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느 때를 막론하고 개방되어야 할 수운 선생 생가터.
아직 문을 닫을 시간이 남았는데 문을 잠그고 퇴근 채비중인 경주시 근무자를 불러 문을 열게 했다.
동학수도인이 상주를 하며 오직 주문과 도력으로 관리해야 함이 당연함에도...
한울연대 동계수련 차 방문하게 되었노라 心告의 禮를 드리고...
후천 오만년의 대도를 제시한 위대한 사상가의 생가터가
마치 영화 셋트장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관리되고 있다니...
방에 불을 때고 굴뚝에 연기가 오른다면
향아설위(向我設位)가 실현되고 나눔과 모심의 정신이 발현될 터인데.
吾道(오도)는 只在(지재) 성(誠). 경(敬). 신(信) 三字니라.
샘아 샘아 솟아나라 / 맑은 샘아 솟아나라 / 쉬지말고 솟아나라 / 오만년을 솟아나라
나도 또한 샘이되어 / 맑고 맑게 솟아나라 / 쉬지않고 솟아나리 / 오만년을 솟아나리
流高吟 (유고음)
高峯屹立 群山統率之像
높은 봉우리가 우뚝 솟은 것은 모든 산을 통솔하는 기상이요,
流水不息 百川都會之意
흐르는 물이 쉬지 않는 것은 모든 시내를 모으려는 뜻이니라.
明月虧滿 如節夫之分合
밝은 달이 이지러지고 차는 것은 절부의 분합과 같더라.
黑雲騰空 似軍伍之嚴威
검은 구름이 공중에 떠오름은 군대의 위엄같더라.
地納糞土 五穀之有餘 人修道德 百用之不紆
땅은 거름을 드려야 오곡의 남음이 있고, 사람은 도덕을 닦아야 모든 일이 얽히지 않느니라.
- 東經大全 112장 -
偶吟 (우음)
南辰圓滿北河回 大道如天脫劫灰
남쪽 별이 둥글게 차고 북쪽 하수가 돌아오면 대도가 한울같이 겁회를 벗으리라.
鏡投萬里眸先覺 月上三更意忽開
거울을 만리에 투영하니 눈동자 먼저 깨닫고, 달이 삼경에 솟으니 뜻이 홀연히 열리 도다.
何人得雨能人活 一世從風任去來
어떤 사람이 비를 얻어 능히 사람을 살릴 것인가. 온 세상이 바람을 좇아 임의로 오 고가네.
百疊塵埃吾欲滌 飄然騎鶴向仙臺
겹겹이 쌓인 티끌 내가 씻어버리고자 표연히 학을 타고 선대로 향하리라.
淸霄月明無他意 好笑好言古來風
하늘 맑고 달 밝은 데 다른 뜻은 없고 좋은 웃음 좋은 말은 예로부터 오는 풍속이라.
人生世間有何得 問道今日授與受
사람이 세상에 나서 무엇을 얻을 건가. 도를 묻는 오늘날에 주고 받는 것이로다.
有理其中姑未覺 志在賢門必我同
이치 있는 그 내용을 아직 못 깨달아, 뜻이 현문에 있으니 반드시 나 같으리.
天生萬民道又生 各有氣像吾不知
한울이 백성을 내시고 도 또한 내었으니, 각각 기상이 있음을 나는 알지 못했네.
通于肺腑無違志 大小事間疑不在
폐부에 통했으니 어그러질 뜻이 없고, 크고 작은 일에 의심이 없네.
馬上寒食非故地 欲歸吾家友昔事
마상의 한식은 연고지가 아니요, 우리집에 돌아가서 옛일을 벗하고 싶네.
義與信兮又禮智 凡作吾君一會中
의리와 신의여, 또한 예의와 지혜로다. 무릇 나와 그대 한 모임을 지으리.
來人去人又何時 同坐閑談願上才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또 어느 때일까. 같이 앉아 한담하며 상재를 원할까.
