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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키키 스미스



떠나기 위해 머물다





여전히 해방운동 중인 페미니스트 예술가


키키 스미스Kiki Smith, b, 1954











1954년 독일 뉴렘베르크에서 태어난 키키 스미스는 20세기 대표 조각가인 토니 스미스의 딸이지만,

엘리트 미술교육과는 거리가 먼 성장기를 보냈다. 뉴욕 식당의 주방에서 요리 보조로, 웨이트리스트로,

또 전기공에 공장 에어브러시 전담으로도 일했다. 한때는 현대 공연예술의 독보적 아티스트인 메러디스 멍크의

무용단 단원으로 각지를 떠돌기도 했다. 뒤늦게 진학한 미술대학에서 보낸 시간도 고작 18개월뿐이다.

그녀는 작품을 생산하며 스스로 배워 작가가 됐다. 관객과 처음 만난 것도 소품을 만들어 상점에 진열하기

시작하면서다. 관객이 구입하고, 평단이 주목하며 등장한 작가다. 그렇게 만들어진 키키의 작품들은

뉴욕 MoMa, 구겐하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LA 현대미술관 등지에 가 있다.







「순례자」철제 프레임에 끼운 스테인드글라스,

2007~10, <로드스타>전 설치 장면(2010년 4월 30일~6월 19일, 뉴욕 페이스갤러리)

Photogaphy by G. R. Christmas. ⓒKiki Smith / Courtmas the Pace Gallery



세계 미술계에서 30여 년이 넘도록 밀려나지 않고 중심에서 활동하는 작가는 매우 소수다.

그 가운데 여성으로서 여성을 중심에 놓고 관객에게 다가오는 작가로는 키키스미스가 단연 돋보인다.

키키는 조각 · 드로잉 · 회화 · 사진 · 판화 · 비디오 등 장르를 넘나들며 그녀만의 길을 만들어왔다. 키키에는 유행을 좇는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상징적이며 미니멀한 작업이 주를 이루던 1970~80년대, 젊은 키키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구체적인 이미지들을

앞세워 등장했다. 현실세계의 모순을 담은 긴간의 몸을 조형물로 제작해 포스트모더니즘을 열어젖힌 것이다. 이후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굽이굽이 새로운 길로 현대미술을 끌고 갔다. 때로는 인간의 고통과 고독을 다 끌어다 뭉쳐놓은 듯한 무쇠 조형물들로,

때로는 마녀의 나들이 같은 신화적 설치와 사진으로, 그리고 빅토리아식 옛 주택의 늙은 여주인 무릎에나 덮여 있을 듯한

 구식 뜨개 레이스까지 끌어들여 현대미술을 확장시켜 놓았다.


키키가 내게 말해준 그녀의 예술이 되어가는 과정은 이랬다.



살아오면서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열정이 솟구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그 상태 그대로의 나 자신을 믿고 따릅니다. 내 안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작업을 시작하죠.

진행하다 보면 차츰 자연스레 삶을 관통하는 느슨한 이야기 구조를 지닌 작품이되어 갑니다.

내게 있어 예술은 이런 길을 통해 태어납니다.









2010년 5월 키키 스미스에게 인터뷰 요청 편지를 보냈다.

거기에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몇몇 도상도 곁들였다. 기원전 4세기 중국에서 쓰인 『산해경』. 그 속에 있는 그림과

20세기 말 서구 미술을 격렬한게 흔들었던 키키의 조형물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하나의 연작처럼 내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산해경』속, 새에 갇혀 있는 인간과 외지느러미를 달고 버둥거리는 늙은 인간이 세기말 키키 스미스의 검은색 조형물에도

갇혀 있었다. 열흘 뒤 키키 스미스에게서 답장을 받았다. 며칠 후 아침 10시에 뉴욕 맨해튼 이스트빌리지에서 만나자는.



2010년 봄 뉴욕에선 키키 스미스의 대규모 전시가 두 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소전 Sojoun>이 2월부터 9월까지 부루클린

미술관에서, <로드스타Lodestar>가 4월부터 6월까지 페이스 갤러리에서 진행되었다. (·····)



뉴욕 맨해턴, 예술가 타운의 한 공원 벤치에서 우리는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나눴다. 꼬마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왁자했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풀며 서로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소전'은 여인의 이름입니다. 소저너 트루스Sojourn Truh라는, 미국 역사에서 매우 대단한 여성이죠.

노예제 폐지론자였고 여성운동가였습니다. 그녀 자신도 노예였고요. 훗날 뛰어난 대중 선동가로 활동했습니다.

