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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부재를 통해 존재를 증명하다




시간의 흔적을 기록하는 작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b, 1944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는 1970년대 초 아르비방(Art Vivant, 살아 있는 미술) 그룹과 함께 색다른 방식으로 정치적 화법을

구사하는 작업을 했다. 구조주의 등 사회과학에 깊은 관심을 가진 그는 미술관보다 대중의 생활 공간에서 미술의 경계를 넓혀갔다.

수집가에게 팔려가는 그림보다는 대중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인 미술관으로 가는 작업들을 해왔으며,

기차역이나 버려진 공간에서 전시를 열어 무작위 대중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볼탕스키의 작업은 파리 현대미술관, 쿤스트할레 빈, 시카고 현대미술관, LA 현대미술관, 오슬로 국립현대미술관 등 세계 각지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는 또한 1972년, 77년, 87년 카셀도쿠멘타,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 대표 작가였다.



「기념비(부림절)」, 흑백사진 · 조명 · 전선 · 금속 상자, 각각 235×50×23cm, 1988

Courtersy Christian Boltansky and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Paris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작품은 관객을 생각에 빠지게 한다. 1930년대에 찍힌 스위스 어린이들의 흑백사진과

이를 비추는 알전구를 마주하면, 관객은 어쩔 수 없이 죽음이 일상이던 전쟁터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 사진 속 아이는 살아서 어른이될 수 있었을까 묻게 된다.







「페르손(Personnes)」, 파리 그랑 팔레<모뉘망타>를 위한 설치, 2010

Courtesy Christian Boltansky and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k/Pares


그는 '헌옷'이라는, 적어도 한 순간은 누군가의 이미지를 가둬놓았던 껍데기들을 늘어놓기도 한다.


(···)

유대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벌어진 지옥 같은 인종 청소를 버티고 살아남은

유대인 생존자들에 둘러싸여 자란 볼탕스키가 61세에 한 말이다.


'유대인은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한다' 는 고약한 법이 있을 때였다. 하루는 우리 집 고양이가 이웃집에 오줌을 쌌는데,

정말 완벽하게 좋은 이웃이었던 그 집 주인이 우릴 찾아오더라. 그는 '오늘 밤에 당신네 고양이를 죽이지 않으며 경찰에

고발하겠소' 라고 경고했다. 그날 부모님은 고양이를 죽였다. 이 이야기는 항상 뇌리에 남아 있는데, 내 생각에 어떤 권한이

부여된 사람은 기어코 그것을 사용하고야 마는 것 같다.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다. 인간의 본성에 그런 면이 있다. (···)

평범하고 이성적인 사람들, 그러니까 아이를 사랑하고 착하다는 평판을 듣는 이들도 수백만의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나는 나치도 각각은 매우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아침에 한 아이를 살리고, 오후에 또 다른 아이를 죽일 수 있다.






「코믹 스케치 포스터 ― 조커」, 사진에 구아슈, 104.14×79.38cm, 1974

Courtesy Christian Boltansky and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k/Pares



(·····) 다행히도 그는 블랙코미디에 잘 맞는 여유와 위트까지 충만하다.




(·····) 볼탕스키는 언론의 취재에 늘 패쇄적이었다. 자신의 작업실을 공개하기 싫어해 카페에서 인터뷰를 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나를 자신의 스튜디오로 불렀다. 드믄 일이다. 스튜디오에는 오로지 자신만 머문다는 원칙 비슷한 것도 갖고 있는 그다.

그에게는 일을 돕는 직원도 없고 비서도 없다. 사진 현상이나 기물 제작 등 전문 작업이 필요할 때는 그가 밖으로 나간다.

그의 공간은 오로지 아이디어 생산소이기 때문이다.



스튜디오 문을 열자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에 들어갈 사진들이 백일 된 아기 귀저귀 빨래처럼 널려 있었다.




말라코프에 위치한 볼탕스키의 스튜디오

사진: 안희경



녹화해도 괜찮아요. 이미 당신이 내 스튜디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녹화되고 있답니다.

다섯대의 카메라가 스튜디오에 설치되어 있어요. 나의 새 프로젝트예요. 바로 일주일 전에 시작되었죠.

티즈메이니아 사람과 내기를 하며 진행하는 내 마지막 작업입니다.



