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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가전서화첩

 

 

 

 

 

 

 

애일당구경첩(愛日堂具慶帖) 표지

16세기, 견본담채, 36.9×26.4cm, 보물 제1202호, 농암(聾巖) 종가 소장

 

 

 

 

 

애일당구경첩(愛日堂具慶帖) 무진추한강음전도(戊辰秋漢江飮圖)

1508, 견본담채, 각 28×21.3cm

 

1508(중종3)년 가을 이현보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경북 영천군수로 부임하자 친구들이 한강에 모여 환송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한강변의 정자에서 간단한 전별연을 벌이는 장면과 배 위에서 다시 여러 명이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졌는, 동시에 벌어진 행사라기보다

순차적인 장면을 한 화면에 그리지 않았나 싶다. 그림 뒤에는 김안국(金安國,1478-1543), 이희보(李希輔,1473-1548),

김세필(金世弼,1473-1533) 등 15명의 송별시가 있다.

 

 

 

 

 

 

 

 

애일당구경첩(愛日堂具慶帖)  기묘계추화산양로연도(己卯季秋花山養老宴圖)

1519, 견본담채, 각 27.3×21.1cm

 

1519(중종14)년 9월 안도웁사로 재지하던 이현보가 경내의 80세 이상 노인들을 불러 부정(府庭)에서 양로연을 열어주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날씨는 맑았고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고 하는데, 그림에서도 뒤쪽의 숲에 노란색 담채를 입혀 가을임을 표현하였다. 또 사대부나 천예(賤隸)를

불문하고 남녀 노인 수백 명이 모였다고 하는데, 그림에는 모두 다 표현되지 않았다. 또 기와집 안에는 부인들이 앉아 있고, 장막과 주변에서는

주연상을 받은 남자들이 앉아 있는데, 이는 노부인들이 신분이 높아 우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세부도

건물 안의 노부인들을 위한 연회에서는 기녀들이 비파와 장구 등을 연주하고 있다.

장막 안에서 벌어지는 남자들의 잔치에서는 악인 5명이 기녀들의 뒤에 앉아서 대금 · 비파 세로로 부는 관악기 · 장구 · 해금을 연주하고 있다.

 

 

 

 

 

 

 

 

 

 

 

 

 

 

 

 

 

 

 

 

 

 

 

 

 

 

 

 

 

 

 

 

 

 

 

 

 

 

 

 

 

 

 

 

 

 

 

 

 

 

 

 

 

 

 

 

 

 

 

 

 

 

 

 

 

 

 

 

 

 

 

 

 

 

세부도

 

 

 

 

 

애일당구경첩(愛日堂具慶帖)  병술중양일분천헌연도(丙戌重陽日汾川獻宴圖)

1526, 견본담채, 각 26.8×21.4cm

 

1526(중종21)년 9월9일 이현보가 점마(點馬 :중앙 관리가 지방 마필을 점검함)하러 귀향하여 고향인 분천에서 양친에게 잔치를

 베푸는 광경을 그린 것이다. 분천은 현재 안동시 도산면 부천리에 해당하는데, 그림에 묘사된 지역은 안동댐에 수몰되었다.

강변의 높은 언덕 위와 아래쪽 평지의 장막에서의 연회와 선유(船遊)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림 뒤에는 박상(朴祥)의 서(序)와 <제경연시축(題慶筵詩軸)>등이 있다.

 

연회가 벌어지는 장막 밖에 악사들이 기녀들의 뒤에 앉아 관악기, 장구, 비파로 보이는 악기 등을 연주하고 있다.

연회장 가까이 분천에 띄운 배에서 2명의 여기(女妓)가 춤추고, 두 악인이 각각 대금과 장구를 연주하고 있다.

