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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궁중 및 관아의 풍속도

 

궁중 및 관아의 풍속

 

 

 

 

서총대친림연회도(蔥臺親臨宴會圖)

1564(행사), 지본채색, 146.2×134.4cm, 액자, 경상북도 풍기 소수서원

 

 

서총대(瑞蔥臺)는 연산군 때 창덕궁 후원에 돌로 쌓아 만든 석대를 말한다. 이 자리는 그보다 앞서 성종 때 한 줄기에 아홉 개의 가지가 달린 특이한 백합과의 파(蔥)가 돋아나 '서총(瑞蔥)'이라 불리던 곳이다. 이그림은 후대인 1560(명종 15)년 왕이 서총대에서

신하들에게 베푼 연회의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 때 행사의 전말은 그림 아래에 적혀 있는 홍섬(洪暹, 1504-1585)의 서문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다. 이에 의하면 당시 조야(朝野)가 조용하고 평화로운 때였으므로 9월 19일 왕이 서총대에 장막을 설치하게 하고

3정승을 포함한 문무관원을 거느리고 야회 연회를 베풀었다. 이 때 가을이라 국화가 가득 피고 단풍이 아름다웠으며, 날씨도

화창하였다. 군신간에 술과 음악을 즐기며, 어필(御筆)로 시제를 내어 시를 지어 올리게 하였다. 또 무신(武臣)들은 짝을 지어

활을 쏘게 하는 등 무예를 겨루게 하였다. 자리가 무르익자 임금은 3품(三品) 이상은 월대(月臺) 위에 올라오게 하여 헌수(獻壽)

하게 하고, 친히 어찬(魚饌)을 내려주기도 하였다. 이날 임금도 마음이 흡족하여 내탕고(內帑庫)에서 호랑이와 표범 가죽과 어촉

(御燭), 그리고 태복시(太僕寺)에서 말을 가지고 오게 하여 시를 잘 지은 문신들과 활을 잘 쏜 무신들에게 상으로 지급하였다.

이날 밤늦게 행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길거리에 수많은 구경꾼이 모여 근래 드문 이이라고 말하였다. 이튿날 신하들은 입

궐하여 명종에게 감사를 드리고, 서로 상의하되 이 성대한 행사를 그림으로 그려 길이 후세에 전하고자 하였다.

그림은 예조(禮曹)에서 맡았는데 행사 참가자 73명게게 모두 나누어 줄 분량 때문인지 4년 후인 1564년에야 완성되었다.

홍섬의 서문은 그림이 완성된 후에 쓴 것이다.

 

<서총대친림연회도>는 맨 위에 제목, 그 아래에 행사 장면, 그리고 다음에 서문과 참석자 좌목(座目)의 순으로 당시 계회도의 일반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현재 전하는 이때의 서총대 행사 기록화는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서총대친림사연도(瑞蔥臺親臨賜宴圖)>가 원본이고, 소수

서원에 보관된 이 작품과, 다음에 볼 고려대학교 소장본은 후대의 모사본이다. 국립박물관 소장 원본은 훨씬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으나, 현재

화면 상태가 매우 불량하여 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이 작품과 고려대학교 소장 화첩본을 통해 오히려 행사 장면을 잘 볼 수 있다.

행사장면은 서총대 위에 큰 장막을 치고 연회를 벌이는데, 월대(月臺) 위에 마련된 임금의 자리는 장막으로 인하여 일부만 보인다. 그리고 그 좌

우에는 국화가 활짝 핀 화분을 늘어 놓았는데, 모사본인 이 작품과 고려대본에는 화분 표현이 없이 땅바닥에 심은 것처럼 간략화 되어 있다. 월대

아래에는 문무관원들이 중앙의 화백자가 놓인 탁자 좌우로 늘어앉았고, 아래쪽에는 악대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왼쪽 아래에는 음식을 준비하는 둥근 천막이 보이고, 장막 기둥 좌우로는 상으로 나누어줄 호랑이 가죽과 말이 보인다. 또 화면 위쪽 좌우에는 행사도의 딱딱한 구성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괴석(塊石)과 소나무가 배치되어 있다. 이 작품은 아마도 참가자 중 후손의 한 사람에 의해 후대에 모사되었을 것이나 정확한