世來消息又不知 其然非然聞欲先
세상 되어오는 소식 또한 알지 못해서, 그런가 안 그런가 먼저 듣고 싶어하네.
雲捲西山諸益會 善不處卞名不秀
서산에 구름 걷히고 모든 벗 모이리니, 처변을 잘못하면 이름이 빼어나지 못하리라.
何來此地好相見 談且書之意益深
어떻게 이곳에 와서 서로 좋게 보는거냐. 말하고 글쓰는 것 뜻이 더욱 깊더라.
不是心泛久不此 又作他鄕賢友看
이 마음 들뜨지 말라, 오래 이렇지 않으리니. 또 타향에서 좋은 벗을 보리로다.
鹿失秦庭吾何群 鳳鳴周室爾應知
사슴이 진나라 뜰을 잃었다니 우리가 어찌 그런 무리인가. 봉황이 주나라에서 우는 것을 너도 응당 알리라.
不見天下聞九州 空使男兒心上遊
천하를 보지도 못하고 구주는 말로만 들었으니, 공연히 남아로 하여금 마음만 설레게 하네.
聽流覺非洞庭湖 坐榻疑在岳陽樓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니 동정호 아닌 줄 알겠고, 앉은 자리가 악양루에 있음인지 의 심하네.
吾心極思杳然間 疑隨太陽流照影
내 마음 지극히 묘연한 사이를 생각하니, 의심컨대 태양이 흘러 비치는 그림자를 따 르네.
- 동경대전 92장 -
詩 文 (시문)
纔得一條路 步步涉險難 겨우 한 가닥 길을 얻어 걸음 걸음 험한 길 걸어가노라.
山外更見山 水外又逢水 산 밖에 다시 산이 보이고 물 밖에 또 물을 만나도다.
幸渡水外水 僅越山外山 다행히 물 밖에 물을 건너고 간신히 산 밖에 산을 넘어 왔노라.
且到野廣處 始覺有大道 바야흐로 들 넓은 곳에 이르니 비로소 대도가 있음을 깨달았노라.
苦待春消息 春光終不來 안타까이 봄 소식을 기다려도 봄빛은 마침내 오지를 않네.
非無春光好 不來卽非時 봄 빛을 좋아하지 않음이 아니나 오지 아니하면 때가 아닌 탓이지.
玆到當來節 不待自然來 비로소 올만한 절기가 이르고 보면 기다리지 아니해도 자연히 오네.
春風吹去夜 萬木一時知 봄 바람이 불어 간 밤에 일만 나무 일시에 알아 차리네.
一日一花開 二日二花開 하루에 한송이 꽃이 피고 이틀에 두 송이 꽃이 피네.
三百六十日 三百六十開 삼백 예순 날이 되면 삼백 예순 송이가 피네.
一身皆是花 一家都是春 한 몸이 다 바로 꽃이면 온 집이 모두 바로 봄일세.
甁中有仙酒 可活百萬人 병 속에 신선 술이 있으니 백만 사람을 살릴 만하도다.
釀出千年前 藏之備用處 빚어내긴 천년 전인데 쓸 곳이 있어 간직하노라.
無然一開封 臭散味亦薄 부질없이 한 번 봉한 것 열면 냄새도 흩어지고 맛도 엷어지네.
今我爲道者 守口如此甁 지금 우리 도를 하는 사람은 입 지키기를 이 병같이 하라.
- 동경대전 86장 -
筆法 (필법)
修而成於筆法 其理在於一心
닦아서 필법을 이루니 그 이치가 한 마음에 있도다.
象吾國之木局 數不失於三絶
우리나라는 목국을 상징하니 삼절의 수를 잃지 말아라.
生於斯得於斯故 以爲先東方
여기서 나서 여기서 얻었는 고로 동방부터 먼저 하느니라.
愛人心之不同 無裏表於作制
사람의 마음이 같지 않음을 어여삐 여겨 글을 쓰는 데 안팎이 없게 하라.
