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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행·여행·풍경

천년 저편의 얘기들이 두런대는 - 경주 남산 -

                 @ 고위산  / 금오산  경북 경주 소재

                 @ 용장리 틈수골 ~ 고위산 ~ 고위능선 ~ 이영재 ~ 금오산(남산) ~ 용장골

                 @ 2008, 6, 14 토요일.

                 @ 팀백두와 함께, 약 6 시간 소요

 

 

망태버섯 

 

별로 습 하지도 않은 환경의 와룡사 오름길

도로가에 샛노란 그물망태를 우아하게 펼치고서 이 산객을 맞아주는

 망태버섯,  어쩐지 오늘 산행은 복이 차고 넘칠 것 같은 예감. 

 

시간 관계상, 주머니 사정상, 와룡사 입구에서 좌측으로 확 꺾어 고위산으로.

와룡사 부처님께는 정말 지송시럽습니다요, 그리고 나무아마타불입니다.

 

 

 

 

 

노루발 

 

  보물 제199호,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 보살 반가상 (慶州南山神仙庵磨崖菩薩半跏像)

 

통일신라 8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본다는 "신선암 마애불"

남산 여기 저기, 이런 저런 위치의 바위에 각종 모습으로 조섣된 마애불을 만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이 불상이 조성된 위치부터가 가히 경이롭기 짝이없는 장소가 아닐 수 없다.

 

장쾌하기 짝이없는 풍경을 발아래로 깔고, 그야말로 구름위에 두둥실 떠있는 형국이랄까?

칠불암 정수리께의 아찔한 절벽에 약 1.4m 정도의 크기로 조성, 선정에 든  얼굴로

 천년의 세월을 굽어보고 있는 모습을 감상하노라면 왕왕 착각에 빠지는 수가 있다.

 

마치, 내가 부처 동창생이라도 된 양.

 

 

 쪼깐이 보살님과 마애보살님과의 정겨운 대면 

 

마애불에서 내려다 본 칠불암 전경

 

마애보살상 앞 쪽의  몇몇 곳에 닫집을 세운 기둥자리로 보이는 홈이 파여있는 것으로 봐서

과거엔 어떤 형태로던간에 마애불의 지붕이 있었을 것으로 추론 한다고.

 

 

보물 제 200호,  칠불암 마애석불 

 

 

 

마애석불 곁에 소담스레 피어난 털중나리 한송이 

 

쪼깐이 보살님의 점심 공양 

 

점심 공양 후, 기념 컷 까징 

 

시대의 조류.... ?

 

절대 목이 쉬는 법 없고 요령도 피우는 법 없는 디지털 CD 염불

디지털 염불 알레르기 증세가 있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내 아무리 낯바닥에 철판을 깔았기로소니 어찌 저 구좌번호를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배추이파리 두어장이라도......!

 

 커피꺼정 얻어먹고 칠불암 뒷편을 치고 오르다 만난 일행

 

이미 식사를 끝내고서 굳이 칠불암까지 내려가시는 목적인 즉슨

 

믿거나 말거나.....

칠불암 마애석불께 팀백두 미녀집단의 수준(?)을 직접 보여드리기 위한 배려라고.

 

오른쪽 암릉 아래론 다녀온 칠불암이 있고 그 너머 능선을 따라가다보면

한동안 세간의 이목을 끌어 모았떤 "열암곡 마애불"이 발견되었던 곳으로 이어진다.

 

 

작년에 열암곡을 찾아가 마애불 발굴 작업 현장에 내 걸려있던 플래카드의 사진을 찍은 모습. 

 

봉긋하게 양편으로 나뉘어 선 이른바 "갸심바우"

 

 

삼화령에서 바라본 용장골

 

저 앞 나무판대기에 적힌 내용인즉,

신라의 충담 스님이 매년 삼짇날과 구구절에 삼화령의 미륵 부처께 차를 올렸음을 상기하여

우리도 차나무를 많이 심어 제사상에 술 대신 차를 올리는게  좋겠다는 취지의 말씀이다.

.

삼화령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다음과 같은 시 한편을 보게되어 잠시 소개 해 보자면.

