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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동학 천도의 세계

제123주년 동학농민혁명 장성 황룡 승전기념식

제123주년 동학농민혁명 장성 황룡 승전기념식

 

-덕 158년 5월 27일 -

 

 

장성 황룡 전적

 

 

전남 장성군 황룡면 신호리에 있는 동학농민혁명의 전적지로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아 동학사상을 일깨우고, 역사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전국적인 헌수운동을 통해 이곳에 동학기념공원을 조성한 바 있다.

 

 

 

 

 

 

사적 제406호

 

1894년 4월 반봉건·반외세를 내건 동학농민혁명군이 관군을 격파하고

 전주에 무혈 입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된 황룡전투의 전적지이다.

 

 

 

 

 

 

 

 

1994년 조성한 승전기념공원으로 높이 30m, 직경 2.5m 가량의 기념탑이 죽창모형으로 서 있으며

전면에는 당시의 전투 장면이 부조되어 있다. 그 위로는 당시에 총알받이로 사용했던

장태(대나무를 원통형으로 엮고 속에 짚을 넣어 만든 것)를 두 사람이 굴리는 모습이 있다.

 

 

 

 

 

 

후면으로 돌아가면서 사대강령()과 관련 시문을 음각해 놓았다.

 

 

 

 

 

 

 

"동학농민군 12개조 폐정개혁안"

 

1. 동학도는 정부와의 원한을 씻고 서정에 협력한다.

2. 탐관오리는 그 죄상을 조사하여 엄징한다.

3. 횡포한 부호를 엄징한다.

4. 불량한 유림과 양반의 무리를 징벌한다.

5. 노비문서를 소각한다.

6. 7종의 천인차별을 개선하고 백정이 쓰는 평량갓을 없앤다.

7. 청상과부의 개가를 허용한다.

8. 무명의 잡세는 일체 폐지한다.

9. 관리채용에는 지벌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한다.

10. 왜와 통하는 자는 엄징한다.

11. 공사채르 물론하고 기왕의 것은 무효로 한다.

12. 토지는 평균하여 분작한다.

 

 

 

 

 

 

 

 

증좌승지이공학승순의비()

 

근처에 당시의 경군대장이었던 이학승의 뜻을 기리는 순의비 1기가 서 있다.

 오석에 높이 159cm, 두께 23cm, 폭 65cm에 21행 43자 음각으로 면암 최익현 書. 

1897년 장성 유림들이 이학승이 죽은 자리에 세운 것이다.

 

홍계훈의 선봉이었던 이학승은 300여명의 관군을 지휘해 농민군과 전투 중 전사했다.

 

 

 

 

 

 

 

 

 

 

 

 

 

 

 

 

 

 

 

 

 

 

 

 

 

 

 

 

 

 

 

 

 

 

 

 

 

 

 

 

 

 

 

 

 

 

 

 

 

 

 

 

 

 

 

 

 

 

 

 

 

 

 

 

 

 

 

 

 

 

 

 

 

 

 

 

 

 

 

 

 

 

 

 

 

 

 

 

 

 

 

 

 

 

 

 

 

 

 

 

 

 

 

 

 

 

 

 

 

 

 

 

 

 

 

 

 

 

 

 

 

 

 

 

 

 

 

 

 

 

 

 

 

 

 

 

 

 

 

 

 

 

황룡전투 경과

 

 1894년 고부 군수 조병갑의 탐학을 제거하기 위해 전봉준 등 수천명이 봉기하여

고부를 점령한 뒤  황토현전투를 거쳐 정읍, 함평을 점령하였다. 전봉준의 주력부대는 장성으로 진군해서

 전주에 주둔하였던 홍계훈의 경군(관군)을 유인, 그들의 예봉을 꺾고 전주 점령계획을 세웠는데,

그 최적의 장소로 장성 황룡을 택하였다.

1894년 4월 23일 황룡전적지를 중심으로 인근의 삼봉산과 황룡장터 등에서

이학승의 선봉대와 결전하였는데 장태라는 신무기를 굴려 총알을 막으면서 관군에 육박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로 선봉장 이학승은 죽고 대포 2문과 양총 100여 점을 탈취했다.

 당시 관군의 수는 300여 명, 동학농민군동학은 6, 7천명이었다.

 

 관군이 패주한 이후 동학농민군은 관군보다 먼저 전주로 들어가 그곳을 점령했으며

전라감사 김학진과 전봉준이 휴전을 성립시키고 각 고을에 집강소를 설치,

농민이 직접 통치 하기로 합의하여 역사상 최초로 민중 민주주의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 창 의 문 ~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귀하다고 여기는 것은 인륜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군신부자는 인륜의 가장 큰 것이다. 인군()이 어질고 신하가 곧으며 아비가 사랑하고 아들이 효도한 후에야 나라가 무강의 역()에 미쳐가는 것이다. 지금 우리 성상은 어질고 효성스럽고 자상하고 자애하며 정신이 밝아 총명하고 지혜가 있으니 현량하고 방정한 신하가 있어서 그 총명을 보좌한다면 요순의 덕화와 문경의 다스림을 가히 바랄 수 있으리라.

그러나 오늘의 신하된 자들은 보국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한갓 녹위만 도적질하여 총명을 가리고 아부와 아첨만을 일삼아 충성되이 간하는 말을 요언이라 이르고 정직한 사람을 비도라 하여 안으로는 보국의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백성을 탐학하는 관리가 많도다. 인민의 마음은 날로 변하여 생업을 즐길 수 없고 나아가 몸을 보존할 계책이 없다. 학정이 날로 심하고 원성은 그치지 아니하니 군신의 의리와 부자의 윤리와 상하의 명분은 무너지고 말았다.

관자가 말하기를 ‘사유()가 펴지지 못하면 나라가 멸망하고 만다’고 하였는데 오늘의 형세는 옛날보다 더욱 심하다. 공경부터 방백수령까지 모두 국가의 위태로움은 생각지 아니하고 한갓 자신을 살찌우는 것과 가문을 빛내는 데에만 급급하여 사람 선발하는 문을 돈벌이로 볼 뿐이며 응시의 장소를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으로 만들었다. 허다한 돈과 뇌물은 국고로 들어가지 않고 도리어 개인의 배만 채우고 있다. 국가에는 누적된 빚이 있으나 갚을 생각은 아니하고 교만과 사치와 음란과 더러운 일만을 거리낌없이 자행하니 팔도는 어육이 되고 만민은 도탄에 빠졌다. 수재()의 탐학에 백성이 어찌 곤궁치 아니하랴.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라 근본이 쇠잔하면 나라도 망하는 것이다. 보국안민의 방책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밖으로는 향제()를 설치하여 오로지 제몸만을 위하고 부질없이 국록만을 도적질하는 것이 어찌 옳은 일이라 하겠는가.

우리는 비록 초야의 유민이지만 임금의 토지를 부쳐먹고 임금의 옷을 입고 사니 어찌 국가의 존망을 앉아서 보기만 하겠는가. 팔도가 마음을 합하고 수많은 백성이 뜻을 모아 이제 의로운 깃발을 들어 보국안민으로써 사생의 맹세를 하노니, 금일의 광경은 비록 놀랄 만한 일이기는 하나 경동()하지 말고 각자 그 생업에 편안히 하여 함께 태평세월을 빌고 임금의 덕화()를 누리게 되면 천만다행이겠노라.

 

갑오 3월 20일


호남창의소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