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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과학과 영혼을 추구한 두 거장 <1편>


과학과 영혼을 추구한 두 거장

<1편>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1452~1519


자연을 관찰하는 데 있어 명료하고 분석적인 시각을 가진 레오나르도는 화가의 범주를 넘어선 

진정한 '르네상스 인' 이었다.베로키오의 문하에서 수학한 그는 화가로서 명성을 떨쳤지만

이후 밀라노 통치자의 군사 전문 공학자가 되어 비행기, 요새,수로 등 과학을 응용한 여러 고안에 전념했다.


또한 식물, 새, 구름과 물의 효과를 연구했고 이론을 통해 회화의 위상을 높

 미학에도 일가견을 보여 주었다. 서른 구 이상의 시신을 해부하여 수백 점의 드로잉과 글을 남겼는데

그의 인체해부도는 금도 경탄할 정도로 정교하다. 피렌체와 밀라노를 오가며 파란만장한

삶을 산 레오나르도는 이국의 땅 프랑스에서 타계하여 그곳에 묻혔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레오나르도와 더불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미켈란젤로는 기를란다요에게 수학하고

조노와 마사초의 작품을 드로잉하면서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

메디치 정원의 고대 조각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로마 피에타>와 <다윗>을 제작함으로써

일찍이 최고 조각가의 반열에 올랐고,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로 당대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가 되었다.

이후 율리우스 2세의 무덤을 비롯하여 다수의 조각품을 제작했고,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위시한

많은 건축물에 자신이 재능을 아로새겼다. '신과 같은 미켈란젤로'라 불렸던 그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구원을 위해 정신에 내재한 형상을 구현하는 작업에 힘썼다.







레오나르도 <최후의 만찬> 의 부분, 1495~7, 벽에 유채와 템페라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의 부분, 1536~41, 프레스코, 그리스도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의 부분, 1536~41, 프레스코 구원받는 사람들



















레오나르도, <성모자와 성 앤, 양>의 부분, 패널에 유채, 168×130cm,






미켈란젤로, <피티 톤도>의 부분, 1504년경, 대리석






레오나르도, <아름다운 페로니에르>의 부분, 1490~5년경, 패널에 유채, 63×45cm







미켈란젤로, <부활한 그리스도>의 부분, 1519~20, 대리석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의 <스무점의 누드> 중 일부, 1509~12, 프레스코







레오나르도, <세례 요한>의 부분, 1510~5년경, 패널에 유채, 69×57cm







미켈란젤로, <승리자>의 부분, 1526~30년, 대리석, 높이263cm



















레오나르도, <양을 붙들고 있는 갓난아기 습작>, 21×14.2cm







미켈란젤로, <메디치 예배당의 작은 돔의 소란반자를 위한 습작>, 1632, 264×215cm







미켈란젤로, <강의 신을 위한 모델>, 1524년경, 나무, 양털, 길이 180cm






레오나르도, <젊은 여인의 얼굴 습작>, 18.1×15.9cm






미켈란젤로, <밤>의 부분, 1628~31년경, 대리석






레오나르도, <최후의 만찬>의 부분, 1495~7, 벽에 유채와 템페라


















미켈란젤로, <돌연한 현현>의 부분, 153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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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부뤄허 성모>, 1504년경, 대리석, 높이(받침대)포함

128cm, 브뤄허 노트르담 성당.


아기 예수가 왼쪽 다리로 몸무게를 지탱하면서 성모의 옷자락을 발로 누르는 바람에

 주름져 흘러내린 옷자락이 팽팽해졌다. 성모는 책을 읽다가 아기가 와서 몸을 의지하는 바람에

잠시 독서를 중단하고 책이 떨어지지 않도록 오른손으로 책을 누르고 있다.







미켈란젤로, <브뤄허 성모>의 부분


머리에 올려진 천이 갸냘픈 얼굴을 더욱 강조해주고 <로마 피에타>에서와 같이 이마 위의 주름진 천은

머리 위에서 빛나는 영광처럼 보인다. 이마에는 빛에 의한 베일의 효과를 내기 위해 선이 새겨져 있다.








