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영혼을 추구한 두 거장
<2편>
미켈란젤로, <모세>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 작업을 끝낸 미켈란젤로는 율리우스 2세의 무덤을 시작으로
정신에 내재한 형상을 물질로 구현하는 작품 세계를 구축한다.
다양한 기법을 사용했던 그는 시간의 형상이나 노예 이미지에서는 미완성 기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했고,
카피톨리노의 건축물과 파르네세 궁전에서는 고대와 당대의 당대의 건축 방식을 조화시켰다.
미켈란젤로, <율리우스 2세의 무덤>, 1505~4, 빈콜리의 성 베드로 성당
위층 공간은 기존의 벽을 창의적으로 활용했지만 어수선하며 반월창 때문에 높이가 제한되어 있다.
평범한 대좌가 아래층을 필요한 높이까지 들어올려 준다. 아래층에는 포테시에베의 아름다운 부조가
1540년대에 사라진 장식문화를 보여주는 반면, 위층은 매우 차분하다.
벽기둥은 아래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모양이며 이를 떠받치는 코니스는 앞으로 나아가면서
위쪽의 두 단을 분리한다. 상당히 세련되고 지적인 디자인이지만 아래층과의 부조화가 확연히 드러난다.
상단의 세 인물은 라파엘로 다 몬텔루포와 그의 공방, 교황인물상은 토마소 보스콜리가 제작했다.
미켈란젤로, <반항하는 노예>, 1513~6, 215cm, 율리우스 2세 무덤
<라오콘>
그리스의 청동조각을 로마인이 대리석으로 묘사한 것, 기원전 150년경, 높이 242cm
트로이의 왕자이자 제사장으로, 그리스군 목마의 비밀을 트로이인에게 알려준 죄로 신으로부터 벌을 받고
두 아들과 함께 큰 뱀에 감겨 죽었다는 전설의 인물이다. 그리스군의 목마를 라오콘이 제단에 공물로 바치려
하는 순간 아폴로가 보낸 두 마리의 큰 뱀이 라오콘과 두 아이르 습격했다. 아버지와 작은아들은 이미 뱀에 물려
숨이 끊어질 지경이고, 큰 아들은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며 뱀의 공격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큰 덩이 머리 노예>미켈란젤로, 1520~30년경, 대리석, 높이 278cm
미켈란젤로 <부활한 그리스도>
1519~20, 대리석, 높이 208cm, 산타 마리아 스프라 미네르바
거의 400년 동안 묻혀 있다가 1997년 이탈리아의 한 시골 성당에서 발견됐다.
실제 그기의 대담한 누드는 기독교의 조각이라기 보다는 이교도의 것처럼 보인다.
미켈란젤로의 <산 로렌초 성당 파사드를 위한 나무 모델>
미켈란젤로는 1518년 1월 나무 모형을 제작했다. 하지만 이 모형이 실제로 만들어지지는 않았고
다만 그가 남긴 많은 도면과 그것들에 거의 일치하는 이 나무 모형을 통해서 그가 어떻게 설계 했는지 알 수 있다.
줄리아노 다 상갈로, <산 로렌초 성당 정면을 위한 드로잉>
미켈란젤로가 작업한 산 로렌초 외관
교황의 계약 파기로 외관은 장식되지 못하고 벽돌로 남아있다. 뒤로 연결된 메디치 예배다당에는
부루넬레스키가 제작한 커다란 돔과 그 옆 미켈란젤로가 제작한 작은 돔이 보인다.
<산 알젤로 성>의 부분
레오의 이름이 들어 있는 사자라는 뜻을 이용해 글을 새겨넣은
장식판을 물고 있는 사자의 머리를 양쪽 벽감 위에 장식했다.
미켈란젤로, <산 알젤로 성>의 창문, 1513~6년경, 대리석
미켈란젤로, <메디치 궁전 창문>, 1517년경
창문은 벽 위 아치 모양으로 아래로 길게 직사각형으로 늘어진 벽감 속에 있다.
창문은 바닥에서 조금밖에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있어 마치 문처럼 보인다.
미켈란젤로의 <메디치 예배당의 작은 돔 위의 제등>
미켈란젤로의 <메디치 예배당의 작은 돔 위의 제등>
미켈란젤로, <메디치 예배당의 작은 돔>, 1524~5
돔은 로마에 있는 유명한 판테온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것이다.
하지만 육중안 고대의 판테온 지붕과는 달리 메디치 예배당 지붕은 가뿐해 보이도록
가볍게 처리하면서 빛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미켈란젤로의 <메디치 예배당의 작은 돔 천장>
메디치 예배당의 내부, 제단 뒤에서 바라본 모습, 1520~34, 대리석
줄리아노와 로렌초의 얼굴은 각각 예배당 입구쪽을 향하고 있다.
입구쪽 벽에는 성모자상을 중심으로 양 옆에 <코스마스>와 <다미안>상이 놓여 있다.