安心正氣始畫 萬法在於一點
마음을 편안히 하고 기운을 바르게하여 획을 시작하니 모든 법이 한 점에 있느니라.
前期柔於筆毫 磨墨數斗可也
먼저 붓 끝을 부드럽게 할 것이요, 먹은 여러 말을 가는 것이 좋으니라.
擇紙厚而成字 法有違於大小
종이는 두터운 것을 택해서 글자를 쓰니, 법은 크고 작음에 다름이 있도다.
先始威而主正 形如泰山層巖
먼저 위엄으로 시작하여 바르기를 주로 하니 형상이 태산의 층암과 같으니라.
- 동경대전 110장 -
前八節 (전팔절)
1. 不知明之所在 遠不求而修我
밝음이 있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멀리 구하지 말고 나를 닦으라.
2. 不知德之所在 料吾身之化生
덕이 있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내 몸의 화해난 것을 헤아리라.
3. 不知命之所在 顧吾心之明明
명이 있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내 마음의 밝고 밝음을 돌아보라.
4. 不知道之所在 度吾信之一如
도가 있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내 믿음이 한결같은가 헤아리라.
5. 不知誠之所致 數吾心之不失
정성이 이루어지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내 마음을 잃지 않았나 헤아리라.
6. 不知敬之所爲 暫不弛於慕仰
공경이 되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잠깐이라도 모앙함을 늦추지 말라.
7. 不知畏之所爲 念至公之無私
두려움이 되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지극히 공변하여 사사로움이 없는가 생각 하라.
8. 不知心之得失 察用處之公私
마음의 얻고 잃음을 알지 못하거든 마음 쓰는 곳의 공과 사를 살피라.
- 동경대전 98장 -
後八節 (후팔절)
1. 不知明之所在 送余心於其地
밝음이 있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내 마음을 그 땅에 보내라.
2. 不知德之所在 欲言浩而難言
덕이 있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말하고자 하나 넓어서 말하기 어려우니라.
3. 不知命之所在 理杳然於授受
명이 있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이치가 주고 받는 데 묘연하니라.
4. 不知道之所在 我爲我而非他
도가 있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내가 나를 위하는 것이요 다른 것이 아니니라.
5. 不知誠之所致 是自知而自怠
정성이 이루어지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이에 스스로 자기 게으름을 알라.
6. 不知敬之所爲 恐吾心之昧
공경이 되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내 마음의 거슬리고 어두움을 두려워 하라.
7. 不知畏之所爲 無罪地而如罪
두려움이 되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죄 없는 곳에서 죄 있는 것같이 하라.
8. 不知心之得失 在今思而昨非
마음의 얻고 잃음을 알지 못하거든 오늘에 있어 어제의 그름을 생각하라.
- 동경대전 101장 -
청수봉전가
맑은물 파란물 깨끗한 물을 성심으로 공경하여 정히 모시고
수심정기 일념으로 단정히 앉아 성주문 외는 소리 청수위에 맴돌 때
세상 사람 깨닫나니 잠을 깨나니 동귀일체 개벽이다 지상천국이도다.
맑은물 파란물 깨끗한 물을 굳게 믿어 우러러 고이 모시고
정심수심 일심으로 단정히 앉아 성주문 외는 소리 청수위에 높을 때
세상 사람 깨닫나니 잠을 깨나니 동귀일체 개벽이다 지상천국이도다.
- 송가 62장 -
경전 특강 / 무암 배성운
1940년 출생, 동계수련을 한울연대와 내내 함께 하시며
오전 두 시간, 오후 두 시간, 총 네 시간의 특강을 비롯,
틈 날 때 마다 열강을 펼쳐주셨습니다.
동학은 곧 '心學'이다.
마음을 갈고 닦기 위해 바로 이 자리에 여러분 들이 모인 것이다.