미켈란젤로, <성모와 아기, 천사들: 맨체스터 성모>, 미완성 패널, 105×76.5cm












미켈란젤로, <피티 톤도>

미켈란젤로는 성모의 머리르 원형 대리석 위로 약간 돌출시켜 성모를 더욱 부각시켰는데,

이는 도나텔로로부터 배운 교훈으로 톤도를 벽에 걸고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

성모의 얼굴이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피티 톤도>의 부분


















라파엘로, <시스티나 성모>, 1513~4, 캔버스에 유채, 265×196cm






레오나르도, <피렌체 서쪽으로 흐르는 아르노와 무뇨네 강 지도>, 수채, 44.2×24.1cm







레오나르도, <아르노 강 지도>, 수채, 33.4×48.2cm






레오나르도, <안기아리 전투를 위한 두 병사의 머리 습작>, 1503~4, 19.2×18.8cm








레오나르도, <안기아리 전투에서의 병사 머리 습작>, 22.7×18.6cm
















































레오나르도, <모나리자>, 1510~5년경, 패널에 유채, 77×53cm







레오나르도, <광야의 세례 요한을 위한 스케치>, 1508~15년경, 24×18cm







레오나르도 화파, <레다>, 1508~15년경


레오나르도의 작품은 현존하지 않는다.

제우스가 스파르타 왕 틴다루스의 아내 레다를 유혹하기 위해 백조로 변신했다는 기상천외한 전설이

 레오나르도에게 호감을 주었고, 그는 레다가 두 쌍의 쌍둥이가 나오는 두 개의 알을 낳은 것으로 묘사했다.

쌍둥이들은 카스트로, 폴록스, 클리템네스트라, 헬렌이다.






<레다>의 부분



















프란체스코 멜치, <포모나와 베르톰노스>, 1517~20년경, 패널에 유채, 185×134cm








율리우스 2세의 요청으로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 프레스코화를 그리게 된 미켈란젤로는

창세기부터 그리스도의 출현을 예고하는 예언자들의 이야기를 이교적인 요소로 구성했다.

그는 놀랍게도 내용뿐만 아니라 건물의 특색과 인물들의 형태를 조화시켜 동일된 효과를

창출해냈다.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을 통해 화가로서 뛰어난 표현능력과 함께 당대 화가들

과 달리 모든 작업을 거의 혼자 해결하는 근대적 화가의 시작을 보여준다.



바티칸 궁전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바티칸 궁전>


오늘날 바티칸 미술관으로 더욱 알려진 바티칸 궁전은

가톨릭 교회 대분열에 종지부를 찍은교황 니콜라우스 5세(1447~55년 재위)에 의해

착공되어 15~16세기에 걸쳐 완공되었다. 실제로 대규모 건설사업을 주도한 사람은 식스투스 4세이다.


그러나 이 예배당은 율리우스 2세가 미켈란젤로에게 의뢰한 천장화와 중앙 제단 뒤의 벽화

<최후의 심판>에 의해 더 유명해졌다. 시스티나 예배당과 함께 '라파엘로의 방' 으로 총칭되는

 '서명의 방', '엘리오드로의 방','화재의 방' 등 큰 홀의 벽화가 유명하며 율리우스 2세의

 명령으로 라파엘로와 그의 제자들이 제작한 것이다. <아테네 학당>을 포함한

'서명의 방'과 '엘리오드로의 방', 벽화는 라파엘로 예술의 정점에 위치한 걸작이다.


건축으로는 벨베데레라고 하는 빌라가 정원 끝에 건설되었으며 이것은 뒤에 브라만테에 의해

두 채의 긴 복도로 궁전과 접속되고 동시에 '벨베데레의 중정'이 만들어졌다.

고대 조각이 늘어서 있고, 일종의 미술관으로서의 기능을 하는 이 중정도 식스투스 5세

(1585~90년 재위)에 의해 세워진 바티칸 도서관 건물에 의해 양단되어 있다.


니콜라우스 5세가 창설한 도서관 자체의 집은 그 뒤 역대 교황들에 의해 좀더 충실해졌고

구약성서 <여호수아서> 등 중세의 귀중한 사본류를 소장하고 있다.