미켈란젤로의 <메디치 무덤의 구상>
미켈란젤로의 <줄리아노 무덤, 밤과 낮>
미켈란젤로의 <로렌초 무덤, 황혼과 새벽>
미켈란젤로의 <황혼>, 1526-31년경, 대리석, 길이 195cm.
미켈란젤로의 <새벽>, 1524-27년경, 대리석, 길이 206cm.
미켈란젤로의 <밤>, 1526-31년경, 대리석, 길이 194cm.
미켈란젤로의 <밤>의 부분
미켈란젤로의 <줄리아노>, 1525년경, 대리석, 높이 173cm.
줄리아노 데 메디치는 프랑수아 1세로부터 느무르 공작 칭호를 받았으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후원자였다
미켈란젤로의 <로렌초>, 1525년경, 대리석, 높이 178cm.
우르비노 공작인 로렌초는 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종손이다.
미켈란젤로의 <황혼>의 부분
미켈란젤로의 <큰 촛대 주각>, 1531년경, 대리석
미켈란젤로는 1531년경에 두 개의 <큰 촛대 주각>을 제작해 제단을 장식했다.
여기에는 희생을 상징하는 사다새로 장식되었고,
다른 하나에는 부황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불사조가 장식되었다.
미켈란젤로의 <강의 신을 위한 모델>, 1524-27년경, 찰흙, 나무, 양털, 길이 180cm.
미켈란젤로의 <성모와 아기>
1524-34, 대리석, 높이 227cm. 산 로렌초 성당 메디치 예배당
미켈란젤로의 <성모와 아기>의 부분,
조반니 몬토르솔리의 <코스마스>, 1533-34, 대리석, 높이 214.6cm.
라파엘로 다 몬텔루포의 <다미안>
미켈란젤로의 <로렌티안 도서관의 외관>
미켈란젤로의 <로렌티안 도서관 입구 홀>, 1554년에 착공
미켈란젤로의 <로렌티안 도서관의 문>
1524-34년경, 바르톨로메오 암마나티가 1559년에 완성
미켈란젤로의 <로렌티안 도서관의 부분 평면도>
미켈란젤로의 <로렌티안 도서관의 계단을 위한 설계>, 1525, 39-27.9cm.
미켈란젤로의 <로렌티안 도서관 열람실>
미켈란젤로의 <로렌티안 도서관 희귀본 열람실을 위한 평면도>
미켈란젤로의 <로렌티안 도서관 열람실 벤치>
미켈란젤로의 <요새 디자인>, 1528-29년경, 41-57cm.
미켈란젤로의 <요새 디자인>
미켈란젤로의 <카피톨리노 언덕>, 1538년경에 시작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동상>
미켈란젤로의 <카피톨리노 언덕>
미켈란젤로의 <카피톨리노 언덕>
광장의 바닥은 별모양의 열두 개 끝이 뾰족한 곳으로부터 연거푸 원으로 그려져 있어
끊임없이 원형들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마르텐 판 헴스커크의 <카피톨리노 언덕 드로잉>
에티엔 두페라크의 <카피톨리노 전경>, 미켈란젤로의 고안대로 그림, 엔그레이빙
미켈란젤로의 <원로원 건물 외관>
미켈란젤로의 <원로원 건물 앞 계단>
미켈란젤로의 <원로원 건물 앞 계단>
미켈란젤로의 <콘세르바토리 궁전>
미켈란젤로의 <콘세르바토리 궁전>
미켈란젤로의 <콘세르바토리 궁전>, 카피톨리노 언덕
파르네세 궁전의 파사드, 1517~1589
미켈란젤로의 <포르타 피아>, 1561년경.
평편하게 다듬은 아치틀 창문처럼 반원형으로 문 위를 장식하고
돋을 새김으로 아치 이맛돌에 그로데스크한 형상을 장식했다.
미켈란젤로의 <웅크린 소년>, 1530년경, 대리석, 높이 55.9cm. 에르미타주
미켈란젤로의 <승리자>, 1525-30년경, 대리석, 높이 263cm.
미켈란젤로의 <승리자>
미켈란젤로의 <승리자>의 부분
미켈란젤로의 <승리자>의 부분
미켈란젤로의 <아폴로/다윗>, 대리석, 높이 146cm.
미켈란젤로의 <아폴로/다윗>
미켈란젤로의 <아폴로/다윗>
미켈란젤로의 <브루투스 흉상>, 1542년경, 대리석, 높이 75cm
미켈란젤로의 <브루투스 흉상>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1536~41, 프레스코, 시스티나 예배당
시스티나 예배당 제단
미켈란젤로의 <부활을 위한 드로잉>, 1512, 36~22cm
미켈란젤로의 <부활을 위한 드로잉>, 1525/30, 24~34.5cm.
루카 시뇨렐리의 <최후의 심판: 저주받은 자들>, 1500~04, 프레스코, 오르비예토 대성당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위한 첫 번재 드로잉>, 1534년경, 41.8-28.8cm.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의 부분: 바르톨로메오와 미켈란젤로의 자화상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의 부분
당나귀 귀를 한 미노스가 뱜에 의해 고통을 받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의 부분
스틱스 강의 나루지기 카론이 최후의 심판을 받은 자들에게 배에서 내려가라고 노로 위협하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의 부분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의 부분
공포에 휩싸인 사람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의 부분
죽은 자가 부활하고 있다.