동학 이전 인간 사회 모든 개념은 수직이었다. 이것을 수평개념으로 바꿔놓은 게 바로 동학이다.
귀신과 하늘이 존재하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마음 속에 존재함을 갈파한 것이다.
이자리에 참석한 몇 몇의 젊은이들에게 간곡하게 말 하고 싶다.
'東學'에는 인생을 걸어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내재되어 있노라고...
덕을 반드시 밝히는 것이 바로 道이다.
완전 수 중의 완전 수 '6'
동서양을 막론하고 3자에 대한 의미는 대단했다. 피타고라스학파의 수비학(數秘學)에서는“1과 2는 본질적 요소이며 위치적 수이기 때문에 3이 진짜 첫 번째 수가 된다”고 역설했고 동양학에서는 천지인(天地人) 3재(三才)라 하여 우주 삼라만상의 모양과 현상을 “삼대”와 “삼요소”로 이 3자에 담았다. 하늘과 땅과 사람, 시간과 공간과 인간, 과거와 현재와 미래, 시작과 중간과 끝, 음 양 중, 대 중 소 등등이 다 이 3자 안에 포용될 뿐이다. 이 3자가 음양을 만나고 짝을 만나면, 최초이자 완벽한 ‘완전수’가 된다. 완전수란 자신을 제외한 약수의 합이 자신과 같은 수를 말한다. 최초의 완전수 6을 예로 든다면 자신인 6을 제외한 약수는 1,2,3,인데 이 약수의 합이 자신의 수인 6이 되는 수를 말한다. 특히 6은 이 약수들을 다 곱해도 6이 되므로 가장 완벽한 완전수 중의 완전수라고 하는 것이다. 3이 3을 만나면 6이 된다. 그래서였을까? 우리 조상들은 모든 일에 3대, 3요소, 3세판을 적용했다. 서양종교인 기독교의 “창세기”에서도 천지창조는 6일 만에 완성된다.
음과 양을 대표하는 밤과 낮으로 하루는 이루어진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어둡고 밝은 밤낮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중간인 아침과 저녁이 끼어있다. 이 셋을 ‘음,양,중’이라 말하고,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낮 중에서도 점점 더 밝아지고 점점 더 따뜻해져가는 오전이 있고, 차차 어두움으로 가고 점점 온도가 내려가는 오후로 나눌 수가 있다. 어두운 밤도 마찬가지다. 차차 더 어두워지고 추워져가는 밤이 있는가하면 차츰 밝아지고 기온이 조금씩 올라가는 새벽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나누면 하루가 완전수인 여섯 토막으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아침, 오전, 오후, 저녁, 밤, 새벽이 바로 여섯 가지기운인 6기(六氣)인 것이다. 모든 물체와 현상과 생명을 여섯 토막으로 나눌 수 있으면 가장 완전한 분석이 될 수 있고 어떤 문제의 운용이나 해결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우리 몸의 육근이나 육감, 육장육부, 물의 육각수, 육합, 육기, 육하원칙 등이 모두 이 6 속으로 귀결됨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강의에 앞서,
반드시 詩 한 수를 수강생의 목소리를 통해 낭독케 하셨으니...
論學文(논학문 부분 강해)
글 한 줄을 읽어도 마음으로 읽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동학의 태동기는 오 천년 우리 역사 중 가장 가난하고 어렵고 힘든 질곡의 시기였다.
붓과 종이가 없으니 말로 할 수 밖에 없었고 당연히 덮어놓고 주문 외는 것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천지에 널린 게 쓰는 도구이다. 외고 쓰는 것이 공부의 정도인 만큼 모두 들
경전을 쓰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된다.