자기 이름도 직접 지었죠. 나는 스스로 이름을 지었다는 그 부분이 참 좋았어요. 소저너는 머무름sojourn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어떤 공간에 잠시 머무르겠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우리네 삶도 이처럼 잠시 머무는 것으로 받아들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작품을 진행했고, 그 다음에 '로드스타Lodestar'가 나온 거죠. 북극성과 같은 의미입니다. 길을 안내하는 별, 안내하는

빛이죠. 그렇게 내 작업은 스스로 순례의 여정이 되어갔어요. '머무른다'라는 뜻의 '소전' 역시 한 공간에서

다른 곳으로의 이동을 염두에 둔 의미이니 이 또한 순례와 맞닿습니다.









'이동'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머무름······ 그것이 키키가 정한 인생의 의미로서 다가왔다.

떠나야 하는 길이기에 쥐고 있는 무언가는 내려놓아야 한다. 짐이 많으면 그 짐을 지키느라 몸과 마음이 고단해진다.

시간과 함께 상황은 변화하는데, 비우지 못한다면, 인생은 화물칸이 되고 가슴은 딱딱한 고철이 된다.

영원할 것 같던 관계로 변할 수 밖에 없다. 그 변화를 거부하면 애인은 스토커로, 상처는 트라우마로 추락하고 만다.

지금의 고통 또한 끝이 있다는 것, 곧 끝날까 봐 조바심 나는 지금의 행복 역시 다시 올 기회가 있다는 것을,

키커가 펼쳐 놓은 순례길에서 보게 됐다. 여유를 얻었다.





두 가지 전시에 걸린 드로잉에는 의자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소전>에는 앉으면 속절없이 주저앉을 것 같은 연약해 보이는

종이 의자도 설치되어 있다. 빈 의자를 옆에 둔 여인들, 혹은 의자에 앉은 여인들······

 키키에게 그 '의자'에 대해 물었다.




의자는 역사적으로 권력의 자리입니다. 서구 문화에서도 아시아 문화에서도 그랬어요. 바닥이나 맨땅에 앉는 것은 문화적으로

의미가 다르죠. 의자에 앉거나 의자를 만지고 있다는 것은 권력에 닿아 있다는 것이고요. 누군가 권력이 있고, 시민권을 얻었다면

그들은 의자에 앉을 자격을 갖춘 겁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공공 조형물이 온통 남성상이었어요. 의자에 앉거나 의자를 잡고 있는

남자들······ 참 고까웠죠. 이 작업 속에서 저는 의자에 더 많은 의미를 첨가했고 변화를 주었습니다. 부서뜨리고,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키고, 기울이고······ 네, 변형시킴으로써 의미를 가지고 놀이를 했어요.




민주주의가 꽃피었던 고대 아테네에서도 노예와 여성은 시민이 될 수 없었다.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미국의 경우도 남성이 투표권을

얻고 100년이 지난 1920년에야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됐다. 20세기 이전에 시민의 권리란 오직 재산을 가진 남자의 것이었다. 의자는

권력에서 소외된 여성의 기본적 시민권을 보장하려는 키키의 의지를 반영한다. (·····)










수천 명이 죽어나갔지요. 대부분 물건을 훔쳤다는 이유, 아니면 이웃의 원한 때문입니다. 유럽에서는 카돌릭교회가,

미국에서는 청교도들이 종교적 계시라는 미명 아래 아래 사람들을 살해했어요.

그런데도 공식적인 인정도 없었고, 동상을 세워 기억하려는 노력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든 겁니다.

불붙은 화형대 위에 그들을 놓았지요. 이들은 잔 다르크입니다. 순교자들이예요. 그들의 팔은 예수처럼 밖으로 뻗어 있습니다.

예수는 하느님에게 말했습니다. "왜 저를 버리시나이까?" 그 여인들도 "왜 나는 버려졌나? 왜 나는 내쳐져야 하는가?'

라고 질문했죠. 그랬기에 팔은 밖으로 뻗어야 했어요. 가련해 보이면서도 불복하는 모습,

그 두 가지 모습을 함께 담으려고 했습니다.




나는 키키가 여성에게만 이런 애달파하는 마음을 느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신을 페미니스트가 아닌 휴머니스트로 부르고 싶다"라고 하니 그녀가 정색을 했다.

갑자기 100미터는 떨어져 앉은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녀는 내가 자신을 왜 페미니트라고 불러야 하는지 요연하고도 길게 설명했다.



사회 전반이 남성의 입장에서 읽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디에나 남성 조형물이 있고 그것을 인간이라고 읽죠. 페미니즘은 역사 속에서 성 역할이라는 올가미를 쓰고

좌절하고 억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려 있으니까요.  문화적 해석이 그런 상황을 만들어왔습니다.

