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18
전엔 볼 수 없었던 당간지주가 세워진 우악스런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헉~~ 외마디 신음과 함께 부글 부글 끓어오르는 심사.
불전에 바쳐지는 공양 중에 꽃 공양이 으뜸이라 했던가?
헌데, 당간지주를 세운답시고, 봄날이면 가장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던
대웅전 앞 그 아름답게 피어나던 이 만첩분홍매는 어디론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내가 주장하는 내소사 제1의 보물 '내소매'
(수령 약 200년 추정)
가지 맨끝을 보면 말라 죽은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현 상태 그대로 놔둘 경우 머지 않아 고사하고 말 거라는 얘기다.
백일홍이 감싼 내소사 승탑군 맨 앞 열에
능파당, 만허당, 관해당, 해안당 등 네기의 비가 서 있다.
내소사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
격포 해안가
'수성당'엔 오늘도 여전히 요란한 굿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관해삼매(觀海三昧)
격포 앞 바다에 번지는 석양
채석강의 일몰
일전, 일포 선생님으로 부터 전해 듣긴 했었다.
내소사 경내가 찌렁찌렁 울리도록 역정을 내고 오셨다는...
그 사실을 깜빡 잊은채 멀리서 찾아 오신 지인을 모시고 들어선 대웅보전 마당.
헉!~~~ 개명천지 세상에 이런 일이.....
순간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도대체 어느 덜 떨어진 자가 이토록 용렬한 짓거리를 해댔단 말인가?
수려한 모습의 관음봉을 배경으로한 능가산 내소사,
삼층석탑 한기가 선 대웅전 마당이라고 해봤자 손바닥만 하다고 보면 된다.
헌데 그 작은 공간, 그것도 대웅보전으로 오르는 계단 바로 옆에
우악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당간지주를 세웠다?
내소사 가람 배치를 보면 결코 큰 절이 아니려니와,
어찌보면 대웅전 마당도 궁색할 만큼 작은 공간이라 보면 된다.
국가 보물로 지정되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대소사 대웅보전 전각의 아름다움은 이미 진즉에 수 많은 인구에 회자되어 왔던 터.
대웅전 앞에 당간을 세우는 모습도 흔지 않을 뿐더러,
대웅보전 얼굴에 X자를 쳐가면서 까지 꼭 전면에 당간을 세워야 했단 말인가?
당간지주의 전반적인 내용도 유치하기 짝이 없을 뿐 아니라,
위치 선택이 잘 못 되었다는 사실 정도는 삼척동자도 구별할 수 있을 터.
이 시대를 사는 절집 구성원들의 안목이 정녕 이 정도 수준밖에...
절을 세웠던 백제인들이 이 꼬락서니를 본다면 과연 무어라 할 것인가?
능가산 중흥법주이신 만허선사나 그의 제자이신 해안선사께서 주석하실 당시라면,
과연 현재의 지점에다 지금의 모습으로 당간을 세우게 내버려 두셨을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천왕문을 나와 승탑밭에 이른다.
유장하게 흐드러진 백일홍의 호위 아래 선 네 분의 선사비.
석전스님이 비문을 짓고, 위창 오세창이 썼다는 '만허선사비'를 보며
잠시나마 절마당의 당간지주에 핏발선 눈의 열기를 씻고,
大道人으로 추앙되는'해안범부지비(海眼凡夫之碑)' 뒷면에 적힌
‘생사어시 시무생사(生死於是 是無生死)’에 귀를 씻어낼 뿐.
여전한 더위, 승탑밭 앞 개울물 속에선 재잘대는 아이들의 물장난이 한창이었다.
이내 속 터지는 가슴 속 울화 따위완 아무 상관 없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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