論學文 (논학문)
1. 夫天道者는 如無形而有迹하고 地理者는 如廣大而有方者也라
故로 天有九星하여 以應九州하고 地有八方하여 以應八卦而 有盈虛迭代之數나
無動靜變易之理라 陰陽이相均에 雖百千萬物이 化出於其中이나 獨惟人이 最靈者也라
무릇 천도란 것은 형상이 없는 것 같으나 자취가 있고, 지리란 것은 넓은 것 같으 나 방위가 있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한울에는 구성이 있어 땅의 구주와 응하였고 땅 에는 팔방이 있어 팔괘와 응하였으니,
차고 비고 서로 갈아드는 수는 있으나 동하고 정하고 변하고 바뀌는 이치는 없느니라.
음과 양이 서로 고루어 비록 백천만물이 그 속에서 화해 나지마는 오직 사람이 가장 신령한 것이니라.
2. 故로 定三才之理하고 出五行之數하니 五行者는 何也오 天爲五行之綱이요
地爲五行之質이요 人爲五行之氣니 天地人三才之數를 於斯可見矣 니라
그러므로 삼재의 이치를 정하고 오행의 수를 내었으니 오행이란 것은 무엇인가.
한울은 오행의 벼리가 되고 땅은 오행의 바탕이 되고 사람은 오행의 기운이 되었으 니,
천·지·인 삼재의 수를 여기에서 볼 수 있느니라.
3. 四時盛衰와 風露霜雪이 不失其時하고 不變其序하되 如露蒼生은 莫知其端하여 或云 天主之恩이요
或云 化工之迹이나 然而以恩言之라도 惟爲不見之事요 以工言之라도 亦爲難狀之言이라
何者오 於古及今에 其中未必者也니라
사시성쇠와 풍로상설이 그 때를 잃지 아니하고 그 차례를 바꾸지 아니하되
여로창생은 그 까닭을 알지 못하여 어떤 이는 한울님의 은혜라 이르고 어떤 이는 조화의 자 취라 이르나,
그러나 은혜라고 말할지라도 오직 보지 못한 일이요 조화의 자취라 말 할지라도 또한 형상하기 어려운 말이라.
어찌하여 그런가. 옛적부터 지금까지 그 이치를 바로 살피지 못한 것이니라.
내 마음 속 하늘에 대한 올바른 이해...
상수학, 음양오행 속의 숫자등을 이해해야 경전을 읽을 맛이 난다.
저녁 기도식을 앞 둔 담소의 시간
저녁 기도식
타종 그리고 모심의 시간
1929년생으로 금번 한울연대 동계수련 최 연장자이시자
55년 째 포도농사꾼으로 살아온 김성순 옹의 자기소개
"거북이는 욕심이 없으니 오래 산다.
기인 호흡으로 숨 쉬고
10년 100년 단위로 세상을 바라본다.
거북이는 말이 없다.
급할수록 돌아간다.
날마다 자기를 돌아본다."
- 김성순 동덕님의 자작시 '거북이의 노래' 종에서. -
- 논학문 -
4. 夫庚申之年 建巳之月 天下紛亂 民心淆薄 莫知所向之地 又有怪違之說 崩騰于世間 西洋之人 道成立德 及其造化
無事不成 功鬪干戈 無人在前 中國燒滅 豈可無脣亡之患耶 都緣無他 斯人 道稱西道 學稱天主 敎則聖敎 此非知天時而 受天命耶
경신년 사월에 천하가 분란하고 민심이 효박하여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할 즈음에 또 한 괴상하고 어긋나는 말이 있어
세간에 떠들썩하되, 「서양사람은 도성입덕하여 그 조화에 미치어 일을 이루지 못함이 없고 무기로 침공 함에
당할 사람이 없다하니 중국이 소멸하면 어찌 가히 순망의 환이 없겠는가.」「도무지 다른 연고가 아니라, 이 사람들은
도를 서도라 하고 학을 천주학이라 하고 교는 성교라 하니, 이것이 천시를 알고 천명을 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5. 擧此一一不已故 吾亦悚然 只有恨生晩之際 身多戰寒 外有接靈之氣 內有降話之敎
視之不見 聽之不聞 心尙怪訝 修心正氣而問曰 何爲若然也
