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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백양사 고승 열전

                  ● 백양사 고승 유물 특별 기획전

                         만암 선사 * 서옹 선사

                  ●  백양사 고불 성보관  : 12월 말 일 까지

 

고불만추

 

 

 

 

 

 

 

 

 

 백양사 고불 성보관

 

소요대사 태능의 부도 

- 보물 제 1346호 -

(1562~1649)

전남 담양에서 출생, 속가의 성은 오씨다.

13세 때 백양사에서 삭발,

부휴와 서산대사 아래서 공부를 하였다.

소요대사의 비는 이 곳 백양사 말고도

구례 연곡사와 담양 용추사에도 있다.

 

조선시대 범종과 같은 형태의 석종형이다.

팔각의 기단부와 그 위에 바닥을 향해

엎어진 형태의 여덟장으로 된 연꽃 모양이

탑신을 받치고 있다.

 

탑신부는 하부에 두 줄기의 돌기대가 있으며

돌기대 안에는 용, 거북, 원숭이, 개구리, 뱀,

개 등이 사실적으로 새겨져 있다.

 

몸체부 중앙에는 문 형태의 문양이 조각되어 있고

상륜부는 4마리의 용과 그 사이로 구름 문양을

장식하였고, 위로 보주(구슬 모양의 장식)을

올려져 있다.

 

석조나한상 (조선 후기) 

 

석조달마입상 (1947년) 

 

 목조나한상 (조선 후기)

 

 석조나한상 (조선 후기)

 

금동여래좌상 (여말선초로 추정)

라마계 양식의 불상으로 만암스님 소장

 

동제사족향로 (銅製四足香爐)

뚜껑은 목조(木造)이고 조선 후기로 추정

 

 동제탄생불

(石造羅漢像) 연대 미상

 

석조나한상 (조선 후기) 

 

 석조나한상 (조선 후기)

 

 석조나한상 (조선 후기)

 

석조나한상 (조선 후기) 

 

 

대웅전 수미단 조각품의 일부 

 

아미타회상도

1775년 백양사에서 제작되어 220년 동안 봉안되어 오다가,

1994년 9월 도난당했다, 2006년 9월 백양사 고불성보관의

노력으로 되찾게 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아미타회상도는 지방문화재로 지정 예고되어 있기도 하다.

 

대공덕주학산당진영 (大功德主鶴山堂眞影) 

20세기 초 / 견본채색

 

경허당대선사진영 (擎虛堂大禪師眞影) 

20세기 초 / 견본 채색

 

취운당대선사진영(翠雲堂大禪師眞影)

20세기 초 /  견본 채색 

 

금해대선사진영 (錦海大禪師眞影)

20세기 초 / 견본 채색 

 

 목조관음보살좌상 (木造觀音普薩坐像)

조선 후기 / 목조 

 

백양사와 만암 스님

 

근대 백양사 제 2대 주지를 지내며,

 백양사 전체 역사를 통해

가장 돋보이는 불사를 일구어 냈을 뿐 아니라,

한국 근대 불교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속가의 성은 송(宋)씨로 고창 출신, 법호는 만암,

법명은 종헌 또는 목양산인(牧羊山人)이다.

 

11세 때 백양사의 취운도진(翠雲道珍) 스님에게 출가하고

16세 때 구암사 전문강원에서 한영(漢永)스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백양사 청류암에

전통강원의 교육 뿐만 아니라, 국어, 국사, 수리학 등

현대 학문도 가르친 광성의숙(廣成義塾)을 설립하고

찾아오는 젊은이 들에게 현대적인 민족교육도 실시 하였다.

 

또한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고,

광주 정광고등학교도 설립하였다.

 

1947년에는 민족정기를 세우고

왜색불교를 없애기 위해 고불총림을 만들었다.

 

1954년 '전국비구승회의'에서

종정(宗正)에 추대 되었다.

 

1957년, 세수 81세, 법랍 71세를 일기로

선정삼매에 들어 좌탈입망 하였다. 

 

 

만암스님이 즐겨 쓰셨던 주전자 

 

 청동은입사화병

 

 서옹스님과

그가 생전에 즐겨쓰던 슈바이처형 모자

 

서옹스님의

불자 . 염주 . 가사 

 

역시 서옹스님의

죽비 . 염주 등 

 

서옹스님의 친필이 들어간 백자 

 

서옹스님이 쓰시던

붓, 벼루, 연적 일괄

 

서옹스님의 달마도 

 

서옹스님의 낙관 

 

서옹스님 친필 백자 

 

 구리주전자

 

 

서옹선사의 낙관 

 

청자화병(서옹스님 소장)

 

서옹스님 친필 자개 백자 

 

 청자향로 (서옹스님 소장)

 

틱낫한 스님 글씨 액자 

 

 석가여래좌상

(중국에서 받은 서옹스님 소장품)

소재 / 옥

 

나주 운흥사지 금동여래입상

(전남유형문화재 제260호)

연대 / 통일신라

 

 

* 백양사의 고승 *

 

* 각진국사 복구(覺眞國師 復丘) (1270~1355)

고려시대 고승, 경남 함안 출신으로 속가의 성은고성(固城) 이씨이다.

말년에 영광 불갑사에 주석하다 삭발 본사인 백양사에서

1355년(공민왕4)에서 세수 86세 법랍 76세로 입적하였다

불명은 복구(復丘), 탑호는 자운(慈雲)이다.

 

* 소요대사 태능(逍遙大師 太能) (1562~1649) 

전남 담양 출신, 소요당집이 있고 세수 87세, 법랍 75세를 일기로 입적.

 

* 연담 유일(連潭 有一) 스님 (1720~1799)

조선 후기의 고승, 성은 천(千), 이름은 유일(有一),

자는 무이(無二), 법호는 연담(蓮潭)으로 전남 화순 출신.