시스티나 예배당 작품 배치



시스티나 예배당 작품 배치도   

               


Ⓐ 예수님의 일생을 그린 남쪽 벽
Ⓑ 모세의 생애를 그린 북쪽 벽
Ⓒ 동쪽 벽 아래에 바티칸 대성당으로 가는 출구가 있다.
Ⓓ 〈최후의 심판〉이 있는 서쪽 벽



Ⓐ 예수의 일생

1. 그리스도의 세례-페루지노 1a. 교황 아나클레토-기를란디요 1b. 교황 알레산드로 1세-프라 디아만테
3. 그리스도의 시험-보티첼리 3a. 교황 텔레스포로-프라 디아만테 3b. 교황 피오1세-보티첼리
5. 첫 사도들을 부름-기를란디요 5a. 교황 소테르-기를란디요 5b. 교황 비토레-기를란디요
7. 산상 설교-코지모 로셀리 7a. 교황 칼리스토 1세-코지모 로셀리 7b. 교황 폰치아노-작자 미상
9. 열쇠를 주심 9a. 교황 파비아노-작자 미상 9b. 교황 루치오1세-보티첼리 11. 최후의 만찬-코지모 로셀리
11a. 교황 시스토 2세-보티첼리 11b. 교황 펠리체 1세-기를란디요 13. 부활-아리고 팔루디노
13a. 교황 마르첼리노-보티첼리 13b. 교황 카이오-기를란디요


Ⓑ 모세의 일생
2. 모세의 이집트 여행-페루지노 2a. 교황 클레멘스 1세-기를란디요 2b. 교황 에바리스토-보티첼리
4. 모세의 일생 중 시도한 일과 업적들-보티첼리 4a. 교황 시스토 1세-작자 미상 4b. 교황 이지노-기를란디요
6. 홍해를 건너다-코지모 로셀리 6a. 교황 아니체토-프라 디아만테 6b. 교황 엘레우테리오-프라 디아만테
8. 계명판을 주시다-프라 디아만테 8a. 교황 체피리노-프라 디아만테 8b. 교황 우르바노 1세-프라 디아만테
10. 벌 받는 코레와 그의 아들들 다탄과 아비론-보티첼리 10a. 교황 안테로-프라 디아만테
10b. 교황 코르넬리오-보티첼리 12. 모세의 계명-루카 시뇨렐리 12a. 교황 스테파노 1세-보티첼리
12b. 교황 디오니시오-로셀리 14. 모세의 시신 주변에서의 논쟁-마테오 다 레체
14a. 교황 에우티키아노-기를란디요 14b. 교황 마르첼로 1세-작자 미상

 

천지창조

15. 다윗과 골리앗 16. 유디스와 오르페르네 17. 예언자 자카리아 18. 술취한 노아 19. 예언자 요엘
20. 예언자 델피카 21. 대홍수 22. 노아의 제물 23. 무녀 에르트레아 24. 예언자 이시야 25. 원죄
26. 이브의 창조 27. 예언자 에제키엘 28. 무녀 쿠마나 29. 아담의 창조 30. 땅과 물의 분리
31. 무녀 페르시카 32. 예언자 다니엘 33. 우주 창조 34. 빛과 어둠을 나눔 35. 예언자 예레미아
36. 무녀 리비카 37. 하만의 징벌 38. 구리뱀 39. 예언자 요나

 

그리스도의 조상들의 모습

40. 야곱 41. 엘르아잘과 마타니 42. 아힘, 엘리 43. 아졸, 사독 44. 쯔루파벨, 아니, 엘리아킴
45. 요시아, 여고니아, 스알디엘 46. 우찌야, 요담, 야하즈 47. 히즈키야, 무나쎄, 아모스
48. 르호보암, 아비야 49. 아삽, 여호사밧, 요람 50. 솔로몬, 보아즈, 오벳
51. 아새, 다윗, 솔로몬 52. 암미나답 53. 나흐손
〈자료 고증 : 바티칸 박물관 공식 해설집〉








시스티나 성당의 회화 갤러리 확대 이미지



시스티나 예배당 제단쪽<서쪽> 방향







천장 전체와 상부 벽의 일부를 덮는 장대한 프레스코화 연작은

거의 모두 미켈란젤로가 짧은 기간 동안 그린 것이다.


천장은 얕은 아치형이며 창문 위의 반월창과 스팬드럴(아치의 둥근 호 부분으로 둘러싸인 삼각형 소벽

 또는 직사각형틀 안에 만들어진 아치의 좌우에 생기는 삼각형 소벽)이 번갈아 연속하여 만들어져 있다.


