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탐매(丙申探梅) 5편
2016. 3. 2
'백운동 별서정원'에 이르는 길
원림에 이르는 길 왼편 집에 피어나는 홍매
백운동 제2경,
동백숲에 들어 서면서 돌아본 이 소로를 '산다경(山茶徑)'이라한다.
산다(山茶)는 동백나무의 별칭.
백운동(白雲洞) 암각 행서
며칠 전 내린 비에 제법 폭포의 美가 드러난 백운동 제4경 홍옥폭(紅玉瀑)의 풍리홍폭(楓裏紅瀑).
가을 날, 창하벽(蒼霞壁)의 단풍나무가 물에 어리는 모습이 홍옥같다는 말씀.
예전엔 이 지점에 물레방아도 있었다는데, 위쪽 월출산 자락에 '다원'이 조성된 뒤론
건천 수준으로 변해버렸는지라 평소엔 이런 수준의 물길을 보기가 몹시 어려운 지경이다.
울창한 동백숲과 계류를 건너면 바위 절벽면과 연이은 대문이 눈에 들어온다.
이른바 정다산이 백운동 제6경으로 꼽았다는 창하벽(蒼霞壁)이다.
나를 비롯,
조선조 수 많은 시인묵객의 백운동 방문을 지켜봤을 동백의 자태
『백운동명설』과 『백운동유서기』
월생산月生山은 월출산의 옛 이름. 백운동 입산조인 이담로는
「백운동유서기」를 지어 자신의 바운데리를 한껏 찬양하고 있다.
『 뒷편 옥판봉 층암절벽 우뚝 솟은 골짜기 안에 흰 구름 영롱한 아름다운 공간이요,
구양수가 아끼고 사랑해 글로 남긴 저주의 서간西磵이나 유종원의 우계愚溪에 견주어
조금도 못하지 않노라 이곳의 풍광을 자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제5경 곡수유상(曲水流觴)
이담로의 '백운동유서기'는 또 다시 이어진다.
『유상곡수는 왕희지의 난정고사를 본받기 위해서고, 바람결에 풍경이 우는 것은 서호 처사 임포의
풍류를 재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물에 심은 연꽃의 천연스런 자태와 동산 매화의 해맑은 풍격,
서리에 끄떡없는 국화의 오상고절과 소나무의 세한지지를 다시 더 꼽았다.
물가 대나무의 흥취와 뜰 난초의 마음 맞음, 달밤에 우는 학의 해맑은 울음소리, 바람에 홀로 우는
거문고 가락 등 8영으로 손꼽는 8가지 사물을 구체적으로 나열하여 마음을 얹었다.
다시 말해 유상곡수와 처마 밑 풍경에 더해 연蓮, 매每, 국菊, 송松,
대竹, 난蘭, 학鶴, 금琴의 8목目을 추가한 것이다.』
민간 정원에 유상곡수가 남아있는 곳은 우리나라에 이곳 뿐이다.
차밭 사이 계단 오름 끝 '창하벽'위에 자리한 정선대(停仙臺)
정선대에서 조망한 백운동 별서정원 전경.
맨 뒷편 파란색 포장이 보이는 지점에 새로운 안채를 건립할 모양인 듯.
왼편 맨 위로 백운동 제1경으로 꼽는 옥판봉(玉版峰) <현재의 향로봉 > 능선이 보인다.
백운동 내원 공간은 장방형 구조의 비탈면을 따라 구성되어 있다.
본채가 맨 윗쪽에 자리잡고 경사면을 따라 '취미선방' 등의 거주공간과 꽃과 나무를 식재한 3단 화계.
그리고 맨 아랫쪽엔 '유상곡수'가 조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외원 계류엔 모처럼 내린 비로 시원하게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백운동 별서정원에 남은 두 그루 매화 중 담장 밖 운당원(篔簹園)을 배경으로 선 백매.
'운당원' 구역은 울창한 대나무를 비롯 그 아래엔 차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과거 백운암이라는
절이 자리했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대각국사 의천을 비롯, 보조국사 지눌 스님 등이
이 절에 머물렀음을 알 수 있고 茶에 관한 詩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다향과 다맥이 끊긴지 그로부터 600년 후 정다산 시대에 이르러 다시 부활한 차문화.
이러한 음다풍은 백운동 인근 월남리에 살던 이 집안의 이한영(1868~1956)이 만들고 판매한
'금릉월산차'와 '백운옥판차'로 이어졌고, 백운동 별서정원을 지키다 근년에 작고한
동주 이효천 옹에 이르기까지 다맥의 명맥은 근근히 이어져 왔다.
몇년 전, 월남사지에서 경포대로 오르는 왼편에 이한영 생가가 복원되었고
그 앞쪽엔 찻집까지 마련되어 오가는 길에 이씨 후손들이 생산한 차를 맛볼 수 있다.
백운동 제3경으로 '백매암향(白梅暗香)을 꼽는다.
백매오의 일백 그루 매화는 입산조인 이담로 이래로 후손들이 꾸준이 가꾸어 왔을 터인데
지금은 단 두 그루가 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까울 뿐.
