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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축제·전시·공연

운조루에 펼쳐진 동편제 춘향가

운조루 문화마당  김소현 동편소리


일시: 2010년 7월 13(토) 오후 7시

장소: 구례 운조루 사랑채




어둑해지는 시간, 금환락지(金環落地)로 널리 알려진 고택 운조루에 당도합니다.




 


오늘 행사의 초청자이신 다락방(茶樂房) 대표 designer 허재용 선생(오른편)과의 만남.
















오늘 소리마당의 주인공 김소현 명창을 응원하기 위해 운조루에 납시신 소리꾼 모녀와의 만남.







 박정선 명창은 제36회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 대통령상 판소리 명창부 장원을 수상한 인물로

 동편제의 진성(眞聲 )을 득한 여장부. 따님 새아양 역시 대학에서 판소리를 전공했으며

소리꾼 부부의 딸 답게 한마디로 소리가 짱짱한 재원입니다.










양귀비가 그토록 사랑했다는 유성류나무가 꽃을 활짝 피워낸 모습

유성류 나무는 일 년에 두 번씩이나 꽃을 피워내는 독특한 식생의 나무로 중국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이 유성류나무 옆에 준수한 백매(白梅) 한 그루가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그루터기만 남았습니다.






고택에서의 음악회, 그것도 판소리 마당이라...! 엄청시런(?) 감동이 기대됩니다.











선비의 집이라면 모름지기 유성류나무 한 그루 쯤은 꼭 있어야 하는 법.






너울너울 부드러운 잎새에다 가지의 휨새까지 더해져 묘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유성류나무.






고택 운조루의 상징 '타인능해(他人能解)' 쌀 뒤주.






왕원추리가 소담스레 피어난 안채 장독대






사랑채 누마루에 좌정한 경향각지의 귀명창 여러분들.






드디어 대문 빗장을 지르고 유장한 소리마당이 펼져집니다.




































오늘 소리마당의 주인공 김소현 명창의 따님 새아양이 진행을 맡아 추임새 등에 관하여...





















앞 날이 더욱 기대되는 이시대의 젊은 소리꾼 새아양.











드디어 오늘의 소리마당 주인공 구례판소리문화학교장 김소현 명창께서 등장.






이런 저런 사설로 관객과의 소통이 이어진 다음...






본격적인 소리마당에 앞서 단가 두어 곡으로 목을 정리하십니다.
















  백진앙 선생님께서 뒤풀이 자리에서 새아양의 소리를 들으시더니만

 앞으로 외국 공연에 초청하시겠답니다.






고수(手)와 창자(唱者), 양수겸장(兩將)의 무대를 빛낼 항목은

이시대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춘향가春香歌> 몇 대목.







 진양조를 시작으로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에 이르는 판소리의 다양한 변화.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종합예술이 아닐 수 없습니다.






후텁지근한 날씨인지라 목이 타시는 듯.






판소리에 관한 최고(最古)의 문헌은 조선 영조 30년 유진한(柳振漢)의 ≪만화집 晩華集≫의

<춘향가>를 넘지 못하지만, 판소리가 재인 광대들이 벌이는 판놀음에서 여러 놀음 틈에 끼여 한 놀이로

구실을 하던 것은 훨씬 거슬러 올라갈 것으로 짐작된다는 판소리 연구자들의 전언.











판소리 최고(最古) 명창으로 이름이 전해지는 이는

영조∼정조 때 우춘대(禹春大) 및 하은담(河殷譚)·최선달(崔先達) 등이 있다는데 

정작 이들의 판소리 음악사 자료는 남아 있거나 전해지는 것이 없는지라 그저 안타까울 뿐.






순조 무렵에 이르러 권삼득(權三得)·송흥록 · 염계달 · 모흥갑 · 고수관 · 신만엽 · 김제철 · 황해천(黃海天)·

주덕기(朱德基) · 송광록 · 박유전 · 방만춘(方萬春) 등 뛰어난 명창들이 나와서 판소리 발전에 공헌하게 된다.






판소리의 문학적 특질


판소리 사설의 기본 골격은 거의 대부분이 전승설화 등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판소리사의 전 과정을 통해 창자들은 전승적 이야기의 골격을 근간으로 하여 그 중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을 확 장· 부연하는

방식으로 사설을 발전시켜 나아갔다. 이렇게 기존 전승에 첨가된 문학적·음악적 새로움을 가진 창작 부분을 ‘더늠’이라고 한다.

 현전하는 판소리는 이들 더늠이 무수히 집적된 결과라고.


 따라서 판소리는 이야기 전체의 흥미나 구성의 긴박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각 대목·장면을 확장하면서 부분적인 흥미와 감동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판소리에서 앞뒤의 내용이 잘 맞지 않거나 때로는 뚜렷이 모순되기까지 하는 일이 흔히 있는 것은 이러한 까닭에서이다.

그러면서도 판소리는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서사적 구성원리를 가지고 있다.