그가 자신의 생을 팔았다고 한다. 그의 죽음을 녹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단 5년간 진행될 새 프로젝트다.

한 번도 내기에 져본 일이 없는, 신의 권능에 도전하는 사내가 그의 나머지 생을 샀다. 그 남자는 5년 안에 볼탕스키가

반드시 죽을 거라고 장담하며 내기를 건 것이다. 볼탕스키는 카메라가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알려줬다.

그의 스튜디오에는 다섯 대의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볼탕스키 생의 마지막 작품이 녹화되고 있는 그곳에

편린으로 내가 출연할지도 모를 상황이 된 것이다. 볼탕스키 말년의 작품 제작 과정에 알지 못한 채 끼어들고 말았다.


(·····)

용감한 볼탕스키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연상시키는 음악조차 듣고 싶지 않아 달아나는데 그는 자신의 죽음을 전제로

작업을 한다. 그리고 죽음은 그 어떤 주제보다 그와 잘 어울리는 화두이기도 하다. 그가 40여 년간 매달려온

작품 활동 속에 거의 늘 등장시킨 주제이기 때문이다.



나도 한 30년 더 살고 싶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4년 뒤에 죽을 가능성이 그보다 높죠. 그리고 언제 죽더라도 죽음이란

지극히 보편적인 일입니다. 우리시대는 죽음에 대한 발상을 거부합니다. '노화'에도 저항하죠.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받아들이는 것이 한결 낫습니다. 과거에는 죽음이 삶의 일부였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아이들은 노인이 떠나는 것을

보았고 그에 맞는 제의 속에서 죽음을 받아들이고 치유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짝 짓고 사는 것을 보며

마음속에 그런 공간을 열어 놓고 있었고요. 그렇게 인생의 부분 부분을 자연스레 둘러보며 자라왔습니다······

네, 저 또한 살아 남고 싶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죽음이 진행되고 있다는 겁니다.








흔적은 존재의 부재를 더 크게 인식하게 한다.


(····)

나는 사람들의 생을 보존하려고 했어요. 그 삶에 대한 기억을 보호하려고요. 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낮과 밤을 영화로 만들 수는 있지만 그 사람 자체를 보존할 수는 없으니까요. 기억마저도 그대로일 수 없습니다.

누군가에 대해 백만 개의 드로잉을 그릴 수는 있죠. 자코메티가 동생의 모습을 이천 개나 그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 그림들이 살아 있음을 재신 할 수는 없었어요. 내 말은 죽음에 대항하여 싸울 수 없다는 겁니다.


그때 그는 보존을 시도하는 또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5년째 사람들의 심장소리를 수집해 온 것이다. 볼탕스키는 그 심장소리가 일본 남쪽에 있는 데시마 섬에 보관되어 있다는

말을 하면서 의 핸드폰을 내밀어 보였다.심장소리가 저장되는 섬의 사진이었다. 섬은 마치 심장을 감싸는 왼쪽 젖가슴처럼

바다 위로 부풀어올라 있었다. 푸른 바다 위, 주발처럼 봉긋한 초록 섬에서 생동감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볼탕스키는 이는 부재를 기억하게 하는 흔적일 뿐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

우리가 젊었을 때, 죽음은 남의 일이었습니다. 부모나 나이 많은 친척들 이야기였죠. 그렇지만 일단 60세가 넘으면

내 일이라는 감이 옵니다. 죽음을 향한 길 위에 내가 있다는 깨달음이죠. 당신도 그 허망함을 알게 될 겁니다.

많은 이들이 그리 특별한 이유 없이 가벼렸다는 것을 말입니다. 당신의 죽음도 그저 심심한 사실일 뿐입니다.






「페르손(Personnes)」, 파리 그랑 팔레<모뉘망타>를 위한 설치, 2010

Courtesy Christian Boltansky and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k/Pares


(·····)

이 작품의 제목인 「페르손(Personnes)」은 영어로 Persons, 즉 '어떤 사람들'을 의미하지만,

프랑스어로는 '아무도 없다(영어로는 nobody)는 뜻까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이 제목에서 우리는 옷더미와 기중기가

우리 사는 세상을 들여ㅓ다보게 한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며 불안과 기대로

순간순간 선택에 의해 나아가는 인간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






그는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에서 전시될 작업을 그 자리에서 공개했다.

