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차와 그 문화에 관한 가장 후발 지역이었다.
유럽엔 차나무가 자생하지 않은데다, 차의 원산지랄 수 있는 중국이 '극서'(極西)에 위치한 관계로
물리적으로 머나먼 중국과의 교류가 당연히 늦을 수 밖에 없었을 터.
15세기 말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 항로를 발견하기까지 동서간의 교류는
실크로드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차가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에 전해졌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동양의 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인들이 광동에 도래한 것이 16세기 초였으니
아마도 그들에 의해 처음 차가 유럽에 알려졌으리라.
중국차에 관한 유럽 최초의 기록은 1545년경 이탈리아의 항해기에 수록된 것이라 한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차를 수입한 나라는 네덜란드였다고 한다.
1610년 일본 녹차를 인도네시아의 자바를 경유하여 유럽에 수출하였다는데,
얼마 뒤로는 중국차로 바뀌었고, 17세기 중엽 영국에 전해지는 차도 네덜란드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면 중국차 수입의 주도권이 영국의 동인도회사로 넘어가게 된다.
차의 원산지는 중국의 윈난성과 더불어 인도 동북부 아삼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두 곳 다 아시아 남방 횡단 산맥지대이다. 그러나 오늘날 차는 세계 170여 개국 몇 십억 인구가 하루에
20억 컵이나 마시는 세계 제일의 마실거리이다. 지금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50여 개국에서 생산되며,
아프리카(특히 케냐)에서도 차 재배는 주요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차는 크게 중국차와 인도의 아삼 차로 나뉜다.
800종을 이루는 중국의 차나무는 윈난 성에서 볼 수 있는 대차수(大茶樹)를 제외하고는,
대개 키가 작고(3미터 이하) 추위에 강하다. 그에 비해 주로 홍차인 아삼의 차나무는 키가 크고 추위에 약하다.
19세기 말 중국에서 선적되는 녹차
1793년 영국 사절을 접견하는 건륭제.
커피를 즐기고 있는 아라비아 여인.
지난 천년간의 100대 사건 가운데 차의 유럽 전래를 28위로 뽑은 <라이프>지는 또 커피의 보급을
78위로 꼽았다. 19세기 프랑스 어느 작가는 커피를 인류의 5대 발명의 하나로 치켜세운 바 있다.
(참고로 1위는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이다). 차와 함께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애음되는 커피.
커피가 차, 초콜릿, 설탕 및 담배 등 '이국적인 자극제' 들과 더불어 유럽에 전해지기 이전, 유럽인들의
주된 기호품은 향료와 술이었다. 중세 유럽은 향료를 통해 먼 전설의 세계 오리엔트의 '풍요로운 낙원'
을 꿈꾸었다. 향료는 근대의 문을 두드리는 지리상의 발견에 이어 대항해 시대를 여는
강한 자극제이자 기폭제가 되었다.
향료의 길을 통해 유럽에 들어온 갖가지 향신료.
커피 열매와 꽃
그러나 어찌 된 것일까. 향료에 대한 기호는 돌연변이처럼 사라지고, 17세기 이후
유럽에는 새로운 기호문화가 등장한다. 바로 초콜릿, 설탕, 그리고 특히 커피와 차의 전례이다.
16세기 아라비아의 역사가들은 커피를 처음으로 애음한 인물로 솔로몬 왕을 든다.
커피는 13세기 중엽 이래 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이슬람 세계에서부터 애음되고, 14, 15세기에 이르러
판매를 위한 재배가 시작되었다. 특히 15세기 중엽 이슬람교 중심지 예멘의 수피(sufi) 교단을 비롯하여
수행자들이 '잠을 몰아내는' 자극제로서 커피를 애음하였다고 한다.
노래와 커피를 즐기는 아라비아의 여인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원산의 커피가 15세기 중엽 이슬람 세게의 중심지
예멘의 수피 교단에서부터 아라비아 반도의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 카이로에 이르고,
그 뒤 순례자와 캐러밴이 낙타에 실려 시리아에, 16세기 중엽에는 이스탄불까지 파급되었다.