모든 형식으로 벌어지는 해방운동은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사회적 소통을 이뤄내도록 해줍니다.

페미니즘도 그렇습니다. 이것이 페미니스트가 되려 하는 나를 늘 북돋워주는 확신입니다.

삶을 이해하는 방식도 이와 같고요. 내 세대들은 여자로 사는 것에 좌절감을 맛보았어요. 예술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회에서 인정받는 여성 창작자는 프리다 칼로, 루이즈 부르주아 정도였죠.

창작이라고 알아주는 영역도 매우 제한되어 있었고,

미술관이나 갤러리 또는 사람들이 거래하는예술계의 경제 관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직까지도 그래요. 이는 정상이 아닙니다.


(······)








서구의 신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해낸 대표적 작가이기도 한 키키 스미스. 그런 키키에게서 느기는 신비로움은 동서를 넘어선

원시의 힘, 자연과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그런 힘이 느껴지기에 그녀가 표현한 신화적 도상의 에너지는 강렬하다.

그녀의 작품이 그려진 종이는 가볍고 곧 구겨질 듯 아슬아슬해 보이지만 묘하게 눈길을 끌어당긴다.

(······)



동양과 서양 종이 대부분은 만지거나 두드리면 수명이 아주 짧아져요.

고운 종이는 잡아당기면 그 위에 무엇을 해놓았건 다 망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히말라야 종이는 달라요.

일본의 감피 섬유와 같은 서향나무과인 록타로 만든 건데, 결이 길고 매우 질기죠.

저는 그 주름진 표면이 참 좋습니다. 제게 더 많은 에너지를 줘요.

모든 이미지를 평평한 표면에만 그려 놓았다면 별 재미가 없었을 거예요.

쭈글쭈글하니까 예상 못하는 현상들이 일어나고, 예측 못한 새로운 기회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작품 전체가 그 기회를 입는 것이죠.








지난 100년 동안 동양의 문화에서 영향 받지 않은 서구 작가들이 있을까?

키키 또한 가톨릭 전통과 불교 전통을 함께 담아내는 대표적 작가로 꼽힌다. <소전> 전시장에 있는 「수태고지」라는 제목의

머리가 큰 여인상은 성모마리아를 가리킨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자비의 화현인 관세음보살을 담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내게

우리나라 전통 굿에 등장하는 죽은 이의 영혼을 종이로 오려 보여주는 '넋전'을 연상시켰던 종이꽃 이불이 특별하다. 이 또한 일본

전통 종이 공예를 배우면서 만들었던 것으로, 망자를 위해 저승길에 넣어주는 이불이라고 했다. 희말라야 종이에 그려진 키키의

드로잉들도 소략한 선으로 인물의 정신을 드러냈던 동양의 그림들과 오버랩 되며 시공간의 차이를 지우는 것으로 다가왔다. (·····)








그렇게 다시 새로운 면모로 영향력을 계속 넓히고 있는 키키에게

자신의 위치를 찾고 싶어하는 젊은 작가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자신의 작업을 하라는 겁니다.

세계가 움직이는 방식을 조절할 수밖에 없지요.

그러기에 내면의 요구가 올라오도록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오직 그 소리만을 따라가는 겁니다.

종교의식처럼 경건하게 집중하며 작업해야 해요. 사람들은 종종 원하지 않는 길인데도 우르르 몰려갑니다.

또 예술과 예술가의 생활은 이래야 한다는 '생각'에 묶여 있습니다. 전 거기에 반대합니다.

 덜 얽매여 있을 때 삶과 예술이 더 풍부하게 드러나고, 더 깊게 몰입할 수 있습니다.

 예술 작업을 한다는 것은 경험하는 것이죠. 뭔가를 겪고 난 다음에 느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경험 속으로 들어가 경험의 일부가 되라는 겁니다.

 우리는 시대 속의작은 부분일 뿐이지만,

 예술가이기에 우리가 겪어나가는 경험은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것 바로 제가 걸어온 길입니다.












사진: 안희경



별을 새겨넣은 키키의 손, 그 위에 감긴 염주, 검은색 매니큐어가 남아 있는 엄지손가락이

 염주알 위에서  빠르게 오르 내리고, 인터뷰는 끝났지만 키키의 웃음과 말은 잦아들지 않았다.


정오 무렵, 엄마 손에 이끌려 공원을 떠나는 아이들이 다시 만날 것을 확인 하는 인사를

사방에서 외친다. 달구어진 봄볕에 정情도 달뜬다.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의 저자 안 희 경








When We Sail Away - Tony O'Con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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