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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중국 근현대 畵


중국 근현대 미술계를 빛낸 거장들
중국은 전통적으로 동양 회와의 뿌리 역할을 해 왔다. 특히 중요한 양식은 수묵화에 있다.중국의 수묵화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것은 당 이후 부터라 할 수 있는데, 왕유(王維)나 장조(張璪)의파묵 산수라든가 형호(荊浩)와 서희(徐熙)의 필푹 운용, 동원(董源)과 미불 등의 형상성에 대한 독특함은중국  회화의 주된 흐름을 이루게 되었고 중국만의 독특한 양식을 형성하는 근간이 되었다.
특히 중국의 회화는 수많은 문기(文氣)를 지닌 화가들이 배출되면서 화론과 정신세계 면에서 탄탄해졌다.이러한 면 때문에 중국화의 흥망성쇠는 문인화사의 번영 및 퇴락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게 되었다.송원 이래 문인 예술가들은 비교적 높은 지위를 확보하기 시작했으며, 원 사대가(元四大家)나 동기창(董其昌),서위(徐胃), 양주팔괴(揚州八怪),를 거쳐 오창석, 제백석, 황빈홍, 반천수 등으로 오면서 중국의 회화는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다.

 

 

 

 

 

제백석 부용호접(芙蓉蝴蝶) /1908~1909) / 35.5×32.5cm

 

◆ 중국 근대미술의 서막을 연 화가 제백석(齊白石) (1863~1957)

 

병 때문에 학교를 1년도 채 다니지 못하고 중퇴한 뒤 목동이 되었다.

도장 파는 일과 목수 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서른이 넘어서 글과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동물, 풍경, 인물부터 장난감, 채소까지 일상의 모든 소재를 진한 먹, 밝은 색조, 대담한 필치로 그렸다.

말년에는 쥐, 새우, 새 등을 주로 그렸는데 특히 새우 그림을 생동감 있게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제백석은 대략 1899년부터 초충(草蟲) 공필화(工筆畵)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 그림은 형신(形神)이 세밀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나비에 서양의 명암법이 가미된 아름다운 수작으로,

꽃 위에 앉으려는 나비 모습을 인상적으로 잘 표현했다.

 

현대 중국 산수화의 거장 리커란은 치바이스에 대해 ‘가슴에 삼라만상을 품고,

손끝으로 조화를 이루는 경지에 도달한 화가’라고 평했다.

 

 

 

 

 

유정추아(油丁秋蛾) 1908년~1909년 / 33.5×32.5cm

 

 

 

 

 산수화 수십 폭을 정리하고 완성하여 중국 산천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중국 회화는 근 현대에 들어오면서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되는데, 바로 1949년 중국 공산화가 그 계기이다.

중국은 1949년 전후 더욱 많은 화가들이 서구 등으로 유학을 갔고, 이를 계기로 중국의 화단이 더욱 풍성해지는

변화를 맞게 되었다, 서양 회화의 본격적인 유입은 중국화를 위협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중국 회화를 탄탄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고, 이처럼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제백석(齊白石)이나 황빈홍(黃賓虹), 고검부(高檢父), 서비홍(徐悲鴻),

 반천수(潘天壽), 풍자개(豊子愷), 이고선(李苦禪), 임풍면(林風眠), 부포석(傅抛石), 여봉자(呂鳳子),

진지불(陳之佛), 장조화(裝兆和) 등 중국을 대표할 만한 거장들이 속속 배출되었다.

 

이들이 젊은 나이로 활동할 무렵에 대해 화가들이나 문화 학술계 등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자세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중국화에 대한 변함없는 지원이었다. 그러나 중국화에 대해 막연한 수구적 입장만 취한 것은 아니었다.

중국화는 서양화에 비해 비과학적이라는 고민 속에서 현대 회화로서의 중국 회화로 거듭나는 노력을 해야 했고,

제백석, 황빈홍, 반천수 등과 같은 이들은 전통을 고수하면서 중국 회화가 한 단계 발전하는데 기여했다.

 

이들과 근본적으로 맥을 같이 하는 부포석, 이가염 등은 많게 혹은 적게라도 서양 회화의 교육과 훈련을 받았고

기교적인 면에서는 서양화의 기교를 흡수했지만, 이들이 견지하는 창작 세계는 결국 전통의 고수였다고 할 수 있다.

 

 




황빈홍, 고봉람승도(高峰攬勝圖)
◆ 중국 근대 서화예술의 대가 황빈홍(黃賓虹) 1865~1955연대 미상, 87.9×36.5cm.

