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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동학 천도의 세계

제121주년 장성황룡 동학농민혁명 승전기념식

- 제121주년 동학농민혁명 장성황룡 승전기념식 -

 

 

일시 : 포덕 156(2015)년 5월 27일(수) 오전 11시

장소 : 전남 장성 황룡 동학농민혁명 승전기념탑 앞

 

주최 / 천도교중앙총부 

주관 / 사단법인 동학민족통일회

 

 

장성 황룡전적지

 (전남 장성군 황룡면 신호리 )

 

 

 

 

 

 

 

 

 

 

 

 

 

 

 

 

 

 

 

 

 

 

식전 연주 - 내두름

 

 

 

 

 

 

 

 

 

 

 

개식 / 정정숙 교화관장

 

 

내빈소개 / 이상식 추진위원회대표

 

 

 

 

 

국민의례

 

 

 

 

 

심고

 

 

주문 3회 병송

 

 

청수봉전

 

 

 

"동학농민군 12개조 폐정개혁안"

 

1. 동학도는 정부와의 원한을 씻고 서정에 협력한다.

2. 탐관오리는 그 죄상을 조사하여 엄징한다.

3. 횡포한 부호를 엄징한다.

4. 불량한 유림과 양반의 무리를 징벌한다.

5. 노비문서를 소각한다.

6. 7종의 천인차별을 개선하고 백정이 쓰는 평량갓을 없앤다.

7. 청상과부의 개가를 허용한다.

8. 무명의 잡세는 일체 폐지한다.

9. 관리채용에는 지벌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한다.

10. 왜와 통하는 자는 엄징한다.

11. 공사채르 물론하고 기왕의 것은 무효로 한다.

12. 토지는 평균하여 분작한다.

 

 

 

사람, 다시 하늘이 되다!

 

천도교인 여러분! 장성의 동학 시민 여러분!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오늘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승리의 현장 중 하나인 장성 황룡 동학농민혁명 제121주년 기념식전에

참석하여 주신유두석 장성군수님과 이상식 광주전남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추진위원회 대표님, 장성군 농민회 홍번

고문님을 비롯한 임원과 회원 여러분, 그리고 이기곤 전국 동학농민혁명유족회 회장님, 김대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임원 여러분, 장성군민과 원처근처에서 함께해 주신 천도교인 여러분, 시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곳 장성 황룡의 동학승전의 역사는 동학농민혁명군이 백산과 황토현의 승리를 기반으로 조선 정규군의 정예병인

경군을 격파함으로써 혁명군의 발길을 전주로, 그리고 서월로 향할  수 있게 한 기념비적인 역사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동학농민군들의 보국안민 척양척왜 구호를 소리 높여 외치면서, 그분들이 꿈꾸었던 동학의

새 세상, 온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볼 수 있는 덕성을 갖춘 나라, 사람과 만물이 새로워지고, 서로 돕고 살리며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자리가 되어야 할것입니다.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세상의 인식과 사람들의 관심은 지난 몇 년 동안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지난해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맞는 기념대회를 서울 한복판에서 성공리에 거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한

정점이었으며, 또한 제2의 동학농민혁명을 펼쳐 나가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천도교단은 물론

동학농민혁명 기념재단과 유족회등이 일심으로 협력하고, 동학농민혁명의 전국화, 세계화, 미래화라는 일관된

목표 속에서 사업을 추진해 온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은 이제 어느 특정 지역, 특정 시기에 국한된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동학의 창도와 성장, 동학농민혁명의 전개와 그 정신의 면면한 계승을 통한 3.1 독립운동의 법통,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통일운동, 생명운동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문명사적인 대장정이라는 점을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인식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추진하고 염원하는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이 완결되면,

그동안의 축적된 성과들은 더욱더 왕성한 기세로, 비약적인 결과로 온 국민과 함께 시작할 것입니다.

오늘부터라도 우리는 그러한 상황을 준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동학 시민 여러분!

우리는 '동학'이라는 이름,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이름 속에서 한 형제요 자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동학 시민'이라고 한다면, 동학 시민의 가장 핵심적인 무기는 새로운 세상을 남보다 먼저 볼 수 있는 지혜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곳 장성은 열악한 무기 체계의 조건에 있던 동학농민군들이

'장태'라고 하는 무기를 창안한 곳입니다. 이러한 창안은 바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내고, 우리 삶의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상적인 사물을 가지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 무기를 만드는 동학의 지혜가 가장 상징적으로

발휘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는 단지 121년 전의 한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는 과거 지향의 자리가 아니라, 오늘과

내일을 준비하고 앞장서서 열어가는 미래 지향의 자리임이 분명한 것입니다.

 

이러한 동학농민혁명의 가치를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 바로 "사람, 다시 하늘이 되다"라는 말이면서,

역사와 현재를 잇는 가교 역할도 훌륭히 수행하는 구호입니다. 또한 온 세계에 동학의 정신과 혁명의 역사를 널리

알릴 수 있는 핵심적인 사상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신 동학 시민 여러분들이 앞장서서 그 일을 해 나가야 할 주역입니다.

