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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리얼리즘미술과 신형상미술의 미의식

- 비판적 리얼리즘 미술 -

 

비판적 리얼리즘미술은 진보적 성향의 지식인 미술가들의 주된 창작방법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1980년대 미술의 큰 흐름을 바꾸어 놓은 초기 민중미술로서 중요한 미술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현실과 발언' 은 '비판적 리얼리즘(현실주의)' 을 지향한다고 평가되는

대표적인 미술동인으로, "비판적이고 휴머니즘적인 관점에 입각한 현실주의적 지향"을 가진

작가들이 참여했다. '현실과 발언' 의 활동은 사회적 의식을 지닌 작가들이 당면한

구체적인 삶의 상황을 시각언어로 조명하려는 일종의 시도다.

 

이런 시도는 '삶의 진실성'을 담는 리얼리즘미술과 맥이 닿아 있다.

비판적 리얼리즘은 추상적인 삶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의 상황 속에 있는 삶,

1980년대 한국사회의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오윤, <춘무인 추무의>, 1985, 고무판 채색, 62×40cm

 

1980년대는 역사를 이끌고 나가는 주체로서 민중에 대한 자각이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활발한 시기였다.

'현실과 발언'(현발) 작가들이 보여준 인간상은 역사적 · 사회적 삶의 핵심을 환기하는 대표적인 인간 유형

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그중에서 민중의 전형성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작가

가 오윤이다. 그는 평범한 민초들의 삶의 희로애락을 주로 목판화로 표현한다. 특히 그는 '신명', '한' 등의

한국인들의 뿌리 깊은 미의식을 인간의 전형을 통해 표현하는데 탁월하다. 그는 선과 형태, 색채, 구성 등

조형적 요소들을 통한 시각적 리듬으로 서사성을 만들어 낸다. 오윤의 작품은 민중의 전형을 형상화하고

그들의 미의식을 표현하여 리얼리즘미술과 민족미술을 결합한다.

 

 

 

 

 

임옥상, <보리밭, 1983, 캔버스에 유채, 94×130cm

 

원근법을 무시한 소재의 배치와 형상의 강한 표현은

고된 노동의 삶을 살아가는 농민의 전형을 보여준다.

 

 

 

 

 

김용태, <기자회견>, 1981, 유채

 

김용태는 전형을 풍자와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심정수, <구도자>, 1980, 부론즈, 145×45×35cm,

 

1980년대 신구상조각의 전형을 상기시키는 심정수의 작품은 인체 조각의 형상성을 또 다른 차원으로

올려놓는 조각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의 작품은 실존적 인간의 내면적 외침을 보여주는 한편, 그러한

인간들이 처한 밑바닥 삶의 고단함을 형상화한다.

 

 

 

 

 

박세형, <아파트 풍경>, 1983, 수채

 

 

 

 

 

민정기, <영화를 보고 만족한 K씨>, 1982, 캔버스에 아크릴, 222×145cm

 

현발의 작품들은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실상을 고발하면서 도시의 향락적인 이면을 드러내고 현실에 대한

야유와 풍자를 보여준다. 민정기는 인간을 불구화하는 현실을 드러내고 현실을 어두운 풍자로 표현한다.

 

 

 

 

 

주재환, <몬드리안 호텔>, 1980, 패널에 페인트, 유채, 170×110cm,현발창립출품작

 

주재환은 몬드리안의 추상회화를 패러디하여

현실 비판적인 서사를 구축하면서 도발적으로 현실을 풍자한다.

 

 

 

 

 

박재동, <생활의 전선>(부분), 1983, 수채

 

리얼리즘미술이 보여주는 형상성과 구체적인 공간성은 현발의 작가들도 적극 활용하던 창작 방식이다.

그중에서 전통회화의 유기적 구성형식을 선호하는 작가들은 이미지 자체를 주목하게 하여 반영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이들의 작품 형식은 완결된 구조를 통해서 나타나지만 내용은 은유적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박재동은 리얼지즘미술에서 선호되는 유기적 구성방식을 부각한다. 그의

회화는 재현적 기법을 통해 서민의 일상적 삶의 단편들을 따뜻한 시각으로 포착하면서 전통적

구상미술의 깊은 서정성을 통하여 이를 나타낸다.

 

 

 

 

 

노원희, <거리에서>, 1980, 유채, 60.6×72.7cm

 

노원희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독특한 환기력을 보여준다.

이 경우 작가는 사실적인 묘사방식을 사용하지만 내용은 은유적 · 암시적으로 전달된다.

 

 

 

 

 

민정기, <포옹>, 1981, 유채, 112×145cm

 

민정기는 전통적인 구상회화 형식을 사용하지만 때로는 키치적 형식으로 대중적 정서에 친근하게 다가간다.