시기는 단정하기 어렵다. 다음 좌목에 기록된 참석자를 살펴보면 영의정 상진(尙震, 1493-1564), 좌의정 이준경(李浚慶, 1499-1572), 우의정 심통원(沈通源, 1499-?), 영돈녕부사 심강(沈鋼, 1514-1567), 서문을 쓴 좌찬성 홍섬 이하 총 73명의 관직, 성명, 자, 본관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림의 하단에 노란에 노란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은 여기(女妓) 17명이 한 줄로 앉아 있고, 그 뒤로 악인(樂人) 14명이 대금 · 피리

혹은 퉁소 같은 종적 · 비파 등을 연주하는 모습이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악기의 모양이 특이하다. 

 

 

 

 

 

 

 

 

세부도

 

 

 

 

 


서총대시연도(蔥臺侍宴圖)

1564년(행사), 지본채색, 47×31cm, (帖), 고려대학교박물관

 

화첩으로 된 이 작품은 앞서 살펴본 소수서원 소장 <서총대친림연회도>처럼 국립박물관 소장의 원본을 후대에 모사한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경우 축(軸) 형식이 나니라 화첩 형식으로 만들었다. 행사 당시에도 화첩본이 별도로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있으나,

종축 원본을 후대에 화첩이나 횡권으로 모사하여 만드는 것은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남지기로회도(南池耆老會圖)>의 경우에도 보인다.

 

 

 

 

 

 

 

서총대시연도(蔥臺侍宴圖) 서문

 

 

 

 

 

서총대시연도(瑞蔥臺侍宴圖) 서문

 

 

 

 

 

서총대시연도(瑞蔥臺侍宴圖) 그림

 

분홍색 관복을 입은 2명이 춤추고 있다. 그림 아래쪽에는 노란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은 여기(女妓) 12명이 한 줄로 앉았고,

그 뒤로 악인 10명이 대금 · 피리 혹은 퉁소 같은 종적, 거문고와 비슷한 타현악기, 비파 등을 연주한다.

 

 

 

 

 

 

 

세부도

 

 

 

 

 

서총대시연도(瑞蔥臺侍宴圖)  좌목(座目)

 

 

 

 

 

서총대시연도(瑞蔥臺侍宴圖)  좌목(座目)

 

 

 

 

 

서총대시연도(瑞蔥臺侍宴圖)  좌목(座目)

 

 

 

 

 

서총대시연도(瑞蔥臺侍宴圖)  좌목(座目)

 

 

 

 

 


서총대시연도(瑞蔥臺侍宴圖)  좌목(座目)

 

 

 

 

 

 

알성시은영연도(謁聖試恩榮宴圖)

1580, 견본채색, 118×105cm, 일본 경도(京都), 양명문고(陽明文庫)

 

은영연(恩榮宴)은 조선시대에 과거 방방(放榜 : 급제자에게 합격증을 나눠줌) 이후 국가에서 급제자에게 베풀어준 축하연이다.

이 은영연도는 1580년 선조(宣祖)가 설행한 알성시(謁聖試 : 임금이 文廟에 참례한 후 실시하는 비정기 시험)의 급제자를 위해 의정부에서

베풀어준 것이다. 이 작품은 상단의 제목 부분은 없어지고, 중단 그림, 하단 좌목이 남아 있다. 건물 내부에는 연회의 주재자이자 시험관이었던

영의정 박순(朴淳, 1523-1589)과 우의정 강사상(姜士尙, 1519-1581) 그리고 호조판서와 병조판서 등이 자리잡았고, 건물 앞 장막 아래 설치된

건물 앞 장막 아래 설치된 덧마루에는 문무과 급제자들이 갑 · 을 · 병과로 나뉘어 의자에 앉아 있다. 전체를 부감법(俯瞰法)과 평행사선투시법을

이용하여 조선 전기 그림 치고는 상당히 현실감이 나게 그려졌다. 하단 좌목에는 6명의 시관(試官)과 56명의 급제자의 신상명세가 쓰여 있다.