천장 중앙은 거의 평면에 가깝고 그림이 그려진 코니스(일반적으로 벽면 상단 근처에 수평으로 둘러쳐져

 추녀밑 외관을 돋보이게 하는 띠모양으로 돌출한 부분)에 의해 그 경계가 명확해 지는데,

코니스는 다섯 쌍이 리브에 의해 옆으로 구획지어져 있다.


이것들은 다시 다섯 개의 작은 직사각형과 네 개의 큰 형 직사각형으로 나누어지며,

여기에는 구약 성서의 여러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제단쪽 천장의 작은 직사각형에는 창세기 제1장이, 평신도용 출입구쪽 천장의

작은 직사각형에는 죄많은 인간을 의미하는 <술 취한 노아>가 그려졌다.


 각각의 작은 직사각형에 네 모퉁이에는 누드 청년상이 그려져 있는데,

청년상의 정확한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예언자와 무녀는 각 쌍의 리브들 사이 공간에 자리잡고 있으며

모두 옥좌에 앉아 있고 단축법에 따라 그려져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청년상은 단축법을 따르지 않았다.

천장의 네모퉁이에는 이중 스팬드럴이 있으며 여기에는 네 가지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 장면인

<구리뱀>, <하만의 책형>, <유딧과 흘로페르네스>, <다윗과 골리앗> 등이 그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창문 위의 반월창에는 <그리스도의 조상>들이 그려져 있다.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는 완성된 순간부터

언제나 회화 예술의 최고 걸작중 하나로 간주되어왔다.

또한 미켈란젤로는 37세에 당대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인식되었을 뿐만 아니라

에술의 지위를 향상시켜 '신과 같은 미켈란젤로' 라고까지 불리웠다.







시스티나 예배당 평신도용 출입구(동쪽) 방향












<빛과 어둠의 분리>






<해와 달과 땅의 창조>






<아담의 창조>, 280×570cm


하나님은 오로지 말씀으로 창조한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화가가 예술적 이미지를 창조하듯

하나님이 아담을 자신의 예술적 상상력으로 창조한 것으로 묘사했다. 그의 그림 속 하나님은

누워 있는 아담 앞에 서 있지 앟고 날아서 그에게로 다가간다. 바람에 펄럭이는 외투자락으로

천사들을 감싸안은 모습이다. 하나님과 아담의 손가락 끝은 몇 cm 떨어진 상태에서 닿지 않고

있는데 이는 시간의 위대한 정지이다.











<아담과 이브의 유혹과 추방>의 부분


미켈란젤로는 빈들거리며 누워 있는 이브의 내면에서 죄의 생각이 싹트고 있다고 말하려는 듯하다.

그는 낙원의 특성을 복잡한 소재로 나타내는 대신 몇 개의 나뭇잎들로만 묘사했다.

불행해진 아담과 이브는 화면 가장자리까지 밀려났다.

이브는 등을 구부리고 머리를 웅크린 채 비명을 지르며 앞서 가면서 힐끔 뒤를 돌아본다.

 이브에 비하면 아담은 침착한 편이며 품위를 유지한 채 걸어 가다가

천사의 위협적인 칼을 물리치려고 한다.






<아담과 이브의 유혹과 추방>, 280×570cm


전통적인 방법으로 두 번에 걸쳐 묘사된 아담과 이브는 낙원에서 추방되기 전과 후의 모습이다.

왼쪽은 죄를 짓기 전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죄를 지은 후 죽어야 하는 운명을 갖게 된 모습이다.

중앙에는 낙원쪽으로 기울어진 선악과 나무가 있고 그것을 뱀이 코일처럼 감고 있다.


다채롭게 변하는 듯하 피부의 뱀이 이브를 유혹하는 동안 아담은 금지된 선악과를 따려고 손을 뻗친다.

결국 아담은 이브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의 유혹에 빠져 이브와 함께 낙원에서 추방되는

운명을 맞이한다. 미켈란젤로는 낙원으로부터의 추방이 이브의 유혹 때문이라는 여성차별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고 아담 역시 유혹을 받은 당사자임을 이 그림을 통해 말하려고 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원죄의 유혹의 본질에 관해 사유하기르 촉구하는 듯 하다.