커피를 나르는 젊은 아라비아 여인.
좌), 터키의 초기 카페 내부 풍경. 우), 16세기 후반 보석 장식 태포트(이스탄불 궁전 박물관)
스팀 욕장의 상류 계층 여인들.
16세기 후반 오스만 투르크 상류 계층의 대연회.
오리엔트풍의 마리 앙투아네트. 들고 있는 커피 잔도 인상적이다.
인도 남부 아삼 지방의 커피 공방.
터키옷을 걸친 프랑스 여인과 그녀의 어린 하인.
여인과 커피.
젊은 괴테와 그의 어머니와 누이, 친구들과 함께 커피를 즐기고 있다.
아래는 1674년에 씌어진 영국의 청교주의적인 커피 찬가이다.
악의에 찬 포도주가 세계를 더럽히고
우리의 이성과 영혼을 거품이 일어나는 술잔에 빠뜨려 (...........)
그때 신은 우리에게 고마운 나무 열매를 보내주셨네.
커피가 우리에게 왔노라
이 고마운 만능의 음료
위장에 좋고 정신을 활발하게 하고
기억력을 강화하고 슬픈 자를 쾌활하게
오만해하게 하지 않고 삶의 의지를 눈뜨게 하네
커피를 즐기는 신사(세기말 <포스터의 걸작>에서)
커피를 '혁명적 음로' 라고 표현한 프랑스의 역사가 미슐레는,
"(커피) 혁명의 열광은 새 풍속을 창출하고 사람들의 기풍을 바꾸게 하니,
루이 14세 치하의 살롱과 선술집을 대신하여 카페가 등장하였다" 고 찬탄하였다.
커피, 그것은 또한 차와 더불어 지난날 중세적인 검과 술의 전사(戰士) 문화에 종지부를 찍고
우아함을 뽐내는 여성 중심의 사교 문화를 꽃피게 하는 한편,
만인에게 열린 자유로운 담론의 카페 문화를 일구었다.
커피와 카페를 남달리 좋아한 프랑스 대혁명기의 뛰어난 정치가 탈레랑의 명언을 되새겨 보자.
"커피는 악마처럼 까맣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순수하고 연애처럼 감미로워야 한다."
고혹적인 '근대적' 기호품 커피! 진미 진수는 아무래도
메피스토풍의 비밀스러운 표현에 잘 담겨 있는 성싶다.
17세기 귀족 집안의 식탁 풍경.
파리 명문 레스토랑 막심의 실내장식(1900년경)
중세 수도원의 식사 풍경.
<시리아의 비너스>(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1877)
<리스트의 아침>
왼쪽부터 뒤마, 위고, 조르주 상드, 파가니니, 로시니, 리스트, 마리 드 아구(1840)
19세기 사교계의 부인들.
살롱(세기말<포스터의 걸작>에서)
영국의 명문 홍차들.
홍수가 나도 카페 플로리안으로! (베네치아 마르코 광장)
초기 커피하우스의 실내 홀 장면(1668).
1852년 당시 로마의 명문 카페 그레코.
차와 책이 놓인 공간
차를 한 번에 800잔 담을 수 있는 세계에서 제일 큰 차관
(런던 티 커피 박물관 소장)
영국 왕실의 티타임
왼쪽부터 조지 2세 부처, 지금의 엘리자베스 여왕, 엔 공주.
티 가든을 즐기는 신사 숙녀들.
1725년 뵈트거가 제작한 중국풍의 차 주전자와 찻잔.
마이센의 청아한 자기
웨지우드의 최고 명품 '포틀랜드의 항아리'.
나폴레옹이 애용한 티세트(나폴레옹 박물관)
웨지우드의 아름다운 찻잔과 받침.
시인 키츠가 찬탄한 그리스 항아리.
18세기 독일 바이마르 공국의 살롱
"차여, 영원하라!"
인용: 이광주 著 <동과 서의 茶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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