이를 일일이 들어 말할 수 없으므로 내 또한 두렵게 여겨 다만 늦게 태어난 것을 한탄할 즈음에,
몸이 몹시 떨리면서 밖으로 접령하는 기운이 있고 안으로 강화의 가 르침이 있으되, 보였는데 보이지 아니하고
들렸는데 들리지 아니하므로 마음이 오히 려 이상해져서 수심정기하고 묻기를 「어찌하여 이렇습니까.」
6. 曰吾心卽汝心也 人何知之 知天地而無知鬼神 鬼神者吾也 及汝無窮無窮之道 修而煉 之
制其文敎人 正其法布德則 令汝長生 昭然于天下矣
대답하시기를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니라. 사람이 어찌 이를 알리오. 천지는 알 아도 귀신은 모르니
귀신이라는 것도 나니라. 너는 무궁 무궁한 도에 이르렀으니 닦 고 단련하여 그 글을 지어 사람을 가르치고
그 법을 바르게 하여 덕을 펴면 너로 하 여금 장생하여 천하에 빛나게 하리라.」
7. 吾亦幾至一歲 修而度之則 亦不無自然之理 故 一以作呪文 一以作降靈之法 一以作不 忘之詞 次第道法 猶爲二十一字而已
내 또한 거의 한 해를 닦고 헤아려 본즉, 또한 자연한 이치가 없지 아니하므로 한 편으로 주문을 짓고
한편으로 강령의 법을 짓고 한편은 잊지 않는 글을 지으니, 절차 와 도법이 오직 이십일 자로 될 따름이니라.
8. 轉至辛酉 四方賢士 進我而問曰 今天靈降臨先生 何爲其然也 曰受其無往不復之理 曰然則何道以名之
曰天道也 曰與洋道無異者乎 曰洋學如斯而有異 如呪而無實 然而運則一 也 道則同也 理則非也
신유년에 이르러 사방에서 어진 선비들이 나에게 와서 묻기를 「지금 천령이 선생 님께 강림하였다 하니 어찌된 일입니까.」
대답하기를 「가고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는 이치를 받은 것이니라.」묻기를 「그러면 무슨 도라고 이름 합니까.」
대답하기를 「천도이니라.」묻기를 「양도와 다른 것이 없습니까.」
대답하기를 「양학은 우리 도와 같은 듯하나 다름이 있고 비는 것 같으나 실지가 없 느니라.
그러나 운인 즉 하나요 도인 즉 같으나 이치인 즉 아니니라.」
9. 曰何爲其然也 曰吾道無爲而化矣 守其心正其氣 率其性受其敎 化出於自然之中也 西人 言無次第 書無皂白而
頓無爲天主之端 只祝自爲身之謀 身無氣化之神 學無天主之敎 有形無迹 如思無呪 道近虛無 學非天主 豈可謂無異者乎
묻기를 「어찌하여 그렇게 됩니까.」
대답하기를 「우리 도는 무위이화라. 그 마음을 지키고 그 기운을 바르게 하고 한울 님 성품을 거느리고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으면, 자연한 가운데 화해나는 것이요, 서양 사람은 말에 차례가 없고 글에 순서가 없으며
도무지 한울님을 위하는 단서가 없고 다만 제 몸만을 위하여 빌 따름이라. 몸에는 기화지신이 없고 학에는 한울님의
가르 침이 없으니 형식은 있으나 자취가 없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주문이 없는지라, 도는 허무한데 가깝고
학은 한울님 위하는 것이 아니니, 어찌 다름이 없다고 하겠는가.」
10. 曰同道言之則 名其西學也 曰不然 吾亦生於東 受於東 道雖天道 學則東學 況地分東西 西何謂東
東何謂西 孔子生於魯 風於鄒 鄒魯之風 傳遺於斯世 吾道受於斯布於斯 豈可謂以西名之者乎
묻기를 「도가 같다고 말하면 서학이라고 이름합니까.」
대답하기를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또한 동에서 나서 동에서 받았으니 도는 비록 천도나 학인 즉 동학이라.