그는 상투적인 미적구조를 이용한 이발소 그림을 통해 상업주의적 시각이미지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건강한 민중 정서에 대한 친화감을 이중적으로 표현한다.

 

 

 

 

 

임옥상, <검은 새>, 1983, 종이부조와 아크릴릭, 215×269cm

 

비례와 규모를 왜곡한 대비 효과를 통해 작가가 마주한 모순투성이의 현실을

비판적 시각으로 전달한다. 비평가들은 이러한 대비의 미적 효과를 "일상을 넘어선 충격적인 리얼리즘의

형상화"(임영방), 혹은 "우렁찬 목소리로 잠든 의식을 깨우는 충격요법"(유홍준) 이라고 평했다.

이와 같이 현실의 부조리를 충격적인 대비효과로 표현한 임옥상의 작품은

'비판적 리얼리즘의 전형' 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김정현, <냉장고에 뭐 시원한 것 없나>, 1984,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40×200cm

 

대립되는 이미지의 병치다.

김정현은 무거운 역사적 주제나 사회적 메시지를 가볍고 유희적인 팝아트 경향의 이미지와 대비한다.

이러한 대비효과를 위해서 화면을 단순하게 양분하는 이분법적 양식이 주로 사용된다.

 

 

 

김정현, <풍요로운 생활을 창조하는 럭키 모노륨>, 1981, 캔버스에 유채, 72.5×91cm

 

원근법적인 조망으로 묘사된 중산층의 거실과 논에서 모를 심는 농부의 모습이

양분된 구조로 그려졌는데 이런 표현방식은 현실의 이중적인 갈등 구조를 나타낸다.

이런 표현방식은 현실의 이중적 갈등 구조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질적인 것을 함께 짜 맞추는

형식의 활용은 주제와 형식의 상호연관성을 대중들에게 쉽게 알려줄 수 있는 방식으로 평가된다.

이미지들이 병치되고 대립되는 형상화 방식은 현실의 갈등 구조를 도식화하는 위험이 있지만

이야기를 쉽고 힘 있게 전달하는 효과 때문에 현발의 몇몇 작가들은 이것을 종종 활용했다.

 

 

 

 

 

손장섭, <중앙청>, 1984, 유채

 

손장섭은 여러 이미지를 병치하여 배열하면서 감상자가 그 단편들을 조합하여 이야기를 구성하게 한다.

이와 같은 기법은 어울리지 않는 현실의 단편들이 겹쳐지면서 분열된 현실의 실체를 떠올리게 하는데,

제임스 로젠퀴스트의 팝아트적 양식을 상기시킨다. 손장섭은 때로 영화의 스틸 컷 같은 단편을

공간 속에 병치했는데 이것은 사회의 억압 구조를 내용적으로 암시한 것이다.

 

 

 

 

 

- 극사실회화 -

 

한국 근현대미술의 미의식이 지닌 고유성과 정체성의 문제는 1970년대의 추상미술이나

1980년대 민중미술에서 종종 논의된 바 있다. 이에 반해 1970년대 말 이후

새로운 형상미술의 흐름으로 등장한 극사실화는 이와 관련해서 언급된 것이 별로 없다.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미술의 주된 흐름이었던 추상미술과 비교할 때,

극사실회화는 명료한 시각성과 이미지의 환영적인 매력에 의해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미술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예술기호는 기호의 의미를 다의적으로 개방하며 미적 가치를 생성한다.

극사실 작가들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의 환경을 소재로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시각기호는

오늘날으 삶과 문화에 대한 비판의식과 가치관 등을 심층적으로 담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추구한 미적 가치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이석주, <벽>, 1980, 캔버스에 유채, 80×100cm

 

"이석주의 <벽>은 뭔가 끌어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이 작가는 처음에는 벽돌을 직접 캔버스에 붙이는 작업을 하다가 정밀하게 재현하는 방식으로 변했죠.

같은 벽돌이면서 광선과 그늘의 콘트라스트가 정확한 관찰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일의 평가다.

 

 

 

 

이석주, <일상>, 1981, 캔버스에 아크릴릭, 60.6×72.7cm

 

이석주는 초기에 일상의 구속과 단절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극사실적으로 모사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러나 그는 후기 일상 연작에서 열차, 시계, 말, 천으로 덮인 의자, 낙엽, 들판, 산, 나무와 숲,

우산 등을 데페이즈망 기법으로 묘사한다.

 

 

 

 

 

 

조상현, <복제된 Ready-made 시정공보판>, 1978-81, 패널에 아크릴과 유채, 123×243cm

 

조상현은 현대인의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상투적인 것을 시각기호로 표현한다.