 

 

 

 

 

 

세부도 : 음악 · 춤 · 연희

 

건물 대청 내부에서 여기(女妓) 2명이 춤추고, 계단 위에 다른 여기(女妓)들이 한 줄로 앉아 대기하고 있고, 뒷줄에 악인들이 줄지어 있다.

문 · 무과 급제자 좌석 사이의 복도와 같은 공간에서 광대들이 접시돌리기, 농환(弄丸), 땅재주 등 곡예를 펼친다.

『악학궤범』(1493)에 의하면 은영연의 악인은 악사 1명, 여기 10명, 악공 10명으로 구성되었다.

 

 

 

 

 

 

북새선은도(北塞宣恩圖) 길주과시(吉州科試)  (좌측면)

한시각(韓時覺, 1621-?), 1644년, 57.9×674.2cm, 국립중앙박물관(덕4065)

 

한시각은 자 자유(子裕), 호 설탄(雪灘)으로 본관은 청주이다. 부친 한선국(韓善國)도 화원이며, 장인 이명욱(李明郁)도 화원이었다.

여러 차례 궁중행사 기록화 제작에 참여했으며, 1655(효종6)년 통신사 수행원으로 도일(渡日)하기도 하였다. 이때 일본에서 그린 것으로

생각되는 감필체(減筆體)의 <포대도(布袋圖)> 따위의 도석인물화가 전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도일 11년 전인 1644년에 그려진 국가행사의

기록화로서 감상용 도석인물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이 묘사하고 있는 행사는 함경도의 별설문무관(別設文武科) 길주목

도회시(吉州牧都會詩) 장면이다. 거의 4미터에 이르는 긴 두루마리의 처음에는 '북새선은(北塞善恩)' 이라는 전서(篆書) 두제(頭題)를 시작

으로 길주에서 치루어진 시험장면과 함흥에서의 합격자 발표장면 그림이 있으며, 마지막에는 도회시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 있다. 여기에는

시관(試官), 참고관(參考官), 차비관(差備官), 도청(都廳) 등 행사 관계자들의 명단과 문무과의 합격자 명단이 들어 있다. 이 작품은 기록화

로서도 중요하지만 17세기 중엽의 실경산수화로서의 의의도 지닌다. 즉 18세기에 겸재에 의해 본격적인 진경산수화가 발달하기 이전에 그려

진 실경산수화의 예로서 중요하다. 비록 부감법으로 건물과 행사 장면 위주로 그림이 그려져 있지만 함흥 만세교(萬歲橋)나

 원경의 눈 덮인 함경산맥의 모습은 실제 경치이다.

 

 

 

 

 

 

 

 

 

 

(우측면)

 

 

 

 

 

 

세부도

길주에서 있었던 시험 장면을 그린 <길주과시>에서는 신호용 관악기가 보인다.

 


 

 

 

 

북새선은도(北塞宣恩圖) 함흥방방(咸興放榜)  (좌측면)




 

 

 

 

(우측면)

 

대성전인 듯한 건물에서 급제자가 왕의 전패에 진향숙배(進香肅拜)하는 광경을 담고 있다.

 

 

 


 

 

 

세부도

 

집박(執拍) · 편종 · 편경 · 북 · 대금 등으로 구성된 헌가(軒架)가 있다. 집박은 푸른 옷을 입었고, 악공은 붉을 입었다.

편종과 편경은 유소(流蘇)등이 없이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다. 헌가 악공은 5명으로 궁중내의 행사에 그려지는 헌가에 비하여 편성이 작다.