 

올해도 10월에는 서울 한복판에서 동학농민혁명 제121주년 기념대회가 개최됩니다.

이러한 작업은 동학의 거점을 서울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전국화하고 세계화하고 미래화하는 과정입니다.

 

다시 한 번 장성 황룡 동학농민혁명 승전 기념식에 함께 해주신 동학 시민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기념사에 갈음합니다. 감사합니다.

 

 

포덕 156(2015)년 5월 27일

 

 

천도교 교령 박남수 심고

 

 

 

 

 

 

 환영사 / 장성군 부군수

 

 

 

 

 

 천도교 연합합창단

 

 

 

 

 

 

 

 

 

 

 

 

 

 

 

 만세삼창

 

 

 

 

 

 

 

 

 식후공연 / 내두름

 

 

 

 

 

 

 

 

 

 

 

 

 

 

 

 

반봉건의 제폭구민()과 반외세의 척양척왜의 기치를 들고 일어선 동학농민군은 1894년 3월 29일 백산 봉기 이후 자발적으로 관아를

 습격해 관속을 응징하였다. 4월 6일∼7일 황토현()에서 관군()을 철저히 참패시킴으로서 불과 한 달 만에 호남일대를 휩쓸었다.

 

이와 같은 소식을 접한 조정에서는 전라병사 홍계훈을 양호초토사(使)에 임명하고 그에게 군사 800명을 파견해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도록 하였다. 영광에 머물고 있는 초토사(使) 홍계훈은 동학농민군이 함평에서 나주·장성 등지로 향했다는 함평현감 권풍식의

보고에 따라 4월 22일 대관() 이학승·원세록·오건영에 병정 300명을 주어 장성으로 출발시켰다.

이튿날 23일(양 5월 27일)에는 황룡촌에 유진()하고 있는 동학농민군을 공격하라는 작전명령을 내렸다. 함평에서 장성으로 진격한

동학농민군을 때마침 월평리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관군으로부터 기습적인 포격을 받아 동학농민군은 40∼50명이 희생되면서 진중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러나 망을 보고 있던 농민군은 경군()의 숫자가 농민군에 비해 열세임을 확인하고 동학농민군은 오히려 역습을 가하였다.

양쪽 진영의 거리가 가까워 포격전이 불리한 여건인데다 죽음을 각오하고 육박해오는 동학농민군의 돌격에 신식훈련을 받았다는

경군()도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홍계훈의 경군은 신식훈령을 받은 병정들이요, 또 신무기로 무장한 정예부대이었으나 죽음을 무릅쓰고 돌격해 오는 동학농민군에게 쫓겨

영광방면으로 도망하다가 5리쯤 나가서 신호리 마을 뒤 구릉()에 이르렀다. 이때 대관 이학승은 후미에서 동학군과 최후로 항전했으나

 전사하고 중요한 무기를 빼앗기고 말았으니 경군의 위세는 땅에 떨어지고 병정은 사기를 잃었다.

 

뿐만 아니라 도망가는 관군을 추격, 30리 지경까지 추격해 ‘구르프포’ 1문과 ‘회선포’ 1문을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었으며, 또 대관 이학승

 이외에 병정 5명이 전사하였다. 동학군은 진중에서 미리 준비해 두었던 대()로 만든 ‘장태’ 수십 대를 산의 정상으로부터 내려 굴리며

사격을 가함으로 관군은 미쳐 정신을 수습할 사이도 없이 시살()을 당해 이효승·배윤환 2명과 관병 100명을 몰사시키고 대포 2문,

‘구르프포’·‘회선기관포’ 각 1문과 양총() 100여 개를 빼앗았다.

 

‘대장태’라 하는 것은 청죽()으로 얽어 닭장 같이 만든 것으로 그 밑에 차바퀴를 붙인 것이며 그 속에는 군사가 앉아 총질을 하게 된 것으로

이 장태를 만든 사람은 장흥접주였던 이방언이었으므로 그 별호를 이장태라고 불렀다. 동학농민군들은 이 장성싸움에서 얻은 대포와 양총을

거두고, 북상해 정읍·태인을 거쳐 이 전투 이후 초토사가 출진한 뒤 방비가 허술한 전주성을 쉽게 함락시켰다.

 

한편 이학승과 병정 5명에 대한 장례는 장성 향리 박전성이 사재 500량을 들여 장례를 치렀다가 전주화약 후 5월 9일 서울로 다시 운구되었다.

후일 이학승은 좌승지로 추증되고 전사지인 장성군 황룡면 신호리에는 1897년 최익현이 지은 ‘증좌승지이공학승순의비()’가

 세워졌으며, 1997년장성군을 이곳에 공원을 조성하고 기념탑 등을 건립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발췌/

 

증좌승지이공학승순의비()

홍계훈의 선봉이었던 이학승은 300여명의 관군을 지휘해 농민군과 전투를 벌였으나 결국 전사했다.

 1897년 장성 유림들이 이학승이 죽은 자리에 면암 최익현이 쓴 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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