<대홍수>


<대홍수>에는 60명 이상의 사람들이 재난을 피하고 있고 대부분 벌거벗은 모습이며 물에 빠진

아들을 건져낸 아버지의 모습도 보인다. 비에 침수되지 않은 땅이라고는 화면 하단 왼쪽이 전부이다.

이 푸른 피난처에 비참한 인간들이 몸을 피하지만 곧 물이 불어 잠길 것이다.


오른쪽 작은 암석 위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 있지만 곧 침잠될 운명에 처해 있다.

이미 결정된 운명임에도 불구하고 한 젊은이가 무모하게 나무 위로 오르려고 한다.

잎이 다 떨어진 나무 뒤로 노아의 방주가 보인다. 그곳만이 안전하다.


방주 위 창문에서 희망의 상징인 흰 비둘기를 본 노아가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밝아오는 하늘을 향해 감사의 몸짓을 취하고 있다.

노아의 가족은 무사했다.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아벳은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에리트레아 무녀>


독특한 의상의ㅏ <에리트레아 무녀>는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

그녀는 방대한 내용의 큰 책의 페이지를 열고 있고 그녀의 동반자는 매달린 램프 위에 불을 올려놓고

입으로 불고 있다. 불길은 빛과 진리를 상징하며 에리트레아의 머릿속에서 타고 있는 생각을 의미한다.






<델피의 무녀>


아폴로의 지성소 델피에 앉아 있는 <델피의 무녀>는 무녀들 가운데 가장 젊고 아름답다.

이 그리스 무녀는 약간 놀란 눈으로 왼쪽을 바라보는데 그녀가 펼쳐든 두루마리에 적힌 내용이 천장화로

전개된 것을 바라보는 듯하다. 그녀의 응시는 내면에 대한 성찰처럼 보이고 정신적으로 투명해지는 듯하다.






<델피의 무녀> 세부







<리비아 무녀를 위한 습작>, 1510년경, 28.9×21.5cm


<리비아 무녀>는 자신의 커다란 예언서를 집으려는 것인지 보다가 놓아두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 그림을 위해 습작한 드로잉을 보면 세부적인 표현에도 관심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왼쪽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키려는 자세를 그리면서 엄지발가락을 세 차례에 걸쳐서 드로잉했다.





<리비아 무녀>


채색면에서는 빛을 받아 차란하게 변하는 색을 표현한 것에서

 미켈란젤로가 색물감을 상당히 독창적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쿠매아 무녀>


자신의 예언서를 펼친 <쿠매야 무녀>는 천장화 가운데 가장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다.

입을 벌린 채 딱딱하고 위엄 있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녀가 무시무시하게 보이는 남자보다 더한 근육과 흔들거리는 젖가슴,

그리고 유난히 길고 무쇠처럼 강해 보이는 왼팔뚝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관람자에게 두려움을 주는 위풍당당함으로 보인다.

그녀의 나이는 백 살을 넘은 것이 아니라 천 살도 넘은 고대의 여인으로 보인다.

그녀의 상체는 장사와도 같지만 다소곳하게 두 무릎을 붙이고 있는 하체는 상체에 비해 덜 남성적이다.







<쿠매아 무녀> 세부







<다니엘>


미켈란젤로는 다니엘이 자신이 쓴 예언서를 펼쳐놓고 정신을 집중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자신이 몸보다도 더 큰 다니엘의 예언서를 어깨로 받치고 있는 벌거벗은 사람은 

아틀라스를 작게 묘사한 것처럼 보인다.

18세기 카르텔 산 안젤로에서의 탄약 폭발로 천장화가 부분적으로 파손되었기에

1986~90년  천장화 전체에 대한 보수작업이 진행되었다.


이때 다니엘의 경우 재생하는 데 실패했다.

 다니엘의 피부색은 너무 침침해졌고 특히 오른팔과 왼팔이 심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쭉 뻗은 왼팔은 다양한 안료를 섞어 부드러운 느낌이 나도록 재생했지만

안으로 구부러진 오른팔은 단일한 색으로 채색되었다.