일반적으로 궁중 행사의 경우 계단 위에 위치하는 등가(登歌)는 정재(呈才)를 반주하거나 진연의 헌작례 등에서 연주하고,

계단 아래 뜰에 위치하는 헌가는 국왕의 출입이나 배례(拜禮) 등의 의식 절차에서 연주하였다.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귤림풍악(橘林風樂)

김남길(金南吉), 1702년, 지본채색, 56.8×36.4cm, 43면 화첩, 보룰 제652-6호, 제주시청

 

제주읍성 안의 귤밭에서의 연회장면을 그렸다. 앞의 건물에는 망경루(望京樓), 귤림당(橘林堂)이라는 현판이 있고, 오른쪽에는 병고(兵庫)와

교방(敎坊)이라는 설명이 있다. 귤밭 한가운데 자리를 마련하고 연회를 베풀고 있으나 공적(公的)인 기록화답게 풍악장면보다 전체 지형을

담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귤밭 뒤쪽으로는 대나무로 보이는 방풍림이 있고, 아래쪽에는 1702년 제주도 삼읍의 귤 결실수량을 적어놓았다.

 

이 귤림은 제주읍성안에 있던 중 하나인 북과원(北果園)에 해당하 여겨지고 있다.

망경루 후원 귤림에서 여기(女妓)들이 연주하고 있는데, 가야금과 비슷한 타현악기와 북 등이 있다.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정의양로(旌義養老)

 

정의현 성내(城內)에서 베풀어진 양로연의 모습이다. 현성의 모습을 간략하게 지도식으로 그리고 동헌으로 보이는 건물 안에는 목사가좌정하고, 그 아래 노인들과 악사들이 앉아 있다. 아래에 적힌 기록에 의해 1602년 11월 3일에 양로연이 베풀어졌고, 90세 이상 5명,80세 이상 17명이 참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악대의 다수가 기녀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女妓)들이 타현악기를 연주하고, 1명이 서서북을 연주하며, 그 옆으로 장구가 보인다. 남자 악공들은 관악기 등을 연주한다. 마당에는 남자 2명이 있다.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정방탐승(正方探勝)

 

지금도 제주도의 명승으로 꼽히는 정방폭포에서의 뱃놀이 장면을 그렸다.  배 위에서 음악이 연주되며 가무가 이루어지고 있고,

정방연(正方淵) 주변에는 수행원들이 기치를 들고 서 있다. 또 유독 크게 그려진 붉은 모자를 쓴 인물이 일산(日傘) 아래 서 있는데,

옆에 시녀가 부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목사로 보인다. 11워일에 지나갔으며, 폭포의 길이는 80여척, 넓이는 5척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정방연에 배 두 척이 있는데, 그중 한 척에서 남자 2명이 춤추고, 여기(女妓) 1명이 서서 북을 치고, 4명이 앉아 있다.

다른 배 한 척에도 여자 7명이 앉아 있다.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고원방고(羔園訪古)

 

대정현성에서 동쪽으로 55리에 위치한 고둔과원(羔屯果園)에서 왕자구지(王子舊址)를 찾아가서 연회를 베풀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이곳은 조선 초기의 문신 고득종(高得宗)의 별장지로 유명했다 하는데, 왕자구지에 대한 고사(故事)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림을 보면

이곳도 감귤농장임을 알 수 있다. 아래쪽에는 대나무 방풍림이 있고, 위쪽에는 참나무 밭(眞木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1월 6일 이곳을 지났으며, 대정현감과 정의현감이 참석하였다고 쓰여있다.

여기(女妓) 2명이 타현학기를 연주하고, 머리를 길게 땋은 남자 1명이 횡적을 연주 하는 것처럼 보인다.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대정양로(大靜養老)

 

대정현 성(城)에서 열린 양로연을 그렸다. 재미있는 점은 다른 기록화와는 달리 연회장면이 뒤쪽에서 본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래서 동헌으로 보이는 건물에 앉은 사람은 뒷모습과 측면이 그려졌고, 그 앞뜰은 일부만 보인다. 아마도 산방산과 바다의 모습을 넣어서

그리려다 보니 이렇게 된 모양이다. 11월 11일 이곳에서 유숙했으며, 90세 이상 1명, 80세 이상 11명이 참석했다고 적혀 있다.