세수 80세에 장흥 보림사 삼성암에서 입적하였고 비는 두륜산에 있다.

 

*도암(道庵) 인정 선사 (1805~1883)

조선 후기의 스님으로 백양사를 중창하였다.

속가의 성은 연안 차(車)씨이고 천진암(天眞庵)에서 수 년 동안 머물다

(고종 20) 세수 79세, 법랍 66세로 입적하였다.

 

* 환응 탄영 율사 (1847~1930)

1847년(헌종 13) 전북 무장 출신,

만년에는 운문암(雲門庵) 곁에 지은 우은란야(愚隱蘭若)에서

좌선하다가 1930년 법랍 70세로 입적하였다.

 

* 용성 진종(龍城 震鐘) 스님 (1864~1940)

1864년 5월 8일 남원에서 출생, 속명은 상규(相奎), 법명은 진종(震鐘)

법호는 용성(龍城)이다, 16세에 해인사로 출가하였다.

"심조만유론(心造萬有論)" "각해일륜(覺海日輪)" 등 많은 저술과 역경(譯經)을 남기고

1940년 2월 24일 새벽 홀연히 입적하니 세수는 77세요 , 법랍은 61세 였다.

 

 

* 학명 계종(鶴鳴 啓宗) 스님 (1867~1929)

근대 최고의 선승으로 성은 백씨, 호는 학명(鶴鳴)으로 전남 영광 출생,

내장사에서 세수 63세에 입적하였다.

 

*한영 정호(漢永 鼎鎬) 스님 (1870~1948)

근대 한국불교 최고의 강백으로 호는 영호(映滸), 전주 출생.

1945년 내장사에서 세수 79세, 법랍 67세로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석전시초" "석림수필" "석림초"가 있다.

 

 

* 만암 대종사 (1876~1957)

전북 고창 출신, 법호는 만암, 법명은 종헌 또는 목양산인(牧羊山人)이다.

1954년 종정(宗正)에 추대되었고 1957년 세수 81세, 법랍 71세를 일기로

선정삼매에 들어 좌탈입망하였다.

 

* 인곡 창수(麟谷 昌洙) 스님 (1895~1961)

법호는 인곡(仁谷), 속명과 법명은 창수(昌洙)이다, 1895년 3월 15일

영광 법성면에서 출생, 1961년 67세 되던 해 하안거 도중 문도들을

불러 모으고는 "어행수탁(漁行水濁)이요, 조비모락(鳥飛毛落)" 이라면서

"금일(今日)에 가리라" 며 입적을 예고하고 열반에 들었다.

이날이 음력 7월 15일로 세수 67세, 법랍 54세 였다.

 

* 묵담 성우(默潭 聲祐) 스님 (1896~1981)

1896년 3월 8일 담양에서 출생, 1907년 백양사로 출가하였다.

법명은 성우, 법호는 묵담, 1981년 1월 2일 담양 용화사에서

세수 85세, 법랍 74세로 입적하였다.

 

* 해안 봉수(海眼 鳳秀) 스님 (1901~1974)

전북 부안 출생, 1914년 14세때 내소사의 만허 경화(滿虛 慶華) 스님께 출가하였다.

세수 74세, 법랍 57세로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해안강의 금강경"과 시집 "시심시불(是心是佛", "해안집" 등이 있다.

 

* 우화(雨華)선사 (1903~1976)

당대 선지식인 운봉스님의 법맥을 이어 받았다.

1976년 병진 10월 1일에 이르러 "금성산(錦成山)에도 해가 저무는구나"

하고 미소를 짓더니 이내 미질(微疾)을 보이고 문도들에계 각자 노력하라 하며

"할운(할云)하되 방하주장변와거(放下柱杖便臥去)하니

강성오월낙매화(江城五月落梅花)로다" 하시고 귀적(歸寂)하니

세수는 74세요, 법랍은 60세 였다.

 

* 혜암 성관(慧庵 性觀) 스님 (1920~2001)

1920년 3월 22일 장성군 장성읍 덕진리에서 출생,

법명은 성관이요, 법호는 혜암이다.

조계종 제10대 종정을 지내고 세수 82세, 법랍 56세로 입적하였다.

 

* 서옹(西翁) 스님 (1912~2003)

1912년 10월 충남 논산에서 출생,

1932년 7월에 백양사로 출가, 만암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였다.

1974년에 효봉(초대), 청담(2대), 고암(3, 4대) 스님에 이어

조계종의 제 5대 종정으로 추대되었고

1996년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으로 납자들을 지도하였다.

2003년 12월 13일 세수 92세, 법랍 72세를 일기로 백양사 설선당에서

결가부좌 한채로 좌탈입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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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백양사 고불 성보관에 내 걸린 고승들의 면면을 적은 것이다.

 

허지만, 소위 성보관 명단에 오르지 못한(?) 수 많은 백양사 출신의

고승대덕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도 기억하고 조명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의 백양사가 있기까지 수 많은 스님네들의 노고가 있었겠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근대 백양사의 중창주요, 오늘날의 고불총림을

탄생시킨 주역  송만암 스님의 공적은 너무나도 위대하다.

 

내 어릴적 사하촌 사람들은

꼭, 속가 성을 앞에 붙여 그 이를 송만암 스님이라고 불렀었다.

너무 너무 가난한 절 집의 살림살이 속 에서도 피 나게 공부하시던

스님네들의 모습이 지금도 내 머리 속에 여전히 각인되어 있다.

 

고불총림  백양사.

 

그 곳은 언제나 불법(佛法)으로 가득차 있고

 또한 백암산의 사계는 너무나 아름답기에

 

가기만 하면 언제고 

기쁨과 감동을 한아름 선물로 내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2008. 11. 14(금)