내가 처음 방문했던 60년대 말 까지만 해도
몇 그루의 고매가 더 있었던 기억인데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이젠 딱 두 그루의 매화나무만이 내원을 지키고 선 모습인데 관리 상태를 보아하니
이마저도 그리 오래가지 못할 듯...!
백매 몇 송이를 그야말로 고졸하게 피워 올렸다.
아래는 이시헌이 남긴 詩 중
「예전에는 백 그루의 매화가 있었으나 지금은 몇 그루만 남아 꽃을 피우는 지라 느낌이 일어 읊다」
라는 기나긴 제목의 詩이다.
백 그루 중 몇 떨기만 새 꽃이 남았는데
늙은 용의 비늘 껍질 이끼가 덮었구나.
맑은 자태 모두 다 내 마음(心友)의 벗이거니
백발노인 네 주인임 알아볼 수 있겠는가.
얼음 서리 견디고도 기력이 거뜬하여
별빛 달빛 빗길 적에 정신(見精神)드러낸다.
아울러 평천계平泉誡를 지니고 있음 아끼노니
산가에서 5세 봄을 피고 지고 하였고나.
※ 매화를 심우(心友)라 칭하고,
월하에 피어난 매화를 '현정신(見精神)이라 한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정다산이 쓴 『백운첩』 발문
가경 임신년(1812) 가을, 내가 다산에서 백운동으로 놀러 갔다가 하룻밤을 자고 돌아왔다.
남은 미련이 오래 지나도 가시지 않기에 승려 의순을 시켜서 「백운도」를 그리게 하고
이를 이어 12승사의 시를 지어서 주었다. 끝에 다산도를 붙여서 우열을 보인다.
※ "우열을 보인다"는 자신의 다산초당과 백운동의 아름다움을 겨룬다는 뜻.
『백운첩』에 나오는 초의 의순이 그린 「백운동도」
이담로 당대부터 명원(名園)으로 손꼽혔다는 '백운동'
정다산이 명명한 12경 중 '백매암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동주(峒主) 이시헌은 강진에 귀양와 있던 다산 정약용의 막내 제자가 됐다.
정약용은 이곳을 방문한 뒤 ‘백운동 12경’을 명명하고 1경 옥판상기(玉版爽氣·옥판봉의 상쾌한 기운)부터
12경 운당천운篔簹穿雲·(운당원에 우뚝 솟은 왕대나무)까지 그 아름다움을 시로 읊었다.
담양 소쇄원 원림, 보길도 부용정 원림과 더불어
백운동 원림을 호남의 3대 정원이라 꼽지만 문제는 평상시 계류의 물 부족 상태.
원림에 있어 물의 요소는 거의 절대적인데도 평소엔 계류의 물줄기가 거의 말라있는 형편.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물줄기를 유지토록 해야 할텐데...
두 그루 남은 매화 중 계류 쪽 담장 안에 선 매화의 윗 부분이 보인다.
원주 이씨 이담로(1627~?)가 말년에 둘째 손자 이언길(1684~1767)을 데리고 들어와 살기 시작.
이담로는 세상을 뜨며 ‘평천(平泉)의 경계’를 남긴다 라고 했다.
당나라 때 재상 이덕유가 그의 별서인 평천장을 두고 자손에게 “절대로 남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라는 당부를 차용한 말.
백운동 별서는 세기가 4번 바뀌는 동안 아들에서 손자로 12대째 이어졌다.
부러지고 잘려나가고...
이담로의 무덤에서 바라본 백운동 별서정원.
백운동 입향조를 이덕무라 칭하지만 기실 백운동 별서정원이 조성된 것은 훨씬 앞서 있었던 듯.
김창집의 『몽와집』 권4 『남천록』에 수록된 장편 고시 「술회」에 1682년 6월 강진에 내려와
백운동 이담로의 거처를 방문한 내용이 나온다. 그의 형인 김창흡도 같은 시기 「백운동 8영」
연작을 남겼다. 또 『백운수세첩』 첫머리에 수록된 신명규의 「백운동 초당 8영, 주인을 위해
짓는다」란 작품도 있다. 신명규의 이 작품은 1862년에 지어졌다. 이 두 기록은 손자 이언길이
입산한 것으로 추정되는 1692년보다 14년 앞선 1678년 이전에 이미 백운동 별서정원의 규모가
거의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었음을 말해준다. 1678년이면 이담로의 나이 52세였다.
무덤의 상석.
"백운동은이공지묘(白雲洞隱李公之墓)는 이담로 자신의 친필이라고.
※ 백운동에 관한 해설 일부는 정민 저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을 참조.
백운동 동백숲 산다경(山茶經)을 빠져나가며...
백운동 아랫쪽에 연이은 동양화가 시원 박태후 화백의 화실 '백운초당'
울창한 동백숲에 들어 앉은 겸손한 건물이 매우 인상적이다.
백운초당 紅梅
초당 매원의 깔끔한 예초 상태가 시원선생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
시원 선생이 심고 가꾸었을 꽃무릇 군락.
초당 옆을 흐르는 계류
나무에 올린 '송악'도 분명 시원 선생의 작품일 터.
동백숲에서 바라본 '백운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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