그가 다루는 주된 소재는 '광고 포스터', '교통 표지판', '도로 공사장의 푯말', '뜯겨진 문짝', 등

도시 환경 속에 편재하는 평범한 소재들이다.

 

 

 

 

 

 

고영훈, <돌입니다 7593>, 1975, 캔버스에 유채, 122×244cm

 

고영훈은 돌을 주로 다루는데, 재현한 돌이 실제 돌처럼 보이도록 사실적인 기법을 사용한다.

"돌은 가능한  중력을 느낄 수 있도록 무겹게 그리려고 한다" 고 밝힌 것처럼 그의 작품 속에서 돌은

단순한 환영적 이미지를 넘어 실재하는 물리적 힘마저 느끼도록 묘사되어 있다.

 

 

 

 

 

 

김창영, <무한>, 1979, 나무판에 모래, 유채, 120×180cm

 

김창영은 인간 삶의 흔적이 남겨진 자연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남긴 발자국으로 가득 찬 모래밭을 그린다. 모래는 자연을 대표하는데,

모래 위에 남겨진 발자국은 인간의 흔적이다. 화면 속에 인간은 부재하지만 그려진 것은 인간의 자취다.

김창영의 작품은 "자연과 인간의 우연한 만남" 을 형상화하여 시간을 초월한 인간의 소리를 표현한다.

 

 

 

 

 

서정찬, <풍경 84-5>, 1984, 캔버스에 유채, 193.9×130.3cm

 

서정찬은 인간이 변형시킨 자연을 주된 모티프로 삼아 삶의 체험을 표현한다.

그는 주로 흙을 묘사하는데, 갈아 엎은 밭의 흙, 경운기 자국이 선명한 흙,

가뭄으로 갈라진 흙 등을

확대하여 형상화 한다.

 

 

 

 

 

 

김창열, <물방울>, 1977, 리넨에 유화, 149.5×40cm

 

김창열은 자연을 모티프로 매우 환영적인 기법을 선보인다.

1980년대 초반의 극사실 작가들보다 선배 세대이지만 <물방울> 연작으로 자연과 연관된

시각적 상징을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 이와 함께 논의될 수 있다. 물방울은 김창열에게 인간의 삶을

상징하는 은유다. 이것은 작가 자신의 생활 체험에서 나온 산물로 힘든 삶의 흔적을 형상화한 것이다.

김창열의 회고에 의하면 물방울은 전쟁을 겪은 세대로서 고통스러운 삶의 체험의 상징이다.

"인간의 아픔, 슬픔 · · · 끈적거리며 마치 짓이겨진 살점들로서 하얀 결정체 · · · 백색 점액질" 같은 것이

강박관념처럼 다가와서 이를 형상화하는 소재로 물을 선택하였다는 것이다.

물은 생명을 암시하는 동시에 살고자 하는 끈기를 대변하기도 한다.

 

 

 

 

 

 

左) 김창열, <Memory>, 1976     

右) 고영훈, <돌 책>, 1985, 종이에 아크릴릭, 142×98cm

 

극사실 작가들의 작품에는 자연과 인간을 통합하는 모티프로서 문화적 상징물들이 종종 화면에 등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인간의 지성을 상징하는 문자 또는 글로 쓰인 서지書誌인데, 때론 역사를 이루고 문화를

발전시켜 왔던 오랜 도구(펜, 칼, 시계, 증기기관차)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들 가운데 특히 많은 작가들은

자연물을 문자와 조합하는 모티프를 선호한다. 김창열은 물방울만을 묘사한 연작 이외에도, 인쇄 서지 위에

물방울을 그려 인간의 지성과 자연을 조합하여 표현한다. 김창열이 소재로 택한 잡지나 신문지, 천자문은

인쇄 매체로서 일종의 기호다. 인쇄 매체 표면에 묘사된 물방울은 근대 문명의 광학적이고

미시적인 시각의 대변이자 조합이다.

 

고영훈은 古書와 돌을 조합하여 작품을 구성하는데, 돌은 자연적 존재인 인간을 대변하고

문자, 책은 지적 존재인 인간을 대변한다. 책과 돌의 조합은 이와 같이

자연과 문명의 조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문화에 긍정적 가치를 부여하는 작가들을 분석하면, 그들의 관점이 현실의 문화적 상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이중적 가치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작가들이 지향하는 지적문명의 세계이며 다른 하나는

산업사회를 지배하는 물질문명이다. 지적문명의 세계는 글로 된 문화로, 자연 속에서만

살기 어려운 인간이 현실에서 향유할 수 있는 정신적 가치를 상징한다.

 

 

 

인용 : 이주영 저 <한국 근현대미술의 미의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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