<성 캐터린의 신비로운 결혼>
파르미지아니노, 1530년경, 패널에 유채, 74.2-57cm.
<이집트의 요셉>
야코포 다 폰토르모, 1515년경, 패널에 유채, 96,5-109.5cm.
<아드로의 딸을 보호하는 모세>
로소 피오렌티, 1523년경, 패널에 유채, 60-117cm
<라오콘>
엘 그레코, 1610년경, 캔버스에 유채, 137-173cm.
미켈란젤로 <이상적인 얼굴>, 1532/34?, 20.5~16.5cm.
미켈란젤로 <이상적인 얼굴>, 1532/34?, 28.5~23.5cm.
미켈란젤로 <쌍두 사륜마차의 전복>, 1530~40
미켈란젤로 <티티우스의 벌>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미켈란젤로 <아이들의 바카날>
미켈란젤로의 <십자가 처형>
미켈란젤로 <사울의 회심>, 1542~45, 625×660cm.
미켈란젤로 <사울의 회심>의 부분
미켈란젤로 <사울의 회심>의 부분
미켈란젤로 <사울의 회심>의 부분
미켈란젤로 <사울의 회심>의 부분
미켈란젤로 <성 베드로의 십자가 처형>, 1546~50, 625×660cm
미켈란젤로 <성 베드로의 십자가 처형>의 부분
미켈란젤로 <성 베드로의 십자가 처형>의 부분
미켈란젤로 <십자가 처형 드로잉>, 1540~50
미켈란젤로 <돌연한 현현>, 1534~64, 232.7×165.6cm.
미켈란젤로 <부활한 그리스도>, 1530년경, 15.2×17.1cm
미켈란젤로 <피렌체 피에타>, 1547~55년경, 대리석, 높이 234cm
미켈란젤로의 <피렌체 피에타>의 부분
미켈란젤로 <피렌체 피에타>의 부분
미켈란젤로 <피렌체 피에타>의 측면
미켈란젤로 <론다니니 피에타>, 1556~64년경, 대리석, 높이 191cm
미켈란젤로 <론다니니 피에타>
미켈란젤로 <론다니니 피에타>의 부분
미켈란젤로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
<성 베드로 대성당 설계도>의 변화
A는 브라만테의 그리스 십자평형이고, B는 상갈로, C는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의 <성 베드로 대성당 돔을 위한 나무 모델>
1561년경, 라임나무, 템페라, 500×400×200cm
안토니오 다 상갈로 일 조바네의 <새로운 성 배드로 대성당을 위한 나무 모델>
미켈란젤로 <성 베드로 대성당 내부>
미켈란젤로 <성 베드로 대성당 돔>
미켈란젤로 <산 조반니 성당 디자인 124A>, 1559~60
미켈란젤로 <산 조반니 성당 디자인 104A>, 1559~60
미켈란젤로 <산 조반니 성당 디자인 121A>, 1559~60
미켈란젤로 <스포르차 예배당>, 1560년경
미켈란젤로 <스포르차 예배당>의 돔
미켈란젤로 <스포르차 예배당>의 기둥
<산 로렌초 성당에서 거행된 미켈란젤로 장례식에서 바르치의 추도사>
아고스티노 치암펠레, 1617, 캔버스에 유채, 152×138cm.
<미켈란젤로의 무덤>
조르조 바사리 외 그의 그룹, 1564~75, 대리석, 산타 크로체
1564년 2월 14일 미켈란젤로는 뇌졸증을 일으켰다. 18일 늦은 오후, 그는 생일을 보름 남짓 남겨놓고
거의 89해의 생을 살다 세상을 떠났다. 추기경 살비아티가 임종식을 거행했으며 친구 몇 명이 임종을
지키며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미켈란젤로는 숨을 거두기 전 살비아티에게 말했다.
내가 나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충분히 행하지 못한 점과
내 직업에서 알파벳을 겨우 배우기 시작할 때 죽게 되어 유감입니다.
가톨릭과 피치노가 소개한 신플라톤주의에 평생 심취했던 그는 늘 자신이 정신을 맑게 하는 데 전념했다.
따라서 그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고, 정신에 내재한 형상을 두드러지게 구현할 완벽한 기술을 습득하고 있었다.
미술사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을 가장 잘 실현시킨 예술가 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미켈란젤로일 것이다.
회화의 무궁무진한 예술적 가증성을 여실히 보여준 그에 관해 콘디비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우리가 보고 있듯이 미켈란젤로는 수천 가지 형상을 그렸지만,
그 중에 서로 비슷한 모습이나움직임을 보여 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
반대로 그는 선 하나르 그을 때도 이전에 이미 사용한 선이 아닌가를 반드시 확인하며,
남에게 보여 줄 그림을 그릴 때 만일 그런 선이 발견되면
지워버린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참고도서 : 김광우 著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과 미켈란젤로의 영혼』,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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