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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일본 사료 속의 독도


일본 사료 속의 독도




안용복의 깃발

한국 / 안용복 / 17세기 후반 / 일본 오키섬 현립 박물관 소장


안용복은 1693년과 1696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 어부들의 울릉도 출어를 금지시키고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확약을 일본 막부로부터 받았다. 1696년 제2차 도일 때에는 '울릉 자산 양도감세장'이란

 칭호를 사용 하면서 호키주(현 시네마현) 태수와 담판하였다. 이때 안용복이 만들어 사용하였던 깃발인데

 '조울양도감세장 신 안동지 기(朝鬱兩島監勢將臣安同知騎)' 라고 쓰여 있다.







안용복공술조서 - 원록9 병자년 조선주 착안 일권지 각서 元祿九丙子年朝鮮舟着岸一卷之覺書

일본 / 1696년 / 시마네현 오키섬 무라카미 가문 소장


안용복은 1693년에 일본에 1차 도일하여 일본 어부들이 울릉도와 독도에 출어하는 것을 막아 달라고 일본에 항의하여

일본 막부로부터 이를 금지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귀국하였다. 그 후에도 일본 어부들이 계속하여 울릉도에 불법적으로

출어하자 그는 1696년에 제2차로 도일하여 이를 항의하였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였는데 최근에

시네마현의 오키섬에서 「안용복의 공술조서」가 발견되어 안용복의 활동이 확실해졌다.






안용복의 모습

읿몬 / 1696년 / 시마네현 오키섬 무라카미 가문 소장


안용복이 타고 간 배는 쌀 90석을 실을 수 있는 배였으며 돛대가 2개였다. 배에 탄 사람은 11인이었다. 안용복의 모습은

"나이는 43세이며, 관 같은 검은 갓을 썼고, 수정이 달린 줄, 얇은 목면 상의를 입었다. 어리에 패를 하나 찼는데, '통정

대부 안용복 갑오생 동래'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도장과 작은 상자와 귀이개를 넣은 작은 주머니가 달린 부채를

가지고 있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안용복이 호패를 찼고 관복을 입고 있었다는 기록이다.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안용복의 설명

일본 / 1696년 / 시마네현 오키섬 무라카미 가문 소장


안용복은 민간인들에게는 소지가 금지된 조선팔도지도를 가지고 갔으며 그 지도를 보고 울릉도인 죽도와 독도인 송도에

대해서 일본측에 자세히 설명하고, 두 섬이 조선의 영토임을 강조하며 일본 어부들의 출어를 막아 달라고 기록되어 있다.

안용복은 "죽도는 대나무 섬이라고 하며 조선국 강원도 동래부 내의 울릉도라는 섬인데 팔도지도에 그렇게 쓰여 있고,

송도는 같은 강원도 내의 자산(子山)이라는 섬이고 팔도의 지도에 쓰여 있습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독도 항해금지 대형 경고판

일본 / 1839년 시마네현 하마다 향토자료관 소장


1839년 2월 나무로 만들어진 이 경고판에는 "하지 우에몬이라는 사람이 다케시마(竹島)로 도해한 사건을 엄밀히 조사해 우에몬과

그 외 사람을 처형했다. 다른 나라도 도해하는 것을 금지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배와 만나는 것도 엄하게 다스린다." 고 기록되어

있다. 안용복의 제2차 도일이 있은 후에 일본의 막부는 일본인들의 울릉도와 독도 항해를 금지시켰다.

이를 어기면 처벌하겠다는 대형 경고판이다.






  


은주시청합기 隱州視聽合記

일본 / 사이토 호센 / 17세기 / 16.2×23.6cm / 국립중앙도서관


일본 관리인 사이토 호센이 도주의 명을 받고 오키섬을 시찰한 후 보고 들은 바를 기록하여 보고한 보고서이다.

일본의 사료 중 독도에 관해서 처음 기록된 내용이다. "오키섬 서북쪽에 송도와 죽도가 있는데 이 두 개의 섬들로부터

고려를 보는 것은 마치 운슈(雲州)에서 오키섬을 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본주의 서북경계는 오키섬으로 끝이 난다."

기록하여 독도와 울릉도가 한국 땅임을 분명히 하였다.







울릉도 도항금지 건의문  鬱陵島渡航禁止建議文

읿몬 / 이노우에 가오루 ? 1882 / 독도박물관 소장


1882년 12월 16일 일본 외무성 대신인 이노우에 가오루가 일본인들의 울릉도 도항을 금지시키고 이를 위반한 사람은

처벌하자는 내용을 태정대신에게 올린 건의문이다. 이는 조선 정부가 이규원을 울릉도에 파견하여 일본인들의

불법적인 행동을 파악하고 일본 정부에 강력히 항의한 결과이다.







독도 지적편찬 문의 獨島地籍編纂問議

일본 / 내무성 / 1877년 / 일본국립공문서관 소장


일본은 근대 국가로 발전하면서 전국을 측량하여 지적도를 작성하려고 하였다. 그 과정에서 내무성에 시마네현으로부터

질의서가 들어 왔는데 그 내용은 죽도(울릉도)와 그 밖의 또 하나의 섬인 독도를 시마네현의 관할 구역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물어 왔다. 내무성이 이를 조사하여 1692년 안용복이 입도하여 항의한 이후에 한일 간에 왕복한 문서를 검토한 결과

두 섬은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 한국의 영토임을 분명히 알았다. 그러나 지적을 조사하여 일본의 판도(版圖)에 넣을까 뺄까는

중대한 사건이므로 내무대신은 태정관에게 최종 결정을 요청하는 문서를 보냈다. 이 문서는 내무대신을 대리하여

내무부 차관이 국가 최고기관인 태정관 이와쿠라 도모미에게 보낸 분서이다.