 

 

 

 

 

 

세부도

 

 

 

 

세부도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書畵帖) 곤(坤) 표지

김중휴(金重休), 1725년경, 조선후기, 지본채색, 각 39×26.5cm, 김윤(金潤) 소장

 

건(乾), 곤(坤) 2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서화첩의 개요에 대해서는 곤첩(坤帖) 끝부분에 실려있는 김봉흠(金鳳欽)의

경제학암종숙제전서화첩후(敬題鶴嵓從叔世傳書畵帖)(1825)에 의해 알 수 있다(또 그 뒤에는 갑자(1864)년에 쓴 여강후인 이재영

(驪江後人 李在英)의 도첩후서(圖帖後叙)가 있다. 여기에 의하면 이 서화첩은 김봉흠의 종숙(從叔) 학암(鶴嵓) 김중휴(金重休)에 의해

석릉세고(石陵世稿) 16권과 함께 꾸며졌는데, 세고는 글로써 선조의 자취를 전하며, 서화첩은 글로써 미진한 부분을 그림으로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또 이 세전서화첩의 내용은 풍산 김씨 십세((十世) 십구위(十九位)(人)의 행적을 삼십일화위(三十一畵位)로

그렸음이밝혀져 있는데, 이는 실제 실린 내용과 일치한다. 또 세부적으로는 그려진 분들이 김중휴의 조상 10명, 김학봉의 조상 8위,

그리고 그 위 5위는 동조(同祖)라고까지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이 서화첩이 꾸며진 시기와 관련하여서는 김중휴가 집안의 상자 속을 뒤져 자료를 수집하고, 문중이나 우인(友人)들의 도움까지

 받아서 장첩(粧帖)하였다고 되어 있어, 김봉흠의 글이 쓰여진 1725년경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여기 실린 인물들 중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이는 김휘손(金徽孫, 1438-1509)이며, 가장 내려가는 인물은 김유원(金有源, 1699-?)으로서, 그려진 시기와는 상관없이 내용상 15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서화첩에는 그림과 그에 이어서 그림에 대한 상세한 내용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그림은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으나 전문적인 기량을 가진 화가의 솜씨가 아니라서 서툴고 어색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이 서화첩의 그림은 그 뒤에 실린 상세한 설명

과 함께 조선시대 기록화의 한 면모와, 당시의 역사와 풍속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또 이 서화첩의 그림의 원본 내지 원형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그림과 그것을 그린 화가의 이름도 상당 수 밝혀져 있어 흥미롭다. 다음 아래부터는 이 서화첩의 그림 중 음악장면이

나오는 것들을 골라서 그 내용을 요약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書畵帖) 건(乾) 목차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동도문희연도(東都聞喜宴圖)

 

허백당(虛白堂) 김양진(金楊震, 1467-1535)이 1526(중종21)년 홍문관 부제학 시절 당시의 권신이었던 김안로(金安老)에게 미움을 받아

동도(東都)에 벼슬나가 있었다. 이때 맏아들 김의정(金義貞)이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특별히 홍문관 정자(正子)로 임명되어 음악을 하사받고

휴가를 얻어 부모에게 인사드리러 오게 되자, 김양진은 즐거운 소식을 들은 연회(聞喜宴)를 크게 베풀게 되었다. 이 때 참석한 손님들로는

당시 은거하던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33), 용재(容齋) 이행(李荇, 1478-1534), 채소권(菜紹權), 승지 이준경(李浚慶), 관찰사

소세양(蘇世讓, 1486-1562)등이었다. 연회가 열린날은 3월 27일로, 이 그림은 바로 이때의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 왼쪽 건물 내부에는 부친

김양진을 비롯한 손님들이 앉아 있고, 그 오른쪽에는 말을 타고 이 연회에 참석하러 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세부도

어사화를 꼽은 과거급제자, 공작깃을 꽂은 광대와 대금, 북, 등 삼현육각 연주자들이 보인다.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글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해영연로도(海營燕老圖)

 

허백당 김양진은 1529(중종29)년 금영(錦營 : 충청도 감영)에서 해절(海節: 황대도 병마절도사?)로 옮겼다.

이때 공은 십년동안 조정에서 편안히 있지 못하고 외직에서 다스림에 힘써 마침내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 이 그림은 김양진이

황해도 감영에 있을 때 양로연을 베풀어 민심을 위로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세부도

두 명의 여기(女妓)와 참가한 노인들이 춤을 추고 있다.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글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고원연회도(高原宴會圖)

 

잠암(潛庵) 김의정(金義貞, 김양진의 장자)은 을사사화를 평생의 통한으로 여겨 아들은 시골에서 농사나 지으라는 뜻으로 이름을김농(金農, 1534-?)이라 하고 자는 오무(五畝))라 하였다. 김농은 부친의 뜻에 따라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으나, 만년에 집이 가난하여할 수 없이 출사하게 되었다. 함경도 영흥에 있는 준원전(濬源殿)을 지키는 관리로 임명받아 북관(北關)으로 가게 되었는데 친구인 이변(李忭)이 마침 인근의 고원군수(高原郡守)로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환영연을 베출어주었다. 고원군 관아의 한 건물에서 열리는연회의 모습을 그렸는데, 이때 영흥부사 최린(崔潾) 함흥판관 김한신(金翰臣)도 참석하였다고 한다.