악공들이 관악기를 연주하고, 여기(女妓) 1명이 서서 북을 친다. 다른 여자들의 악기는 보이지 않는다.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제주사회(濟州射會)

 

제주읍 관덕정(觀德亭)에서 활쏘기를 하기 위해 모인 모습을 그렸다. 관덕정 안 중심에 제주목사가 앉아 있고, 주변과 건물 앞 땅에도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 목사 바로 앞에는 악사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관덕정 앞 넓은 뜰 건너에는 과녁이 걸려 있고, 주변에는 군졸들이

기를 든 채 도열해 있다. 그 좌우의 회랑은 입체감이 전혀 없이 그려진 것이 재미있다. 11월 18일 이 행사가 이루어졌고, 목사를 비롯하여

제주판관 이태현(李泰顯), 대정현감 최동제(崔東濟), 정의현감 박상하(朴尙夏), 군관(軍官) 15명, 주무(州武 : 제주목의 무과 급제자)

23명이 참석했다고 적혀 있다.

 

하단의 글에 의하면 11월 18일 활을 쏘기 전에 각 청의 관리들이 관덕정(觀德亭) 앞에 정렬해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인데, 다음 그림인제주전최(濟州殿最)와 뒤바뀐 것으로 추정된 바 있다(조영배, "탐라순력도에 나타나는 음악연구," 『탐라순력도연구논총』, 제주: 탐라순력도연구회, 2000. 11쪽).  관리들이 정렬해 있는 가운데 9명의 기녀가 건물 안에서 연주하는데, 한 명이 서서 북을 치고 있다. 악공들은 아래 계단에서 관악기 등을 연주한다. 오른쪽 누각에 있는 종과 북은 행사와 시간 등을 알리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제주전최(濟州殿最)

 

전최(殿最)란 관리의 근무성적을 심사하여 우열을 매기는 일을 말한다. 제주목사가 관덕정(觀德亭)에서 무관들의 활쏘기 시험을 그렸다.다른 그림과 달리 제주읍성 관아의 수많은 건물들을 가장 잘 보여주며, 관덕정 주변에 모인 관중들과 과녁 주변으로 많은 화살이 날아가거나꽃힌 모습이 인상적이다. 11월 17일 이루어졌고, 마대별장(馬隊別將), 삼부천총(三部千摠), 구진조방장(九鎭助防將) 등 많은 참석자들의개요가 적혀 있다. 활쏘기와 관계 있는 신호용 북이 있다.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제주양노(濟州養老)

 

제주읍성 망경루(望京樓) 앞에서 베풀어진 양로연의 모습을 그렸다. 앞서 정의현과 대정현에서의 양로연과는 달리 규모가 더욱 크고 행사장면

도 구체적이다. 특히 중앙의 음악장면도 성대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여러개의 차일을 친 모습이 보이는데, 아래 행사장면을

그리는데 방해받지 않기 위해 차일의 기둥들을 생략한 것이 재미있다. 11월 19일 베풀어졌으며, 100세 이상 3명, 9세 이상 23명, 80세 이상

183명이 참석했다고 적혀 있다. 18세기 초라는 시대를 감안할 때 전통적으로 제주도에 장수하는 사람이 많았음을 실감나게 하는 숫자이다.

 

동헌 뜰을 중심으로 망경루, 마방(馬房), 귤림당, 애매헌(愛梅軒), 동헌이 있다. 악대의 대부분이 여자이고, 남자 악공들은 오른쪽 끝에서

대금과 같은 횡적, 피리 혹은 퉁소와 비슷한 종적을 연주하는 4명 뿐이다. 기녀가 연주하는 악기는 타현악기, 북, 장구 등이다.

포구락을 출 때 사용하는 포구문이 있다. 뜰에 놓인 배 안에 4명이 타고 있다. 이밖에 남자 2명이 춤추고 있다.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병담범주(屛潭泛舟)

 

취병담(翠屛潭)에서 밤 뱃놀이를 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곳은 제주도의 12경(濟州十二景) 중 하나로 용연야범(龍淵夜泛)이라고도 불린다.

즉 달밝은 밤에 용연에서 밤뱃놀이를 하는 장면인데, 오른쪽에는 용두암(龍頭巖)과 그 너머 물질하는 해녀의 모습도 보인다. 또 멀리 한라산

백록담과 여러 봉우리들이 그려져 있는데, 밤을 표현하기 위하여 수묵으로 어둡게 선염하였다.