 

삼화령 (三花嶺)

 

내가 연화 봉긋한 등성이에

차를 심은 것은

안개를 부르기 위함입니다

 

용이 솟구치는 동해바다

흙담 곁을 맴도는 역신(疫神)들

물리치기 힘든 것들을

어찌 향 피워 돌려보내리이까

 

소나무 우거진 숲 그늘에

바위를 찻잔 삼아

찻잎 올려놓고 저들을 기다립니다

 

풀잎엮어 지으신 청구름 산사

돌계단 오르며 돌아보면

아득한 운해

저들을 거역하지 않으렵니다

 

서라벌 달빗도

마치 저승꽃피듯 허약해 지는 것을

향 한줌이 어찌 천년을 다시 피워 올리리요

 

산이 허물어 지기 전에

산기슭에 심어둔 찻잎 훌훌 태워

잠시라도 저들을 잠재워 두고

안개불러 산길도 지워둡니다

 

 

하늘에서 알고 있는

흥망의 기막힌 현실

차 한잔 올려 미래의 길손이나 맞으리오

 

 

 

   삼화령에서  출토되어 지금은 경주박물관에소장되어있는 "석조삼존불상"

 

                                                                        7세기의 전형적인 불상양식 중 대표적인 상으로 본다고 하는데

                                                                     이런 저런 삼국유사의 기록에 근거해서 644년 경 조성한 불상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 사진은 작년에 경주박물관에서 찍은 것이다 - 

 

 

누구의 얼굴 반죽 솜씨일까...?

 

 

금오산(남산)정상까지 갔다가  되돌아와  용장골로 내려선다.

고위봉과 금오봉 사이의 골짜기로 용장사지를 포함 18 개소의 절터, 7 기의 석탑

삼륜대좌불 등 5 구의 불상이 산재해있는 그야말로 박물관 계곡이라 할 수있다는데

아직도 모두다 섭렵할라치면 한참의 세월을 필요로 할 듯.

 

기단의 일부에다 석탑 1 층의 부재만 남은 모습으로 생각된다.

 

 강인한 생명력과 신라 천년의 향기는 일맥상통

 

보물 제 186호  용장사곡 3층석탑 

 

용장골 가장 도드라진 바위 부분에 서 있는 석탑으로 고위봉과 금오산을 거너린채 들녘을 내려다보고있다.

장중한 자연석 화강암을 기단으로 삼아 추녀 끝을 살짝 들어올리고  위로 올라가면서 좁혀지는 체감율은

결코 수학 공식으로만 해결될 성질의 것은 아닐 것이리라.

 

 

진정, 그 옛날 신라인들은 어떤 심성과  염원을 이 탑에 담았단 말인가.....? 

 

 

 

보물 제 913호 용장사곡 마애여래좌상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암벽에새겨져있다.

자연스런 표정과 아담한 크기로 돋을 새김이 되어있는데 조성 수법이 여간 세련된게 아니다.  

 

 

 보물 제 187호 용장사곡 석불좌상

 

용장사의 주불로서 8세기 중엽에 조성되었을 거라는데 하대석은  자연석을 약간 다듬고서

중대석을 괴고 위에는  둥글고 납작한 반석을 중간 중간에 끼워넣은 형식의 대좌이다.

 총 3.5미터의 높이라는데 이는 수미산의 형상이라한다.

 

 불두가 사라진 안타까운 모습인데 재미있는 애기가 한가지 전한다.

오래전 승려 대현이 염불을 외며 이 불상을 돌면 석불의 얼굴이 따라 돌았다고.

그런 석불의 표정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으로 불두를 그려보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 

 

행여,  저 떨어져나간 불두를 발견하게되는

행운이 내게 찾아오면 어쩐다지......!

 

꿈은 자유요, 자유는 야무질수록 좋은 법.

 

 

주불과  굽어보는 석탑을 한 라인에.  

 

미륵장육상으로 추정한다는데 1932년 일인들이 복원했다고한다.

 

 

용처는.....? 

 

용장사지

 

세조의 단종 폐위 사건을 계기로 김시습은 출가를 하게 되는데 31세 때  이 곳에 들어와 7년을 머무르게된다.

뜰에 자라난 꽃에다가 단종을 오버랩시켜 북향화(北向花)라 하였다는 애기도 전 하는데

이 곳에서 매월당은 최초의 한문소설 인 "금오신화"도 집필 했다고 전 한다.

 

 

용장사지에서 올려다 본 삼층석탑

                                                                     골 골 깊으니

                                                                              오는 사람 볼 수 없네

                                                                        비에 신우대는 여기저기 피어나고

                                                          비긴 바람은 들매화 곱게 흔드네

                                                                      작은 창가에 사슴 함께 잠 들었으라

                                                          

                                                                                        -중략 -

                                            

                                                                                  김시습의 시 용장사에서 발췌

                                                        

                                                       

 

용장사골 내림길의 울창한 숲

 

 

설잠교 아래서 올려다본 용장사곡 삼층석탑

 

설잠교 (雪岑橋)

 

생육신의 한 사람 매월당 김시습, 설잠은 그의 법호다

 

 

용장골을 내려오다 잠시 절골로 오르면 상당한 규모의 절이 있었음직한 석축이 보인다.