 

 

 

 

 

 

 

세부도

북치는 악공의 모습이 보이는데, 같은 복장의 나머지 6명도 악공으로 추측된다.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글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천조장사전별도(天祖壯士餞別圖) 제1면

 

정묘재란이 끝난 1598(선조31)년 왜군이 모두 물러나자, 이해 12월에 4도에 있던 모든 명(明)나라 군대가 한양으로 집결하였다.

이듬해인 1599년 2월 선조는 훈련원에서 총독 병부상서 형개(邢芥)를 위시한 명나라 군대를 위해 연회를 베풀어 주었고, 4월 15일 드디어

명군이 중국으로 귀환하였다. 이 당시 유연당(悠然堂) 김대현(金大賢, 1553-1602, 김농의 子)은 상의원(尙衣院) 직장(直長)으로 명군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명군 사마는 귀환에 임하여 수년간 동고동락한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며, 조선의 공화자(工畵者) 김수운(金守雲)을 시켜 전별화(餞別畵)를 그리게 하였다. 또 그가 지은 시도 그림 뒤 글씨 부분에 실려 있다. 제전서화첩에 실린 이 그림이 김수운이 그린 전별화

와 어떤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로선 확인할 수 없다. 아무튼 4월 15일 명나라 군대는 귀향하게 되는데 선조는 아침에 훈련원에 가서

상마연(上馬宴)을 베풀어주고 문무백관을 이끌고 홍제원(洪濟院)까지 배웅하였다. 이 그림에는 홍제원에서의 작별 모습을 비롯하여 수많은

군대의 행렬이 그려져 있는데, 그림 뒤의 기록과 함께 자세히 검토해볼만한 흥미로운 자료이다.

 

 

 

 

 

 

 

세부도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천조장사전별도(天祖壯士餞別圖) 제2면

 

명나라 군대가 귀향하는 것을 기념하여 베푼 이 전별연에는 4개의 그림이 있는데, 첫 번째 그림의 행렬 중에 악공이 관악기를 불고우인(優人), 즉 광대가 재미있는 몸짓을 하고 있다. 두 번째 그림의 왼쪽에는 북을 치는 고수(鼓手)들이 있다. 해귀(海鬼)와 원병삼백(猿兵三百)의 묘사가 극적이다. 세 번째 그림에서는 전립(戰笠)에 작우(雀羽)를 꼽고 노란 철릭을 입은 고수와 또 다른 복장의 고수가어깨에 북을 메고 치고 있다. 넷째 그림에서는 중국 사신들이 성안에 들어오기 전에 임시로 묵었던 홍제원(洪濟院)에서 조선인과 중국인들이 작별인사를 하는 가운데, 장막 안에 대금 · 장구 · 북 · 해금 등의 삼현육각을 연주하는 악공들이 있다. 그림 뒤에 글에 의하면 난(亂)이래로어전(御前)에서 주악(奏樂)하지 않았는데 두번째 그림에 나오는 명(明)의 군문(軍門)이 강제로 주악하게 하여 재신들이 오열하였다고 한다.

 

 

 

 

 

 

 

세부도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천조장사전별도(天祖壯士餞別圖) 제3면

 

 

 

 

 

 

 

세부도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천조장사전별도(天祖壯士餞別圖) 제4면

 

 

 

 

 

 

 

세부도

 

 

 

 

 

풍산김씨세전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글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글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글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글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글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환아정양로회도(換鵝亭養老會圖)

 

 

 

 

 

 

세부도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글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단성연회도(丹城宴會圖)

 

 

 

 

 

 

세부도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글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가도도(椵島圖)

 

 

 

 

 

 

세부도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글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곤 목차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촉석루연회도(矗石樓宴會圖)

 

 

 

 

 

세부도 : 음악과 춤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金氏世傳畵帖) 글

 

인용서적 / 국립국악원 발행 『조선시대 음악풍속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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