하물며 땅이 동서로 나뉘었으니 서를 어찌 동이라 이르며 동을 어찌 서라고 이르겠는가.
공자는 노나라에 나시어 추나라에 도를 폈기 때문에 추로의 풍화가 이 세상에 전해 온 것이어늘
우리 도는 이 땅에서 받아 이 땅에서 폈으니 어찌 가히 서라고 이름하겠 는가.」
11. 曰呪文之意何也 曰 至爲天主之字故 以呪言之 今文有古文有
묻기를 「주문의 뜻은 무엇입니까.」
대답하시기를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글이므로 주문이라 이르는 것이니, 지금 글 에도 있고 옛 글에도 있느니라.」
12. 曰降靈之文 何爲其然也 曰至者 極焉之爲至 氣者虛靈蒼蒼 無事不涉 無事不命 然而如形而難狀
如聞而難見 是亦渾元之一氣也 今至者 於斯入道 知其氣接者也 願爲者 請祝 之意也 大降者 氣化之願也
묻기를 「강령의 글은 어찌하여 그렇게 됩니까」
대답하기를「지」라는 것은 지극한 것이요「기」라는 것은 허령이 창창하여 일에 간섭하지 아니함이 없고
일에 명령하지 아니 함이 없으나, 그러나 모양이 있는 것 같으나 형상하기 어렵고 들리는 듯하나 보기는 어려우니,
이것은 또한 혼원한 한 기운이요「금지」라는 것은 도에 들어 처음으로 지기에 접함을 안다는 것이요
「원위」라는 것은 청하여 비는 뜻이요「대강」이라는 것은 기화를 원하는 것이니라.
13. 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 主者 稱其尊而與父母同事者也 造化者 無爲而化也 定者 合其德定其心也 永世者
人之平生也 不忘者 存想之意也 萬事者 數之多也 知者 知其道而受其知也故 明明其德 念念不忘則 至化至氣 至於至聖
「시」라는 것은 안에 신령이 있고 밖에 기화가 있어 온 세상 사람이 각각 알아서 옮 기지 않는 것이요
「주」라는 것은 존칭해서 부모와 더불어 같이 섬긴다는 것이요「조화」라는 것은 무위이화요
「정」이라는 것은 그 덕에 합하고 그 마음을 정한다는 것이요「영세」라는 것은 사람의 평생이요
「불망」이라는 것은 생각을 보존한다는 뜻이요「만사」라는 것은 수가 많은 것이요
「지」라는 것은 그 도를 알아서 그 지혜를 받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 덕을 밝고 밝게 하여 늘 생각하며 잊지 아니하면 지극히 지기에 화하여 지극한 성인에 이르느니라.