비엔날레 개막 이전에 잡지를 통해 공개될 인터뷰였지만, 거장은 거리낌이 없었다.

그는 종이로 만든 모형까지 들고 돌려가며 설명했다.



우연chance에 대한 약간의 장치입니다. 여기 매 초마다 태어나는 사람들의 숫자를 알리는 판이 세워질 겁니다.

여기에는 매 초마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나옵니다. (····)


운명과 싸우고, 우연에 맞선다는 것은 매 순간마다 우리의 의지로 결정해 나가려는 생의 자제를 뜻할 것이다.

그의 대답은 '밝음도 빛이고 어둠도 빛'이라는 말처럼 듣는 이가 그의 언어에 걸려 삶을 성찰하도록 자극한다.

철학자 같다는 내 평가에 볼랑스키는 머쓱해했다. 자신의 삶은 유머로 가득하다며 웃을 뿐이었다.






「기회(Chance)」, 2011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 Photo : Didier Plowy Coproduction Institut Francais / Centre national des arts Plastiques






「기회(Chance)」, 2011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 Photo : Didier Plowy Coproduction Institut Francais / Centre national des arts Plastiques



(····)

제 작업의 대부분은 이렇듯 전시회가 끝나면 해체됩니다. 그리고 다시 만들어 보일 수 있고요.

작품이 재료에 의존하는 형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 작업실은 '앎(인식)'의 문제입니다.

서양적인 방식은 우리를 좀 더 대상에 얽매이게 합니다. 하지만 동양적인 사유 속에서 대상은 인신에 좀 더 가깝지요.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사찰이 국가적인 보물로 여겨지는데, 이는 그 대상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사고가 더욱 귀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제게 있어 인식은 실제 대상(오브제)보다 더 중요 합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언제라도 또 어떤 이에 의해서든 다시 선보일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작품이란 발레나 오페라 같은 속성이 있다고 했다. 베토벤의 <템페스트>처럼 볼탕스키의 「페르손」역시

그 없이도 50년 뒤에 다시 선보일 수 있다. 그는 알고 있다. 곧 스스로 자신의 음악을 연주할 수 없게 된다는 것과

그래도 그의 작업은 음악처럼 남으리라는 것을.






(····)

그가 미래에 바라는 것은 미스터 엑스Nr. X에 의해 연주되는 볼탕스키의 작품이다.

20세기 말을 이끌어온 아티스트들, 그러니까 브루스 나우먼, 칼 안드레, 이처드 세라 등 많은 아티스트들은 '대상에 닿기to

touch' 위한 아이디어를 다뤘다. 베니스 비엔날레를 위한 볼탕스키의 작업도 이와 같다고 했다.


(····)

볼탕스키가 내미는 과거의 사신, 옷 등에서 자극을 받아 우리 안에 있는 과거의 그 존재를 잠시나마 붙들고 토닥여준 후 떠나보낸다면·····

앙금이 조금은 녹지 않을까 싶다. 그가 말한, 부재를 통해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과거에 휘둘이지 않고 현재를 살게 하는 치유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세상 어느 예술작품 가운데 치유 아닌 것이 있을까만은, 그 표현의 심도는 작가가 닿은 영혼의 깊이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볼탕스키의 작업에는 차가운 빙하를 뚫고 심해라는 본래 흐르던 그 성품에 다다르게 하는 통찰이 있다.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의 저자 안 희 경









내용은 결코 '독후감'이 아닌 필사筆寫 차원의 포스팅이라고 해야겠다.


저자가 세계적인 8인의 '현대미술가' 거장들을 만나 인터뷰를 나눈 내용인데

그 중에서 작가 볼탕스키와의 대담 부분 내용 일부를 발췌 필사해 본 것이다


 현대미술은 물론 평론가의 해설 조차도 이해하기 버거운 판에

이내 염량으로 감히 독후감을 끄적인다는 것은 본질을 벗어난 사안이라는 생각에서다.


볼탕스키에 앞서 세계적인 거장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부분을 위와 똑 같은 형식으로 먼저 포스팅 했던 바,

daum 측의 삭제 요청이 있었다. 그의 작품을 예술이 아닌 '외설'로 분류한 모양.


 나원 참! 이거라구야 어디 원~~~ !!!






서래의(西來意) - 왕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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