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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행·여행·풍경

장안(長安)마을 산책

 

 

 

장안마을(전남 장성군 장성읍) 어귀 밭자락 곁의 노송 들

 

 

 

 

 

 

 

맨 오른쪽 소나무는 고사해버린 상태.

마을 노송 아래엔 어김없이 뭔가가 한무더기를 이루는 모습이던데 이래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저 멀리 보이는 산아래 쪽에서 산책 차 강을 건너 이곳으로.

 

 

 

 

 

 

 

이른바 비봉포란형국(飛鳳抱卵形局)에서 알에 해당하는 마을 입구의 난산(卵山).

 

 

 

 

 

 

 

'충혼비'와 '황주변씨(黃州邊氏)세천비'가 세워져 있다.

충혼비는 한국전쟁 시 전사한 변진우 외 37인의 넋을 위로하는 것일진데,

비 상단의 모습에서 어쩐지 왜색풍이 떠올려지는 건 나만의 괜스런 오해일런지...

 

 

 

 

 

 

 

바로 앞 작은 건물은 변취강(邊就康)의 처 '영천이씨' 정려각

 

 

 

 

 

 

고선무량변공취강처열녀영천이씨지문(故宣務郞邊公就康烈女永川李氏之門)

 

 

정유재란 때 일가족이 마을 뒤편 봉암산으로 피난하였으나 왜인들에 의해 남편인 변취강이 죽자

 몸을 더럽히지 않겠노라 칼로 자신의 팔을 절단하고 죽은 인물.

 

 

 

 

 

 

 

수문장 역할의 노송이 듬직한 모습이다.

 

 

 

 

 

 

황주변씨 입향조인 변정이 지은 정산정(본래의 이름)에서 비롯되어 그 후손들이 강학당으로 이용하였다고 하는데,

현재의 건물은 1930년경에 중건하면서 선현을 사모한다는 의미를 담아 영사정(永思亭)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오른쪽 멀리는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선생의 묘소가 자리한 장성(長城)의 진산 제봉산.

 

 

 

 

 

 

 

 

 

 

 

 

 

 

 

봉암서원(鳳巖書院)에 이르기 전 매향을 따라 왼쪽 언덕을 오른다.

 

 

 

 

 

 

 

조선 후기 향리 유학자 였던  기옹(碁翁) 변종락(邊宗洛)이 조부 돈암공에게 글을 배우고 과거에 실패한 후 평생 시와 문장, 바둑 등 풍류를 즐기며 살았던 모년별업지정(暮年別業也亭) 육각정(六角亭) 형태의 기옹정(碁翁亭)이다.
원래는 1850년(철종 1)에 인공 연못 가운데(蓮池中)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정자을 세운 것인데 

그가 죽고나서 후손들이 지금의 위치인 장안마을로 이건하였다고 한다.

 

 

 선생은 백거이와 향산스님의  "향산구로회(香山九老會)" 고사를 본떠

 부근의 당세 명류로 꼽히던 구로(九老)들과 날마다 기옹정에서 바둑을 두며 소일하였다고.

 

 

碁翁

自謂居鄕了債翁(자위거향요채옹) 有無要與四隣通(유무요여사린통)

나는야 시골 살며 빚이 없는 늙은이  재물은 이웃과 사이좋게 나눠 쓰네.
靑雲金馬緣何薄(청운금마연하박) 白首林泉興不窮(백수임천흥불궁)

벼슬길 청운에는 인연 없어 못 올라도  전원에서 늙어가며 흥겨운 일 끝이 없네.
多少園田貽後計(다소원전이후계) 若干卷軸付兒(약간권축부아공)

얼마간의 논밭은 후손에게 물려주고  약간의 서책일랑 아이 주어 공부시키네.
老來碁癖還堪笑(노래기벽환감소) 滿目詩月又風(만목시참월우풍)

늙을수록 바둑 병은 우습기도 하거니와  눈에 가득 시를 부르는 달과 바람은 어쩔거나.



 

 

 

 

<기옹 영정> 시도유형문화재67호

 

선생의 회갑 때 어떤 승려가 그린것이라고 전해오는데,

 

조선시대 사대부를 그린 일반적인 초상화 양식과는 거리가 먼 민화 스타일의 초상이다.

사대부의 엄숙함과 유학자의 분위기가 감도는 분위기를 그려내고자 하기보다는

 선생의 일화들을 그림 속에 형상화시켜 놓은 것으로 봐야 할 듯.

 

 바둑판 · 바둑알 · 술병 · 담뱃대 등은 선생이 이곳 장안리에 거주하면서

  바둑과 글을 잘 하는 명인들을 초대하여 함께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고 하는

선생의 일화를 전달하기 위한 요소들이라 할 수 있겠다.

