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황룡 동학농민승전기념공원
1894년 5월 23일 동학농민군이 함평을 출발 장성에 도착 한다. 농민군 봉기 소식을
접한 정부는 홍계훈을 양호초토사로 임명, 800 여명을 인천을 출발 해로를 통해 군산에
도착시켜 5월 11일 전주성에 입성하게 된다. 동학농민군이 장성방면으로 진출하였다는
보고에 홍계훈은 이학승을 대장으로 300 명의 별동대를 조직 장성으로 나아가게 했다.
5월 25일 별동대가 황룡촌을 건너 월평리에 이르렀을때 동학농민군과 전투가 벌어졌고,
이 곳에서 농민군은 수 십명의 사상자를 내게 된다.
현장의 지세에 강한 농민군은 삼봉(三峰)에 올라 학 모양의 진을 치고 전투를 벌인다.
이 전투에서 가장 특기할 사항이 바로 농민군들이 사용한 '장태'이다. 한민족의 전투
원형인 '장태'와 농민군들의 위세에 관군은 영광 쪽으로 퇴각, 신촌리 뒷산 까치골에서
마지막 접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지휘자 이학승이 전사하고 농민군은 대승을 거둔다.
황룡 전투는 정식 훈련을 받은 관군과 농민군이 최초로 접전을 벌여 농민군이 대승을
거둔 것으로 이후 농민군의 전주성 점령에 대한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관군을 이끌다 숨진 이학승을 기리는 순의비도 근처에 있다. 또한 이곳은 집강소를 설치하여 농민 통치기반을 마련했던 뜻깊은 유적이기도 하다.
식전행사
북춤 / 내두름
박남수 천도교(天道敎) 교령님
대나무 닭장 형태로 크게 만든 다음 안에 짚단 등을 채워넣고 낫 겉으로 날붙이가 튀어나와 부딪힌 적이 상처를 입게 만든 것. 사진출처 : 한겨레 신문 실제는 사진 보다 더 컷을 것으로 생각된다. 2차 봉기 때에도 장태가 등장하긴 했지만, 우금치 전투 등에서 등장한 개틀링 건(기관총) 앞에 동학농민군은 떼 죽음을 당하고 만다. 동학천도 집례 애국가 제창 순국 선열과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묵념 청수 봉전 심고 心告 주문 3회 병송
侍 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시 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내빈 소개, 경과 보고 / 이상식 전남대 명예교수 묻기를 어느 때에 현도가 되겠습니까? 해월신사 대답하시기를 산이 다 검게 변하고 길에 다 비단을 펼 때요, 만국과 교역할 때이니라. 묻기를 어느 때에 이같이 되겠습니까? 해원신사 대답하시기를 때는 그 때가 있으니 마음을 급하게 하지 말라. 기다리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오리리, 만국 병마가 우리나라 땅에 왔다가 후퇴하는 때이니라. 『해월신사법설』 「개벽운수」
Lex Yeux Fermes(눈을 감고) / Andre Gag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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