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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범 종단과 함께

선덕사 / 갤러리 AHHA 모임

2014.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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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쟁 끝내고 화쟁의 길 찾기 … 도법, 그가 다시 순례를 나선다

내달 2일 제주서 출발 '100일 여정'
좌우로 갈려 쪼개진 사회 위험 수위
오른손 등의 종기, 왼손이 치료해야
'같이 살아야 할 민족' 잊으면 안 돼

우리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화쟁코리아 100일 순례’에 나서는 도법 스님. 스님은 좌·우의 프리즘과 진영논리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했다. “진보의 프리즘에서 자유로워야 진정한 진보가 된다. 보수도 마찬가지다. 보수의 프리즘에서 자유로울 때 진정한 보수가 된다. 그래야 소통이 되고 화쟁이 된다”고 강조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도법(道法) 스님이 걷는다. 이번에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로 갈라진 우리 사회의 상처를 봉합하기 위해서다. 3월 2일 한라산 백록담에서 출발, 전국 14개 광역도시와 판문점을 거쳐 6월 10일 서울 광화문공원에서 막을 내린다. ‘화쟁코리아 100일 순례’라고 이름 붙였다.

 18일 조계종 결사추진본부 사무실에서 도법 스님을 만났다. 책상 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 액자가 놓여 있었다. “얼마 전 동료 스님이 선물했다. 교황의 말씀과 행보에선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청빈과 영성이 우러난다. 그분의 말과 행동이 보편타당하다면, 같은 종교냐 아니냐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출발부터 화쟁이다.

 - 순례명이 ‘화쟁(和諍)’이다. 왜 화쟁인가.

 “다툼 때문이다. 우리는 편갈라서 싸우고 있다. 그래서 삶이 더 고통스럽고 불행하다. 이걸 해결해야 한다. 다툼을 화해시키는 일, 그게 화쟁이다.”

 도법 스님은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예로 들었다. “그 사건의 뿌리가 뭔가. 좌우 이념 싸움이다. 그로 인한 동족상잔, 남북분단이다. 이런 비극적 경험이 우리에게 있다. 벌써 반백년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도 그 문제를 못 풀고 있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은 아직도 쪼개져 있는 우리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도법 스님 책상 위의 프란치스코 교황 액자.
 스님은 내란음모의 실체가 있어도 불행한 일이고, 그 반대라도 불행한 일이라고 했다. “실체가 있다는 건 대한민국 안에서 사회통합과 민족통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만약 그 반대라고 하더라도 억지로 딱지를 붙이는 것이니 불행한 거다.”

 - 상처의 뿌리가 깊은 건가.

 “그렇다. 좌우 대립과 남북분단의 응어리가 바닥에 쭉 흐르고 있다. 그게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진보란 이름으로, 보수란 이름으로 갈린다. 자본가와 노동자, 개발론과 보존론, 친미와 반미, 친북과 반북 등 온갖 명분으로 편이 갈린다.”

 - 새는 두 날개로 날지 않나. 보수와 진보로 갈리는 게 왜 문제인가.

 “문제는 응어리다. 그래서 서로 불신하고 증오한다. 그건 건강한 날개가 아니다. 이런 새는 두 날개로 날지 못한다. 응어리를 풀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 사회가 좀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가 있다.”

 - 두 날개가 문제인가.

 “새의 몸통은 약한데 날개만 극성을 부리고 있다. 몸통이 탄탄해야 한다. 몸통이 뭔가.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다. 국민이다. 들어보라. 국민의 목소리는 없다. 진보와 보수의 목소리만 있다. 국민의 목소리가 중심이 돼야 한다. 진보도 보수도 그걸 따라가야 한다.”

 - 우리는 왜 지금껏 응어리를 풀지 못했나.

 “보수와 진보의 소통 방식이 잘못됐다. 이제까진 힘겨루기로 승부를 내는 식이었다. 그러니 싸움이 계속 확대 재생산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가 아물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거꾸로 왔다. 사회통합과 민족통합은커녕 갈수록 걱정이 더 쌓인다. 그게 우리의 현주소다.”

 인터뷰를 하다가 도법 스님은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자, 오른손과 왼손이 있다. 오른손 등에도 종기가 났고, 왼손 등에도 종기가 났다고 하자. 오른손의 상처는 누가 치료할 수 있나? 왼손이다. 그럼 왼손의 상처는? 오른손만이 도와줄 수 있다. 그래야 치유가 가능해진다. 우리에게는 그런 식의 노력이 없었다. 오히려 정반대로 걸어왔다.” 스님은 그 와중에 종기가 더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 지금은 어떤 시점인가.

 “그동안 편 갈라서 힘겨루기로 승부를 냈다. 이제는 안다. 그런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은 그런 물음을 던져야 할 시점이다.”

 -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3·1 정신에 해답이 있다. 불교에선 이걸 화쟁이라고 부른다. 그걸 통해 새 길을 열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산다.”

 - 3·1 정신은 100년 전의 이야기다. 우리는 지금도 곪고 있는 한국 사회의 종기를 말하고 있다.

 “안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3·1 독립운동에 불을 지핀 사람이 누군가.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천도교와 기독교, 불교 등이 함께 했다. 그게 쉬웠겠나. 각 종교가 다 자기 입장이 있는 거다. 그분들은 더 큰 가치 앞에서 기득권을 내려놓았다. 자기 진영의 입장을 내려놓았다. 그럴 때 진영의 벽을 넘어설 수 있다. 그게 3·1 운동의 정신이다. 그래서 온 국민이 들고 일어났던 거다.”

 그때와 지금, 도법 스님은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제 주위에 나라를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기 직전의 상황과 오늘의 상황이 너무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 도법 스님은 중요한 건 보수냐, 진보냐가 아니라고 했다.

 - 그럼 무엇이 중요한가.

 “이쪽이냐, 저쪽이냐가 아니다. 우리가 같이 살아야 할 대한민국 국민이고, 같이 살아야 할 민족이란 대전제를 잃어버리지 않는 거다. 이걸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럼 해법이 보인다.”

 도법 스님은 역사적 상처가 깊은 현장을 순례하며 좌·우익 희생자 모두를 위한 합동위령제도 지낼 예정이라고 했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도법(道法) 스님=1949년 제주 출생. 95년 전북 남원 실상사 주지를 맡았다. 98년에는 IMF(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로 인해 귀농 인구가 늘자 지리산에 귀농전문학교를 세우고 교장을 맡아 귀농을 도왔다. 2004년부터 전국을 돌며 생명평화 탁발순례 운동을 펼쳤다. 현재 조계종 자성과 쇄신 결사추진본부장이다.

 

 

- 중앙일보 기사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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