비장한 대목과 골계적(滑稽的:익살스러운)인 장면, 재담을 교체적으로 배치하여 청중들을 작중현실에 몰입시켰다가

해방하는 것과 같은 일련의 방식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정서적 긴장과 이완이 반복됨으로써 얻어지는 효과는

 매우 특이한 심리적·미학적 의의를 가지는 것으로 해석된다.








판소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매우 다채로울 뿐 아니라 각별히 생생한 입체감과 현실성을 띠고 있다.

판소리에서 설정되는 사건 공간은 대개 당대의 생활현실이거나 그 우화적(寓話的)인 투영이며,

이 속에 움직이는 인물들 역시 허구화된 재자가인(才子佳人)이 아니라 당대의 현실상을 반영하는 범인적(凡人的)인 존재들로 나타난다.

판소리에서는 비록 우월한 능력을 갖춘 선인(善人)이라 해도 완벽한 영웅상으로 그려지지 않고,

흔히 풍자·희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부정적인 인물들이라 해서 철저한 악의 표상으로만 그려지지는 않는다.


아울러, 방자(房子)·애랑(愛娘)·정욱(程昱)·매화(梅花) 등 봉건적 예속관계 아래 있으면서 상전의 위선과 약점을 폭로하고 희롱하는

장난꾼의 존재들이 발달한 점과, 평민층의 인물 군상(群像)들이 생생한 구체성을 띠고 살아 있다는 사실도

 판소리의 인물형에서 주목되는 특징.







판소리 사설은 운문과 산문이 혼합된 서사문학인데다가 여러 계층의 청중들을 상대로 하여 누적적으로 발달한 까닭으로

 문체와 수사(修辭)가 매우 다채롭다. 그 속에는 전아(典雅)한 한학(漢學) 취미의 대목이 있는가 하면 극도로 익살스럽고 노골적인

욕설과 속어가 들어 있으며, 무당의 고사나 굿거리 가락이 유장(悠長)한 시조창과 나란히 나오기도 한다.


이 밖에 민요·무가·잡가·사설시조·선소리·십이가사 등 각종 민간가요가 삽입가요(揷入歌謠)로서 판소리 속에 다수 채용되어 있다.

 판소리 문체의 특징적 현상으로는 ‘문체의 분리’라는 경향성을 지적할 수 있다. 문체의 분리란 등장인물의 신분·성격·분위기·

서술자의 태도 등에 따라 문체가 판이하게 바뀌는 현상인바, 판소리에서는 장단(長短)·조(調)의 빈번한 교체와 함께

문체면에서도 이러한 변이가 나타난다.


 존귀하고 품위 있는 인물이 등장하는 대목에서는 음률이 우아할 뿐 아니라 사설 역시 많은 한문구(漢文句)와 전고(典故)를 담은

장중한 문체로 된다. 반면에, 신분이 낮거나 비속한 인물 및 풍자적 대상이 등장할 때, 그리고 반드시 부정적인 인물은 아니더라도

 희극적 맥락에서 다루어질 때 그 문체는 소박하고 발랄한 평민적 속어의 색채를 띤다.







판소리의 사회적 성격 및 판소리에 투영된 사회의식은 판소리사의 전개과정에 따라 일정하지만은 않으나,

 창자들 자신이 천민이며 19세기 초 이전까지 평민 청중들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으므로

평민적 세계관과 미의식이 주류를 이루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판소리에 있어서 중세적 윤리의식과 가치질서는 대체로 희극적 조롱의 대상이며, 평민적 경험에 기반한 세속적 현실주의가

 삶의 근본으로 생각되어진다. 다만, 이와 같은 성격은 그 자체가 아직 중세적 세계관을 대체할만큼의 충분한 성숙에 도달하지

못하였던데다가 19세기 초기 이래의 판소리가 양반층의 청중을 주요 고객으로 의식하면서 일부 약화 또는 수정되었다.


그 결과 판소리에는 표면적 주제와 이면적 주제 사이의 갈등이라는 양면성 내지 이원성이 나타나는 예가 많으며,

특히 19세기를 살아 남은 전승 5가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실전된 일곱마당까지를 포함하여 해석할 때 판소리 전반의

사회의식과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탈중세적 현실주의의 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판소리에 관한 연구는 1930년대에 시작된 이래 1960년대까지 문학과 음악 양면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이 시기의 문학적 연구는 판소리 사설과 판소리계 소설을 조선 후기 소설사의 맥락에서 다루는 데 치중하여

여러 이본(異本)에 대한 실증적 연구에 주력하였고, 판소리의 기원·발생·근원설화(根源說話)·장르적 성격이 아울러 논의되었다.












1970년대 이래로는 앞 시기의 문제들을 재론하면서 판소리의 사회적 성격, 서사적 구조, 미의식 등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해석하는 한편, 판소리의 문학적 특질을 현장 연희(演戱)의 입체성과 관련하여 이해하려는 연구 동향이 전개되었다.

