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 소장 영정 -
- 광복 이전 -
1883년 명문본 단군 영정
위 51.5cm(아래는 49cm), 높이 80cm, 천에 채색.
우 하단의 화기에 1883년에 그려져 봉안된 것으로 적혀 있는, 현존하는 최고의 단군 영정이다.
조선 후기 북한 구월산 삼성사나 은산 단군묘 등에 모셔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883년 명문본 단군 영정 - 밑그림 1
영정 밑에 받쳐놓은 밑그림.
1883년 명문본 단군 영정 - 배접지 1
밑그림 1의 아래에 배접해 놓은 그림. 두 선관(仙官)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1883년 명문본 단군 영정 - 배접지 2
맨 밑에 붙어 있던 배접지에 그려진 스케치.
불상이나 신선상과는 다른 모습으로 주목을 끈다.
백의 단군 48.5×66cm
전체적으로는 대종교 영정의 형식을 빌려 왔으나 흰옷으로 그렸다.
이유립의 저서 <커발한문화사상사>에 이 영정이 환웅상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대전 지역에서 이유립과 관련된 단체에서 소장했던 단군상으로 추정된다.
단군 반신상 46×50cm, 한지에 채색
대종교 영정을 모사한 상으로 반신상으로 그렸다.
좌), 대종교본 모사 영정 49×73cm
전체적으로 대종교본 영정을 모사한 단군 영정이다.
우), 왕관을 쓴 단군 58×119cm, 한지에 채색
대종교본을 변형해서, 상호는 약간 젊게 보이며, 제왕의 관을 쓰고 녹색으로 후광을 표현했다.
의자도 일제강점기에 유행한 근대 서양식 의자로 바뀌었다.
민화 단군 1 72×92cm
대종교본을 민화풍으로 표현했다.
구한말의 엄숙한 단군 모습이 친근감 있는 모습으로 조정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민화 단군 2 44.5×72cm, 천에 채색
모자 대신에 머리에 월계관 모양의 나뭇잎을 그렸고,
허리의 나뭇잎도 간략하게 변형된 모습으로 표현했다.
단군 액자 39.5×46cm
전체적으로 대종교본을 모사했으나, 다소 젊어진 모습으로 표현해서
이전의 엄숙한 느낌보다는 밝은 느낌을 준다.
단군 영정 38×53cm
전체적으로 대종교 영정의 모습을 취해서 모사했으나,
다소 젊고 밝은 모습으로 표현했다.
인쇄본 영정 31×47.5cm
대종교 영정의 사진을 인쇄해서 보급한 형태로, 많은 시간이 경과한 흔적을 보여준다.
백두산 천지 배경의 컬러 인쇄본 30×42cm
일제강점기 컬러로 인쇄된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한 단군초상.
작은 액자에 접어 넣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천지 배경의 단군 액자 2점 26.5×38cm
위 사진과 동일한 형식의 천지를 배경으로 한 단군상에 후광을 크게 표현했고, 하늘을 무궁화로 장식했다.
좌측에 각기 단군천진봉안회와 선불교 대구지부에서 발행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조선사료연찬회 단군 액자 26.5×38cm, 채색 인쇄.
해방 무렵 조선사료연찬회에서 컬러로 인쇄한 단군상이다.
같은 그림이지만, 단군 액자는 세월의 흔적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성경팔리> 본 초상 2점
왼쪽은 <성경팔리>의 속 표지에 들어 있던 초상을 인쇄한 영정 액자이고,
오른쪽은 해방 직후 [단기 4279년(서기 1946년)] 이를 모사한 흑백 상이다.
반신 단군 초상
일제강점기에 인쇄된 단군 초상으로, 상반신 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대종교본 영정을 모델로 했으나, 전체적으로는 젊은 모습으로 그렸고,
네 귀퉁이에는 일제강점기에 나라꽃으로 인식되었던 무궁화를 장식했다.
단군 사진첩
앨범의 속에는 사진보호용 반투명지를 넣어서 정성스럽게 제작한 사진첩이다.
대종교본 영정을 모사했으나, 상호와 의복이 약간 다르다. 사진 상단에는
'단군성조어진'이라는 글자를 넣었다. 겉표지에는 할미꽃 종류의 문장이 박혀 있는데
국내가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서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배검 사진 액자 13×20cm, 흑백사진
대종교총본사에서 사진을 인쇄해서 신도에게 보급한 사진 액자로
하단에 한배검이라는 글자를 넣었고, 유리 액자에 넣어 걸 수 있도록 했다.
