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축제·전시·공연

토크 콘서트 지금, 윤상원 with 황지우

윤상원 열사 기념사업 준비를 위한 토크 콘서트

지금, 윤상원 with 황지우

 

기획 : 이현숙 (광산구 문화기획 전문위원)

 

일시 : 20011. 12. 16(금) 오후 7시 

장소 : 광산문화예술회관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 570-1번지에 소재한 윤상원 열사의 생가.

 팔순의 부모가  열사의 혼으로 스러져간 아들의 흔적을 지금껏 애닯게 지키고 있다.

 

 

 

 

영혼 결혼식으로 맺어진 윤상원과 박기순 열사의 추모비

 

 

 

 

 

 

 

 

어떻게 살것인가...

 

.... 내가 이 조국을 위해서 무엇을 해낼 수 있을 것인지

침울한 밤을 세운 적도 있습니다.

내년에 복학을 하면 어려운 현실과 싸울 작정입니다.

 

(1974년 10월 군복무중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윤 상 원

(1950. 8.19 ~ 1980. 5.27)

 

1980년 5월 27일 새벽, 옛 전남도청에서 복부에 총상을 입고 영면했다.

당시 나이 만30세. 노동자 야학인 들불야학의 교사로 활동했고, 항쟁지도부를 규합하면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죽음의 길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가야만 5. 18 민주향쟁이 '사건'을 넘어

'역사'가 되고, 마침내 승리할 수 있다는 명확한 전망을 가졌던 인물이다.

5. 18 민중항쟁이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의미와 정신을 가장 극적으로 자신의 한 몸에 체현했다는 평을 받는다.

 

/토크 콘서트 팜플릿에서 발췌한 내용/

 

 

 

 

 

 

 

노동자 누이 고 박기순 들불강학의 삶(1957∼1978)

1978년 6월 전남대 교육지표사건으로 강제휴학을 당한 뒤 야학운동이야말로 학생운동의 당면과제요,
광주지역에서의 노동운동의 물적 토대임을 강조한 그녀는 그해 7월 이 지역출신으로 서울지역 대학생 최기혁, 전복길 등과,
그리고 전남대생 나상진, 임낙평, 신영일, 이경옥 등과 함께 노동운동의 새싹을 뿌리기 위해 들불야학을 창립하였다.

그리고 그 해 10월에는 광천공단 내 동신강건사에 입사하여 노동자가 되었다.
철저하게 노동자가 되고 싶었던 그녀는 광주전남지역 최초의 위장취업노동자가 된 것이다.
그녀는 노동현장에로의 진출을 고집하던 윤상원에게 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들불야학 참여를 수차례 권유한 끝에
마침내 윤상원열사의 들불야학에의 동참을 받아냈다.

대학생으로서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낮에는 공장에서 밤에는 야학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하면서
노동자들이 역사의 주인되는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고 꿈꾼 실천적 지식인이요, 선구적 노동운동가이었다.

하지만 노동운동에 집념을 불태운 그녀는
정작 자신의 자취방에 스며든 연타가스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 땅의 노동자를 위해, 노동세상을 위해 쓰러져 간 박기순은 그녀가 그토록 들불야학에 동참하기를 바랐던
영원한 노동동지 윤상원과 1982년 2월 산자들이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망월묘역에서 영혼결혼식을 올렸다. 

                                                                    <윤상원 민주사회 연구소>

/다음카페 '들불열사기념사업회' 에서 옮겨온 내용/



 

성리학자 고봉 기대승의 혼이 서린  월봉서원 칠송정.

월봉서원 지킴이 강기욱 선생님과 행주기씨 문헌공 종중 총무님과 동행 토크 콘서트 현장으로...

 

 

 

 

광산문화예술회관 로비

 

 

 

윤상원 열사의 부친 윤석동 옹

 

 

 

광산문화예술회관 콘서트 홀 내부

 

 

 

어둠 속, 피아노 연주가 들려오는 가운데

윤상원 열사의 마지막 연설이 자막에 떠오르고...

 

 

 

재즈 피아니스트 JC Clark

 

Taste of zazz 창단(1993)

앨범 : TOJ Live in Seoul, Love's Goodbye, Directions 등

음반세션 : 신승훈, 토니안, 현진영, 나훈아, Lisa 등

(현) Taste of zazz 리더

 

 

 

사회 : 윤 난 실

 

제4대 광주광역시 의회 의원

MBC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시선집중 광주' 진행

5. 18 기념재단 기획위원

(현) 들불열사기념사업회 부이사장

(현)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

 

 

 

 

나 명 관

 

들불야학 1기 졸업생

5. 18 당시 광천공단 노동자로 투사회보팀 활동

(현) 투원여행사 대표

 

 

 

 

최후의 만찬에 관하여...