 

방거연필의(防巨然筆意)

1951, 68.1×31.9cm

 

 

 

 

 


산수책혈(山水冊頁)연대 미상, 20.5×37.3cm



우여독서도(雨余讀書圖)연대 미상, 79.2×33.4cm

 


황산주사천(黃山住砂泉)1953, 87.4×35.9cm

 


계산수조도(溪山垂釣圖)1952, 82.8×39.5cm


5 · 4 신문화운동 이후 더욱 활성화한 서양화의 양적 팽창 속에서 중국화와 서양화의 융합 분위기는 서비홍을 중심으로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두터운 문화 지식층과 예술 사상가들의 끊임없는 연구로중국화와 서양화의 융화는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중국화의 새로운 전통으로 창조되었다.
서양화의 유입으로 중국화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인물화 분야에서는 서양 회화의 소묘와 크로키의 조형 방법 등이 받아 들여져 현대인들의 생활상과 형상을 그려내는 데에 무시할 수 없는 진전을 이루기도 했다.어떤 화가들은 색채 영역에서도 많은 변화를 추구했다. 이처럼 중국화와 서양화를 융합하려는 거장들이이 시대에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들이 바로 서비홍이나 임풍면, 장조화 등이다.

 

 

 




 

호(虎), 1934년

◆ 중국 혁명의 전환기를 이끈 여성화가 하향응(何香凝) 1878~1972

 

 

 

 


매화수선(梅花水仙) 1935.


 

송국(松菊) 1960년대

 

 

 

 

 

여봉자, 차심한처도(此心閑處圖)

◆ 중국 민중의 삶을 대변한 인민예술가 여봉자(呂鳳子) 1886~1959

 

 

 

 

부신자(負薪者)

 

 

 

 

고송(高松) 20세기 중반 이후

 

 

중국화와 서양화의 융합은 한때 사회가 주창하던 조류이기도 하며,

이들의 위세는 대단해서 전통 회화를 고수하는 화가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기도 했다.

이들은 미술 교육에서도 서양의 소묘 교육을 중시했으며, 중국 전통의 전수 기법인 임모(臨慕) 공부를

무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반천수 등은 서양화 교육의 문제점 등을 논리적으로 부각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국화와 서양화의 융화와 혼란 속에서 부상한 화가들이 바로 제백석, 황빈홍, 반천수, 서비홍을 비롯한

화가들이라 할 수 있다. 어찌됐든 이들은 서양화가 들어온 혼란기에 중국화를 서양의 회화와 가장 적절하게

융화시키면서도 가장 중국화다운 중국화를 현대적으로 창조해 낸 중국 근현대의 위대한 거장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깊은 예술 정신, 그리고 중국의 예술 문화에 대한 사랑은 서양화 일변도로 획일화되어 가고 있는

한국 미술의 위기 상황에도 많은 교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륙을 품어 화폭에 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중에서 발췌.

 

 

 

 

 

 

 

서비홍, 피리소리◆ 세계를 빛낸 중국 최호의 현대화가 서비홍(徐悲鴻) 1895~1953 1926, 80×39cm

 

 

 

계림풍경(桂林風景)1934, 56×74cm.

 

 

 

자화상1931, 100×70cm.

 

 

수(睡)

1926, 40×51cm.

 

 

 

사후(獅吼)1922, 4262.5cm.



황산(黃山)1935, 67×81cm.

 

 

 

키오스섬의 학살(들라크루와)1823~1824, 422×352cm.


 


공자강학(孔子講學)1943, 109×113cm.

 

 

 

전횡오백사(田橫五百士)

1930, 197×349cm.

 

 

 

혜아후(徯我后)1933, 230×318cm.


 

영취(靈鷲)

1942, 121×92cm.

 

 

 

구방고(九方皐)

1931, 139×351cxm.

 

 

 


이인천상(李印泉像)1943, 76×43cm.

 

 

우공이산(愚公移山)

1940, 144×421cm.

 

 

 

군분(群奔)

1939, 95×181cm.

 

 

 

신응도(神鷹圖)

항일강점기, 32.5×26cm.

 

 


시수쌍마(大樹雙馬)

1938×77cm.

 

 

 

분마(奔馬)

1941, 130×76cm.

 

 

 

 

송령학수

◆ 공필화조화와 공예미술의 거장 진지불(陳之佛) 1896~1962

1959, 148×295cvm.

 

 

 

월안(月雁)

1947, 131×47cm.

 

 

 

동지소조(桐枝小鳥)

1945, 66×33cm.

 

 

 

 

춘강수난(春江水暖)

1960, 85×40cm.

 

 

 

 

노매(老梅)1947, 117×40cm.

 

 

 

세수쌍염(歲首雙艶)

1960, 108×38cm.