판소리의 현장연희적 측면에 관한 연구는 아직 요청적인 과제로 남아 있는 상태이나, 판소리에 관한 문학적·음악적 연구가

상보적(相補的)으로 통합되면서 이에 관한 해명에도 진전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다음 백과 내용 인용 -










밤은 깊어가고 판소리의 유장함도 더해가는 가운데, 

땀에 흠뻑 젖은 명창께서 자세를 바꾸어 지진모리로 넘어 갑니다.







춘향과 도련님과 마주 앉아 놓았으니 그 일이 어찌 되겠느냐. 사양을 받으면서 삼각산 제일봉 봉학 앉아 춤추는 듯 두 활개를 에구붓이 들고 춘향의 섬섬옥수 바드듯이 검쳐잡고 의복을 공교하게 벗기는데 두 손길  썩 놓더니 춘향 가는 허리를 담쑥 안고, "나상을 벗어라." 춘향이가 처음 일일 뿐 아니라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 몸을 틀제, 이리 곰슬 저리 곰슬 녹수에 홍련화 미풍 만나 굼일는 듯, 도련님 치마 벗겨 젖혀놓고 바지 속곳 벗길 적에 무한히 실난된다. 이리 굼실 저리 굼실동해 청룡이 굽이를 치는 듯, "아리고 놓아요, 좀 놓아요." 에라 안될 말이로다." 실난 중 옷끈 끌러 발가락에 딱 걸고서 껴안고 진득이 누르며 기지개 쓰니 발길 아래 떨어진다. 옷이 홀딱 벗어지니 형산의 백옥덩이 이 위에 더할쏘냐. 옷이 훨씬 벗어지니 도련님 거동을 보려 하고 슬금이 놓으면서, "아차차 손 빠졌다." 춘향이가 침금 속으로 달려든다. 도련님 왈칵 쫒아 드러누워 저고리를 벗겨내어 도련님 옷과 모두 한데다 둘둘 뭉쳐 한편 구석에 던져두고 돌아 안고 마주 누웠으니 그대로 잘 리가 있나.

 (「열녀 춘향수절가」26장 뒤 27장 앞)






(······) 하루 이틀 지나가니 어린 것들이 신맛이 간간 새로워 부끄럼은 차차 멀어지고 그제는 기롱도 하고 우수스운 말도 있어 자연 사랑가가 되었구나. 사랑으로 노는데 똑 이 모양으로 놀던 것이었다.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동정칠백월하초에 무산같이 높은 사랑, 목단무변수여천에 창해같이 깊은 사랑 (······) 명사십리 해당화같이 연연이 고운 사랑, 네가 모두 사랑이로구나. 여봐라 춘향아, 저리 가거라 가는 태를 보자, 이만큼 오너라 오는 태를 보자. 빵긋 웃고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도 보자.

 (「열녀춘향수절가」27장 뒤, 28장 앞뒤)





혼신의 힘을 쏟는 창자와 몰입도의 극치를 보이는 관객과의 합일.







······) "네가 그러면 무엇이냐. 날 홀려 먹는 불여우냐. 네 어머니 너를 낳아 곱도곱게 길러내어 나만 홀려 먹으려고 생겼느냐. 사랑 사랑 사랑이야 내 간간 내 사랑이야. 내가 무엇을 먹으려느냐. 생율 숙율을 먹으려느냐. 둥글둥글 수박 웃봉지 "때모장도 드는 칼로 뚝 떼고 강릉 백청을 두루 부어 은저수 반간지로 붉은 점 한 점을 먹으려느냐. "아니 그것도 내사 싫소." "아니 그거도 내사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려느냐." "여보 도련님, 내가 사람 잡아 먹는 것 보았소." " 에라 요것, 안될 말이로다. 어화 둥둥 내 사랑이지. 이 애, 그만 내리려무나 백사만사가 다 품앗이가 있느니라. 내가 너를 없었으니 너도 나를 업어야지." "애고, 도련님은 기운이 없어 못 업겠소." "업는 수가 있느니라. 나를 돋워 업을라 말고 발이 땅에 자운자운하게 뒤로 잦은 듯하게 업어다고."

(「열녀춘향수절가」33장 뒤. 34장 앞)







 7월의 [운조루 문화마당] 이 서서히 마무리되어 갑니다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다! 아먼 그라제! 그라고 말고...!!!






문화마당 참석자들에게 검정쌀 한 봉지 씩이 나누어 지고 모두들 고택을 빠져나갑니다.







운조루 소장 청화백자 운용문 호.












<전라구례오미동가도>, 1800년대 (추정)


<전라구례오미동가도> 1800년대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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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장하고 장중한 지리산 노고단  한 자락이 흘러 내린 곳에 자리한 고택 운조루.

그곳에서 판소리 한 마당이 펼쳐진다는데야 내 어찌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않을 수가...


백진앙 선생님과 일포 선생님을 뫼시고 함께 참석한 "운조루 문화마당"

이 시대의 성자 두 분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아울러  금번 행사를 주관하시고 뒷풀이 자리에다 숙소까지 마련하느라 애써 주신 

허재용 선생님께도 크나큰 감사의 예를 전해 올립니다. 


- 茶泉 心告 -





Morning Air - Band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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