 

 

 5.18 당시 윤상원과 함께하며 겪었던 내용을 특유의 질펀한 전라도 사투리로 증언하는 나명관.

 

도청에서 '최후의 만찬'이라는 명목으로 제과점 빵과 음료수 등을 보내왔는데.

 

"아니  마지막이라면서 겨우 빵이라니? 밥이라면 또 몰라도..."

 

 

 

황지우 교수와 윤난실 의원 오수성 교수와의  이른바 삼색토크

 

 

 

사회자의 질문이 시작되고...

 

 

 

오 수 성  

 

전국민주화교수협의회 공동대표

전남대 5. 18 연구소장

한국임상심리학회장

(현) 전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현) 전남대 심리학과 부설 심리건강연구소장

 

 

 

 

5월 광주와 트라우마의 치유에 관한 내용으로 말문을 열어가는 오수성 교수.

 

지금까지도 5. 18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그 충격을 넘어서지 못하고 자살로 이어지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에 대한심리학적 분석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토크 콘서트에서의 대담 내용과,  언젠가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그의 글 내용이

일맥상통하다고 여겨지기에 일부를 여기 옮겨 보기로 한다.

 

"광주 오월의 아픔은 그들에게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가? 많은 의문이 꼬리를 문다.사람들은 통상

역사적 사건 자체에만 관심을 갖고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실제 어떤 신체적·심리적 고통을

받고 있는지에는 별 관심이 없다. 5·18에 대해서도 정치적·역사적 의미에는 관심을 둔다.

그러나 항쟁의 주역들이 당시 겪은 충격적인 경험들이 심리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 후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세월이 지나면 사건 자체만 남고 당시의

사람들은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개인이 겪는 급격한 환경적 변화, 신체·정신적 위해는 개개인에게

심리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후의 삶에도 지장을 준다. 그러한 의미에서 5·18은 이를 직접

경험한 사람들에게 심리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현장 경험,

이유 없이 두들겨 맞은 경험, 어디론가 끌려간 경험, 고문을 당한 경험, 체포되어 사건 조작으로 수감된

경험,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 감시를 받았던 경험 등은 개인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 경험들을 고통스럽게 회상하며 반복적으로 악몽에 시달린다. 과도하게 사람을 경계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며 정서적으로 위축된다. 또한 우울에 빠지고 허무감에 사로잡혀 세상을 살기 싫어하기도 한다.

이것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한다.지난해에 5·18 민주 유공자의 심리적 후유증을 조사하였다.

00년 세월이 지났으니 어느 정도 그들의 심리적 고통도 가라앉았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였다. 5·18 민주 유공자 셋 중 한 사람꼴로 아직도 외상후 스트레스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 정도는 정치적 탄압을 피해 망명을 한 난민, 고문 피해자, 그리고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의 외상후

스트레스에 버금갈 정도로 심각하였다. 이는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의 심리적 충격이 생생한

현실처럼 잊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들이 경험한 고통스러운 기억의 상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으로 고스란히 각인되고 있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세월이 지나 만성화한 것이다.

 5·18로 말미암아 아직도 그들이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면 정신건강을 회복하도록 돕는 전문적

클리닉이 필요하다. 이 클리닉은 5·18 당사자의 심리적 고통뿐만 아니라 고문 등의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아 외상후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들의 아픔도 치유해야 할 것이다. 국가폭력이 얼마나 잔인하며

개인에게 얼마나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게 하여야 한다. 5·18을 망각보다는 기억으로 풀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래야만 광주 오월은 또다른 자리매김을 할 수 있다."

 

 

 

황 지 우

시인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가 교수

 

광주의 5월이 시인으로 나서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고 고백한다.

시인의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에 실린 시 "묵념 5분 27초"는 제목만 있다.

제목 아래 백지 전체가 큰 울림으로 퍼진다. 5월 광주로 기울었던 시인의 정서가 詩 '윤상원'을

'오월의 신부'를 그 외 수많은 5월을 낳았다. 심험과 풍자, 놀라운 서정성으로 동 시대인을 사로 잡았다.