 

 

 

 

청송백계(靑松白鷄)

1953년

 

 

 

 

매학앙춘(梅鶴仰春)

1961, 144×82cm.

 

 

 

 

 

소게도(小憩圖)

◆ 조국과 민족을 사랑한 민족화가 반천수(潘天壽) 1897~1971

1954, 224×105cm.

 

 

 

 

 

소정고수도(小亭枯樹圖)

1961, 139.5×62cm.

 

 

 

 

석류도(石榴圖)

1960, 58×68.4cm.

 

 

 

 

 

경송도(勁松圖)1964, 207×151cm.반천수의 소나무 그림은 대체적으로 빼어난 선묘와 공간이 교묘히 잘 조화되어 정치하면서도 동감을 지닌선미(禪味)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은 그의 평상적인 소나무 그림과는 달리 매우 강한 붓과 굵은 터치로웅위롭고도 파격적인 위용을 연출했다. 소나무를 받치고 있는 웅장한 바위는 강인한 느낌을 주는 일획을 시원스레 그어 커다란 바위의 속성을 잘 나타냈다.


 

 

 

 

 

 

송석도(松石圖)

1960, 179.5×140cm.

 

 

 

 

응시도(䧹視圖)

연대미상, 347.3×143cm.

 

 

 

 

어응도(魚鷹圖)

1961, 144.5×165.3cm.

 

 

 

 

 

소룡추하일각(小龍湫下一角)

1963, 108×107.5cm.

 

 

 

 

 

안탕산화(雁蕩山花)

126×103cm.

 

 

 

 

백원도(栢園圖) 1948

 

 

 

 

창하도(晴霞圖)

1960년대, 178.5×148cm.

 

 

 

 

 

황하도(黃荷圖) 1965년

 

 

 

 

 

 

매월도(每月圖)

1966, 152×182cm.

 

 

 

 

여산도(廬山圖)

◆ 중국 당대 최고의 대화가 장대천(張大千) 1899~1983

 

 

 

 

황산전후해도(黃山前後海圖)

 

 

 


묵죽(墨竹)

1944, 165×83cm.

 

 

 

 

운증하울(雲蒸霞蔚)

1968, 50×94cm.

 

 

 

 

하화(荷花) 1948년

장대천의 만년 작품으로서 웅장함과 기운생동함이 있다.

선염의 기묘한 효과와 자연스러운 발묵이 보는 이로 하여금 장관을 느끼게 한다.

웅장한 대자연과 조그만 쪽배는 그의 산수화의 특징이라 할 만하다.

 

 

 

 

 

녹운십리(綠雲十里)

1948, 134×66.7cm.

 

 

 

 

산화천녀(散花天女)

연대 미상, 101×38.6cm.

 

 

 

 

비천(飛天)

연대 미상, 79.5×84cm.

 

 

 

 

발채산수(潑彩山水)

1979, 48×67.5cm.

 

 

 

 

 

부포석, 동구사생(東鷗寫生)

◆ 중국 산수화와 미술사 연구의 개척자 부포석(傅抱石) 1904~1965

1957, 56×48cm.

 

 

 

 

동(冬)

1954, 28.4×44cm.

 

 

 

 

청천도(聽泉圖)

1945, 51×64cm.

 

 

 

 

동구사생(東鷗寫生)

1957, 28×47cm.

웅장한 나무의 모습을 농묵과 연염 등으로 효과적으로 처리되었다.

특히 조그마한 인물의 특징 포착은 그의 데생력을 가늠케 해 준다.

 

 

 

 

굴자행음도(屈子行吟圖)

31.5×36.6cm.

 

 

 

 

촉강연운(蜀江煙雲)

1950, 29×31cm.

 

 

 

 

우화대(雨花臺) 1956년

 

 

 

 

만간연우(萬竿烟雨)

1944, 110.2×67.7cm.

 

 

 

 

 

연우가릉강(烟雨嘉陵江)

1960, 34.5×45.6cm.

 

 

 

 

 

소소모우(瀟瀟暮雨)

1945, 103×57cm.

 

 

 

 

 

상산여차다교(江山如此多嬌)

1959, 65×30cm.

 

 

 

 

 

서릉협(徐陵峽)

1960, 107×74cm.

 

 

 

 

 

 

황하청(黃河淸)

1960, 51.2×76cm.

 

 

 

 

경박비천

1963, 87.6×34.5cm.

 

 

 


백산임해(白山林海)

1961, 49×57cm.

 

 

 

- 참고서적 -

서경동(徐敬東) · 서흔위(徐欣煒) 著, 장준석 역譯, 《대륙을 품어 화폭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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