 

배 한 척에 기녀와 악공 등이 있다. 기녀 1명이 북을 치고, 악공들은 대금과 비슷한 관악기를 분다.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호연금서(浩然琴書)

 

그림 맨 아래쪽에 표현된 것은 보길도(甫吉島)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며 호연한 마음으로 거문고를 타고 책을 읽는다는 뜻의 그림이다.멀리 바라보이는 백록담과 봉우리들은 앞서 병담병주(屛潭泛舟)와 거의 동일하나, 여기서는 바다에서의 뱃놀이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다른 장면에는 항상 구획되던 글씨 쓰는 부분을 없애고 전체를 화폭으로 삼았다. 중앙에 보이는 작은 성은 화북진성(禾北鎭城)이며, 포구는 별도포(別刀浦)이다.
이 그림은 이형상 목사가 제주를 떠나는 광경으로, 큰 배 왼쪽 끝에 보이는 것은 나발이나 각(角) 종류의 악기로 해석할 수 있겠다.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서(序)

 

1703년 5워13일 병와거사(病窩居士). 이형상이 기록한 <耽羅巡歷圖>의 서문이.

제주도의 지리와 역사, 그리고 1702년 10월 그믐부터 한 달 동안 도내를 순력한 과정과 결과에 대해 적었다.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서(序)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 (좌측부분)

김홍도(金弘道, 1745-1805 이후), 1786년, 지본담채, 25.3×633cm, (卷), 국립중앙박물관

 

조선후기 지방관의 부임행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긴 화권의 마지막에 쓰인 제발에 의해 요산헌(樂山軒)라는 사람의 부탁에 의해

김홍도가 1786년에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이 긴 행렬은85년 요산헌의 부친이 황해도 안릉의 현감으로 부임하는 모습이다. 맨 앞에 기수들을

앞세우고 악대, 악대, 아전들, 기생, 가마 등이 뒤따르는 다양한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하며 채색까지 곁들여 조선시대 관아풍 속의 한 면을

생생하게 복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주요 인물들의 모자나 자세, 말의 발굽의 위치 따위를 적절하게 안배하여 악대의 음악에 맞추어

율동적으로 움직이는 행렬이 실감나게 나타나 있어 대화가 김홍도의 실력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전체 구도와 인물들의 탁월한 안배하여

악대의 음악에 맞추어 율동적으로 움직이는 행렬이 실감나게 나타나 있어 대화가 김홍도의 실력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전체 구도와 인물

들의 탁월한 안배와는 달리 세부묘사에서는 어설픈 곳도 눈에 띄어 후대의 모사본이 아닌가 의심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시골 현감

부임행차보다 훨씬 중요한 공사간(公私間) 그림 일에 바빴던 김홍도가 세부묘사는 조수에게 맡겼는지도 모른다.

 

 

 

 

(우측부분도)

 

 

 

 

 

 

 

 

 

(좌측부분도)

 

 

 

 

(우측부분도)

 

 

 

 

 

 

(좌측부분도)

 

 

 

 

(우측부분도)

 

 

 

 

 

세부도 : 취고수(吹鼓手)

 

 

 

 

 

 

 

 

 

 

 

6미터가 넘는 장축에 그린 거대한 행렬에는 각종 기수(旗手)와 북(鼓), 발(知: 붉은색 관악기), 나발, 호적(呼笛), 등으로 편성된 취고수(吹鼓手),그리고 해금 · 대금 · 피리2 · 북 · 장구 즉 삼현육각(三絃六角)을 연주하는 세악수(細樂手)와 기생(妓生) 등이 포함되어 있다. 취고수와 세악수의복식이 다르다. 취고수는 황색답호를 걸치고 전립(戰笠)을 썼으며, 세악수는 푸른 철릭에 갓을 썼다. 

