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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동학 천도의 세계

동학천도 49일 동계수련 심고記

 

 

 수운대신사 탄생유허지부터 돌아봅니다.

 

 

 

 

 

- 스스로 참회하고 진심으로 거듭나자 -

 

동학천도의 聖地 경주 구미산 용담정 입구

 

 

 

 

 

 

 

 

 

 

 

 

 

 

 

 

 

 

 

 

 

 

 

 

 

 

 

 

 

 

 

 

 

 

 

 

 

 

 

 

 

 

 

 

 

천은당님 댁 방문

 

 

 

 

 

입택축하심고

 

 

 

 

 

 

 

 

 

 

 

 

 

 

 

 

 

 

 

 

 

 

 

 

 

 

 

 

 

 

일포장님의 지도 아래 몸풀기

 

 

 

 

 

 

 

 

 

 

 

 

 

 

 

 

 

 

 

 

 

 

 

 

 

 

 

 

 

 

 

 

 

 

 

 

 

 

 

 

 

 

 

 

 

 

 

 

 

 

 

 

 

 

 

 

 

 

 

 

 

 

 

 

 

 

 

 

 

 

 

 

 

 

 

 

 

 

 

 

 

 

 

 

 

 

 

 

 

 

 

 

 

동학은 수운의 시천주(侍天主) 자각으로 탄생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안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의 사상은 이제 나의 몸이 한울님을

모신 거룩한 성소(聖所)라는 인식과 함께, 다른 모든 사람들도 한울님을 모신 신령하고 거룩한

존재라는 인식을 낳았다. 이런 몸의 중시와 시천주의 인식의 확대는 인간 개체에 대한 중시로 발전하여

개인 하나 하나가 상하귀천에 관계없이 모두 한울님을 모신 거룩하고 평등한 존재라고 인식되었다.

그래서 수운은 득도 후 곧바로 몸종 둘을 해방시켜 한 사람은 수양딸로 한 사람은 며느리도 맞아들였다.

이것이 이후 해월에 가서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정신으로 구체화 되었고,

이것이 다시 동학농민혁명의 등불로 타올랐던 것이다.

 

시천주 개념이 정립됨으로써 비로소 동학은 전통사상, 서학과 차별성을 띠게 되었고 그 정체성을 찾았다.

수운은 이 시천주 사상을 통해 이기심에 빠진 당시 사람들에게 참된 인간의 길은, 본래 인간의 내면에

모셔져 있는 거룩하고 신령한 한울님을 나의 삶의 주체로 모시고 섬기는 삶임을 밝혔다.

그것은 단지 외재적인 한울님에게 의존하는 타력적인 신앙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신령성과 신성,

또는 본성을 회복함으로써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길이었다.

 

그런 점에서 시천주는 천인관계를 새롭게 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진정한 경천(敬天),

참된 인간의 도리(길)는 내 안에 있는 한울님을 발견하고, 그 한울님을 부모처럼 모시고 섬기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혔던 것이다. 이는 다른 종교전통에서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이것이 모든 보편종교의 창시자들이 직접 체험했던 영성의 중핵이었을 것이었으나

이후의 제도적 종교로 전개되면서 퇴색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수운이 다시 살려내어 동학의 가장 핵심적인 사유로 명시했다는 데

'시천주'사상의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 김용휘 저, 49일 수련 자료집에서 발췌한 내용 -

 

 

 

 

 

 

  떠나온 날의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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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천도인들의 전통 수련 중 하나인 "49일 동계 수련"의 현장에 다녀왔다.

정확히 말해 49일의 시작점인 일주일간의 수련에 참여한 것.

 

 

지기금지원위대  강        시 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至氣今至願爲大  降        侍 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새벽부터 밤중까지 수련의 주된 핵심 내용인 즉,

 강령주문(降靈呪文)과 본주문(本呪文)으로 이루어진 위 주문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

 

천도교 경전인 "동경대전(東經大全)의 내용 중 논학문(論學文) 정도야

이 땅에 사는 사람이면 한번쯤 일독을 하는게 상례요, 나 또한 그들 중 하나일 터.

 

신통한 점은

그저 그렇게 읽어내릴 때는 한낱 책이었건만,

 발끝을 감추는 이른바 평좌장족(平坐藏足)에다 허리까지 곧추세우자니 

글씨 한 자 한 자가 주먹 크기로 다가오며 감흥이 절로 일더라는 사실.

 

언감생심, 강령 체험에 까지는 미치지 못 했지만

모처럼 목청을 돋구어 주문을 반복했더니 내 의지완 상관 없이 가끔씩 몸이 움찔 움찔.

 

하지만 이치를 알아야 수심정기(守心正氣)도  심화기화(心和氣和)도 내 것이 될게 아닌가?

몸공부, 마음공부, 성품공부, 이른바 성심신 삼단의 공부를 녹여내야 한다는 사실만 통감할 뿐.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수도로 특징지어진다는 동학천도의 세계.

초짜 수련생의 횡설수설에 부디 많은 질책 있으시길... 

 

 

 

 

 

Thanks To Life - Ernesto Cortaz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