14. 曰天心卽人心則 何有善惡也 曰命其人 貴賤之殊 定其人 苦樂之理 然而君子之德 氣有正而心有定故 與天地合其德
小人之德 氣不正而心有移 故 與天地違其命 此非盛衰之理耶
묻기를 「한울님 마음이 곧 사람의 마음이라면 어찌하여 선악이 있습니까.」
대답하기를 「그 사람의 귀천의 다름을 명하고 그 사람의 고락의 이치를 정했으나, 그러나 군자의 덕은 기운이 바르고
마음이 정해져 있으므로 천지와 더불어 그 덕에 합하고 소인의 덕은 기운이 바르지 못하고 마음이 옮기므로
천지와 더불어 그 명에 어기나니, 이것이 성쇠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15. 曰一世之人 何不敬天主也 曰臨死號天 人之常情而命乃在天 天生萬民 古之聖人之所謂而 尙今彌留
然而 似然非然之間 未知詳然之故也
묻기를 「온 세상 사람이 어찌하여 한울님을 공경치 아니합니까.」
대답하기를 「죽음에 임하여 한울님을 부르는 것은 사람의 상정이라. 목숨이 한울에 있음과 한울이 만민을 내었다는 것은
옛 성인의 하신 말씀으로서 지금까지 미루어 오 는 것이나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여 자세한 것을
알지 못하 기 때문이니라.」
16. 曰毁道者何也 曰猶或可也 曰何以可也 曰吾道今不聞古不聞之事 今不比古不比之法也 修者如虛而有實 聞者如實而有虛也
묻기를 「도를 훼방하는 자는 어째서입니까.」대답하기를 「혹 그럴 수도 있느니라.」
묻기를 「어찌하여 그렇습니까.」대답하기를 「우리 도는 지금도 듣지 못하고 옛적에도 듣지 못하던 일이요, 지
금도 비교하지 못하고 옛적에도 비교하지 못하는 법이라. 닦는 사람은 헛된 것 같지만 실 지가 있고,
듣기만 하는 사람은 실지가 있는 것 같지만 헛된 것이니라.」
17. 曰反道而歸者何也 曰斯人者不足擧論也 曰胡不擧論也 曰敬而遠之 曰前何心而後何 心 也 曰草上之風也 曰然則 何以降靈也
曰不擇善惡也 曰無害無德耶 曰堯舜之世 民皆 爲堯舜 斯世之運 與世同歸 有害有德 在於天主 不在於我也 一一究心則
害及其身 未詳知之 然而斯人享福 不可使聞於他人 非君之所問也 非我之所關也
묻기를 「도를 배반하고 돌아가는 자는 어째서입니까.」 대답하기를 「이런 사람은 족히 거론하지 않느니라.」
묻기를 「어찌하여 거론하지 않습니까.」대답하기를 「공경 하되 멀리할 것이니라. 」
묻기를 「입도할 때 마음은 무슨 마음이었으며 도를 배반할 때의 마음은 무슨 마음입니까.」
대답하기를 「바람앞의 풀과 같은 것이니라.」
묻기를 「그렇다면 어찌 강령이 됩니까」대답하기를 「한울님은 선악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 니라.」
묻기를 「해도 없고 덕도 없습니까.」
대답하기를 「요순의 세상에는 백성이 다 요순같이 되었고 이 세상 운수는 세상과 같이 돌아가는지라 해가 되고
덕이 되는 것 은 한울님께 있는 것이요 나에게 있지 아니하니라. 낱낱이 마음속에 헤아려 본즉 해 가 그 몸에
미칠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이런 사람이 복을 누리리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듣게 해서는 안되니,
그대가 물을 바도 아니요 내가 관여할 바도 아니니라. 」
18. 嗚呼噫噫 諸君之問道 何若是明明也 雖我拙文 未及於精義正宗 然而矯其人 修其身 養其才 正其心 豈可有岐貳之端乎
凡天地無窮之數 道之無極之理 皆載此書 惟我諸君 敬受此書 以助聖德 於我比之則 怳若 甘受和白受采 吾今樂道
不勝欽歎故 論而言之 諭而 示之 明而察之 不失玄機
아! 참으로 감탄할 일이로다. 그대들의 도를 물음이 어찌 이같이 밝고 밝은가. 비록 나의 졸렬한 글이 정밀한 뜻과
바른 종지에 미치지 못했을지라도, 그 사람을 바르게 하고 그 몸을 닦고 그 재주를 기르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어찌 두갈래 길이 있겠 는가. 무릇 천지의 무궁한 수와 도의 무극한 이치가 다 이 글에 실려 있으니, 오직 그대들 은
공경히 이 글을 받으라. 성스러운 덕을 돕기를 내게 비하면 황연히 단 것이 화청 을 받고 흰 것이 채색을 받는 것
같으리니 내 지금 도를 즐거워하여 흠모하고 감탄함 을 이기지 못하므로 논하여 말하고 효유하여
보이니 밝게 살피어 현기를 잃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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