 

 건과 의복, 얼굴 형태, 두 손을 모은 공수자세 등은, 그림 기법 상 부족한 점이 많기에 

선생의 인격과 개성을 전달하는 정통 초상화로는  아쉬운 점이 많다.

허지만, 일반적인 초상화와 기법을 달리한 특이한 형태의 그림이라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있는 모양.

 

 

 

 

 

 

 

 

서까래가 모아지는 정점에 연화(蓮花)가 장식되어 있으며 기옹정 원운(碁翁亭 原韻), 기옹정기(碁翁亭記 1875년 김동수 金東洙),

기옹정 중수기(碁翁亭 重修記 1937 김원필(金原弼), 기옹정기(碁翁亭記 1947, 변만기) 등 5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정자 아래로 '기옹정 중수비'와 기옹의 부인  '상주박씨기적비'가 나란히 서 있다.

 관련 시문집으로는 기옹유고(碁翁遺稿)가 전한다.

 

 

 

 

 

 

봉암서원(鳳巖書院)

 

 

 

 

 

 

 

 

 

 

 

삼강정려(三綱旌閭)

 

황주변씨(黃州邊氏) 문중의 충신 변윤중邊允中 · 열부烈婦 함평이씨(변윤중의 처) · 효부孝婦 장성서씨長城徐氏

(변형윤邊亨胤의 처)의 삼강(三綱)을 기리는 정려이다.

 

 

 

 

 

 

 

 

 

 

 

 

변윤중은 호가 휴암으로 임란 대 화차를 만들어 왜적을 물리친 만암 변이중의 사촌 동생으로,

선조 때 상의원직장을 지내기도 하였고 선조의 의주 피난 길에 종형 변이중과 함께 임금을 모신 인물이다.

 

또한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거느린 종들과 장정 이백명을 모아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장안리에서 왜적들과 십여 일을 싸웠으나, 중과부족으로 패전하고 만다.

 

 결국 마을 뒷산 자락 너머 '부엉바위'에서 황룡강에 몸을 던지게 된것.

그의 부인 성(成)씨도 남편의 뒤를 따라 강물로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부엉바위지금은 벼랑 아래가 논이지만 예전에는 바위 아랫쪽이  내(川)와 소(沼)였던 모양.
정유재란시 이 곳 '부엉바위' 아래에서 왜적을 상대로 의병과 주민들이 힘을 합해 싸웠으나  
 마침내 장렬한 최후를 맞았고, 이때 남편을 잃은 부인들은 위쪽 부엉바위에 올라 벼랑 아래로  투신 을 하고 말았다는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


 

 

 

 

 

열녀증통정대부이조참의변공윤중지처함풍성씨지려

 

 

 

 

 

 

 

 

 

 

 

 

 

 

 시징당 문이 오늘도 굳게 닫혀있다.

 

 

 

 

 

 

 

 

 

 

 

 

 

 

 

 

 

 

 

외삼문의 당호가 두남문(斗南門)으로  청하(淸下) 이병현이 썼다.

 

 

 

 

 

 

 

 

 

봉암서원(鳳巖書院). 강암 송성룡이 썼다.

 

 

 

 

 

 

 

 

 

 

 

 

일중 김충현 書 성경당.

 

 

 

 

 

 

내일 있을 향사례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종앙사(宗仰祠)

 

 

 

 

 

 

 

 

 

 

 

 

 

 

 

 

 

 

 

 

 

 

 

 

 

 

 

 

 

 

 

 

 

 

 

 

마을 정자에서

 

 

 

 

 

 

 

 

 

 

 








장안마을을 빠져나가며 바라본 난산(卵山)



 


여기저기 흩어져 자라는 준수한 소나무 들.



 


가만 보아하니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듯 한데 괜찮아 보이는 노송 아래쪽엔 어김없이뭔가 쌓아놓은 물건들이 수북한 상태로 나무 생육에 지장은 물론 보기에도 영~~~ 주변 노송들에 대해  마을은 물론 군 당국의 적극적인 관리를 당부드리고 싶다.


 


다시 황룡강의 보를 건너며...



 

 

강 안쪽에 자라는 버드나무 군락에 푸르름이 잔뜩 배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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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봉산 자락에서 황룡강을 건너 장안마을을 목표로 삼은 산책길.

아무런 생각없이 오늘도 굳게 문이 닫혀 있으리라 생각하고 당도한 봉암서원.

 

웬일인지 외삼문이 열려 있어 안을 들여다 보니 뭔가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

아는이를 만나 연유를 물으니, 내일의 춘향제(春香祭) 위한 제물 준비 등이 진행되고 있다는 설명.

 

막 부쳐낸 고소한 지짐이를 안주삼아 쐬주 한 사발을 들이키노라니 훈훈해져 오는 뱃속.

월봉서원 유림(儒林)들이 지켜가는 내일의 향사례(享祀禮)를 한 번 지켜 보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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