<이사야>


미켈란젤로는 이사야가 자신의 예언서 7:13~4절이 적혀 있는 구절에 손가락을 넣어 표시하며

자신의 예언서를 왼쪽팔 아래 끼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아야야의 머리카락은 헝클어졌고

오른쪽 어깨에 매듭을 지어 걸친 외투는 넓게 펼쳐진 모양이며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패여 있고

움찔하는 몸짓을 취하고 있다. 아사야는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스가랴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스가랴>


스가랴가 벽감 안 공가에 앉아 자신의 예언서를 펼쳐 읽고 있는 장면이다.

그의 그림자가 벽감 안에 드리워져 있다. 스가랴는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것을 예언했다.

그는 학개와 더불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데 앞장선 예언자였다.







<요나>


그림 하단 중앙에 요나가 고개를 들고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의 옆에 큰 물고기가 있는데 화가들은 요나를 그릴 때 고래나 큰 물고기를 그려 넣는다.

미켈란젤로도 요나 옆에 큰 물고기를 그려넣었다.






<다섯 무녀와 예언자>







<하만의 처형>






누드 1






누드 2






<엘르아살와 맛단>, 215×430cm (왼편)


엘르아살은 아론의 아들이며 모세의 조카이다. 아버지와 두 형,

그리고 동생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사제가 되었다.

맛단은 엘르아살의 아들로 예수의 아버지 요셉의 조부이다.


<요시야 - 여고냐 - 스알디엘> (오른편)





레오나르도, <사람 두개골에 관한 연구>, 19×14cm







레오나르도, <여인의 주요 장기와 동맥 구조>, 1500년경, 수채, 47.8×33.3cm


레오나르도가 피렌체에서 <안기아리 전투> 를 습작을 할 때 그의 작업장이 산타마리아 노벨라 병원 내에

있었기에 인체해부하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그는 늙은이와 아이의 사체해부를 노트에 상세히 열거했다.


백살이나 늙은이가 죽기 몇 시간 전 자신은 육체적 고통을 느끼지는 않지만 쇠약함을

느낀다고 말하고 산타 마리아 노벨라 병원 침대에 앉아 통증도 거의 느끼지 않고 미동도

없이 조용히 죽었다. 그렇게 조용히 죽을 수 있는 연유를 알아내기 위해 노인의 시체를

해부했는데, 그 원인이 심장으로 부터 뻗은 동맥을 통해 피가 몸 전체에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서 쇠약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음 해부는 두 살 된 아이였는데 이 경우 늙은이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있었음을 발견했다.










레오나르도, <광야의 세례 요한>, 1510~5년경, 패널에 유채, 69×57cm


성자를 왼쪽 어깨에 표범가죽을 걸친 모습으로 묘사했다.

이교 신들에게서 볼 수 있는 남성이지만 여성적인 아름다움으로 표현하면서

부대적인 부분과 일화는 최소화했으므로 특별히 읽을 거리는 없다.













레오나르도의 <오토 모빌>, 1478-80년경, 27-20cm






 

테오도르 리촘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임종>, 1827, 엔그레이빙


이 그림은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가 1818년에 그린 그림을 모사한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1519년 4월 23일 67회 생일이 지난 며칠 후 증인 앞에서 유언을 작성했다.

유산에 대한 배분을 마지막 글로 남기고 1519녀 5월 2일 세상을 떠났다.


레오나르도는 기독교의 장점과 가톨릭 신자의 삶에 관해 면매히 알게 된 후

수없이 울며 회개하고 과거의 잘못을 뉘우쳤다.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는 그는

친구와 하인 들의 도움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성례전을 받아들였다.


바사리의 기록은 다분히 교훈적 의도로 쓰여졌기 때문에 그대로 믿기 어렵다.

과학적 사고를 가진 레오나르도는 상식적인 사고 그 이상을 믿지 않았으며 사후의 세계가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는 죽음 자체를 '최고의 악으로 믿었는데, 영혼이 몸을 떠나고 생이 마감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매장에 관해서 그리고 비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그를 위한 비문을 쓴다면 30년 전 밀라노에서

그가 남긴 기록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하루를 잘 지내고 나면 달콤한 잠을 이룰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생을 잘 지내고 나면 복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참고 도서 : 김광우 著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과 미켈란젤로의 영혼』, 다음 백과.





Everlasting Divine Poetry - Chamras Saewatap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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