1997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중, 2006년 3월에 4년 임기의 총장에 임명됐으나

2009년 5월 문화체육관광부의 표적감사로 인해 총장직에서 사퇴했다. 교수직마저 박탈했으나

재판에서 승소해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토크 콘서트 팜플릿 내용/

 

 

 

 

       [詩] 윤 상 원

                                황지우

 

워메, 강옥이, 배가 이상하네, 배가,
음, 으으으흠, 내 배를, 흑! 지나갔어,
뜨거운, 숙명, 어떤, 일생이, 무쟈게 큰, 죄악이,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나를 통과,
통과, 관통했네, 강옥이,
글고, 양현이,
손 한번, 잡세,
왜 이리, 먼가, 자네들, 화약의 손들, 내가,
저 빛 터지는 창으로, 내가,
완전연소된 삶으로, 막 빠져나가려 하네,
내 몸은 지금, 연기, 냉갈 같네, 자네들이,
무장무장, 멀리 보여,
달아 오른 총구에서, 빠져나가는, 내 혼처럼,
내 혼의 번개불 같이, 자네들, 곧 오게, 오겠지만,
사방이 왜 이리, 갑자기, 고요한가, 양현이,
바깥은 정전인가,
바깥은, 지금, 몇 시쯤 되는가,
바깥은, 살아 있는가,
강옥이, 최초로 보는, 허공이, 보이네
새벽을 앞 둔, 저 청정 허공, 지난 겨울,
자네들이랑, 무등산 중봉, 눈밭에서, 보았던,
새벽을, 앞 둔 그, 허공, 그 예감의 빛 속으로, 가네
나, 불화살 한 촉으로 저, 허공으로,
날아가는 동안도 온몸, 타지면서 날아,
날아가네, 날아가, 이 세상,
어느 들에 다시 떨어져,
나, 윤상원이, 글고, 자네, 자네,
우리, 들불로 번지세,

 

우리, 번개 치세,
우리, 다시 하세, 다시 살세,
좀 있다 보세.

 

 

 

오월의 신부

 

                                 - 황지우 -

 

죄없는 누이야, 네가 쓰러지면서 열어버린 문,

문 밖에서, 너를 보낸 사람들은 울부짓지만

네가 연 문으로 새 하늘이 들어오고 있구나.

여기 울부짓는 사람들이 너를 묻는 망월(望月)에 곧 배 닿으리니.

하얀 누이야, 거기 조각달 배 기다렸다 새 하늘로 오너라.

우리가 연 새 하늘 아래 단 하루를 살더라도

단 하루를 살다 가더라도 우리가 만든 기쁜 세상으로 오너라.

 

............

 

빛이 면사포를 쓰고 창가에 서있던

오월의 신부여! 우리, 눈부신 광주의 누이여!

저 바람재 푸른 새벽을 간직한

붉은꽃 화관, 그대 이마에 얹지노니

먼 훗날 바람이 불어 바람꽃 피면

남쪽으로 뻗은 비단길, 금남로(錦南路)에 뿌린 우리의 피.

우리가 눈뜨고 맞은 이 새벽의 피묻은 말들 전하라, 전하라.

 

............

 

하여, 우리가 이 새벽에 쏟아낸 피, 불꽃되고 빛 되시라!

그리하여 먼 훗날 넋나간 이 역사 믿을 수 없는 역사가

멍한 잠에서 깨어났을 때 혹시 아는가? 눈에 띄는

이 새벽의 이름들, 불멸의 광채로 깜빡거리고 있을지를.

 

 

 

 

 

 

 

 

김 원 중 

 

2010년 3월부터 매월 빵 만드는 공연 '김원중의 달거리' 진행

(현) 광산구 투게더광산 홍보대사. 우리겨례하나되기운동본부 홍보대사

 

 

 

* 그대 오르는 언덕 

故 문익환 목사님 추모곡

  

* 직녀에게

문병란 詩 . 박문옥 작곡

 

 

 

김 광 복

 

즉흥 연주  /윤상원/  아노 JC Clark

열사의 고귀한 뜻을 기리는 내용의 피아노 재즈곡

 

광주 시립국악관현악단 단장

전북도립국악관현악단 단장

(현) 전남대학교 교수

(현) 아시아민족음악교류협회 이사장

(현) 빛고을국악관현악단 단장

 

 

 

 

대금과 소금을 위한 연주  /그리/ 작곡, 대금, 소금 김광복 / 피아노 JC Clark

열사의 소금(당적) 부는 모습을 연상하면서 연주

 

 

 

피리와 피아노의 어울림  /신명/

작곡, 피리 김광복 / 피아노 JC Clark

 

 

 

4인의 토크

 

 

 

 

황지우 -  "아직까지 광주 그 어떤 곳에도 윤상원路 하나 없다.