 

 

 

 

 

 

 

 

 

 

 

 

 

세부도 : 세악수(細樂手)

 

 

 

 

 

동래부사접왜사도(東萊府使接倭使圖) 1~5폭  (좌측부분)

 

이 10폭 병풍은 18세기 어느 때 동래부사가 초량 왜관(草梁倭館: 현 부산시 초량동)에 온 일본사신을 환영하기 위해 행차하는 모습을 기록한것이다. 오른쪽 끝 제 1폭에서 연회가 열리는 왼쪽 끝 제10폭까지 긴 행렬이 파노라마식으로 펼쳐지는데, 주변 경관까지 제한적이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제1폭 중앙에는 일행의 출발지인 성벽으로 둘러싸인 동래성(東來城)이 보인다. 제2 · 3폭 아래에는

당시의 부산항의 모습과 정박하고 있는

전선(戰船)들이 묘사되어 있다. 제4폭에는 동래부사가 탄 가마를 중심으로 그 앞뒤로 말을 탄 기생을 비롯한 많은 수행원들이 보인다. 제7폭에는 초량 설문(設問)을 통과하는 선두의 모습이 보이고, 제8폭에는 객사(客舍)의 뜰에서 일본 사신이조선국왕의 전패(殿牌)에 숙배하는 모습이 보인다. 마지막 10폭에는 연대청(宴大廳)에서 열리는 환영연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춤추는 기생들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나뉘어 자리 잡은 한일(韓日) 인물들의 모습과 복색이 대조적이다. 한편 동래부사접왜도는 국립진주박물관에 다른본이 하나 더 소장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좌측 연대청의 환영연 모습에 이어 초량왜관의 항구와 건물의 모습이 추가로 그려져 있다.

 

 

 

 

 

 

 


동래부사접왜사도(東萊府使接倭使圖) 1~5폭  (우측부분)

 

 

 

 

 

 


 동래부사접왜사도(東萊府使接倭使圖) 6~10폭  (좌측부분)

 

 

 

 

 

 

동래부사접왜사도(東萊府使接倭使圖) 6~10폭  (우측부분)


 

 

 

 

세부도 : 취고수(吹鼓手)

 

 

 

 

 

세부도 : 취고수(吹鼓手)

 

 

 

 

 

세부도 : 연대청(宴大廳)에서 춤과 삼현육각(三絃六角)

 

 

 

 

 

선전관계회도(宣傳官契會圖)

1789(행사), 지본담채, 115×74.3cm, 축(軸), 서울대학교박물관

 

화풍상 조선후기의 민화로 볼 수 있다. 계회도는 본디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으나, 조선후기에 이르러 양반계층이 늘어나고 민화가 발달함에

따라 이처럼 민화로도 그려진다. 이 그림은 당초의 원작이라기 보다는 후대의 모사본일 거라는 생각이다. 하단 좌목에는 절충장군 선전관

이윤국(李潤國) 외 3명, 선략장군 선전관 윤재대(尹載大) 외 4명, 어모장군 선전관 유회원(柳晦源) 외 2명, 효력부위 선전관 윤형동(尹衡東) 외

11명 등 총 24명의 관직, 자(字), 생년, 급제년도와 과거 명칭, 본관, 현재 거주지 등이 적혀 있다.

마지막에 기유윤5월윤(己酉閏五月日)이라는 연기(年紀)가 적혀 있다.

 

선전관청은 일종의 병영으로 형명(形名) · 계라(啓螺) · 시위(侍衛) · 전명(傳命) · 출납과 부신(符信) 등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였다.이 그림은 선전관원들의 연회를 그린 것으로 선전관청이 '계라' 즉, 임금의 거동이 있을 때 군악을 연주하는 일을 담당하였으므로선전관연회에 일반적인 연회와 달리 선전관청 소속의 취고수가 연주했다고 생각된다. 이 그림에는 배와 연회장 앞에 각각 6명으로 구성된악대가 있다. 악기는 붉은색과 노란색의 길고 짧은 관악기와 징 · 북 등으로 구성되었다.

 

 

 

 

 

세부도 : 연회장의 취고수(吹鼓手)

 

 



 

  

세부도 : 선상(船上)의 취고수(吹鼓手)

 

인용서적 / 국립국악원 발행 『한국음악자료총서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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