- 광복 이후 -
반신상 영정 액자 86.5×99cm, 천에 배색
대종교본 영정의 모습을 다소 젊은 모습으로 표현했다.
반신상이지만 보기 드문 대작이다.
익산 천진전과 동일한 영정 42×30.5cm
대종교본을 모델로 했으나, 젊은 장년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앞고름에도 풀잎을 장식했고, 나무의자가 아니라 바위에 걸터앉은 전신좌상으로
익산 천진전의 모본이거나 같은 작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단군 전신상 57.5×105cm, 비단에 채색
대종교본을 모델로 다시 그린 단군 전신 좌상으로
동정이 흰색으로 강조되었고 장년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붉은 옷의 단군 영정 액자 21.5×28cm
대종교본 영정을 다소 젊게 표현했고 상하의를 붉은 색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현정회 2대 이사장을 지낸 이항녕 교수의 소장본이라고 전해진다.
백두산 천지 배경 영정 114×114cm, 천에 채색
장엄하게 그린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황녹색 계열로 단군상을 그렸다.
후광과 나무 의자는 금색을 칠해서 신비감을 더하도록 한 대작이다.
금색 후광 영정 90×66cm, 천에 채색
위 백두산 천지 배경 영정과 동일한 작가의 그림으로 추정된다.
월계관을 쓴 단군 72×44cm, 천에 채색
월계관을 쓴 민화풍의 단군 영정으로 나뭇잎과 의자를 단순하게 처리했다.
연두색 커튼 단군 83×63cm, 종이에 채색
연두색 커튼으로 양 옆을 장식했다. 금색 후광이 상호를 돋보이게 한다.
단군 전신 좌상 97×99cm, 천에 채색
대종교본을 다소 젊고 밝게 표현한 전신 좌상이다. 청록계열의 색을 주조로, 후광에 금색을 넣고
붉은 구름을 양 옆으로 배치해서 성서를 표현했다. 좌하단에는 화기가 있어서 규모가 있는 사찰이나
사묘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이나 내용은 비어 있다.
솔밭의 단군 120×180cm, 천에 채색
우리 민족이 가장 친근하게 여기는 소나무를 양 옆에 배치한 단군 전신 좌상.
상단에는 붉은 구름이 성서를 보이고 있는데, 청홍의 대비가 뚜렷해서 마치
십장생도를 연상케하는 대작이다.
조금석, 단군 비서갑 영정 59×88.5cm, 유화
중국에서 활동하는 조선족 출신 화가가 그린 단군과 비서갑 부처(夫妻)의 상이다.
단군은 팔괘도를 들었고 비서갑은 여의주를 든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단군 전신 좌상 72×100cm, 천에 채색
대종교본을 다소 밝고 젊게 그린 전신 좌상이다.
단군 전신 좌상 45.5×73cm, 천에 채색
대종교본을 다소 젊게 표현한 단군 좌상이다.
단군 비서갑 1 채색 인쇄
단군 비서갑 부처를 함께 그렸다.
단군 비서갑 2 소형 액자
이항녕 소장본으로 전해진다.
단군 전신 좌상 74×45.5cm, 천에 채색
대종교본을 모방해서 그린 전신 좌상으로 대종교본에서의 평절모가 부처상 같은
나발이나 곱슬머리 형태로 표현되어 있어 불교의 영향을 받은 영정으로 보인다.
단군 전신 좌상 90×154cm, 무궁화그림은 각 71.5×141cm, 지본채색
대종교본을 장년의 모습으로 변형해서 그렸다. 후광을 노란색으로 표현하고
양 옆에는 한반도 모양의 무궁화 그림으로 장식한 대작이다.
붉은 후광의 단군 영정 49×76cm, 한지에 채색
대종교본은 변형한 단군 영정이다. 상호를 젊은 모습으로, 후광을 붉게 그렸다.
나뭇잎을 허리에 두르지 않고 무릎에 그렸으며, 나무의자가 과장되어 있다.
유화 단군 영정 46×61cm, 한지에 채색
대종교본을 모델로 약간 젊게 표현했다. 붉은색을 배경으로 단군을 돋보이게 그렸다.
좌), 3단 후광 단군 영정 45×103cm, 지본채색
대종교본 영정을 토대로 그린 전신 좌상으로 후광을 노랑색의 3단으로 표현하고 있다.
석영 최광수(1932~1990)의 1980년대 작품과 유사하다.
