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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살롱 드 월봉

<제20회> 살롱 드 월봉

            -제20회- 

        고품격 문화살롱 - salon de wolbong  

  

 

                    주제 : 유배문학과 이순신                              

                       강사 : 서 재 심(남해문화사랑회 회장)

           

                                  공연  /  추 민 승 modern

  

           - 일시 : 2014년 2월 28일(금) 오후 7시 - 10시 

           - 장소 : 월봉서원 교육체험관

           _ 주최 : 광주광역시 광산구  

           - 주관 : 교육문화공동체 '결'

           - 후원 : 문화재청, (재)고봉학술원, 행주기씨문헌공종중, 광곡마을 주민,

                       광산문화원, 광주향교여성유도회, 광산구문화유산해설사회

 

 

 

 

 교육문화공동체 '결' 박시훈 대표 인삿말

 

 

 

 

 

 

 

고봉학술원 강기욱 선생님의 강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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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살롱 드 월봉'에 강사로 모신 서재심 선생님은 '문화유산해설사'라는 제도가 생기기 이전부터

'남해문화사랑회'를 이끌어 오셨으며, 남해를 보물섬으로 격상시킨 진정한 남해의 주인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등단 시인이자, 이순신 장군을 꿈에서도 만나 볼 수 있으리만치 인문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물경 2천여 권의 서적을 독파하신 늦 공부의 우수한 사례이자, 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우주적임을

실천해 오신 이력의 장본인이시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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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 서 재 심

 

 

 

 

 

 

 

 

 

 

 

 

 

"칼의노래"라는 책을 통해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후 '난중일기'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꿈에서 이순신을 만나보길 원하는 기도를 시작했으며 소원대로 충무공을 만났다.

 

 

어릴적 고전을 먼저 가르치는게 순서라는 생각이다.

훗 날 뒷심을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23번의 해전을 모조리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충무공이 휴머니스트 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통솔력은 사랑이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들을 사랑으로  감동시켰다는 얘기다.

감동하면 자연 한마음이 되는 법. 리더의 솔선수범과 고결한 인격이야말로 한마음의 요체이다.

 

 

 

이순신의 詩  부분

 

공적은 사람마다 낮춰 보련만 (業 是 千 人 貶)
이름은 부질없이 세상이 아네. (名 猶 四 海 知)
변방의 근심을 평정한 뒤엔 (邊 憂 如 可 定)
도연명 귀거래사 나도 읊으리. (應 賦 去 來 辭.)


 

 

 

 

 

 

 

 

 

 

 

 

 

공연 / 추민승 - 버스킹 밴드(모던)

 

하늘이 싸이키델릭이라면...

1. 검은 숲의 아이

2. Being asleep and awake (비몽사몽)

3. 곰인형

4. Just do what you want to do

 

 

 

 곡을 쓸 때 주로 영어 가사를 붙인다.

영어 가사의 표현력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제 노래에 여러분들이 어떤 이미지를 떠올렸다면 나로선 성공이다.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 고 두 현 -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보세요

낮은 파도에도 멀미하는 노을

해안선이 돌아앉아 머리 풀고

흰 목덜미 말리는 동안

미풍에 말려 올라가는 다홍 치맛단 좀 보세요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으로 가는

삼십 리 물미해안, 허리에 낭창낭창

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며

길은 잘 익은 햇살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고

섬들은 수평선 끝을 잡아

그대 처음 만난 날처럼 팽팽하게 당기는데

바알갛게 옷을 벗는 풍경

은점 지나 노구 지나 단감빛으로 물드는 노을

남도에서 가장 빨리 가을이 닿는

삼십 리 해안 길, 그대에게 먼저 보여주려고

저토록 몸이 달아 뒤채는 파도

그렇게 돌아앉아 있지만 말고

속 타는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좀 보아요.

 

 

 

 

눈물이 바다 되어 섬으로 선 그곳에는

행여 내 소란스러움 죄 될까

걸음도 사뿐사뿐

목소리도 소곤소곤

초옥터 오르던 길

바다는 여전히 흰 울음

하늘은 지그시 눈을 감고 들려준다.

모아둔 옛날 옛적 아픈 이야기

천리 길 먼 곳 남해 향해 귀 열려 있을 어머니를 위해

만들어진 노래들

바람도 듣고 햇살도 보았겠지

늦은 가을 노도에는

들국화 향기 땅으로 스며들고

오래전에 받아 마신 한숨 삭이지 못한 앵강은

아직도 퍼렇게 멍이 들어 있더라.

 

 이 시는

2005년 처음 노도를 다녀온 후 제가 쓴 시입니다.

 

 

   

 

 

 

 

■자암 김구는…

조선 전기 4대 서예가의 한사람으로 꼽히는 자암은 일찍부터 주자학연구에 전념해 학문이 조광조·김식과 견주었으며, 음률에도 뛰어나 악정에 임명된 적도 있다. 조광조, 김정 등과 함께 삼암(三庵)으로 불리면서 개혁정치에 앞장서 중종 14년(1519년) 32세의 나이로 홍문관 부제학에 올랐다. 그러나 중종반정의 공신들로부터 반감을 사 남해에서 13년 동안 유배살이를 했다.

유배가 끝나고 고향인 예산으로 돌아온 자암은 유배 중에 돌아가신 부모님 산소 옆에서 시묘살이를 했다. 이 때 자암이 흘린 눈물 때문에 묘 근처의 풀이 다 마를 정도였다고 하며, 그 역시 병을 얻어 이듬해 세상을 떠나 효자로도 이름이 나 있다. 신암면 종경리에 그의 묘소와 신도비가 있다.

자암은 수많은 시문을 남겼는데 대부분 유실돼 <자암집>(사진)을 통해 전하는 것은 국문시조 5수와 경기체가인 화전별곡 뿐이다. 독특한 서체의 명필인 그의 글씨는 서울 인수방(仁壽坊)에 살았다 하여 ‘인수체’라고 일컬어진다. 작품으로 <이겸인묘비> <자암필첩> <우주영허첩> 등을 남겼다.

 

 

 
▲ 인수체로 일컬어지는 자암의 글씨. 자암은 자신의 글씨를 중국인들이 사간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붓을 꺾어 남은 작품이 드물다고 알려져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Try To Remember / Giovanni Marr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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