독도 지적편찬에 관한 태정관 답신 獨島地籍編太政官答申

일본 / 내무성 / 1877년 / 일본국립공문서관 소장


앞서 제시된 내무성의 공문서를 접수한 국가 최고기관인 태정관은 이를 검토하여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가 없다."

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내무성에 지시하였다. 내무성은 다시 시마네현에 지령하여 "두 섬이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 한국의 땅"

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공문으로 지시한 내용이다. 1877년에 메이지 정부는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한국 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환영수로지寰灜水路誌  제2권

일본 / 해군수로국 / 1883년 / 21cm / 독도박물관 소장


1883년 일본 해군수로국에서 발행한 수로지이다. 환영(寰灜)이란 '세계' 라는 뜻으로 환영수로지는 세계수로지를 말한다.

제4편의 '조선동안(朝鮮東岸)' 부분에서 독도를 '리앙코 암'으로 표기하고 울릉도와 함께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두 섬이 한국의 영토라고 일본도 인정한 것이다.









조선수로지朝鮮水路誌 제2권

일본 / 수로부 / 1899년 / 21×29.5cm / 독도박물관 소장


일본은 조선수로지와 일본수로지를 구별하여 간행하였는데 이 소로지는 1899년에 일본 수로부에서 간행하였다.

제4편 '조선동안' 에서 돋고를 리앙코 열암(Liancourt rocks)이라고 표기하고 그 외에도 영국 배나 러시아 배가

이 섬을 발견하고 각각의 이름을 붙였음을 소개하며 한국의 영토로 인정하고 있다.







독도를 시마네현으로 편입하자는 내무성 건의문

일본/ 내무대신 가가와 아키마사 / 1905년 / 29.5×19.5cm / 독도박물관 소장


독도를 독점적으로 사용하도록 해 달라는 일본인 나카이 오사부로의 '대하원(貸下願)'을 접수한 내무성이 1905년 1월

10일자로 내무대신 명의로 내각총리에게 보낸 문서이다. 독도를 불법적으로 시마네현에 편입하여 달라는 청원문서이다.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하라는 내각 지시문

일본 / 내각총리대신 / 1905년 / 29.5×19.5cm / 독도박물관 소장


1905년 1월 10일자 내무성의 청원문을 검토한 일본 내각은 독도가 "어느 라라도 이 무인도를 점령했다고 인정할

형적(形跡)이 없고 일본의 나카이가 이 섬을 경영한 흔적이 있으므로....." 라고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

이름을 붙이고 시마네현의 관할에 두겠다고 불법적으로 결정하였다.








    


시마네현 고시 40호

일본 / 마쓰나가 부키치 / 1905년 / 독도박물관 소장


1905년 2월 22일자로 독도를 불법적으로 일본 영토로 편입한다는 시마네현 지사 마쓰나가 부키치의 고시문이다.

"북위 37도 9분 30초, 동경 131도 55분, 오키섬과의 거리는 서북쪽으로 85해리 떨어져 있는 섬을 죽도(竹島)라

칭하고 이제부터 본현 소속ㄷ 오키도사의 소관으로 정한다"는 내용이다.

일본의 문서는 대부분이 필사본인데 이 문서는 활자본ㅇ으로 된 점으로 미루어 후에 제작된 문서일 것이다.





   


조선수로지朝鮮水路誌 제2개관

일본 / 수로부 / 1907년 / 21×29.5cm / 독도박물관 소장


이 수로지는 1907년에 일본 수로부에서 간행하였다. 제5편 '일본해 및 조선동안'에서 독도를 죽도라고 표기하고

명칭 설명에서 "한인(韓人)은 독도(獨島)라고 쓰며 일본 어부들은 리앙코 섬이라 부른다." 고 하였다.

독도를 시마네현에 불법적으로 편입시킨 후 2년이 지났는데도 독도를 『조선수로지』에 수록한 것은

 일본도  여전히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신지리韓國新地理

일본 / 다부치 도모히코 / 1908년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908년에 다부치 도모히코가 우리나라의 지리를 지문지리(地文地理), 처지(處地) 등으로 나누어 기술한 지리책이다.

제3편 처지(處地) 제5장 강원도에서 울릉도를 설명하면서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30리 떨어져 있고 일본의 오키섬과

사이에 있는 무인도를 리앙코 섬이라고 한다." 고 소개하여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섬이라고 밝혔다.

최신조선지지最新朝鮮地誌

일본 / 니칸소보 편 / 1912년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우리나라 지리를 자연지리, 인문지리, 각 도지리로 나누어 서술하였다. 제1편 '자연지리' 제10장 '도서'에서

울릉도를 설명하고 그 부근에 '리앙코 섬'이 있다고 설명하여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보았고 두 섬을 한국의 영토로 분류하였다.


● 인용서적 : 이상태 著 『사료가 증명하는 독도는 한국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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