 여자에게 정을 두어 자기의 인생이 어두운 생활로 접어들까봐 두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노래는 백제의 민요로 구전되어오다가 속악의 가사로 편입되었고

고려시대에 와서는 궁중악인 무고정재(舞鼓呈才)의 가사로 창(唱)되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학연화대처용무합설(鶴蓮花臺處容舞合設)에서 〈처용무 處容舞〉·〈봉황음 鳳凰吟〉·

삼진작 三眞勺〉과 함께 가창되었다.

 

〈악학궤범〉의 연행절차에 따르면 여러 기생이 〈정읍사〉를 부르는 가운데 8명의 여기(女妓)가 나와 절차에 맞춰

춤을 추고 북을 치는데 마지막에 악사(樂師)가 박을 치면 북을 멈추고 물러 나가고 음악이 그친다고 했다.

 

이 노래는 중종대(中宗代)에 이르러 음란한 노래라고 하여 궁중가악에서 제외되고

〈오관산 五冠山〉으로 대치되었다.

그러나 〈성소복부고 惺所覆瓿藁〉·〈대악후보 大樂後譜〉·〈동국문헌비고 東國文獻備考〉 등의 문헌에

간단히 기록된 것을 통해 볼 때 이후에도 계속 연주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백과사전에서 발췌 -

 

 

 

 정읍사 사우

 

                                          정읍사 사우는 1994년 7월 규모는 11.5평,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건립하였으며

                                              행상 나간 남편을 오직 사랑하나로 기다리고 기다리다 망부상이 되어버린

                                                                      백제 여인의 부덕을 기리는 제례를 올린다고.

 

 

말냉이 장구채

 

 

 

 

 

 

 

먼저 금선계곡으로

 

 

 

 

 

 

금선폭포

 

 

 

장맛비 속의 내장사

  

 

 

서래봉을 병풍삼은 벽련사

 

 

 벽련사 연지에 피어난 흰수련

 

 

 

 

 

 

자연석 바위와 어우러져 너무나도 고고하게 백련을 피워내던 벽련암의 백련지.

찾는이 들 마다 다들 상찬해 마지 않던 그 아름답던 백련지.

 

헌데.............

 

웬 느닷없는 커다란 불상을 그것도 연지의 자연석 위에 떡 허니 앉혀놓았다.

 도대체 어떤 용렬하고 한심한 자의 머리에서 나온 발상일까?

 

".....ㅉㅉㅉ......."

 

 

 

편액의 주인공 서옹선사께서 일러주시는 듯.

 

"그냥  눈 감고 입을 닥치는게 상책이요, 만수무강에 보탬이 되느니....."

 

 

 

도덕 폭포

 

 

 

 

도덕폭포 2

 

 

도덕암 대웅전의 벽화

 

 

우중산행시 초록이 주는 감동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감동적인지는

느껴본자 들 만이 알 수있다.

그것도, 유월 장마속 나무잎새 표정은 무어라 형용할 길 없는

차분함과 보드라움을 안겨주곤 한다.

 

"정읍사 공원"을 돌아나와 분위기 산행의 대가라 일컬어지는

우리의 첨산님과 산소님을 대동하여

운무가 너울대는 내장산의 금선과 원적, 두 계곡 탐방에 나섰다.

 

온 산천이 촉촉하게 젖어있는 가운데 먼저 금선계곡의 표정을 살피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중식을 해결하고

이어 벽련암을 거쳐 원적암계곡의 분위기에 동화되니

일순 우리 모두는 초록동무.

 

도덕암 뒷편의 "도덕폭포"는 건폭포 수준이라서

여간해서는 보기 어려운 광경인데

때마침 내린 비로 웅장함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름다운 내장 초록물에 흠씬 물들었던 4 인조 계곡 유람단,

실경산수화 속에 나오는 인물의 성격은

바로 오늘 우리 일행을 패러디한 모습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