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축제·전시·공연

기씨부인전(奇氏夫人傳)

 

 

 

 

 

 

 

 

 

 

 


 

 

 하서(河西) 김인후(金仁厚) 선생과 부인 여흥 윤씨의 합장 묘.

(전남 장성군 황룡면 맥동리)

 

 

하서 선생의 손부 기씨부인 일비장(一臂葬) 묘 

(전남 장성군 황룡면 맥동리)

 

하서 선생은 종룡, 종호 두 아들을 두었는데 둘째 종호의 큰아들이 남중(南重)이며,

그 부인이 바로 위 사진상 묘의 주인공이자 고봉 기대승 선생의 따님인 행주 기씨부인이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부인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친정 집으로 가서 난을 피했다.  

왜군이 물러간 줄 알고 다시 시댁으로 오다가 왜군에게 손목을 붙잡히고 되자

가슴에 품고있던 은장도를 꺼내어 자신의 팔목을 자른 다음 황룡강에 뛰어들고 말았다.

집에 돌아온 남편 남중은 물에 떠내려간 시진을 찾지 못해 동네 사람이 수습해 둔 팔 하나를

소중히 장사지냈다고 한다. 후로 이 묘를 '일비장'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  또 하나 전하는 얘기 -

 

당시 기씨 부인이 데리고 오던 어린 두 아들은 왜군에게 끌려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300년이 지난 훗 날, 일제 때 하서(河西)라는 성을 가진 일인 경찰서장이 부임해와

자신의 조상이 조선 사람이라 주장했다고. 끌려간 두 아이가 어렸던 관계로 하서 선생 후손이라는

사실만 기억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는데. 현재도 일본에는 하서라는 성을 가진 집안이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