전남대 구내 역시 마찬가지이다."

 

 

초대손님 민형배 광산구청장

 

1961년 생.  1979년 전남대 사회학과 입학. 석사. 박사.

전남일보 사회부 기자. 참여자치21 대표. 전남대 연구교수.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관 등으로 일했다.

 

 

 

 

 

 

아래는 광산구보에 실린 "5. 18과 자치공동체" 라는 제하의 내용으로

민 구청장의 5. 18에 대한 인식과 의중을  볼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서 여기 옮겨 본다.

 

 

 

 

 

 

 

 

 

내년엔 윤상원 열사의 생가를 새롭게 단장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수완지구에  ‘윤상원 공원’ 을 조성할 계획입니다.

 

 

 

황교수와 오교수와의 대담을 끝으로 사회자가 토크 콘서트를 접으려는 순간,

초청자 중의 한 사람인 나명관 대표가 발끈하며 사회자의 멘트를 저지하고 나선다.

 

"아니, 나를 초청해 놓고 내 말은 한 마디도 듣지않고 자리를 끝내분다고요...? "

 

출연자와 관객 모두의 폭소가 터져나오는 가운데

윤상원 열사와의 끈끈함과 사상적 유대감에 대한 이런저런 자신의 소고를 거리낌 없이 펼쳐 놓으니

일순 관객의 박수가 우렁차게 터져 나오고 있었다.

 

 

 

콘서트의 피날레 광산구립혼성합창단

 

지휘 편곡 정유하 / 단무장 심도섭 / 반주 정훤희

 

 

 

상록수 

 

김민기 작사 작곡

 

 

 

광야에서

 

문대현 작사 작곡

 

 

 

관객과 연주자 모두가 함께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

 

백기완 詩 황석영 작사, 김종율 작곡

 

 

 

사진 촬영과 담소의 시간

 

 

 

 

 

 

 

 

 

 

 

 

 

 

 

 

 

 

 

*******************************************************************************************************

 

 

 

 

"윤상원 열사 기념사업 준비를 위한 토크 콘서트 지금, 윤상원 with"

 

 기나긴 제호아래 펼쳐진 광산문화예술회관에서의 토크 콘서트.

 

"아니, 나를 초청해 놓고 내 말은 한 마디도 듣지않고 자리를 끝내분다고요...? "

 

위에서 얘기한 나명관 대표가 사회자의 마무리를 저지하며 내놓은  말씀인 즉.

 

"전후 세대인 내가  한국전쟁을 피상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요즘의 학생들도 5. 18 민중항쟁을 마치 임진왜란 정도의 먼 역사로 이해하고 있습디다."

 

5. 18 최후의 현장, 구 전남도청에서의 최후의 만찬(?)과 급박했던 생사의 순간.

야학 선생님 윤상원과 제자 나명관의 만남과 이별의 운명은 그곳에서 그렇게 갈렸으리라.

 

긍정적인 심성의 소유자여서 일까? 얼핏 시니컬한 웃음으로 넘어가는 듯 보이지만

나는 안다. 기실 그의 입에서는 피범벅의 냄새가 배어 나오고 있음을!

 

박정희 사후, 게엄을 선포하며 등장한 신군부를 보는 순간 어쩐지 예감되는 피비린내.

 내 예감은 현실로 바뀌고 결국 광주는 역사상 유래없는 참혹한 오월이 되고말았다

 

후일담이지만,  소위 5. 18 청문회에 나와 증언한 인물을 비롯,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주요 인물들 여러명이 시골 우리집 식량을 바닥내가며 은거했었다는 사실.

 

31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때의 교훈을 지역에서 일어난 작은 소란쯤으로 치부하다 못해

 심지어는 애써 빨간색까지 덧 칠해가며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광분하는 세력들.

 

민주가 어떻고 정의가 어떻고 떠들곤 있지만, 정작 그들을 표로 심판하지 못하는 암담한 현실.

그렇다면 "토크 콘서트 지금, 윤상원"이 과연 그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인가?

 

국민 대다수의 의식이 깨어있지 못하는한 진정한 민주사회의 도래는 요원할 터.

그런면에서 오늘의 토크 콘서트는 매우 유익한 방법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80년 5월 민주항쟁을 두 눈으로 똑똑히 기억하는 나.

가끔 한 번씩 자문자답 해본다.

 

"내가 만약 시민군에 합세 했더라면 내 운명은 과연 어떻게 진행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