 

절골 약사여래좌상

 

석축을 거슬러 약간 오르면 움푹 패인 자리에 덩그마니 석불이 앉아있다.

통견 가사를 걸치고 얇은 옷주름에다가 왼손에는 약 그릇을 들고

오른손은 향마촉지인을 한 모습의 불신인데,역시 안타깝게도

불두가 사라지고 없다.

 

 

절골약사여래좌상의 뒷모습

 

 

삼릉계곡의 목 없는 석조여래좌상

 

위의 목 없는 절골 약사여래좌상과 비교해 보시길.

 

 

용장사지 계곡은 남산의 여타 골짜기완 달리 골이 깊고 울창한 숲에다가

수량도 풍부하고 시원하기 이를데 없는 멋진 계곡이다.

 

산행의 끝자락에 흐드러진 개망초 군락

 

되돌아본 용장골

 

용장리 목각공예원에 들러서

 

캄파룰라 

 

왜개연 

 

사계국

 

 

연화세계 남산을 다녀온 기념으로  회산 백련지에서 찍어 두었던 백련 한 컷을 보탠다.

 

*  *  *

 

 

고위능선을 지나 부지런히 칠불암에 내려선다.

 

일곱기의 부처가 조성되어있는 칠불암 마애석불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고있을 때였다.

느닷없이 귓전에  들려오는 달콤한 소프트보이스....

 

"처사니~~~임~~~, 저 위로 올라가서 뒷쪽의 부처님도 찍으세요."

 

잠시 혼미해진 정신을 수습, 고갤 돌리니

마애불 전면에 쳐 놓은 차일 아래서 목탁이 깨져라 나무아미타불을 외치던 비구니 스님이시다.

 

일순,스님 뒷편으로 환한 광배가 돋으면서 단박에 극락세계가 펼쳐진다.

불사를 위한 독경으로 엄청 힘드신 와중에도 마애불을 찍기위해 동분서주 해대는 이 가엾은 중생을 눈여겨 보셨던 모양.

 

그리하야 황송하옵게도 경배의 대상 마애불 뒷편까지 진출, 모습을 담아오는 행운을 거머쥔 일이 있었다.

부처의 자비가 만땅으로 내게 쏟아져 들어오는 행운을 접수 했던 그 날은 바로 작년 가을 어느날.

 

젊은날의 리즈테일러보다 백배나 예쁘시고, 김지미 정도는 가볍게 찜쪄먹으시기에 충분한 칠불암의 미녀스님.

한달음에 절벽을 뛰어내려가 스님을 찾는데 달덩이같던 스님의 용안이 보이질 않는다.

 

대신,이번엔 미소를 가득 얼굴에 담고 환하게 웃으시는 새로운 칠불암의 미녀스님이 등장하신다.

 

 "어서 들어오셔서 점심 공양 드세요."

".............."

 

내 솔직히 고백컨데, 기십년을 절집 주위를 맴돌았으나 단 한번도, 결코 단 한번도

절집의 밥을 얻어 먹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 자리를 빌어 통렬히 외치지 않을 수 없다.

 

부처님도 내치시고.  넘쳐나는 절집의 각종 보살님 들로 부터서도 눈길 한번 건네 받은 적 없는 나.

그런 내게 이런 행운과 자비를 배풀어 주시는 스님은 이미 진즉에 성불을 완성하신 부처가 분명.

 

그렇지 않고서야  이 시커먼 산적에게 어찌 이토록 황홀한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 해 주실 수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나무아미타불에다가, 마하반야바라밀타요, 미녀스님 만만세가 아닐 수 없다.

 

꽉 다문 입에다 번쩍이는 안광만으로도 모든 속인들을 제압하던 절집의 카리스마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어릴적. 사탕과 센베를 나눠주며 달콤하게 꼬이던 교회는 별 부담없이 잘 나갔던 기억과 지금의 절집이 오버랩 된다.

 

당치않은 비교요, 이 잡인의 속물근성에서 나오는 헛소리는 이쯤에서 멈추기로 하자.

 

가고 또 가고, 보고 또 봐도 끝이없고 갈 수록 의문 부호만 더 해가는 산이 남산이라는 결론이다.

또다시 기회가 오면 주저없이 오르리라, 그리하여 남산이 전해주는 천년 저편의 애기들에 또 한번 귀를 세워보리라.

 

신라는 사라졌지만 남산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재 확인할 수 있었던 의미있고 뜻깊은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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