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호랑이가 나타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면적의 육십 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드넓은 자연지세를 그대로 살려,
구릉과 산자락 곳곳에 적절한 건물과 연못등을 배치한 환상의 공간 창덕궁 후원.
여러 왕에 의해 많은 누정이 지어져서 한때 100여 개 이상의 누각과 정자가 들어서기도 했으나
지금은 누각 18채와 정자 22채만 남아 있을 뿐이다.
기억도 까마득할 만큼의 세월을 건너 뛰어 오늘 다시 발걸음을 해본다.
후원으로 가는 길
부용지
‘상림십경’(上林十景), 즉 ‘후원의 열 가지 아름다운 경치’가 전해오는데 그 가운데 두 가지가 부용정의 모습이다.
하나는 희우상련(喜雨賞蓮: 희우정에서 부용지에 핀 연꽃 감상)이고, 다른 하나는 어수범주(魚水泛舟: 어수문 앞
부용정에서의 뱃놀이)이다. 부용정 평면은 ‘十’자형을 기본으로 하면서 뒷면은 십자의 꺾인 부분을 다시 직각으로
돌출시켰다. 북쪽으로 내민 부분은 못 속에 발을 담근 팔각 돌기둥을 주춧돌로 삼고 그 위에 얹힌 나무기둥에 받혀져
수면 위에 떠 있게끔 만들어졌다. 마루 주위에는 난간을 곱게 둘렀으며, 그 안쪽으로는 세살문과 아자살문의 들어
열개 분합문을 달고, 다시 그 안쪽에 불발기창을 달아 복도와 방을 구별하였다.
규장각(奎章閣)
사각형 연못인 부용지를 중심으로 여러 건물이 들어 서 있다.
주합루 일원의 규장각(奎章閣)과 서향각(書香閣) 등은 왕실 도서관 용도로 쓰였고, 영화당(暎花堂)에서는 왕이 입회하는 특별한
과거를 치르기도 했다. 영화당은 동쪽으로 춘당대 마당을, 서쪽으로 부용지를 마주하며 앞뒤에 툇마루를 둔 특이한 건물이다.
영화당은 연못에 면해 있으며, 학문을 연마하던 주합루는 높은 곳에서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나하나의 건물도 각각 특색 있고 아름답지만, 서로 어우러지면서 풍경이 되는 절묘한 경관이다.
현재는 어수문을 중심으로 생울타리인 취병을 재현하여 지역을 구분하고 있다.
부용정의 평면은 ‘十’자형을 기본으로 하면서 뒷면은 십자의 꺾인 부분을 다시 직각으로 돌출시켜 변화 있게 구성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북쪽으로 내민 부분은 못 속에 발을 담근 팔각 돌기둥을 주춧돌로 삼고 그 위에 얹힌 나무기둥에 받혀져 수면 위에 떠 있게끔 만들어졌다. 마루 주위에는 난간을 곱게 둘렀으며, 그 안쪽으로는 세살문과 아자살문의 들어열개 분합문을 달고, 다시 그 안쪽에 불발기창을 달아 복도와 방을 구별하였다.
어수문과 주합루
언제 창건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선조가 재위 5년(1572)에 춘당대(春塘臺)에서 선비들을 대상으로 시험을 볼 때
여기에 임어했으며 광해군도 이곳에서 꽃구경을 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임진왜란 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건물은 숙종 18년(1692)에 개건한 것. 그후 이용이 활발했던 듯 숙종은 왕자와 왕손을 모아 꽃구경을 하고
시를 쓰기도 했으며, 영조는 공신들을 접견하고 시를 하사하기도 했고, 순조 때에는 문무신하들이 이곳에 모여
시예(試藝)를 겨루기도 했다고.
애련지
1692년(숙종 18)에 연못 가운데 섬을 쌓고 정자를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 그 섬은 없고 정자는 연못 북쪽 끝에 걸쳐 있다.
연꽃을 특히 좋아했던 숙종이 이 정자에 ‘애련(愛蓮)’이라는 이름을 붙여, 연못은 애련지가 되었다.
1827년(순조 27) 효명세자는 애련지 남쪽에 의두합을 비롯한 몇 개의 건물을 짓고 담장을 쌓았다.
현재‘기오헌(奇傲軒)’이라는 현판이 붙은 의두합은 8칸 의 단출한 서재로, 단청도 없는 매우 소박한 건물이다.
바로 옆의 운경거(韻磬居)로 추정되는 건물은 궐 안에서 가장 작은 한 칸 반짜리 건물이다
연경당 일원
존덕정 일원
옥류천 일원
창덕궁 일원 나무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수령의 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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