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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철화백자 17세기

백자철화매죽무늬항아리(대나무 부분), 17세기, 높이 36.9cm, 보물 1425호, 개인 소장

 

 

1592년의 임진왜란과 1597년의 정유재란은 조선왕조의 사회기반 시설을 송두리째 파괴하였다.

관에서 운영하는 관장제官匠制 수공업들은 전란 중에 거의 무너졌다. 이에 나라에서는 전후 복구

사업으로 종이를 만드는 조지서造紙署와 어용 자기를 생산하는 사옹원의 분원만은 빠른 시간

내에 재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분원은 사기장 동원이 제대로 되지 않고

백토를 비롯한 물자 공급도 원할하지 않아 운영이 어려웠다. 

 

 

좌) 백자 '갑신좌(甲申左)' 명도편, 1644년, 굽지름 9cm, 경기도자박물관 소장(이상기 기증품)

우) 백자 '을유우(乙酉右)' 명도편, 1645년, 굽지름 6.7cm, 경기도자박물관 소장(이상기 기증품)

 

 

임진왜란 발발 무렵에 있던 정지리 가마는 전란을 그대로 반영하듯 백자의 색깔이 회색빛을 띠고 있으며

이후 여러 곳으로 이동하다가 병자호란 이후인 1640년(인조 18)에 선동리(1640~1648)에 가마를 열면서

비로소 안정을 되찾았다. 때문에 정지리 가마에서 선동리 가마로 이어지는 17세기 전반 50년간 도편들을

보면 태토와 유약의 상태가 좋지 않아 빛깔이 회색을 띠고 있다. 또한 정성을 들인 갑발 번조가 드물고

굵은 모래받침으로 포개서 굽는 이른바 오목굽의 상사기常砂器 도편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백자톱니무늬제기, 17세기 중엽, 높이 16.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640년(인조 18)에 개설된 선동리 가마는 조선 중기 가마의 획기적인 전기를 이루었다.

도자기의 질이 전보다 월등히 좋아져 백자의 빛깔이 회백색으로 맑은 빛을 띠기 시작하였다.

조선 중기 순백자의 상징으로 지목되고 있는 담백한 멋의 <백자톱니무늬제기>는 선동리

가마의 전형적인 예이다. 그러나 값비싼 회회청은 수입해 오지 못하여 청화백자는

만들지 못했고, 이를 대신한 철화백자를 적극적으로 제작하였다.

 

 

 

백자태항아리 일괄(명안공주), 1670년 무렵, 외항아리(오른쪽) 높이 30.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자의 질은 이후 신대리 가마(1665~1676)에 이르러 더욱 좋아져 백자의 빛깔이 마침내 회백색에서

유백색으로 바뀌기 시작하였고 기형도 둥근 형태의 원호圓壺가 등장한다. 17세기 태항아리 중 명작

으로 꼽히는 현종顯宗(1641~1674, 재위 1659~1674)의 셋째 딸인 명안공주明安公主(1665~1687)의 

<백자태항아리 일괄>은 신대리 가마에서 제작되어 1670년(현종 11)에 안장된 것이다.

 

이후 백자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숙종 연간의 오향리 가마(1717~1720)에 이르면 자못 왕성한

활기를 보여주게 되었다. 숙종 대에는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도자기 생산을 위한 분원 제도의

개혁론이 일어났다. 하나는 사기장을 3교대로 동원하는 부역제를 전속 고용제로 전환하는

안이었고 또 하나는 계속해서 옮겨 다니는 분원을 한 곳에 정착시키는 분원 고정론이었다.

 

결국 이 두 가지 혁신안은 모두 실현을 보게 되어 1697년(숙종 23) 무렵에는 전속 고용제가

실행되었고, 분원은 1721년(1726년이나 1734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에 개설한 금사리 가마에서

약 30년을 머물렀다가 1752년(영조 28)에 분원리에 정착하였다. 이로써 조선왕조의 분원 도자는

전례 없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시대 도자사는 숙종 연간까지인

18세기 초까지를 중기, 18세기 금사리 가마 이후를 후기로 설정하고 있다.

 

 

 

《세종실록》 <오례의>의 백자청화주해

 

 

조선 전기 백자의 상징이 매죽무늬 항아리이고, 조선 후기 금사리 가마 백자의 상징이

달항아리라면 조선 중기 백자의 상징은 철화백자 운룡무늬 항아리이다.

화룡준畵龍樽 또는 용준龍樽이라 불린 이 항아리는 본래 의례 때 사용되는 술항아리로

《세종실록》 <오례의五禮儀>에 백자청화주해白磁靑花酒海라는 이름으로 그림이 실려 있다.

 

 

 

백자철화운룡무늬항아리, 17세기, 높이 45.8cm, 보물 645호,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백자철화운룡무늬항아리, 17세기, 높이 48cm, 개인 소장

 

조선 중기 철화백자 운룡무늬 항아리는 대개 장호로 현재 수십 점 전하고 있는데

크기는 한 자 반(약 45센티미터) 크기의 대호大壺와 한 자(약 30센티미터)

크기의 중호中壺 두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백자철화운룡무늬항아리>(보물 645호)이다.

 

 

좌) 백자철화운룡무늬항아리, 17세기, 높이 30.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건희 기증품)

우) 백자철화운룡초화무늬항아리, 17세기, 높이 39.2cm, 부산박물관 소장

 

백자철화매죽무늬항아리(대나무 부분과 매화나무 부분), 17세기, 높이 40cm, 국보 166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자철화매죽무늬항아리(매화나무 부분), 17세기, 높이 36.9cm, 보물 1425, 개인 소장

 

백자철화운죽무늬항아리, 17세기, 높이 33.2cm, 보물 1231호, 개인 소장

 

좌) 백자철화운룡무늬편병, 17세기, 높이 21cm,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우) 백자철화매화무늬편병, 17세기, 높이 19cm, 개인 소장

 

백자철화매죽끈무늬병(매화나무 부분과 끈 부분), 17세기, 높이 31.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건희 기증품)

 

좌) 백자철채명기 일괄, 17세기, 가마(가운데) 높이 5.4cm, 개인 소장

우) 백자희준, 17세기, 높이 18.3cm, 간송미술관 소장

 

백자청화김수항묘지, 1699년, 높이 21cm, 부산박물관 소장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5 >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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