우), 원방각을 든 영정 45×103cm, 지본채색
천부(天符) 삼인(三印)으로 원방각을 든 영정이다. 왼손에는 지팡이를 들었고 후광은
하늘색으로 표현했으며, 호피와 나뭇잎으로 장식한 털옷을 걸치고 있다. 무주 신불사
에 모셔진 석영 최광수 화백의 환웅 영정과 동일한 형태로, 1980년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원방각 영정 1,2
원방각의 삼인을 든 영정. 오른쪽은 사진에 '단군환배검'이라는 제명이 있어서
이 사진이 단군과 환웅으로 혼동되어 불리고 있음을 보여 준다.
왼쪽은 68.5×134.5cm, 지본채색이고 오른쪽은 28.8×57cm, 종이에 채색 인쇄.
최광수 환웅 · 단군 영정 인쇄 판넬.
석영 최광수(1932~1990)는 한의사로서 그가 그린 허준 영정은 국가 표준 영정으로 지정되었다.
홍의 단군 53×83cm, 천에 채색
현정회본을 저본으로 하여 이목구비를 또렷하고 젊게 표현했다.
붉은 바탕의 단군 41.5×61cm, 지본채색
대종교본을 저본으로 하여 색감을 뚜렷하게 대비시켜서 모사한 영정이다.
탱화 단군 100×88cm, 천에 채색
탱화 작가가 그린 단군 영정으로 불단에 모시기 위해 우하단에 화기가 마련되어 있다.
단군 족자 28.2×68cm
대종교본을 저본으로 하여 그린 단군 족자.
금빛 단군 영정 116×147cm, 텐트지에 채색
분홍 커튼을 배경으로 전신과 후광을 금빛으로 표현한 독특한 단군 영정이다.
마치 국보 240호 윤두서의 자화상을 본뜬 듯하다.
곰 단군상
곰이 변한 웅녀(熊女)가 단군왕검을 낳았다는 기록처럼
곰의 느낌을 주는 단군 영정이다.
정승섭, 단군 영정 67×98cm, 한지에 채색
정축(1997년) 개천절 기념으로 그린 현림 정승섭의 영정으로 그는 미술대학 교수로
공자, 노자, 예수 등 성인 영정을 많이 그렸다.
유양옥, 단군 영정 72×92cm, 한지에 채색
민화 작가 유양옥 화백이 그린 민화풍의 단군을 형상화했으며,
나뭇잎과 풀잎은 시동의 의복위에 그렸다.
민화 단군
펜과 붓을 같이 사용해서 그린 민화 단군,
해방 후 민간에서 단군을 존숭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단군 전신 좌상 25×45cm, 한지에 채색
대종교 영정을 모델로 근자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단군 기자 민화 1,2 51×75cm, 종이에 먹
조선시대 추앙받았던 단군과 기자를 같이 그렸다. 하단에 1947년 7월 26일
계당(溪堂)이 그렸다는 서명이 보인다. 해방 직후 민간에 단군을 존숭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61.5×90cm
강용운, 극세필 단군 영정 2점
24×74.5cm, 한지에 먹.
판화 단군 27×46.5cm
초상 위에 한배검이라고 새겨 넣었다.
단군성조봉헌국민회 액자 33×44.5cm, 종이에 인쇄.
단군성조봉헌국민회에서 기증한 단군 액자.
단군 액자 60×90cm, 종이에 인쇄.
단군 숭봉 단체에서 제작하여 보급한 단군 액자. 환웅의 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모방작 단군상 36×78cm, 한지
단군 영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오래된 그림처럼 위조한 최근의 모방작이다.
호피 위에 앉은 단군 53×89.cm, 비단에 채색
고목 나무의자 대신에 호피를 깔고 앉은 모습으로 그린 단군 좌상이다.
북한의 영정과 유사해서 남북한의 단군상이 섞이는 모습을 보여 준다.
북한 단군 영정 2점
북한의 표준 영정을 모사한 단군 좌상 1점과 평양 법수교 비문탁본을 같이 그린 단군 초상.
위), 73×133cm, 종이에 채색. 아래) 21×49.5cm, 종이에 채색
북한 단군 영정 자수 29×40cm, 천에 자수를 놓았다.
북한 초상 3점 왼쪽 21×29.7cm. 중앙 29×39.5cm. 오른쪽 32×41cm.
위 3점은 천에 채색으로 단군의 상호만을 그린 초상이다
북한 단군 영정 101.5×70cm.
좌측에 '단군 5012' 이라고 표기했는데,
단군릉에서 발굴된 유골을 전자상자성공명법으로 연대를 측정해 보니
5천여 년 전의 단군의 유해로 확인되었다고 한 것에 근거한 것이라고 한다.
인용 : 임채우 저 <한국의 단군 영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